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4
24 : Home과 House의 차이 (6)
“어서 오세요.”
현관문을 열자 어김없이 서현 님이 현관 앞에 서 계신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신발을 벗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네. 알바하면서 먹었어요.”
“제대로 드셨어요?”
서현 님이 내 눈을 바라보며 묻는다.
의례적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하는 눈이다.
하숙집 할머니처럼, 그리고 할아버지처럼.
어쩐지 저 눈이 무섭다. 무서우면서도 고맙다.
“네. 잡채밥 먹었어요. 점장 누나가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것만큼은 확실히 챙겨 줘요.”
내 말에 서현 님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하실 말씀이…?”
“아. 먼저 씻으세요. 피곤하실 텐데.”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씻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벗고, 샤워를 하면서 과연 서현 님의 할 말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보았다.
결국 둘 중에 하나겠지. 여기 남겠다. 아니면 떠나겠다.
떠나겠다는 대답이면 이야기는 단순해진다.
서현 님은 자기 집으로, 나도 이 커다란 집에서 혼자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숙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지만 박승환이 쏘아 올린 작은 화살이 온 천지를 덮은 폭죽이 되어 버렸으니 그러기도 쉽지 않다.
분명 뻔뻔하게도 다시 하숙집 할머니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 먹으려는 검은 머리 짐승 소리를 듣게 되겠지.
모르겠다. 회장님이 원룸 하나 해 주시겠지.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회장님 책임도 있으니 모른 척하시지는 않겠지.
젠장. 이러다 진철이 형 말마따나 고시원 가서 샤워하는 거 아냐?
아무튼, 그건 그거고, 만약 서현 님이 남겠다고 한다면?
사실 그게 큰 문제다. 만약 서현 님이 이곳에 남겠다고, 아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어르신을 모시는 강씨 가문의 굴레 때문에, 또는 할아버지의 지시 때문에, 그래서 이곳에 남아서 나를 모시겠다고 한다면? 아니, 모시게 해 달라고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서현 님은 아름답다. 솔직히 서현 님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배경으로 성장했는지,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확실히 그 외모는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아름답다.
물론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사랑에 빠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한 호감을 느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지금이 현대사회가 아니었다면, 인권, 특히 여성 인권이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거나 거의 없던 시대였다면, 내가 가진 지위적 우위를 통해 서현 님을 소유하려 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아름다운 사람이고, 어떤 욕망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 욕망으로 다른 누군가의 자유의지에 반하는 짓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인간이니까.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짐승이 아니라 이성을 따르는 인간이니까.
그래. 서현 님이 만약 남겠다고, 아니, 남아야 한다고 말하면?
나는 거절할 것이다.
***
샤워를 마친 나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서현 님은 거실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오자 서류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다 씻으셨어요? 이리 앉으세요.”
서현 님은 나에게 자리를 권하고 주방으로 갔다.
나는 그녀가 내려놓은 서류를 힐끗 바라보았다. 중앙그룹의 로고와 옆에 ‘대외비’라는 글자가 보였다.
주방으로 갔던 서현 님이 차가 담긴 쟁반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쟁반에는 찻주전자뿐만 아니라 약간의 견과류도 담겨 있다.
“저는 자기 전에 캐모마일 차를 한 잔씩 마셔요. 진정 효과가 있어서 숙면에 좋거든요.”
서현 님이 내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르면서 말한다.
“네. 그렇군요.”
나는 찻잔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현 님이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했다.
매일 마시는 차를 한 잔 더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니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우리 둘은 잠시 말없이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캐모마일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생각을 해 봤습니다.”
침묵을 깬 것은 서현 님이다.
이제 본론이구나. 아… 긴장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작은어르신의 말씀처럼 이곳을 집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이 집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한 모금 마셨다.
놀라지 않았다. 예상했으니까.
그녀가 떠나기를 원했다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지로 선택하기를 원한 것이다.
20대의 젊은 여성이, 아무리 할아버지의 명령이라고 해도, 한 사람을 모시기 위해 하인처럼 생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군다나, 같이 살면서 출퇴근도 없이 24시간 내내 한 사람을 모셔야 하는 상황은. 가업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강요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아니.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녀의 의지로,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일이다.
