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49
250 : 시우(始偶) (2)
-죄송합니다. 갑자기 전화드려서 많이 놀라셨죠?
전화기 너머로 서현 씨 어머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말투로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조금 놀랐기는 했었다.
서현 씨 어머님의 전화를 받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래. 뭐 억지로. 아주 억지로 끼워 맞추면 친구의 어머니,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건 표면적인 관계이고, 그런 표면적인 관계의 기저에는 작은 어르신과 어르신을 모시는 가문의 일원이라는 특수성이 깔려 있다.
그런 특수성을 배제하고서라도, 단순히 친구의 어머니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그 친구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현 씨니까.
조금 놀라긴 했지만, 어머님의 전화가 불편하거나 어색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게 남들이 들으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번 만남을 통해서 어머님께 조금은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한국 들어오신 줄 몰랐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안부를 물어본다.
-네. 지지난 주에 들어왔어요. 안 그래도 저녁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서현이에게 말했었는데, 계속 바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아. 네. 하하. 뭐. 바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작은 어르신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서현 씨 어머님께서 그렇게 물어보신다.
“네? 아. 네. 저는 지금 시골에 내려와 있습니다.”
-시골이시라면… 성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성소(聖所). 성스러운 장소, 할아버지가 머무는 곳을 이렇게들 부르시더라.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네. 뭐. 네.”
-혹시 언제 내려가셨는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서현 씨 어머님의 목소리에서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어제 내려왔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러고는 잠깐 침묵이 흐른다.
그 짧은 침묵에서 나는 지금 이 전화가 단순한 안부 전화는 아니라는 사실을, 무언가 용건이 있으셔서 전화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어떤 일 때문에 전화 주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가 먼저 그렇게 물어본다.
-아. 죄송해요. 특별한 건 아니고,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저녁을 함께하실 수 있으신지 여쭤보려고 전화드렸어요.
“…저녁이요?”
-네. 지인이 운영하는 괜찮은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저녁을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요. 제가 또 차려 드린다고 하면 부담스러우실 테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저녁을 대접해 주신다고? 서현 씨와 같이? 아니면 둘이? 그리고 둘이라면 서현 씨 문제 때문에?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떠오른다.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감사하죠.”
하지만 이렇게 대답한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쁘네요. 하지만 힘드시겠죠? 성소에 내려가 계시니.
나는 시계를 힐끗 바라보았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 바로 준비해서 올라가면, 아니, 따로 준비할 것도 없이, 그냥 서점 문 닫고, 터미널 가서 버스 타면 저녁 시간 전까지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
“괜찮으시면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어디로 찾아뵈면 될지 장소만 말씀해 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그러면 차를 보내…, 아니, 제가 직접 모시러 가겠습니다.
역시…. 이렇게 말씀하시는구나.
“괜찮습니다. 제가 버스 타고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그게 편합니다.”
어중간하게 말씀드리면 혹시라도 잘못 알아들으실지 몰라서 확실하게 말씀드린다.
실례되는 행동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배웠다.
-…불편하실 텐데요.
“저는 그게 편합니다. 진짜로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시간은 언제가 편하세요?
“저는 언제든 괜찮습니다. 일단 올라가는 시간이 있으니 버스 타면 도착 예정 시간을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시간은 작은 어르신께서 버스 타시면 그때 확실히 정하도록 하면 될 것 같네요. 아. 그리고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머님이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신다.
부탁? 무슨 부탁을….
“네. 말씀해 주세요.”
-다른 게 아니라 오늘 뵙는 거, 서현이는 몰랐으면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서현 씨는 몰랐으면 좋겠다고?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와 단둘이 만나 주실 수 있으신지 여쭤보고 있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직접 올라와 주시는데 이런 부탁까지 드리다니.
나는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서현 씨 어머님과 단둘이 만나는 것이 싫다거나 부담스럽다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좀 부담…이라기 보다는 어색할까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서현 씨 없이 뵙는 것은 처음이니까.
하지만 그런 어색함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일단 그렇게 말했다.
올라가겠다고 말씀까지 드린 상황에서, 서현 씨 없으면 어색해서 안 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또 안 물어볼 수도 없지.
“그런데… 혹시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드려도 괜찮을까요? 전화로 하기에는 좀 그래서. 죄송합니다.
