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70
271 : 에필로그 : 일상 (3) + 후기
***
인문관과 연결된 도로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한적한 벤치.
나는 거기에 앉아 있다. 그곳에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오랜만이다. 이 벤치도, 이렇게 여유롭게 앉아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항상 이곳을 찾을 때마다 나는 조금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걱정거리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무언가 진중하게 생각하고 싶을 때, 이곳을 찾곤 했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앉아 있는 지금 내 마음은 평온 그 자체다.
밤새도록 비바람과 천둥 번개를 쏟아낸 폭풍이 지나간 후 맞이하는 고요한 아침처럼,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그런 풍경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내 마음도 모두 고요하기만 하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시작과 그가 걸어온 삶을 지켜보았다.
나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어머니가 어떠한 마음을 가졌는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의 마음이, 생각이, 삶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영혼에 담겨 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처럼, 내 마음속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마음을, 영혼을 가득 채운 평온함 속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내 귀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계속 앞을 바라보고 있다.
점점 커져 오는 발소리는 이제 내 옆에 앉는 소리로 변한다.
“여기였네요.”
옆에서 들려온다.
“네. 여기였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옆을 돌아본다.
거기에는 평상시와 같은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서현 씨가 있었다.
“한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한수 씨가 이야기했던 사색의 벤치.”
그렇게 말한 서현 씨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런가요?”
“네. 가끔 와보고 싶을 정도로.”
서현 씨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바라본다.
미소지어준다.
“와도 될까요?”
서현 씨가 묻는다.
“그럼요.”
내가 대답한다.
“서현 씨가 오신다면, 이 벤치도 좋아할 것 같은데요?”
“벤치만요?”
“물론 저도요.”
내 말에 서현 씨가 조금 더 큰 미소를 보여준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서현 씨가 그렇게 말한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대 사람으로, 작은 어르신이 아닌 한수라는 사람으로 바라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작은 어르신인 한수 씨와 한수 씨를 모시는 강서현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나는 말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한수 씨 곁에 있는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주 먼 과거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서현 씨는 날 바라본다.
“잠시 손 좀 빌려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가슴으로 손을 가져간다.
쇄골 밑, 여자의 가슴이 시작되는 지점에 닫는다.
“느껴지세요?”
서현 씨가 말한다.
“…네.”
내가 대답한다.
내 손가락 끝을 통해, 서현 씨의 심장이 힘차게 맥동하는 진동이 전달 된다.
서현 씨의 손이 내 가슴 쪽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손바닥이 내 가슴에 닿는다. 내 심장이 만들어낸 진동이 그녀의 손을 타고 그녀의 마음으로 흘러 들어간다.
“저도 느껴져요.”
서현 씨가 말한다.
“이제 이 심장이 가라는 방향으로 가보려고요. 후회하지 않게, 그렇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가슴에서, 그리고 내 가슴에서 손을 떼어낸 서현 씨가 미소지어준다.
언제나 내 마음을, 영혼을 행복함으로 채워주었던 그녀의 미소가.
“가봐야 될 것 같아요. 할아버지 오후 일정이 잡혀 있거든요.”
“…네.”
서현 씨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걸어간다.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다.
앞으로 걸어가던 서현 씨가 몸을 돌린다.
“늦으세요?”
서현 씨가 묻는다.
“…네?”
“오늘 저녁에 늦으세요? 저번처럼 김치찜 할까 하는데요. 훈제 삼겹살로.”
서현 씨가 그렇게 말한다.
나는 그런 서현 씨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아니요. 오늘은 안 늦을 거예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네. 그럼 있다가 저녁때 봬요.”
“네. 있다가.”
“네.”
서현 씨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서현 씨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
서현 씨가 떠나고도 나는 한참 동안 벤치에 앉아 있었다. 서현 씨가 남기고 간 잔향 속에서, 조금 더 평온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뒤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봐. 내가 저기 있다고 했지? 우리 음란 한수 선생 찌질 모드일 때는 꼭 여기 와 있다니까?”
평온의 사색을 산산조각내는 이중훈의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본다.
그곳에서 한 무리의 인영이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 한수는 오늘 또 왜 찌질 모드이실까? 술이 고프신가?”
