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53
254 : 초대받지 못한 손님 (1)
***
거실 소파의 앉아 있는 강민철 회장의 얼굴은 침착해 보였다.
실제로도 그는 침착했다.
조금 전 그의 마음을 잠식해 들어왔던 의문에서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답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어르신께서 생각이 있으실 것이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어르신의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저 그렇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개운하지 않은 결론을 내린 강민철 회장은 고개를 살짝 돌려 복도 쪽을 바라보았다.
복도 끝에는 방이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었다. 어르신, 작은 어르신, 그리고 작은 어르신의 반려가 되실 시우께서 계신 저 공간에서 어떠한 대화가 오고 가고 있을지 그로서는 알 방도가 없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렇게 다시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지만, 마음이 자꾸 가라앉으려는 것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작은 어르신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문을 닫기 전 마지막 보았던 모습을 감안 한다면, 그리 좋은 분위기는 아닐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강민철 회장은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실의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작게 한숨을 쉬었다.
중앙그룹의 총수를 맡고 있는 그가 개입하지 못하는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니, 오늘 이 자리를 제외하고, 그가 알고자 했으면 알 수 있었고, 말하고자 했으면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모르겠군요.”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남자가 강 회장에게 말을 건넸다.
강 회장은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말을 건 남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서주(書柱)를 맡고 있는 유주원 교수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어르신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사주 중에서 작은 어르신과 가장 직접적이고 가까운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그였으니까.
유주원 교수의 걱정은 작은 어르신이 아닌 제자를 향해 있을 것이다.
“…어르신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강민철 회장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유주원 교수도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다시 침묵이 거실 안을 메운다.
그렇게 침묵이 천천히 무거운 공기로 바뀌어 가는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초인종 소리였다.
거실에 있던 사주의 시선이 모두 현관 쪽으로 향했다.
놀란 눈으로 현관을 바라보는 강민철 회장의 머리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어르신과 작은 어르신, 그리고 시우께서는 방에 계신다. 그리고 어르신을 모시는 사주는 모두 거실에 있다.
더는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초인종이 울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누군가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일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는 일반 아파트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상복합 중 한 곳이다.
웬만한 일반 아파트의 월세를 훌쩍 뛰어넘는 관리비 안에는 거주민이 아닌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높은 수준의 보안 서비스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집을 잘못 찾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집을 잘못 찾아온 것보다 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강 회장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그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이현웅, 네 개의 기둥 중에서 인주를 담당하고 있는 이현웅이 현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거침없이 현관을 향해 다가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강 회장은 생각했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찾아온 이가 누구인지도.
초인종을 누른 이의 신분을 확인하지도 않고, 바로 현관문을 열고, 현관 너머의 상대방에게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이현웅의 모습이 강민철 회장의 생각을 뒷받침했다.
강민철 회장의 시선이 이현웅에게서, 거실에 남아있는 다른 두 사람을 향해 움직였다.
다른 이들도 알고 있었을까? 나만 모르는 것일까?
유주원 교수는 강민철 회장과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박기준 변호사의 시선도 현관문을 향해 있었지만,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평상시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던 것일까?
강민철 회장은 마음속으로 머리를 저었다.
그는 언제나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놀란 표정을 짓지 않았다고 해서, 그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속단할 수는 없었다.
강민철 회장은 다시 현관으로 시선을 돌렸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한 사람을 확인한 강민철 회장의 눈이 커졌다.
놀란 것은 강민철 회장만이 아니었다.
“아니. 정… 선생이 어떻게 여기에….”
언제나 차분함을 잃지 않던 유주원 교수가 놀란 얼굴을 감추지도 못한 채, 그렇게 겨우 말을 꺼낼 뿐이었다.
이제 현관에 완전히 들어선 남자는 그런 유주원 교수를 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마치, 그럴 것이라고, 자신을 보고 당황할 것이라고 미리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는 여유 있는 동작으로 유주원 교수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생님. 아니, 이렇게 뵙는 것은 처음이군요.”
그런 남자의 인사에, 유주원 교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놀란 표정으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바라볼 뿐이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시선이 이번에는 강민철 회장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궤주님 또한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가 말했다.
“…둘째 도련님께서 어떻게.”
강민철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
현관 쪽을 향해 있는 박기준 변호사의 시선은 강민철 회장이나 유주원 교수와는 달리,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맞이하는 이현웅에게 향해 있었다.