“작은어르신. 죄송합니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나는 서현 님에게 웃으며 말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솔직히 좋았다. 기뻤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마웠다.
나는 마지막으로 서현 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에, 마음에 담아 두기 위해서.
그런 내 눈을 보면서 서현 님이 말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이 집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응?
뭐라고요?
“우선 그 전에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은어르신께서는 아마 제가 할아버지의 명령이나 가업이라는 의무에 묶여서 제가 제 자유의지 없이, 싫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 맞는데요?
“그래서. 억지로 묶여 있는 저를 풀어 주시려고 그래서 그러한 말씀을 해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맞… 맞는 것 같습니다. 맞나?
“제가 작은어르신의 입장이었어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게 부담스럽다는 말은 아닌데….”
“우선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어르신에게 부담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 부분은 확실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할아버지의 명령이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가문의 억압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아버지의 지시가 아니라 제 의지였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현 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눈을 바라본다.
저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에 심연까지 빨려 들어갈 것 같아.
아니지.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서현 님의 의지였다고?
“할아버지의 권유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작은어르신 옆에서 돌봐 줄 수 있겠느냐고. 그렇게 권유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저에게 원한 역할은 가끔씩 작은어르신을 뵙고 뭔가 불편한 점이 없으신지 파악해서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그 정도의 역할이었습니다.”
그… 그런데요?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곁에서 모시고 싶다고. 같이 살겠다고.”
“…서현 님이요?”
“네.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왜… 그러셨죠?”
“싫으신가요?”
내 질문에 서현 님이 내게 웃으며 되물어보신다.
“싫을 리가 없죠! 완전 감사하죠!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도대체 왜….”
“죄송하지만 그 질문에 오늘 답은 못 드리겠어요. 언젠가 말씀드릴 때가 오겠지만, 오늘은, 아니, 당분간은 답을 미뤄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말씀 안 하셔도.”
이유가 뭐가 중요해! 서현 님의 자! 유! 의! 지! 라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제가 같은 집에서 살며 작은어르신을 모시겠다고 했을 때, 할아버지는 말리셨어요. 니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시면서.”
나는 오해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노복이라고 부르는 회장님이 서현 님에게도 종노릇을 강요했구나.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손녀에게도 하녀 일을 강요했구나, 하고.
“할아버지와 작은어르신의 말씀이 맞았어요. 저는 일반적인 20대 여성의 삶을 살아왔고, 그래서 지금 상황은 저에게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상황인 것은 맞습니다.”
그녀도 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지금 분위기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어쩌면 저리 차 마시는 모습도 기품 있으신지.
일어나지 마! 임마! 차 마시는 모습으로 서지 마! 이 자식아!
“어떻게 해야 잘 모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작은어르신이 좋아하실까? 어떻게 해야 작은어르신이 편하실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저 스스로가 점점 더 상황을 악화시켰어요. 하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 그 표현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게.”
“그 표현이 맞아요. 저는 하인처럼 주인을 어떻게 잘 모실 수 있을까만을 생각했어요. 작은어르신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제 마음만 생각했어요.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작은어르신만큼 저도 지금 환경이 낯설고 어색했으니까, 작은어르신을 돌봐 드린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그저 제 앞가림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까.”
“…그러셨군요.”
“어제 해 주신 말씀 중에 그 말씀을 계속 생각해 봤어요. 한 사람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희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꼭 작은어르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런 말을 했던가? 내가?
“저는 그저 제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어르신을 저의 기준에 가둬 버렸어요.”
아닌데요? 그런 거 아닌데요?
“제가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작은어르신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그저 저만 생각하면서 폐를 끼쳤어요.”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하지만 저도 이것만은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작은어르신과 함께하겠다는 것은 저의 선택이었고, 누구의 강요도 아닌 제 선택이었다는 것을요.”
서현 님의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능력을 쓰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눈동자를 통해서, 그녀가 지금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와 함께해서 좋았다는 말씀, 하인이 아니라 저라는 사람과 함께 해서 좋았다는 어제 마지막 말씀. 그 마음이 지금도 변하지 않으셨다면.”
서현 님이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작은어르신의 식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했다.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한 여인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가장 아름다운 입술을 열어, 아름다운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