박찬희가 그렇게 말한다.
“그러지 마라. 불쌍한 애 놀리고, 약 올리고 그러지 마라. 그냥, 애가 좀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랑으로 감싸줄 생각을 해야지, 자꾸 뭐라 그러면 애 삐뚤어진다.”
박승환이 그렇게 말한다.
“다 몸이 허약해서 그래. 운동하면 다 괜찮아져.”
이건 김창회의 목소리.
아우 진짜 망할 짜식들, 사람이 가만히 있는 꼴을 못 봐요. 망할 놈들.
“아 또 왜? 또 술 먹고 싶어? 찬희 또 싸웠냐? 유라한테 또 혼났냐?”
결국 나는 평온과 사색을 즐기는 모드에서 시베리안 한수키 모드로 전환했다.
“응? 아니? 안 싸웠는데?”
뒤따라오던 최유라가 말한다.
어? 뭐야? 최유라도 있었어?
최유라뿐만이 아니다. 중훈이와 사귀겠다고 인생에서 두고두고 후회할 선택을 한 민주도, 그리고 지연이도 함께 있었다.
“술 먹자. 낮술, 부모님도 못 알아보는 낮술. 파전, 막걸리에 파전!”
박찬희가 잔칫날 잔뜩 흥분한 수표교 거지처럼 그렇게 흥분한다.
“비도 안 오는데 무슨 파전이야? 깔끔하게 치맥으로 갑시다. 츀힌. 알럽 츀힌!”
이중훈은 또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
“난 족발에 소주가 좋은데.”
최유라가 그렇게 말하자 파전을 외치던 박찬희가 재빨리 배신을 때려버린다.
“민주는?”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이중훈이 지 여자친구에게 물어본다.
“저는 다 좋아요.”
“괜찮아. 이야기해. 먹고 싶은 거. 뭐든지!”
다른 때 같았으면, 바로 네다섯 개의 주먹이 이중훈의 얼굴에 꽂혔겠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이라는 걸 감안하고 다들 지켜보고만 있다.
“진짜요. 저는 다 좋아요. 다 좋은데….”
“응. 다 좋은데?”
“…닭발도 괜찮은 것 같고.”
민주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닭발! 와우! 완전 좋지! 매운 닭발! 콜! 진행시켜!”
이중훈이 그렇게 받아준다.
“좋기는, 혐오스럽다고 닭발 처먹지도 않으면서. 닭발만 안 처먹나? 내장류도 안 먹지, 선지도 못 먹지. 누가 강남 8학군 도련님 아니랄까 봐, 아주 입맛이 앵글로색슨이여.”
박찬희가 그런 이중훈에게 바로 쏘아붙인다.
“아니야! 나 닭발 좋아해! 옛날부터 좋아했었어!”
이중훈이 지 여자 친구에게 그렇게 변명을 한다.
“칰힌핏이고, 피그핏이고 일단 내려가자. 내려가면서 정해. 가위바위보를 하든, 주먹질을 하든.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김창회가 그렇게 말한다.
“뭐냐? 원하는 게 뭔데?”
박승환이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김창회를 쏘아보며 말한다.
“…용돈 받았다.”
김창회가 뭔가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
저 자식 할아버지에게 용돈 받았구만. 표정 보니 딱 각이 나온다.
“아. 그래? 그런 거면 미리 이야기를 하지. 나는 또 우리 친구 창회의 순수한 마음을 의심해버렸지 뭐야? 예산이 얼만데? 나 잘 아는 소고기집 있는데.”
박승환이 재빨리 태세전환을 한다.
역시 박승환.
“일단 가자. 안주 이야기했더니 배고프다. 배부른 거 먹자.”
찬희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나도 갑자기 배고프다. 호프집 모듬 먹으러 갈까? 형님네 식육점 갈까? 이딴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런 놈들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야. 잠깐만.”
“응?”
“나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뭐가?”
“나는 술 먹으러 간다고 동의 안 했는데?”
내 말에 친구 놈들이 ‘어머, 저 자식 지금 무슨 헛소리 하는 거니?’ 그런 표정으로 바라본다.
“근데?”
