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89
90 : 미션 스타트! (1)
일요일 오전.
평소 같으면 늦게까지 침대에서 뒹굴다가 슬슬 일어나 아점으로 뭘 먹어야 잘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바로 윤기훈 그 자식 집을 보러 가는 날이었으니까.
사실 집 구하는 건 창회에게 전적으로 맡길까도 생각해봤지만, 그 녀석이 돈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날 도와주는 건데, 나는 모르겠고, 네가 알아서 해라.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니, 그렇게 말했다가는 김창회의 두꺼운 전완근이 내 목을 졸라버릴 것이 자명하기도 하지만, 또 어차피 오늘 마음에 드는 집을 찾으면 가계약금을 입금해야 하니까, 나도 같이 따라다니기는 해야 한다.
요즘 따라 마음에 드는 짓을 자주 하고 다니는 이중훈이 아침부터 엄마 차를 끌고 왔고, 지연이도 아침 일찍 면목동 김창회 자취방으로 와주었다.
지연이 녀석, 어제 마지막에 화난 것 같더니 오늘은 다 풀렸는지 생글생글 웃고 있다.
거봐. 웃으니까 얼마나 예뻐! 아니, 사실 저 녀석은 안 웃어도 예쁘긴 하다.
아무튼, 나, 윤기훈, 김창회, 이중훈, 유지연은 중훈이 엄마 차를 타고 부동산 탐방을 시작했다.
김창회 저 녀석이 어제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섯 군데나 방문 약속을 잡아놓았다.
창회 집에서 20여 분 떨어진 망우동에 두 곳, 수유리에 하나, 그리고 구리시와 하남시에 각각 하나씩.
이 자식. 능력 있네. 뇌까지 근육이라고 놀렸는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아무튼, 우리는 오전 중에 재빨리 망우동과 수유리를 살펴보고, 구리시에 가기 전 점심을 먹기 위해 가까운 식당, 김밥천국으로 들어갔다.
탄수화물을 증오하는 김창회는 싫어하겠지만, 메뉴 정하는 데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김밥천국 돈까스 스페셜. 가끔 이게 또 땡긴단 말이지.
복학생 선배들이 그랬다.
소개팅할 때는 김밥천국 데려가서 돈까스 스페셜을 시켜주면 바로 뻑간다고.
내가 여자라면 이 남자 매력 있는데?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내가 여자라면.
아무튼, 그렇게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돈까스를 썰고 있는데, 김창회가 윤기훈이 그 녀석과 속삭인다.
밤새 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아주 친형제 납셨네. 아주!
그렇게 둘이서 속삭이더니 김창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보며 말한다.
“두 번째 집이 마음에 든다네.”
두 번째 집?
두 번째 집이면 우림시장 근처에 있는 그 빌라 2층 말인가?
“성당이 가까워서 좋대.”
김창회가 말한다.
성당? 저 자식 성당 다니는 거야? 나 하느님의 어린양에게 두드려 맞은 거야? 그런 거야?
저기요! 하느님! 여기, 당신의 길 잃은 어린 양이 절 때렸거든요? 합의를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성당 다녀요?”
지연이가 윤기훈에게 묻는다.
“…할머니가.”
윤기훈이 우물쭈물 말한다.
하. 나 이 자식. 그렇게 할머니를 생각하는 놈이 사고는 왜 치고 다녔는데!
“거기 얼마였지?”
내가 물었다.
“어. 잠깐만. 3천에 45.”
보증금 3천에 월세 45만 원이라. 확실히 서울이 쎄기는 쎄구나.
아니지, 서울에서 방 두 개에 그 정도면 오히려 땡큐인가? 반지하도 아닌데?
“그 집으로 해? 그러면?”
뭐, 나도 그 집 괜찮다고 생각했다.
시장 가깝고, 좀 오래되기는 했지만, 연식치고는 깔끔했지.