그런 대답이 들려온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버스에 타면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 달라는 서현 씨 어머님의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전화는 끊어졌지만, 나는 휴대폰을 손에 든 채로 잠시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서현 씨 어머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서울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녁을 함께 하자는 권유를 받았을 때, 서현 씨 모르게 만났으면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화로 하기 곤란한 이야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현 씨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려는구나.
하긴, 한국에 들어오셨으니 모르실 리가 없지. 서현 씨가 본가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말이지.
요즘 왜 이렇게 머리 복잡해지는 일들이 자꾸 생기는지 모르겠다.
나는 서점 문을 닫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욕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
“어떠세요?”
서현 씨 어머님께서 그렇게 여쭤보신다.
나는 서초동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에 앉아 있다. 그런 내 앞에는 이게 음식인지 확신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접시에 담겨 있다.
뭐라고 했더라? 조금 전 자신을 셰프라고 소개한 백인 남자가 유창한 한국어로 직접 이 요리의 이름이 뭐고, 재료로 어떤 걸 사용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등을 소개해 주었지만,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남아있는 기억이라고는 스페인 남부 지방 요리라는 거 정도?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평범한 것 같은데? 양은 심하게 적고. 하지만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
그렇다고 스페인 요리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면서,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공기가 듬뿍 담겨 있는 올리브의 향이 매혹적으로 느껴집니다’ 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잖아.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 질 낮은 평론에 서현 씨 어머님은 작게 미소 지으신다.
“죄송합니다. 조금 더 편한 자리로 모실 걸 그랬나 봐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식기를 집어 들었다.
“소개해 드리고 싶었어요. 여기는 서현이도 좋아하는 곳이거든요.”
서현 씨의 이름이 나오자 순간적으로 식기를 든 손이 멈춘다. 나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다시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스페인 요리는 처음이라서요.”
사실 스페인은 물론 정통 프랑스, 이탈리아 음식도 먹어 본 적 없지.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스페인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요리 강국 중 한 곳이에요. 재료 영역도 넓고, 향신료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편이고요.”
어머님이 그렇게 설명해 주신다.
내 머릿속에는 ‘서현’이라는 이름이 가득 들어차 있지만, 일단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거려 본다.
“그리고 조금 전 인사드렸던 셰프가 제 지인이예요. 한 10년 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시아 요리를 공부하고 싶다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소개를 받았어요. 보통 유럽 쪽 요리인들이 자부심도 높고, 고집도 센 편이라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는데, 저 친구는 생각도 유연하고, 또 한식도 좋아하고 그래서 친구가 되었죠. 마침 저 친구가 한국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여기에 정착하고, 이 식당을 열었어요. 맛도 괜찮고, 분위기도 좋고 그래서 작은 어르신께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작게 고개를 숙였다.
***
다른 누군가가 봤다면 꽤나 분위기 좋은 저녁 식사 자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화는 자연스러웠고,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처럼, 대화가 끊길 만한 타이밍에 다음 음식이 나왔다.
대화라고는 해도 그다지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괌의 최근 날씨라든가, 지난번 괌에 놀러갔을 때 만났던 선장님의 근황 같은 이야기를 전해 주셨고, 나는 친구들과 엠티를 다녀온 이야기나,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서 같이 일하는 형이 정직원이 된 이야기 같은 걸 전해 드렸다.
따지면 서로가 관심 있어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화는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특히 어머님께서는 병진이 형 이야기를 들으시며 ‘어머. 너무 잘되었네요’ 하고 진심어린 반응을 보여 주셔서 조금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어색함 없이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대화들이 사실은 핵심을 피해 주변을 겉돌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 코스인 커피가 나왔을 때.
“혹시 식사 후에 따로 약속이 있으신가요?”
어머님께서 그렇게 물어보셨을 때, 나는 드디어 ‘전화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아니요. 특별한 약속은 없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레스토랑에는 미리 양해를 구해 놨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어머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일종의 기어 변속이었다.
“우선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제가 작은 어르신께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결례를 범하는 걸 용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작게 고개를 숙이신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조금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를 하시기 전까지, 어머님은 나를 서현 씨의 친구로 대하셨었다. 속마음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여 주는 모습은 그랬다.
하지만 방금 전 사과는 우리 두 사람이 작은 어르신과 어르신을 모시는 가문의 일원이라는 특수한 관계라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 정도뿐이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서현이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신다.
조금 전 나처럼 기어 변속을 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먼저 이 말씀부터 여쭤보겠습니다. 작은 어르신께서는 우리 서현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본론이 깊숙하게 찔러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