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31
232 : 알고 있죠?
***
카페 근처 치킨집, 항상 알바 끝나면 알바 동료들, 아니면 친구들과 들러서 치맥을 즐기던 우리 단골집.
그곳에 오늘은 병진이 형과 단둘이 앉아 있다. 내가 형에게 괜찮으면 한잔하자고 했으니까.
사실 치맥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좀 답답한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고, 병진이 형도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병진이 형은 맥주를 홀짝이며 말없이 내 이야길 들어주고 있었다.
내가 형에게 해준 이야기는 최근 나와 서현 씨, 지연이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론 내가 작은 어르신이고, 서현 씨가 할아버지를 보필하는 네 개의 기둥, 사주(四柱)의 일원으로 날 모시고 있고, 지연이도 사주 중 한 명인 은사님의 영애란 것 등등. 그렇게 있는 걸 전부 다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가깝게 지내던 A라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관계가 좀 애매해서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다.
그랬는데, 최근에 A가 나에게 한발 다가서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나는 그게 일종의 시그널이라고 생각해서 이제 A와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겠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그 이후 A라는 사람은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따로 친하게 지내던 다른 B라는 사람에게서도 고백을 받았는데, 그 고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정리해서 이야기를 해줬다.
내 이야길 다 들은 병진이 형의 반응은 이랬다.
“…이거는 내가 잘 몰라서 확인차 물어보는 건데… 혹시 지금 자랑하려는 거냐?”
“아니에요. 그런 거.”
“그러면? 이야기의 요지가 뭔데? 두 사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누구랑 사겨야 할지 모르겠다. 안 걸리고 양다리 걸치는 법 같은 거 알려주세요. 그런 건가? 그런 거지? 자랑인데?”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젠장 망했어. 이 인간에게 상담하는 게 아니었어.
그나마 서현 씨나 지연이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사람이니까 중립적으로 이야기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알았어. 농담한 거야. 눈 봐라. 잘하면 형 치겠다?”
병진이 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솔직히 말해서,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가 조금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얼핏 들으면 그냥 A와 B라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한 놈처럼 들리는데, 단순히 그건 아니라는 거잖아?”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게 좀. 뭐랄까. 말씀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래. 뭔가 좀 더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를 안 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적어도 내가 아는 너는 그렇게 단순한 걸 가지고 고민하는 녀석은 아니니까. 하지만 솔직히 내가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정확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사실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내가 해준 이야기, 단편적이고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이야기만 듣고서 답을 달라는 건 솔직히 무리기는 하지.
“하지만 말이야. 이런 말은 해줄 수 있지 않나 싶어. 문제가 복잡할수록 오히려 풀이는 간단해야 하는 거 아닐까?”
“어떻게요?”
“답에만 집중하는 거지. 쓸데없는 계산은 패스해버리고. 이건 좀 맞지 않는 예인 것 같기는 한데, 왜 그 수학 문제 중에서 계산이 복잡한 문제들이 있잖아. 그런 문제를 풀면서 막 계산식을 쓰다가 내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까먹을 때가 있잖아. 내가 구하는 답이라는 목표까지 루트가 명확해야 하는데, 계산식에 치이다 보면 그 루트를 잃어버리게 된달까? 이건 좀 확실히 이상하네. 아무튼, 필요 없는 계산식에 너무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답이라는 목표만 바라보는 거지. 예를 들어서 직접 물어보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고.”
“…직접 물어본다고요?”
“A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내가 아는 사람?”
“아니에요. 형은 모르는 사람.”
“아무튼, 그 A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니가 아무리 생각해봤자 모르는 거잖아. 독심술 같은 걸로 마음을 읽어낼 수도 없고.”
“….”
“그러면 물어보는 수밖에 없지. 사실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혼자서 생각하는 건 다 가치 없는 가정일 뿐이야. 사실 나도 그랬어. 누나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고민들 엄청 했었다고. 혼자서 그런 생각 하면서 희망회로 돌렸다가 좌절했다가 계속 그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치 없는 행동이었지. 만약 너의 마음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어떠한 대답이든 감내하겠다는 용기만 있다면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조언을 하자면 너 스스로에게도 제대로 물어봤으면 싶다. 거짓말을 못 하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니가 물어봤을 때, 마음이 하는 말이 거짓인지 진짜인지, 너는 알잖아. 아까 니가 말해줬던 A, B 그 두 사람에 대한 너의 마음이 어떤지 스스로에게 제대로 물어봐봐.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관계라든가 이후의 파장이라든가, 그런 부차적인 것들은 다 제외하고, 진짜 너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한번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
“나도 그랬어. 누나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확실하지만, 그거 말고도 다른 계산을 계속 하고 있었던 거지. 내가 자격이 있는지, 만약에 고백했다가 잘 안 되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시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그런 생각들. 나중에 정직원 계약 이야기 들었을 때도, 뭐랄까? 최소자격요건을 갖추었달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정직원 되었다고 또 그렇게 마음을 보이고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건지, 오해를 사지 않을. 그런 의미 없는 생각들을 계속 하고 있더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 등을 밀어준 사람이 너였잖아.”
