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52
52 : 능력은 쓰라고 있는 거지 (5)
진철이 형 아버님은 나에게 손을 내미셨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신력인지, 아니면 나만의 착각인지 알 수 없지만.
진철이 형 아버님이 손을 내미는 그 순간, 아버님의 생각이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마지막 인사.
아버님은, 오늘 처음 만난 아들의 후배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살아왔고, 살아 있고, 그리고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담담하게, 그러나 슬픔이 배어 나오지 않게.
그렇게 손을 내미셨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 진철이 형 아버님에게 다가갔다.
아버님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혀 아버님과 눈높이를 맞춘 다음 두 손으로 아버님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멈춰라. 시간아.
그 순간, 예전에 한 번 경험해 본 이질감이 나에게 찾아왔다.
비 오는 도로를 달리던 고속버스에서 느꼈던 그 이질감.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공기도, 빛도, 모든 것이 멈추던 그 이질감이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
정원에서 들려오던 새의 지저귐도, 조금 먼 곳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도, 그 어떤 소리도 사라져, 적막만이 가득한 가운데, 나 혼자 오롯이 사물을 인식한 채로 서 있었다.
그렇게 멈춘 시간 속에서 나는 아버님을 바라보았다.
눈.
아버님의 눈.
아들의 후배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슬프지만 담담한 눈.
나는 고개를 돌려 진철이 형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를 보는 눈.
슬픔이 가득 배어 나와, 얼굴 가득 흘러넘치면서도, 그래도 그 장면을 눈에, 가슴에 담아두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은 눈.
내 시선은 진철이 형을 지나, 여동생에게로 향했다.
진철이 형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눈.
나는 감정이 가득한 두 남매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본 다음에야 다시 아버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좋아. 시간은 충분하다.
아버님의 신체에서 정상과 정상이 아닌 부분을 파악하고 싶다는 나의 의지에 따라 아버님의 신체 정보가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정보가 흘러들어왔다고 해도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내가 아버님의 몸 상태가 어떤지, 어떠한 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저, 장기들이, 일반적인 모습이 아닌,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로 인해 기형적으로 변해있다는 것만을 파악할 정도였다.
나는 저 장기를 어떻게 돌릴지, 암세포를 어떻게 제거할지 몰랐다. 함부로 건드리면 아버님의 신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인체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전무한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버님의 손을 잡은 그 상태로 생각을 정리했다.
시간이 멈춰있기에, 나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고, 나는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생각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다.
한 사람의 생명과 연결된 여러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다.
오랜 시간, 최대한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했다.
시간이 멈춘 상황에서 흐름을 계측하는 시간이라는 단위는 그 의미를 잃어버렸지만, 나는 잃어버린 의미 속에서도 충분히 오랜 시간을 생각하고 고민했다.
멈추지 마.
생각을 멈추지 마.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가진 신력을 믿어보자.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신력이 신체(神體)를 가진 나의 의지에 따라 작용한다면.
그렇다면 나의 생각을 곡해(曲解)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선 아버님의 몸에 원기를 조금 불어넣기로 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천천히 기력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다음으로 장기가 원 상태로 회복되기를 바랐다.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회복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없도록, 최소화가 아니라 전무하도록, 빠르지 않게 진행되기를 바랐다.
한순간의 기적이 아닌, 시간이 걸리는 자연스러운 기적이 될 수 있도록.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임을 알았다.
오랜 시간을 고민한 것 치고 뻔한 결정으로 귀결되었지만, 이 뻔한 결정을 하기 위해 들인 시간이 가치 없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마무리하고, 다시 시간의 흐름을 원상태로 복귀시켰다.
그러자 천천히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래요. 잘 가고. 앞으로 우리 진철이 잘 부탁해요.”
아버님의 눈은 변함이 없다.
담담하게, 하지만 슬픔이 배어 나오지 않게. 그런 눈으로 나를 보고 계신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아버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힘주어 말하고는 잡은 손을 놓아 드렸다.
***
병원에 올 때는 서현 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왔는데, 갈 때는 회장님 차에 타고 가야 했다.
집으로 가고 싶은데, 이대로 그냥 보낼 수 없다며, 한사코 저녁을 대접해야겠다는 회장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이렇게 끌려가는 것이다.
아니, 그냥 끌려가는 것이라면 괜찮은데, 그냥 끌려가는 게 아니라, 운전석 대각선 뒤쪽, 흔히 말하는 상석에 앉아서 끌려가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하다.
회장님은 어디 계시냐고? 내 옆, 그러니까 운전석 뒤쪽에.
서현 님은? 조수석에.
뭐 그건 그렇다고 쳐도 문제는 운전석이다.
운전석에는 회장님 사위, 서현 님 고모부, 그러니까 대한민국 5대 병원 중 하나라는 서울 중앙 의료원의 원장님이 앉아 계신다.
원장님이 운전을 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원래 회장님 기사님은 나와 서현 님이 타고 온 차를 몰고 가셨거든.
아. 부담되네.
이 모습을 유교 탈레반인 우리 할아버지가 보셨다면 나는 최소 전치 3주다.
잠깐만. 잠깐만!
할아버지!
지난번에 시간을 멈췄을 때는 할아버지가 짠하고 나타나서 내 뒤통수에 훅을 날리셨는데.
뭐라고 했더라? 삼라만상과 천지 만물을 주재하는 힘이랬나?
아무튼 그런 대단한 힘쓰면 할아버지에게 재깍 알아챘는데!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물론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방어 자세를 취한 후.