이중훈이 그렇게 물어본다.
“아니, 난 동의 안 했는데, 왜 마음대로 술 먹으러 간다고 결정이 난 거냐고.”
“아하. 그런 거였어?”
박승환이 그렇게 말하며 친구들을 돌아본다.
“자. 그럼 민주적으로 결정하자. 한수의 동의 따윈 필요 없다는 사람 거수.”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다들 들어 올리는 손.
“됐지? 민주적으로 결정됐어.”
“아니, 민주적은 무슨….”
내가 그렇게 반발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김창회의 두꺼운 팔목이 내 목을 감싸고 있었으니까.
“그래. 귀찮으니 그냥 기절시켜서 데려가자. 그게 편하고 좋겠네.”
멀어지는 의식 너머로 박찬희의 헛소리가 들려왔다.
***
녀석들이 먼저 나가고, 벤치에는 나와 지연이만이 앉아 있다.
지연이에게 다시 한번 고백을 받고, 이렇게 단둘이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연이는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두 발을 앞뒤로 까닥까닥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빠.”
지연이가 나에게 말을 건다.
“…응?”
“그거 언제 해요?”
“그거?”
“중훈 선배 사문위원회.”
“아…. 그거?”
“안 할 거예요?”
“해야지. 하기는 해야지.”
“저도 꼭 불러주실 거죠?”
“그럼. 당연하지. 우리 멤버인데.”
내 말에 지연이는 진짜 기대된다는 얼굴로 활짝 웃는다.
그런 지연이를 보는데 갑자기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한 영혼을 우리가 더럽혔다는 죄책감이 든다.
“괜찮다고 생각했거든요.”
지연이가 말한다.
“뭐가?”
“중훈 선배하고 민주하고 사귀는 거.”
“…어.”
“그랬는데, 뭔가 요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니까, 조금 기분이 그렇더라고요.”
“…질투나?”
“아니요. 질투 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저는 오빠 좋아하잖아요. 중훈 선배에게 그동안 미안했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잘 된 거고.”
지연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렇게 민망한 이야기를 한다.
“솔직히 귀여워요. 민주랑 중훈 선배랑 그렇게 사귀는 거, 옆에서 보면 귀여운데, 또 한편으로 너무 편하게 사귀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편하다고?”
“네. 뭐랄까, 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뜨거워지도록 시련을 줘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
더럽혔어. 우리가 순수한 지연이의 영혼을 더럽혀 버렸어.
지연이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더니 자리에서 탁 하고 일어선다.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근데, 조바심내지 않으려고요.”
지연이는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미소지어준다.
“제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오빠를 좋아하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약속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천천히 기다려볼래요. 그래도 되죠?”
나는 말 없이 지연이를 바라본다.
“아니, 대답 안 해주셔도 돼요. 저는 기다릴 수 있으니까.”
지연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친구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발자국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본다.
“안 가요? 너무 많이 기다리게 하면 중훈 선배가 아니라 오빠 인민재판이 열릴 것 같은데요?”
지연이의 말에 나는 작게 웃었다.
“가야지. 죽기 싫으면.”
나는 그렇게 말하고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빨리 가요. 저도 배고파요.”
지연이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가업을 이어라!》 마칩니다.
***
후기
기프티드를 한 일곱 편 정도 썼을 때였습니다.
조회 수는 두 자리, 그나마도 계속 줄어가고, 댓글은 당연히 빵, 선작도 다섯 갠가?
아무튼 처참했었죠.
아니, 사실 처참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초보 글쓴이의 허접한 글, 독자들이 찾아와서 읽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죠. 더군다나 꼴랑 열 개도 안 되는 글인데.
근데 당시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 이게 올리는 시간이 잘못된 건가 보다. 하나씩 올리니까 그런가 보다, 그런 식으로 분석에 들어갔고, 결론을 하나 도출했습니다.
기프티드가 요즘 트랜드랑 안 맞나보다. 쓸데없이 똥폼을 잡아서 그런가 보다.
그러면? 하나 더 쓰지. 뭐. 일단 가볍게, 시점은 1인칭으로 하고, 주인공은 먼치킨으로 하고, 그냥 막 나오는 대로 오천 자씩 써서 그냥 올려보지 뭐. 글 쓰는 연습 한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최대애애애애애애애한 가볍게, 라이트하게, 쉽게.
