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0)
가짜 용사 이야기-10화(10/310)
제10화
샤론 알터 타스알포.
카밀라의 페이쿼리어 서약 동기로 참 질기고도 깊은 인연이라고 한다.
“후훗, 누구와 달리 착하게 살아서 그런 거려나?”
“지랄도 풍년이야. 그나저나 여기서 뭐 하냐? 우린 개처럼 구르고 왔는데.”
“내일이면 출발이란다, 지금 막 들어온 들개 떼의 냄새가 하도 지독해서 말이지 후훗.”
파지직, 두 여자의 시선이 뒤엉킨 곳에서 전류가 튀는 것만 같은 건 착각일까?
“크, 나왔다. 페이쿼리어 세계의 명물, 수석과 차석의 신경전!”
그때 문득 샤론의 눈동자에서 장난기가 사라지고 이맛살에 주름이 잡혔다.
“카밀라, 너 머리색이 완전히…….”
“…….”
“이 바보야. 이제 얼마나 남았어?”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남았느냐에 대한 질문인지는 두 사람만이 알고 있으리라.
바로 그때였다.
제삼자가 불현듯 끼어들더니, 카밀라에게 고함을 친 것은.
“대체 언제 가르쳐줄 거냐고! 도시에 도착해 버렸잖아!”
“좀 쉬고 가르쳐 주겠다니까. 사람 말을 똥꼬로 듣니?”
“도착하기 전에 가르쳐 주겠다고 계속 미루더니, 이제는 또 도원수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카이센.
흙먼지와 땟물을 뒤집어쓴 소년.
그 소년이 등허리에 찬 태도를 보고 샤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카밀라, 저거 아라다만텔을 본뜬 거니?”
“어.”
“그리고 볼에 발크루쉬의 문장이라…… 너 정말 재밌는 애구나.”
“난 재미없는데.”
“얘, 카밀라 같은 애 말고 누나랑 놀지 않을래?”
“싫은데?”
카이센의 즉답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받아본 무례한 대답에 샤론이 순간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마자 제삼자가 끼어들었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이분이 누군지는 알고 그딴 말버릇을 쓰는 거냐?”
찬란한 금발.
귀족 특유의 컬이 치렁치렁한 곱슬머리나 새하얀 얼굴에서 기품이 자연스레 묻어났는데, 아까부터 샤론의 옆에 서 있었던 소녀였다.
나이는 카이센과 또래로 보였다.
“그래, 이 상놈아, 넌 예의라는 걸 좀 알아야 해. 나랑 쟤가 누군지는 아냐?”
카밀라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소녀가 훗, 하고 마음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필두 페이쿼리어 카밀라 님에게 점수를 따다니!
“?”
카이센이 소녀를 쳐다봤다.
한 3초쯤 그러나 싶더니, 관심조차 없다는 어투로 말했다.
“네가 뭔데?”
“……?”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고 꺼져.”
그리고 다시 카밀라를 돌아보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소녀의 눈동자에 그림자가 지더니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스승님을 모욕한 것도 모자라 나를 무시하다니…….”
순간 소녀가 칼을 뽑았다.
발검 자세 하나에서 소녀의 엄청난 실력이 가늠될 정도였다. 그 칼끝이 카이센의 목덜미에 싸늘하게 와 닿았다.
“우루크의 문장을 볼에 새긴 불경한 것! 내 이름은 리아 라일리. 라일리 맹작가(猛爵家)의 명예와 카밀라 님과 스승님의 위엄을 더럽힌 네게 결투를 신청한다!”
일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쓰레기가 바닥을 구르는 메마른 소리만 들리나 싶더니 병단 용병들이 우하하하,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카이센! 카밀라 나리의 명예를 걸고 싸움을 받아줘라!”
“샤론 나리와 카밀라 나리는 오랜 라이벌이거든, 나리의 자존심 좀 세워드려!”
샤론 알터 타스알포.
현존하는 7인의 페이쿼리어 중 차석.
샤론은 말리기는커녕 재밌겠다는 듯이 박수를 치며 카밀라를 마주 보았다.
