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30
30 : Festival is coming (4)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서현 님이 나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서현 님을 보면서 인사했다.
살짝 부스스한 머리에,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하며 나오던 서현 님은 거실에서 인사하는 나를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좋은 아침이죠?”
내가 다시 말했다.
“네? 네…. 좋은 아침….”
서현 님은 약간 당황한 듯 우물쭈물하더니, 그대로, 자신의 방문을 열고 황급히 들어가 버렸다.
우후후후.
처음 봤다. 저런 모습.
처음 봤다. 서현 님 잠옷.
꽃무늬가 귀엽네요.
아침 일찍 일어나니 이런 보너스가 또 있네.
귀여워. 당황한 서현 님. 우헤헤.
투시할까?
벽 너머의 서현 님은 허둥지둥 당황해하며 귀여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겠지?
잠깐만. 잠깐만.
지금부터 서현 님 출근 준비할 시간이잖아?
그… 그럼… 씻고, 옷 갈아입겠네.
꿀꺽.
내 목울대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크게 울린다.
투… 투시해 볼까?
아냐. 아냐. 그런 거 아냐. 그런 나쁜 마음. 그런 거 아니야!
혹시 나 때문에 놀래서 당황하다 방에서 넘어져서 의식을 잃었다거나…. 그런 게 걱정되어서. 진짜라니까!
아. 아무튼, 걱정되니까 투시해 볼까?
그냥 괜찮으신가. 딱 그거만 보면 되잖아. 딱. 그거만.
능력은 쓰라고 있는 건데.
그럼!
해 볼까?
***
식탁 위에는 내가 구운 토스트와 꽃 모양의 버터, 그리고 서니사이드업으로 구워진 계란프라이가 놓여 있었다.
샤워에 화장에, 출근 복장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서현 님이 내 맞은편에 앉아 토스트 온기에 버터를 녹여 바르고 있었다.
참고로 오늘의 출근 복장은 치맛단이 무릎 아래로 살짝 내려오는 민트색 플리츠 주름 플레어스커트 원피스다.
저 옷을 입고 나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주저앉아 버렸지.
미니미가 깨어났거든.
물론 식탁에 앉아 있는 지금도 아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 큰일이야. 큰일.
“한수 씨.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축제 준비도 그렇고, 축제라고 또 과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일찍 가서 좀 할까 하구요.”
“아… 그렇구나. 근데 힘들게 왜 이런 거 준비했어요? 아침부터….”
“힘들긴요. 빵 토스트기에 넣고, 계란프라이는 그냥 계란 까서 놓고, 버터는 꺼낸 것뿐인데요. 그리고 ‘제가’ 먹으려고 한 거예요. 제가 먹으려고 만든 거라는 거 잊지 마세요.”
내 말에 서현 님이 웃었다.
그, 그만…. 내 심장이 버티질 못해. 그 미소는 반, 반칙….
“그나저나 좀 전에 놀라셨죠?”
내 말에 그녀가 흠칫 놀란다.
“죄송해요. 아침부터 못 보여 드릴 모습을 보였어요.”
“전 좋았어요.”
“네?”
“그게 이른 아침 집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니까요.”
“무슨….”
“전 항상 서현 님의 완벽한 모습만 봐 왔잖아요. 지금처럼.”
“또 서현 님이라고 하셨네요. 작 은 어 르 신!”
“아. 하하. 죄송. 서현 씨. 서현 씨.”
“네. 한수 씨.”
“전 매일 서현 씨의 완벽한 모습만 봐 왔으니까. 풀 메이크업에 풀 착장에.”
“네.”
“그런데, 집에서는 보통 그러고 안 있는 게 정상이죠.”
“저는 출근 준비를 하니까….”
“맞아요. 출근 준비를 하시니까, 하지만 주말에도 못 봤어요. 출근용 정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 편한 모습은 아니셨으니까요.”
“전 평소 모습인데….”
“그런가요? 그렇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좀 더 편한 모습으로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보고 싶기도 했고.”
“그런 흉한 모습을 보셔서 뭐 하시게요.”
“안 흉해요.”
“네?”
“전 지금 이 공간이 House에서 Home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편해지고, 조금씩 더 좋아져요. 마찬가지로 서현 님도, 아니. 서현 씨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모습. 하나도 안 흉해요. 사실대로 말하면.”
“말하면?”
“서현 씨의 그런 모습이 저는 더 이쁘다고 생각해요.”
“네?”
“자연스러운 모습, 사람들이 다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는 서현 님의 모습도 물론 예쁘지만, 저는 그런 꽃무늬가 그려진 수면 바지가 더 예쁜 것 같아요.”
그녀의 볼에 홍조가 돈다.
나 갈수록 뻔뻔해지는 거 아냐?
“제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면 언제든 보실 수 있잖아요.”
“네?”
“한수 씨는 작은어르신이시니까 투명인간이라든가 벽 투시라든가 시간 정지라든지 가능하시잖아요.”