그게 ‘가업을 이어라!’의 시작이었습니다.
***
기프티드와 가업을 동시에 연재했습니다. 당연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기프티드에 할애되었고, 가업은 오후 느즈막히, 기프티드 쓰다가 좀 지치면, 그때 머리를 비우고 후다닥 오천 자를 채워서 다음 편을 올렸더랬습니다.
그랬는데 이게 웬걸? 꿈의 선작 수 100을 먼저 넘어선 글이 ‘가업을 이어라!’였습니다.
선작 수도, 조회 수도, 댓글도 훨씬 더 많이 달렸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웹소설이라는 건 이렇게 가볍게 쓰는 거구나. 쓸데없이 자료조사하고 똥폼잡아봤자 하나~아도 소용없구나. 가볍게, 쉽게 써야 되는 거구나.
그렇게 말이죠.
***
그렇다고 기프티드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포기하기엔 너무 노력했거든요. 자료조사도 엄청 많이 하고….
뭐 처녀작이니까, 일단 완결을 낸다는 마음으로 계속 써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기프티드를 계속 이어갔는데….
어랍쇼? 기프티드가 올라가는 겁니다. 점점 선작, 조회 수, 댓글에서 가업과의 격차를 줄이더니, 금세 뛰어넘어버렸습니다.
솔직히 좀 기뻤습니다. 뭐랄까, 더 아끼는 자식이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뭐, 아무튼 그랬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업을 이어라!’는 휴재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주 기~~~~~~~~~~~~~인 휴재에.
지금 확인해 보니 마지막 연재가 2019년 2월 6일이었고, 시리즈로 옮겨 다시 연재를 재개한 시점이 2021년 2월 17일이니까 2년 동안 휴재 했었네요….
***
기프티드가 독자님들의 과분한 사랑 속에 끝이 나고, 다음 글을 써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을 때, 좀 고민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가업과 기프티드는 완전 다른 글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거 분명 욕 먹을 텐데…. 기프티드 보고 오시면 침 뱉고 가실텐데….
그런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구요….
그럼에도 이 글을 연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계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초창기 때, 기프티드와 가업을 동시 연재하고 있을 때, 이 글이 연재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신 출판사가 계셨고, 그랬으면 안 되었는데, 눈앞의 욕심에 냅다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습니다.
참…. 정신 나간 놈이었죠.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주제에, ‘지금 기프티드 먼저 끝내야 하니까, 그거 다 끝나면 그때부터 해도 될까요?’같은 소리를 했으니….
그때의 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하는 그때의 저에게 싸커킥을 날려주고 싶습니다.
아무튼 계약이 되어 있으니,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당시 문피아 독자님들께 약속을 드렸더랬습니다. 완결 내겠다고, 죽이 되든 밥이되든 무조건 완결은 내겠다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약속이지만, 이제 와서는 아무런 가치 없는 약속이지만, 그래도….
뭐 다 저의 욕심입니다. 제 욕심에 이 글이 결국 진행되어 버린 것입니다.
***
이제 다 끝났으니까, 독자님들께만 드리는 이야긴데….
사실 이게 처음에는 19금이었습니다.
먼치킨 주인공이 능력을 가지고 막 이것도 하고, 조것도 하고, 요것도 하고, 조것도 하고….
그런 식으로 진행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초반부에 나오는 몇몇 장면들, 독자님들께서 특히 질타해주셨던 많은 부분들이 다 그런 식으로 진행하려고 약 팔았던 잔재들입니다.
아무튼 그랬는데, 막 서현이랑 막 이것도 하고, 조것도 하고 그렇게 시키려고 했었는데….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수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기프티드 때도 그랬지만, 처음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그다음부터는 제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초반부 사물함 사건에서, 유지연이 빠루를 들고 뛰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초고에는 유지연이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썼었드랬습니다.
그랬는데…. 써놓고 다시 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빠루를 쥐어줬더니…. 그게 맞더라고요.
한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막 난봉꾼처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해야 하는데, 계속 쑥맥이고 찐따인겁니다.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고….