“카밀라, 네 제자야?”
“꼬추 달린 게 제자겠냐?”
“후훗, 그렇게 말하지만 엄청 열심히 가르친 것 같은데? 꽤나 강해 보여. 좋아, 리아. 수련의 성과를 보여주렴.”
리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스승님께서도 허락하셨으니까, 이딴 녀석은 단번에…….
그렇게 생각하던 리아는 일순 온몸이 섬뜩 얼어붙는 오한을 느꼈다.
“하.”
카이센이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저 시커먼 더벅머리 아래서, 새빨간 눈동자가 싸늘한 날을 세운 것이다.
“사람 속도 모르고 제멋대로…… 야, 너 뭘 걸 거냐?”
“뭐?”
“내가 이기면 네 손목 하나 가져간다. 까분 대가로.”
그건 도발이었을까.
아니, 확신에 가까운 위협으로 보였으나 여기서 물러서기에는 스승의 명예가 실추된다.
“말은 청산유수네. 좋아. 내 손목을 내어줄게. 대신 내가 이기면 나도 손목을 가져가겠어. 어때?”
“말 바꾸면 혀를 자른다.”
환성, 환성이 터져 나왔다.
심심하기 그지없었던 일상에 유흥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밀라는 흥, 하고 대로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샤론이 나직이 물었다.
“안 봐도 되겠어?”
“안 봐도 뻔해. 봐서 뭐 해? 시간 낭비는 사절이야. 그리고 급히 보고해야 할 내용도 있고.”
카밀라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슬쩍 흔드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네 제자한테 고맙다고 전해줘라. 덕분에 찰거머리 하나 떼어냈다고.”
뻔한 결과라…….
카밀라의 확언을 곱씹던 샤론은 카이센과 리아를 번갈아 본 다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그렇겠네.”
유년기의 끝,
아리스타포 공방전 (1)
“뭐 해! 광장에서 한판 붙는대! 보러 가자!”
“뭐? 누가? 누구랑?”
“페이쿼리어 나리들의 제자끼리! 지금 포커 칠 때가 아니야!”
도시 곳곳의 술집이나 여관에 흩어져서 놀고 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하라데리만 대광장.
천년의 시대에 신들을 도와 심연을 진멸했다고 전해지는 광룡 하라데리만의 동상이 물을 뿜는 분수대로.
“자, 레이디스 앤 젠틀맨! 관람료를 내주셔야겠습니다.”
장총 진이 능청스레 외쳤다.
네가 뭔데 시발아, 곳곳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으나 진의 분대원들이 포대를 들이밀자 결국 동전이 마구 쏟아졌다.
“선수를 소개하겠습니다. 좌측에 있는 레이디는 다들 아시는 샤론 알터 타스알포 나리의 애제자, 리아 라일리입니다!”
리아가 정중하게 결투의 예를 표했다.
샤론 병단의 용병들이 응원이 섞인 환호성을 터뜨렸다.
구경꾼들 중에는 마법사나 기사들도 여럿 섞여 있었다.
“라일리 맹작가인가.”
“삼대검가 중 하나잖아.”
“그렇다면 저 장검, 성검 타스알포를 본뜬 무기겠군.”
군중들에게서 흥분의 환호성이 가라앉기도 전에, 진이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쌉거지는 바로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께서 친히 기르시는 천하의 개쌍놈! 카이센입니다!”
카이센은 한숨과 함께 뒷머리를 긁었다.
이번엔 카밀라 병단의 용병들이 우와아아 소리를 내질렀다. 수인병들이 포효까지 터뜨리니 아주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다.
구경꾼들은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단 어조로 중얼거렸다.
“잠깐, 저거 남자 아냐?”
“아니, 남자일 수밖에. 카밀라 나리는 제자를 받지 않는다고 들었어.”
“그런 인간이 기르는 애완견? 그만큼 실력이 출중하단 소리인가?”
“에이, 그래도 라일리 맹작가의 상대가 되기나 하겠어?”
맹작가, 검(劍) 하나로 백작에 준하는 작위를 얻은 기사 가문.
