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6
6 : 마른하늘에 날벼락(靑天霹靂) (6)
4월이라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장대비 때문인지 고속버스는 빠르게 달리지 못하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이미 경기도에 접어들고도 남았을 시간이었지만, 고속버스는 아직 천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고속버스에 타자마자 잠들었겠지만, 오늘은 세상 가장 포근한 잠자리 중 하나라는 고속버스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생각이 복잡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서울로 진학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가정환경이라고는 해도 학창 시절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친구 만나고, 별것 아닌 일로 서로 주먹질 하고, 화해하고, 또 싸우고, 야동을 돌려 보고, 야사도 돌려보고, 야설도 돌려 읽고, 야자를 땡땡이치고 술 마시다가 귀싸대기도 같이 맞고.
즐거운 시절이었지.
대학에 와서도 크게 변함이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새 친구들을 만나고, 당당히 술도 마시고, 여자친구도 만나고, 여자친구가 바람피우고. 에잇 젠장!
아무튼, 나는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불과 24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는 이틀 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봤다. 그리고 그 중에서 키워드가 될 만한 것들을 추려 보았다.
수호신.
가업.
능력.
투명인간. 그렇지. 투명인간. 이건 중요하지.
예지력. 이것도 중요하고.
그리고 중앙그룹 강민철 회장님.
흐음…. 이런 요소들을 종합해 봤을 때, 지금 이 상황은 절대로 나쁘지 않다. 아니, 나쁘기는커녕 완전 대박이다.
“좋은 거겠지?”
나는 창문에 서린 김을 닦으며 혼자 되물었다.
다른 건 몰라도, 투명인간, 이건 좋은 거다. 100% 확신한다.
설사 투명인간의 대가로 수천 도의 온도로 유황불이 끓고 있는 지옥 한가운데 떨어진다 해도, 투명인간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좋은 거다.
“참. 인생 알다가도 모르겠어.”
나는 노인네나 할 법한 말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런 나의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방해하는 인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 여자. 내 좌석 1열 앞에 앉아 있는 저 여자.
버스가 출발하기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전화를 놓지 않고 수다를 떨고 있는 저 여자. 옆 사람이 뭐라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계속 통화를 하는 저 여자.
거슬렸다. 저 여자가 계속 거슬렸다.
진짜. 사람 외모 가지고 뭐라 말하는 것은 교양 있는 현대인이 할 법한 행동이 아니지만, 이쁘기나 하면 말이나 안 해.
아니, 아무리 예뻐도, 걸그룹 센터라고 해도, 버스가 터미널을 출발하고, 1시간 반이 넘도록 비음을 섞어 가며 계속 통화를 하고 있으면, 진짜 아이돌 센터라도 용서가 안 된다.
거기다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대화 내용은 더욱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오빠아~ 그럼 내가 오빠에게 거짓말하면 화낼 꼬야?”
“아니. 오빠는 걸 그룹 보면 안 되지. 오빠 옆에는 내가 있잖아~”
와…… 진짜 오빠는 어디 승가(僧伽)대학이라도 다니나 보다. 부처의 마음으로 보시 중인 것을 보니.
아무튼, 짜증이 났다.
생각 같아선 저 전화기를 낚아채서 바닥에 던진 다음 발로 뭉개 버리고 싶은데, 상식을 가진 지성인으로서 그럴 수는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어폰을 귀에 꼈다. 차라리 막자. 막아 버리자.
아니지. 그래도 되는 거 아닌가? 나 예비 신인데?
나는 어제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손가락으로 구름을 모으던 모습이 말이다.
흠. 뭐. 안 되면 말고.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지로 그 예의 따위는 없는 여자를 가리킨 다음 마음속으로 말했다.
자라.
그 순간 여자의 말이 끊겼다.
단순히 말이 끊긴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목도 한쪽으로 꺾였고, 핸드폰을 든 손은 축 늘어졌다.
그 반동으로 핸드폰은 날아가 버스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순간 2회전 했고, 액정에는 거미줄 같은 금이 자글자글하게 갔다.
“헉.”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 자세 그대로 몸이 굳었다.
그 여자의 움직임이 너무 격렬해, 잠든 것이 아니라, 저격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재빨리 이어폰을 뺐다. 그러자 우렁차게 울리는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코를 골고 있었다.
지… 진짜 잠든 거냐?
***
잠들었다. 시끄럽던 여자가 진짜 잠들었다.
근처에 앉아 있던 이쁜 아가씨가 액정이 박살 난 핸드폰을 주워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배 위에 올려 줬음에도 깨어나지 않고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내가… 한 건가?
우연일 수도 있다.
한참 전화를 하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갑자기 잠이 몰려와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내던지면서까지 잠이 드는 그 순간에 내가 손가락을 뻗었다면 말이다.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절묘한 우연일 수도 있다.
아니. 아니. 아니지.
그럴 수가 없지. 삼류 웹 소설도 아니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타이밍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소위 기적이라고 말하는 로또 1등도 한 주에 몇 명이나 나오는데, 지금 이 상황에 비하면 로또 1등은 기적 축에도 못 끼겟는데?