내일 등기부 등본을 확인해봐야겠지만, 중개소 사장님 말로는 대출 하나 없는 깔끔한 집이라고 했으니. 바로 입주도 가능하고.
“…네.”
윤기훈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그 집 마음에 들더라. 거리도 가깝고, 우리 운동 같이하면 되겠다.”
김창회는 그렇게 말하며 윤기훈의 등을 팡팡 내려친다.
김창회 이 자식아! 저 녀석 움찔움찔하잖아. 아프다잖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
내가 결정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김창회는 휴대폰을 든다. 망우동 부동산 사장님께 문자 보내려나 보다.
뭐, 잘됐지. 쓸데없이 구리나 하남 안 가봐도 되고.
아, 맞다.
“창회야. 거기, 구리하고 하남에 연락드려라. 못 가게 되었다고. 죄송하다고.”
내 말에 김창회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밥 먹고, 다시 망우동 가서 가계약 하면 되겠네.
먹자. 돈까스 먹자.
그렇게 생각하며 칼을 집어 드는데, 윤기훈이 다시 한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이 자식. 처음으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네.
“밥이나 먹어. 임마.”
나는 그렇게 말하며 돈까스를 썰었다.
***
이후로 일은 일사천리였다.
다시 망우동으로 가서 부동산 사장님 만나고, 집주인 할머니 만나서 말씀드리고, 가계약금 50만 원 송금하고, 내일 등기부 등본 확인하고, 계약서 쓰고, 나머지 잔금 입금해드리기로.
부동산 사장님은 우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복비도 깎아주신다네?
이거 뭔가 일이 잘 풀리는 조짐이지? 그렇지?
아무튼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우리는 다시 김창회 자취방으로 향했다.
있다가 저녁때쯤 가서 할머니를 납치, 아니 모셔오기로 했다.
일단 성남에 출동하는 것은 김창회 빼고, 우리 네 사람. 윤기훈이 그 자식이 할머니를 불러내면, 우리가 재빨리 차에 모시고 온다.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할머니 옷이나 약 같은 건 당장 챙길 수는 없으니까 내일 아침 일찍 윤기훈이 아빠 잠들어있을 시간에 몰래 들어가 챙겨오는 것으로 하고.
음. 완벽하군.
“그나저나 승환이랑 찬희는 어디로 간 거야?”
차를 주차시키느라 늦게 들어온 이중훈이 투덜거린다.
“찬희는 오늘 친척 모임 있다고 하던데? 사촌 누난가, 형인가, 아무튼 복지담당 공무원 있다고 그거 물어본다고 하더라.”
내가 말했다.
“승환이는?”
“몰라. 별 이야기 없었는데?”
내가 말했다.
“나도. 연락받은 거 없어.”
이건 창회의 말.
“…문자 왔었는데요.”
이건 윤기훈의 말.
문자? 윤기훈에게?
“뭐라고?”
윤기훈은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내 나에게 보여준다.
거기에는 ‘장영호는 걱정할 필요 없다.’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이게 끝?”
내 질문에 윤기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 이 자식.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
박승환은 가락시장 인근의 카페에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어제 정현식 이사에게 건네받은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건 제가 도련님께 드리는 개인적인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정현식 이사의 말이었다.
박승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정현식 이사가 줄법한 선물이었다.
봉투 안에는 두 장의 사진과 함께 두 장의 서류가 들어있었다.
사진에는 도촬범, 제이슨 임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골목길, 배전함을 열고 있는 제이슨 임의 모습이었다.
박승환은 그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명 ‘던지기’라고 불리는 마약 거래 장면이었다.
SNS의 발전과, 가상화폐는 새로운 마약 거래 방식을 만들었다. 그것이 던지기였다.
예전처럼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만나 마약을 거래하는 대신,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마약 대금을 가상화폐로 입금하면, 판매자는 마약을 숨겨놓고, 그 위치를 구매자에게 알려주었다.