제국에 단 3개의 맹작가가 존재했으며 이들을 가리켜 삼대검가라고 불렀다.
참고로 카밀라는 벨체스터 맹작가의 서녀였다.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특별히 용서해줄게.”
리아가 장검을 뽑았다.
그 칼끝으로 카이센을 겨누며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카이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대에서 칼집을 풀고 태도를 뽑더니…… 그다음 순간 구경꾼들 모두가 경악에 잠겼다.
“아가리 털 시간에 덤벼.”
카이센은 칼을 들지 않았다.
칼을 바닥에 내던진 다음, 칼집만으로 리아를 겨누었던 것이었다. 표정은 없었다.
“…….”
리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몸속에서는 아드레날린이라는 불길이 차갑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리아 알터 타스알포다.”
장검을 치켜들어 칼등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며, 고요히 눈을 감고 기원(祈願)한다.
“이 땅에서 눈물을 걷어내길 원한다.”
거기에 카이센이 반응했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 웃음기 없는 냉소였다.
“여자들은 뭐 그렇게 싸우기 전에 폼을 잡는지, 카밀라도 그러던데.”
“정말 카밀라 님의 제자가 아닌 모양이네. 검의 기원도 못 배운 걸 보니.”
“될 생각도 없어.”
시선의 교차.
기세의 격돌.
심박의 공명.
모든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던 정적이 일순간 깨지고 리아가 지면을 박차 진각을 밟았다.
“호우!”
“순식간에 뒤를 잡았다!”
“야, 인마! 괜한 허세 부리지 말고 얼른 칼이나 집어!”
극주검(極蛛劍).
샤론 알터 타스알포는 생각했다.
‘적의 호흡을 빼앗아 살을 노리는 극한의 공격 검류.’
암살에 가까운 보법이 주류를 이룬다.
‘자, 그럼 카밀라의 장난감은 과연 뭘 보여줄지?’
호흡을 완전히 빼앗았다.
모든 생물체는 호흡을 할 때 허점이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그 허점을 치고 나갈 때 살(殺)을 이룬다.
그것이 바로 극주검법이 추구하는 공세의 방식.
‘이 간격, 이 거리.’
리아는 승리를 확신했다.
이미 장검의 사정권이야. 손을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미안했다는 말만 받아내고 봐줄게.
섬뜩.
순간 칼집이 복부를, 갈비뼈를 부수고 밀려들어 왔다.
터져 나오는 울혈.
오싹한 죽음의 감촉이 온몸을 잠식하면서…….
“리아!”
……그때 들려온 스승의 목소리에 리아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
즉각 지면을 박차 뒤꼭지를 잡았던 카이센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환영?
환각이었다고?
저 녀석이, 살기(殺氣)만으로 환각을 일으켰다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사정을 알 리 없는 용병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왜 도망친 거지?”
“카이센이 발차기라도 했어?”
“흐흐, 한심이들아. 이게 고수들의 신경전이라는 거야.”
리아가 달려들던 궤도로 칼집을 뻗었던 카이센이 흠, 하고 칼집을 거두었다.
“너, 보기보다 센데?”
“……!”
“방금 그걸로 끝내려 했더니…… 시간 아까우니 진심으로 가야겠네.”
카이센이 태도를 쥐어들었다.
칼은 어깨에 걸치고, 칼집은 가로로 쥔 채 앞으로 내밀고 점차 거리를 좁혀온다.
“십문자도 3식, 둔(鈍).”
공수의 전환이 물처럼 매끄러운 십문자도에서, 무겁게 치고 나갈 때 쓰는 격세의 자세.
“오오! 저 꼬맹이가 드디어 할 마음이 들었나 본데.”
“꼬맹이? 야, 인마! 꼬맹이는 누가 꼬맹이야. 저 녀석 이미 거기에 털도 다 났거든? 완전 정글.”
“헉.”
“닥쳐, 진.”
뭐야.
허점이 보이지 않아.
호흡의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파고들어야 할지…… 리아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니, 아니야. 나는 극주검법의 정통 계승자.’