좋아. 침착하자. 한수야. 침착해.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저 여자를, 공중도덕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민폐를 끼치고 있던 저 여자를 재웠다는 것이 타당하다.
무엇보다 내가 신의 후계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잖아.
시험해 보자. 만약 나에게 신력이 생긴 것이라면 그러면 다른 것도 할 수 있겠지.
예를 들어, 지금 버스 창문을 열심히 닦고 있는 와이퍼를 멈춘다든가.
“어어어! 뭐야! 뭐야!”
와이퍼가 갑자기 멈추자 기사님이 놀라서 소리쳤다.
아이쿠. 저건 안 되지. 저러다 다 죽겠다.
나는 빨리 속으로 외쳤다. 움직여!
멈추었던 와이퍼가 나의 생각에 따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버스 기사도, 나도, 버스 기사의 외침에 놀란 승객들도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코 고는 아까 그 여자만 빼고.
버스는 안 되겠어. 비 오는 상황에서 너무 위험해.
나는 뭘 또 할 수 있을까?
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콜라 캔을 엎어 볼까? 아니면 창밖에 보이는 저 나무를 꺾어 볼까? 버스 TV를 꺼 볼까?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네. 앞에 와이퍼 사건도 있고, 뭔가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방법으로 시험해 보고 싶은데, 떠오르는 것이 없네.
흠… 뭘 해 볼까. 시간을 멈춰 볼까?
시간아. 멈춰 봐봐.
속으로 그렇게 말한 그 순간!
나는 나를 둘러싼 시공간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당연하지. 그 누가 시간이 멈추는 경험을 해 보았겠는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던 버스도, 창밖에 내리던 빗방울도, 버스 타이어에 의해 튀어 오른 빗물도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멈춰 버렸다.
오직 나만, 나만이 활동하고 있었다. 나만이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 이것도 가능한 거야?”
내 말소리가 들렸다.
공기는 멈추었다. 소리는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서 전달된다. 공기가 움직이지 않으면 소리도 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소리가 들린다.
빛도 멈췄을 것이다. 그래서 빛 반사도 멈췄을 테고,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해야 한다. 그런데 보인다.
“와…… 대… 대박.”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대박……. 대애애애애애애애바악!”
현실이 되었다.
이로써 현실이 되었다.
가업을 이으라는 할아버지의 말도, 그 먹구름도, 번개 맞은 내 스쿠터도, 중앙그룹 강 회장의 그 말들도. 투명인간도!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다.
나는 신력을 얻었다!
“으하하하하 대애애애바아~”
퍽
대박의 마지막 음절, 정확히는 받침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내 뒤통수에 충격이 가해졌다.
“으아아아악!”
매우 아프고, 매우 익숙한 이 느낌.
“이 못된 놈이!”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향집에서 강 회장님과 술잔을 주고받고 있을 할아버지가 버스 중앙 통로에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눈빛에는 단계가 있다.
한심한 놈.
그다음이 고얀 놈.
그다음이 벌레를 보는 눈.
마지막으로 시체를 보는 눈.
그 다음은 없다.
보통 시체를 보는 눈 단계에서 의식이 끊기니까.
지금 할아버지의 눈빛은 벌레를 보는 눈과 시체를 보는 눈의 경계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아버지. 어떻게 여기에?”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질문과 주먹을 동시에 날렸다.
나는 재빠르게 주먹은 피하고 질문은 받았다.
“시험! 테스트! 테스트! 테스트해 본다고!”
할아버지의 두 번째 펀치가 내 필살의 대답에 멈추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 펀치는 멈춘 것이 아니다. 유예된 것이다.
“무슨 테스트를 말하는 것이냐?!”
나는 살고자 하는 일념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말했다.
시끄러운 처자가 있었고, 그래서 재웠고. 그 순간 능력이 있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이것저것 시험해 보던 중 그 생각이 들었고. 한번 속으로 중얼거렸는데, 진짜 시간이 멈추어 버렸다고.
경찰 조사실에서, 같이 팔뚝에 주사 꽂으며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던 동료 마약사범들을 한명도 빠짐없이 부는 마약사범처럼, 나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렷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사또 같은 말투를 썼다.
사실입니다. 사실이구 말굽쇼. 소인이 어찌 감히 부사 영감 앞에서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이렇게 말하면 맞겠지.
“진짜야! 아우, 억울해! 하나뿐인 손자를 못 믿어요?”
“……혹시 음심을 품은 것은 아니겠지?”
“음심? 무슨 음심?”
“시간을 멈추고 옆자리 처자에게 못된 짓을 한다거나.”
아! 그런 방법도 있구나…가 아니라!
“할아버지는 날 뭘로 보고!”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고로 조선 반도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네놈 행실을 잘 떠올려 보려무나.”
에… 커험… 흠.
“아닙니다. 진짜로. 이번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앞으로도…. 아마….”
“책임지지 못하는 힘은 힘이 아니라 저주와 같은 것임을 명심하거라. 신력을 얻었다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다가는 내가 용서받지 않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이 벌레에서 한심한 놈으로 수위를 낮춰 가고 있었다.
오케이! 상황이 끝나 가는구만!
“절대로! 걱정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못 믿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나도 나를 못 믿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