처음 초인종이 울렸을 때, 그리고 이현웅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박기준 변호사는 한 사람을 떠올렸었다.
그리고 그가 예상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가 떠올린 ‘어떻게 알았을까?’라는 질문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오늘 시간과 장소를 어떻게 알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답은 자명하다. 이현웅이 이야기해줬을 것이다.
박기준 변호사가 떠올린 의문은 인주인 이현웅이 어떻게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 관해서 알고 있느냐는 의미였다.
사주, 어르신을 모시는 네 개의 기둥은 각각의 역할이 있었다. 궤주는 금(金)을, 서주는 문(文)을, 인주는 정(政)을, 그리고 자신 문주는 지(知)를 담당하고 있었다.
지금 식으로 표현하면, 각각 재계, 학계, 정계, 그리고 정보사회를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모든 영역이 정확히 나뉜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영역이 겹치는 부분도 있었고, 관련되어 협의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박기준 변호사, 그가 그랬다.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고, 때로는 여론을 조성하는 일을 하는 그는 다른 기둥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상황에 따라 도움을 주었다.
말 그대로 도움이었다. 다른 기둥과 상대방 영역에 대한 도움이었지, 다른 기둥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침범한 경우는 그가 아는 한,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현웅이 지금 다른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아니, 이미 깊숙이 들어가 깃발을 세우고 자신의 영역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몰랐어야 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 궤주 강민철 회장으로부터 ‘둘째 도련님’이라고 불린 인물에 관해서, 지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유주원 교수처럼 인주인 이현웅도 몰랐어야 했다.
그의 영역이 아니니까.
그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존재는 오직 세 사람.
어르신, 그리고 어르신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궤주, 그리고 정보를 관리하는 문주, 자신뿐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알고 있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 그가 스스로 존재를 드러냈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궤주님은 아직도 절 그렇게 부르시는군요. 그리 듣기 좋지는 않습니다만…. 뭐. 일단은 넘어가도록 할까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난감해하는 표정의 강민철 회장을 보면서 그렇게 말한다.
손님 뒤에 서 있는 이현웅은 보일 듯 말듯 작게 미소 짓고 있다. 마치, 그의 주장을 지지한다는 듯.
“아니. 어떻게 여기에….”
강민철 회장이 묻는다. 그 목소리에 진한 떨림이 묻어나온다.
“제가 못 올 곳에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오랜만의 가족 모임인데, 제가 빠질 수는 없지요.”
그렇게 말한 초대받지 못한 손님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인다.
박기준 변호사와 눈이 마주친다.
“문주님에게는 처음 인사드리는군요. 따로 제 소개를 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말에, 박기준 변호사는 가볍게 목례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아무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기준 변호사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와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런 박기준 변호사를 보고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작게 웃었다.
“아드님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잘 보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남자의 말에 박기준 변호사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남들이 알아챌 정도는 아니었지만,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그런 박기준 변호사를 보고 작게 웃고는 다시 강민철 회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여러분들과 더 말씀을 나누고 싶지만, 일단 인사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강민철 회장은 그런 요청을 받았지만,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그저 당황한 얼굴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여러모로 실망인데요. 아까 그 둘째 도련님 소리도 그렇고. 뭐,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실 수 있죠. 하지만 계속 그러시면 곤란해질 것 같습니다. 아주 말이죠.”
남자의 말에 강민철 회장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한기를 느꼈다.
아니셨는데, 이런 분이 아니셨는데.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제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 뒤에 서 있던 이현웅이 그렇게 말하고 복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남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에 남아있는 세 사람을 다시 바라본 후, 이현웅을 따라 몸을 돌렸다.
***
고마음의 눈동자가 나를 직시하고 있다.
“기억해 주신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저를 받아주시지 못하신다 하여도, 기억해 주신다면, 제가 작은 어르신의 반려임을 기억해 주신다면. 저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다. 그녀의 말이 내 의식을 강하게 파고든다.
강하게 파고들어 뇌리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지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
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내가 말을 이어 가려던 찰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내 말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내 시선이 문으로 향하는 것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할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열린 문으로 성큼 들어오는 한 사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그가 말한다.
“그것은 바로 또 한 번의 환생을 강요한다는 의미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한국대 프린스로 알려진, 정지수 박사가 내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