좀 쉽게 쉽게 가려고 해도, 한수는 너무 생각이 많더라고요.
결국 19금 딱지는 떼버리고, 어디 니들이 놀 수 있는 만큼 놀아보라고 판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잘 놀더라고요. 한수하고 친구들.
개인적으로는 기프티드 때보다 등장인물들의 생각에 덜 개입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
각오는 했습니다. 욕 많이 먹겠구나….
근데, 오우. 진짜. 와우…. 진짜. 와…….
뭐 이해합니다. 제가 독자일 때도 그랬지만, 글에 대해 감상을 말씀하시는 것은 독자님들의 고유 권한입니다.
뭐랄까… 조금 과격한 표현을 볼 때면 말씀 좀 심하시네…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다 제가 이런 허접한 글을 써서 독자님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적해 주신 말씀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듣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감상평 중에 ‘모쏠 찐따의 자위행위 같은 글’이라는 말씀이 있으셨는데, 제가 다른 비평은 모두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만, 그 말씀에는 반박을 하고 싶습니다.
찐따는 맞지만 모쏠은 아닙니다! 맹세코!
싸구려 라노벨 카피캣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다면 애초에 제목을 ‘찐따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라든가, ‘내 동거인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처럼 지을 걸 그랬나 봅니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레퍼런스로 삼았던 작품은 수 타운센드 작가의 ‘비밀일기(원제 : The Secret Diary of Adrian Mole, Aged 13¾)’입니다.
마가렛 대처 수상이 신자유주의와 민영화의 칼을 휘두르던 1980년대 초반의 영국 사춘기 소년의 일상을 담고 있는 명작입니다. 초초초초초 강추합니다.
***
중간에 그런 조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적당히 마무리해라. 이건 망했으니까, 조회 수 안 나오니까, 적당히 마무리하고 차기작 고민해라.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고, 고민 안 해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솔직히 되게 힘들었거든요.
그때 아니라고, 그렇게 마무리하지 말자고, 최대한 버텨보자고, 그렇게 이야기해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번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교정봐주고, 같이 고민해주고, 의견을 제시해주고, 그리고 옆에서 지탱해준 교정 노예 2호, 후배이자, 친구인 최홍석 기자에게 가장 먼저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
더불어 이 엉망진창인 글을 계약해주시고, 계속 응원해주시고, 옆에서 지켜봐 주신, 조현식 팀장님과 북팔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팀장님. 은혜 갚겠습니다.
그리고 중후반까지 이 부족한 글을 교정해주신 교정담당자님, 성함은 모르지만, 담당자님 덕분에 그나마 읽어볼 수 있을 정도의 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처음 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한상운 작가님, 정성숙 작가님께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삶이라는 길에서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친구이자 형제인 유병철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책 줘도 읽지도 않는 대인배 문창환에게는 하나도 안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글 안 써진다고 할 때마다 불러내서 술 사주고, 밥 사주고 해주신 고종택 이사님께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어제도 참치 잘 얻어먹었습니다.
웹소설이라는 전장에서 함께 싸우는 전우이자, 경쟁자이며, 술친구이고, 여행의 동반자인 정무준 작가님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아버님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이름을 빌려준 김창회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저번에 내가 고기 샀으니 다음에는 니가 고기 살 차례다.
김창회, 박기준을 비롯해 이름을 빌려주신 많은 지인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물론 본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계시겠지만…. 마음속으로 감사하겠습니다.
기프티드에 이어 이번에도 많은 응원과 관심을 보내준 김대길 부사장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요…. 생각 안 나는 걸 보니 그다지 감사하지 않은가 봅니다.
생각나면 술 사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런 엉망진창인 글이라도 끝까지 함께 해주신, 이 후기를 읽고 계신 독자님께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실시간으로 조회 수가 얼마가 찍히는지, 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제가 약속드렸던 것처럼 ‘한 분의 독자님이라도 함께 해주신다면 완결까지 가겠습니다.’ 했던 것처럼, 이 후기를 읽어주시는 독자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2년…. 그리 짧지 않은 기간, 그리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독자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과 독자님 가족분들 모두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도서관식객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