맞다. 시간 정지도 있었지?
그 능력이라면. 흐흐흐. 딱 시간을 정지시켜 놓고. 그녀에게 다가가서가 아니라!
어떻게 알았지?
내 마음속에 꽁꽁 숨겨 놓은… 그… 순수하고… 간악하고… 음험한 나의 욕망을.
“아니요! 저 한 번도 그런 거 써 본 적 없어요! 진짜로! 절대로! 맹세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의 결백을 주장했다.
“할아버지에게 맹세코! 아니, 돌아가신 엄마 아빠를 걸고! 이미 역사가 되어 버린 내 스쿠터를 걸고! 단 한 번도 그런 시도를 해 본 적 없어요! 진짜로!”
불타 버린 스쿠터는 가치가 없나?
내 강렬한 변호에 잠시 의심스럽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서현 님의 눈은, 금세 반달 모양으로 바뀐다.
“알아요. 그런 능력 안 쓰신 거.”
서현 님이 쿠쿠쿠 하고 웃으며 말한다.
“진짜로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 어. 어떻게 아세요?”
“비밀이에요.”
서현 님은 그렇게 말하고 버터 바른 토스트를 계란 노른자에 살짝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호… 혹시….
서현 님도. 뭔 능력 있는 거 아냐?
***
나는 어김없이 인문관 올라가는 도로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뭐 오늘은 딱히 이유는 없었다.
매일 한 번씩은 앉아 있으니까 그냥 일과처럼 들른 느낌?
비슷한 시간에 같은 장소에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같은 시간에 셔틀버스가 인문관으로 올라가고, 다른 셔틀버스가 지하철역을 향해 달려간다.
이렇게 오고 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 일 없는 일상에 감사하고 행복해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자극이 강한 현대 사회에서, 변화가 없고, 자극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제와 같은 오늘의 소중함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유주원 선생님의 책에 나와 있는 문장이었다.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해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수 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게 들리는 목소리.
“네?”
나는 목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유주원 선생님이 서 계셨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나요?”
약간은 고풍스런 헤링본 재킷과 카키색의 면바지가 잘 어울리는 노신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 그래요. 괜찮으면 잠깐 앉아도 될까요?”
“그럼요. 앉으십시오.”
나는 오버하며 몸을 옆으로 비켰다.
“요즘은 좀 어때요?”
내 옆에 앉으신 유 선생님은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담아 안부를 물어보셨다.
“네. 요즘 잘 지냅니다. 선생님도 별일 없으시죠?”
“이 나이쯤 되면 하루하루가 1년과도 같고, 1년이 하루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네?”
“말이 좀 이상했지? 그냥, 짧은 인생에서 생겨나는 일들, 우리가 별일이라고 부르는 그런 일들이 인생 전체를 보면 그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네.”
“듣자 하니 한수 군이 축제를 준비한다고 하던데. 준비는 잘 되고 있나요?”
교수님도 아시겠지. 전통적으로 우리 과 주점은 선배들이 많이 찾아오기로 유명하니까. 교수님들도 보통 와 주시고.
“네. 잘 되고는 있는데….”
“그런데요?”
“그…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르게 바꿔 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떠오르는 게 없어서요.”
나의 그 말에 유 선생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선배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던가요?”
헉? 이 양반이 어떻게 아시지?
물론 유 선생님이야 학생들을 좋아하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고, 좀 다른 교수님과는 다르기는 하지만….
“아… 아니. 뭐 꼭 선배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고.”
“40년 전에도 그랬었죠.”
“네?”
“내가 학부생이던 때도 선배들은 그런 이야길 했었죠.”
“아… 네….”
잠깐 잊었다. 유 선생님은 존경하는 나의 스승이면서, 또한 하늘같은 나의 선배님이신 것을.
“뭐 고민은 좀 하겠지만, 수십 년 동안 이어온 전통이 깨지지 않길 바랍니다.”
유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하시고 몸을 일으키셨다.
“괜히 한수 군의 사색을 방해했군요. 먼저 일어날게요.”
“방해라뇨. 아닙니다.”
“조만간 또 만납시다.”
그 말을 남기고 유 선생님은 등허리를 꼿꼿하게 핀 상태로 여유 있는 걸음으로 멀어져 가셨다.
문학이나 영화에는 로맨스그레이라고, 정말 멋있는 노신사와 젊은 여성이 사랑에 빠지는 장르가 있다.
나중에 그런 글을 쓰게 된다면 꼭 유 선생님을 모델로 삼아야겠다.
***
수업이 끝나고 전공 서적을 놔두고 가기 위해 사물함으로 향했다.
난 진짜 이해가 안 간다.
도대체 이놈의 대학 전공 서적은 이렇게 두껍고 무겁고 비싼 것일까?
솔직히 까놓고, 학기 중에 이거 다 보지도 않는다. 다 보기는커녕 반이나 볼까?