위치를 전송받은 구매자가 직접 숨겨진 위치로 가서 마약을 찾았다.
주로 일반 주택가에 마약을 숨겨놓았다.
에어컨 실외기, 비어있는 우편함, 평소에는 열 일 없는 배전함, 화단 등 어디에나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지 않는 곳에 마약을 숨겨두고, 사진을 찍어 구매자에게 보냈다.
사진 속 제이슨 임은 배전함을 열고 있었다.
멍청하게도 사진이 찍히는지도 모르고, 바로 앞에 자신의 자동차까지 세워놓고서.
그의 손에 마약이 들려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약반 소속 형사라면 사진을 보는 순간 이놈을 잡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사진은 마약 판매책이 찍었을 것이다. 보험용으로, 또는 협박용으로.
사진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클럽에서 찍힌 사진도 있었다. 전자담배를 물고 있는 사진이었다.
정현식 이사가 이 사진을 건네주었다는 것은, 사진에 의미가 있다는 말이었고, 박승환은 그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액상 마리화나.
그리고 그런 박승환의 생각을 증명하듯, 첨부된 서류에는 약을 구하는 SNS 대화 내용과 가상화폐거래 내역, 그리고 가상화폐 거래소에 등록된 제이슨 임의 은행 계좌 내역이 적혀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증거였다. 마약검사를 위한 영장을 받아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박승환은 어제 넘겨받은 서류를 바로 친구인 한수에게 들고 가지 않았다.
한수에게 보여주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박승환은 다시 클럽에서 찍힌 사진에 시선을 주었다.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는 제이슨 임, 그 옆에 서 있는 김민우, 그리고 김민우 옆에 신지수.
동기, 친구, 한수의 전 여자친구가 거기 있었다.
깨톡.
사진을 바라보는 박승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 지금 도착. 어디 있어?
신지수의 메시지였다.
-2층.
박승환은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보고 있던 사진과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채 1분도 되지 않아 후드티에 추리닝,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안경을 쓴 신지수가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쩐 일이야?”
신지수가 박승환 앞에 앉으며 물었다.
“그냥. 근처 왔다가 얼굴이나 볼까 하고.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
박승환이 말했다.
“아니야. 미안하긴.”
신지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주저하다 계속 말을 이었다.
“오랜만이다. 우리 이렇게 카페에서 만나는 거.”
그랬다. 신지수와 한수가 헤어진 후, 이렇게 두 사람이 앉아서 차를 마시는 일은 없었다.
신지수가 의도적으로 친구들을 피했고, 친구들도 애써 그녀를 잡지 않았다.
“그러네. 뭐 마실래?”
“시켰어.”
신지수가 그렇게 말하며, 후드티 주머니에서 진동벨을 꺼냈다.
“그래.”
박승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
신지수의 음료가 나오고, 두 사람은 잠시 동안 가벼운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에서 한수의 이야기는 배제되었다.
마치, 애초부터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 두 사람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이상하다.”
신지수가 말했다.
“뭐가?”
“이렇게 너랑 이야기하는 거.”
“어색해?”
“아니. 자연스러워.”
“근데 뭐가 이상해?”
“자연스러워서 이상해.”
신지수는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 집어 들었다.
빨대를 물고 한 모금 마신 신지수는 다시 박승환을 보며 말했다.
“뭔가 좀 다른 것 같아.”
“뭐가?”
“분위기가.”
“어떤데?”
박승환이 물었다.
신지수는 그런 박승환을 바라보다가 작게 입술을 깨물고는 말했다.
“다른 사람 같아.”
“자연스럽다며.”
“응. 대화하는 건 자연스러운데…. 뭔가 내가 알던 승환이가 아닌 것 같아.”
신지수의 말에 박승환은 잠시 신지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신지수도 그런 박승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박승환이었다.
“한수가 다쳤어.”
박승환이 말했다.
신지수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