형이 그렇게 말하며 내 가슴을 쿡 하고 찌른다.
“기억나냐? 니가 했던 말? 고백할 때 무슨 자격이 필요하냐고.”
“…그랬죠.”
“너는 큰 의미 없이 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이 나한테는 임팩트가 있었어.”
“…의미 없이 한 말은 아니었어요.”
“그러냐?”
“네. 저도 두 사람 잘 되길 바랐으니까요.”
“그래. 고맙다. 아무튼, 너의 그 이야길 듣고서 한번 생각을 해봤어. 그런 거, 누나의 입장, 내 현재 위치, 그런 거 다 빼고. 그렇게 생각을 했더니 답이 나오더라. 내가 누나를,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 그 사람이 점장이라서, 예뻐서, 그래서 좋아하는 게 아니고, 순수하게 사람으로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있고 싶다, 그렇게 말이지. 뭐, 그렇게 결론이 나왔다고 해도 실제 고백으로 갈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래. 그냥 단순하게, 마음 가는대로. 그게 가장 최선인 것 같아.”
“마음 가는대로….”
“사실 아직까지 너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지만. 뭐, 내가 아는 너라면 둘 중에 누구랑 사귈까 하는 그런 단순한 고민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럴 녀석은 아니지.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럴 때일수록 심플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그게 보통 정답이더라.”
“…네.”
형의 이야기로 명확한 답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마음이 답답했던 것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 순간에.
“지연이가 B인 거지?”
형이 그렇게 물어본다.
“네?”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맞아요.”
내 대답에 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잔에 맥주를 따라준다.
“누나가 그러더라. 지연이가 너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누나가요?”
“여자들은 확실히 그런 부분에서 눈치가 빠른가 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마찬가지 아냐?”
형이 물어본다.
“나는 뭐, 그런 부분에서 눈치가 빠른 건 아니지만, 너도 지연이한테 마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중훈이도 그런 말을 했었다.
-너도 좋아하잖아. 지연이.
그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아닌가? 내가 잘못 본 건가?”
“…맞아요.”
내가 말했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야만 한다면, 내 마음은 지연이를 좋아한다는 쪽에 가깝다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또 있는 거겠지?”
형이 그렇게 말해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연이 그 친구 아직 잘 모르지만, 괜찮은 사람 같더라. 뭐 주제넘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상처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 니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우선 스스로에게 제대로 물어봐봐.”
형은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불 꺼져 있는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서현 씨는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할 것 없었다.
요즘에는 월요일마다 알바가 끝나고 술자리가 있었다. 그때마다 서현 씨에게 늦을 것 같다고 보고를 했었고, 다음 날 출근하는 서현 씨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병진이 형과 이야기 좀 하고 들어가겠다고 미리 문자를 보내놨기에 서현 씨가 나를 기다리는 일은 없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보통 걸음으로 걷는다고 해서, 잠들어있는 서현 씨를 깨우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바로 방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목이 마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방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따르려던 그 순간에 거실 너머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거실을 비추고 있었다.
“지금 들어오신 거예요?”
열린 문으로 모습을 드러낸 서현 씨가 그렇게 물어본다.
“네. 혹시 저 때문에 깨신 거예요?”
“아니요. 책을 좀 보다가. 이제 막 자려던 참이었어요. 뭐 드시려고요?”
서현 씨가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목이 말라서. 물 한 잔 마시고 들어가려던 참이었어요. 서현 씨도 물 드릴까요?”
“제가 따라 마실게요.”
서현 씨가 그렇게 말하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다가오는 서현 씨는 평소처럼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시선은 그렇게 미소를 띠고 있는 서현 씨의 입술에 멈춰 있었다.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에게 서현 씨가 그렇게 물어본다.
“…아니요. 특별히.”
내가 그렇게 대답했지만, 서현 씨는 여전히 날 바라보고 있다. 날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병진이 형이 해줬던 말이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만약 너의 마음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어떠한 대답이든 감내하겠다는 용기만 있다면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
“알고 있죠?”
내가 물었다.
“네? 뭐를요?”
서현 씨가 의아하다는 눈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런 서현 씨를 똑바로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내가 서현 씨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