“아버님. 어디로 갈까요?”
운전석에 앉아 계신 원장님.
다시 한번 말하면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인 중앙그룹의 회장님이신 강민철 회장님의 사위이시면서, 서현 님의 고모부이시고, 그리고 대한민국 5대 병원 중 하나라는 서울중앙의료원의 원장님이 운전석에서 몸을 뒤로 돌리며 말씀하셨다.
“작은 어르신.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아니.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회장님은 날 보더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야기하신다.
그도 그렇겠지.
마이바하인지, 마이바그너인지, 아무튼 겁나 비싼 리무진 뒷좌석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두 손을 들어 턱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한 다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미친놈을 본다면….
“네? 아. 아닙니다. 그냥. 저기. 뭐. 좀 스트…레칭?”
그러면서 나는 몸을 쫙 폈다.
와… 나 지금 엄청 바보 같은 모습인 거 아냐?
그나마 다행이라면 서현 님이 조수석에 앉아 있어 나를 볼 수 없다는….
보고 계시네. 몸을 돌려 나를 보고 계셨네.
“작은 어르신. 괜찮으시다면 저번에 거기는 어떠신지 여쭈어봅니다.”
나를 잠깐 의아한 표정으로 보시던 강 회장님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번이라고 하시면….”
“호텔 센트럴 남산은 어떠하신지요?”
그렇지. 거기였지.
회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기억도 안 나던 그곳.
“총지배인님에게 연락을 할까요?”
보조석에 앉은 서현 님이 전화기를 꺼내며 말한다.
“아니면 삼청동에 괜찮은 한정식집이 있는데, 거기는 어떠하신가요?”
강 회장님이 말했다.
“아버님. 청담동에 조용한 스테이크집도 있습니다. 작은 어르신은 아직 젊으시니, 그쪽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원장님도 말씀하신다.
세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다.
결정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그럼 저번에 그 호텔로…?”
내가 어버버하며 말했다.
“총지배인님에게 연락하겠습니다.”
서현 님이 바로 말씀하셨다.
기시감이 든다.
오랜만이다. 바보 같은 내 모습.
***
병원을 빠져나온 차는 일요일 오후의 꽉 막힌 도로를 헤치며 장충동을 향해가고 있었다.
아… 부담된다. 그냥 집에 가서 서현 님이랑 밥 먹고 싶다.
그게 제일 좋은데.
그건 그렇고.
내가 할 일이 또 남았다.
정확히 말하면 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굉장한 실례가 되겠지만, 그래도 말해야 할 것 같다.
아니. 말해야 한다.
나는 마음을 굳혔다.
“저기…. 원장님.”
나는 친히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고 계시는 원장님께 말을 걸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작은 어르신.”
원장님은 전방을 주시한 채로 나에게 말했다.
부담되는구나. 하지만 말해야지.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회장님과 서현 님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아.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 것을 그랬나?
아니다. 회장님도, 서현 님도, 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지.
“아까 잠깐 만났던 환자분. 그분이 학교 선배의 아버님이신데요.”
“네. 아까 작은 어르신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전해 들었습니다.”
“…. 이런 말씀 죄송합니다. 그런데, 또 지인 된 입장에서 말 안 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래서 한번 여쭤나 보려고요.”
에라 모르겠다.
“선배 아버님 퇴원을 좀 늦추고 싶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퇴원 말씀이십니까?”
“네. 그. 담당 교수님께서…. 호스피스 병동을 이야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차 안에 있던 모두는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음… 그. 뭐랄까. 그….”
어떻게 말해야 하지?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신력을 쓰셨습니까?”
원장님이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
“네.”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그렇다면 당분간 차도를 지켜볼 필요가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일단 하나 끝났고. 하나 더.
“그리고 또. 그 병원비 관련해서도 어려움이 있는 상황인데요.”
“그 부분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장님의 목소리에서 뭔가 모를 한기가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그렇겠지.
종합병원의 원장이라는 자리는 편의점 점주랑은 다르니까.
수천 명의 직원과 수만 명의 환자들을 책임지는 자리인데, 고작 스물한 살 먹은 어린놈이 이래라저래라 한 꼴이니.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사과는 드려야지.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주제넘게 이런 부탁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전방을 주시하느라 나를 볼 수 없는 원장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타이밍 좋게 차가 교차로 신호에 걸렸고, 멈추었다.
차가 완전히 멈추고 나서야 원장님이 직접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작은 어르신.”
원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네.”
“제가 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라고도 하지만, 한편으로 의사라는 이름을 갖고도 살리지 못하는 환자를 보면서 스스로의 무능함에 고통받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원장님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드러웠다.
“의사로서, 과학자로서, 신력이라는 불가사의한 힘 앞에 무력한 과학을 지켜보는 것은 분하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경영인으로서, 병원에 손해를, 손해라는 표현은 맞지 않군요. 부담이라는 단어도 적절하지 않지만, 지금은 그 단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병원에 부담을 주는 것도 경영인으로서 올바른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호가 바뀌었다.
원장님의 시선이 다시 정면으로 향했고, 차가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과학자의 그러한 분함이나 고통스러움, 경영인으로서 올바르지 않은 결정과 병원에 가해지는 부담은.”
하지만 원장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한 사람의 생명과 비교한다면 한 줌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 시선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원장님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작은 어르신이기에, 중앙그룹이 실질적 소유주이기에, 저는 작은 어르신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30년 넘게 질병과 싸워온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옳은 것이기에. 그렇기에, 작은 어르신의 생각과 행동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 거대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