그런데도 이렇게 비싸고, 두껍고, 무겁기만 한 책을 들고 다녀야 하다니.
뭐 각 단원이나 필요한 부분만 제본해서 들고 다니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나는 그건 용납 못 한다.
왜냐하면 나는 책방 손자니까!
책이라는 것은 자고로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봐야 그게 재미지. 표지부터 속지까지 얼마나 많은 공과 노력이 들어간 건데….
안 된다. 책만큼은 아니 된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책은 항상 통으로 들고 다니길 고집한다. 책방 할아버지와 그 손자의 고집이다.
근데 그러기에 이거 너무 무거운데. 분해해 버릴까?
책이라는 게 본질은 내용을 안에 담으면 되는 거 아냐? 꼭 그렇게 형식에 구애될 필요 없는 거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사물함 쪽으로 다가갔다.
자… 보자.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눌러 볼까나?
삐빅~!
사물함을 통제하는 키오스크, 디지털 단말기는 경고를 의미하는 소리와 함께 처음 보는 메시지를 화면에 띄웠다.
(비밀번호 입력 오류 초과입니다.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뭐? 뭐라고?
나는 다시 비밀 번호를 눌렀다.
내 사물함 112번. 그리고 비밀번호 네 자리.
삐빅~!
(비밀번호 입력 오류 초과입니다.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뭐야아아아아아!”
그제서야 내 눈에 들어오는 112번 사물함 앞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나는 내 사물함으로 달려갔다.
저기 단서가 있다. 범인이 남긴 단서가 있다.
범인을 잡으면 꼭 이 전공 책으로 찍어 버리겠다고 생각하며 포스트잇을 떼어 냈다.
-안녕하세요. 4층 112번 사물함 이용자님. 저는 3층 112번 사물함 이용자입니다. 죄송해요. ㅠㅠ 제가 층을 착각해서 비밀번호를 잘못 눌렀어요…. 세 번이나……. ㅠㅠ 비밀번호 오류라고 초기화해야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물함 관리하는 회사에 전화했는데, 계속 통화가 안 돼요…. ㅠㅠ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이거 쓰고 학생지원처로 빨리 뛰어가서 교직원분들께 물어보고 올게요. 혹시 저 땜에 수업 못 들어가시면 어떻게 하죠? 암튼 제가 지금 바로 뛰어갈게요. 제 전화번호는 010-xxxx-xxxx입니다.
포스트잇에는 이런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오케이. 범인은 너였구나.
학생지원처? 너 거기서 딱 기다려. 만나면 이 책 모서리로 기냥!
“여자네?”
어느새 박승환이 내 어깨 뒤에서 포스트잇을 훔쳐보면서 말했다.
“여자야. 확실해.”
이중훈도 다른 어깨 뒤에서 내 포스트잇을 보면서 말했다.
나는 다시 포스트잇을 봤다.
확실히 여자 글씨체다. 약간 올망졸망, 귀염귀염.
아… 이거 참 설명이 힘드네. 암튼 확실히 여자 글씨체다.
글 쓴 것도 봐 봐. 딱 여자지.
혹시라도 남자가 이런 글씨체로 지금 이 글을 썼다면.
맹세하건대.
이 전공 책으로 찍어 버린다.
민형사상 책임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인류를 위해서 내가 찍어 버린다.
“전화해 봐. 전화.”
이중훈이 나에게 말했다.
“뭔. 전화를 해. 학생지원처 가 본다잖아. 연락이 오겠지.”
“여자잖아.”
야, 이 미친놈아, 라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좀 나도… 뭐….
“그… 그럼 문자나 보내 볼까?”
나는 핸드폰을 꺼내 정성스럽게 번호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입력한 후, 혹시 틀렸을까 다시 한번 확인한 다음 문자를 입력했다.
‘안녕하세요. 4층 112번 사물함 이용자입니다. 지금 포스트잇을 확인했는데 혹시 학생지원처에 가고 계신 건가요? 저는 괜찮으니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아니. 바쁘시면 제가 처리해도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
그리고 전송.
“호구네.”
내가 문자를 보내는 과정을 보면서 박승환이 말했다.
“호구야.”
이중훈도 말했다.
부정할 수 없는 내가 밉다.
남자였으면 좋겠다. 이 책으로 찍어 버리게.
그때 전화가 울렸다.
번호를 보니 내가 방금 문자를 보낸 번호다.
나는 우선 목을 험험 가다듬고, 적당히 목소리를 내리깐 다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빠! 한수 오빠가 그 사물함 주인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오빠’라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생각이 멈추었다.
오빠? 날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이라고?
주소록에 등록이 안 되어 있는데?
착각? 아니지. 분명 내 이름을 말했잖아. ‘한수 오빠’라고.
신종 보이스 피싱인가? 사물함과 여자 글씨와 포스트잇을 이용한?
“누… 누구세요?”
-오빠. 저 지연이에요. 유지연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