그리고 샤론의 직계 제자다.
이런 녀석한테 질 수야 있겠는가.
‘집중(集中).’
십 보쯤 되는 거리를 단번에 좁힌다.
그리고 찰나, 아주 찰나의 호흡을 낚아채서 그 허점으로 칼을 들이민다.
조금 아프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알려줘야 해.
────터엉!
그런데 그게 튕겨 나갔다, 불현듯 돌아선 카이센의 칼집에.
검의 궤도와 자세가 무너진 일순간, 카이센의 발에 걸려 몸의 중심을 잃었고, 그대로 등부터 바닥에 널브러졌다.
상대방의 공세를 뒤집어, 체내 역학을 무너뜨리는 반격기.
“어, 어이, 저건……!”
카밀라 병단의 고참들이 멍하니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래, 카밀라 나리가 4년 전에 카이센을 때려눕힐 때 썼던 그거다!”
쉬익────!
눈앞에서 칼집이 멈춘다.
그와 동시에 칼날이 리아의 손을 노리고 날아들었고…… 찾아올 격통에 눈을 질끈 감았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상대 봐가면서 까불어.”
눈앞에 아찔하게 드리워졌던 칼집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탁, 칼을 납도하는 소리.
그 소리에 눈을 떠보니 카이센이 칼집을 검대에 매달며 병단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으악, 썅! 내 돈!”
“그러니까 우리 정글 꼬맹이한테 걸라니까, 낄낄.”
“그나저나 저 꼬맹이 딱 봐도 존나게 센데, 정체가 뭐야?”
내기를 했던 용병들의 희비가 갈리며 다시 광장이 시끌벅적해졌다. 멀어져가는 카이센에게 리아 라일리가 소리쳤다.
“대체 왜 끝을 안 내는 거지? 네가 이겼어. 손목을 가져가겠다고 했잖아.”
“너도 내 손목을 가져갈 생각 없었잖아.”
카이센은 죽음 속에서 자랐다.
상대가 살기를 품고 무기를 휘두르는지 아닌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인간 죽이려고 칼 쓰는 법 배운 것도 아니고.”
리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전투의 시작과 끝을 유심히 지켜본 샤론의 입에는 빙그레 미소가 맺혔다.
‘카밀라의 말대로 완패네. 실력으로나 정신으로나.’
순식간에 몰려든 동료들에게 장하다면서(돈을 10배는 넘게 땄으므로) 머리를 마구 쥐어박히던 카이센에게 샤론이 다가갔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 될까?”
“?”
“네 칼이 리아의 팔에 닿은 순간 넌 나한테 죽었을 테니까. 적어도 그 팔이 날아갔거나.”
“그럴 것 같았어.”
“그리고 그랬다간 내가 카밀라한테 죽겠지.”
“헛소리. 오히려 고맙다고 했을걸.”
그러자 샤론이 의아하다는 눈동자로 말했다.
“너, 카밀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
“걔가 솔직하지 못해서 그래. 방법도 모르지. 아끼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위대한 스승한테 뭘 배웠나 몰라?”
샤론이 불현듯 카이센의 이마에 입을 가볍게 맞췄다.
아주 순식간에.
샤론 때문에 잠시 물러나 있던 용병들도, 카이센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 뭐 하잔 거야?”
“감사 인사야. 나 같은 미인한테 이런 걸 받다니, 평생 자랑해도 될걸?”
샤론이 빙긋 웃으며 돌아섰다.
용병들이 부러워 죽겠다는 듯이 다시 카이센을 괴롭히려 했으나 카이센이 눈 한번 부라리자 잠잠해졌다.
“하, 새키. 여전히 붙임성 하나 없어가지고.”
“나리, 저희 카이센은 우루크의 키스가 아니라면 흥분하질 않습니다요.”
“크하하하하하하하!”
카이센은 병단 동료들을 떨쳐내면서 샤론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참 별의별 인간이 다 있군. 페이쿼리어란 족속에는 말이야.’
한 명은 욕쟁이고.
다른 한 명은 기분 나쁘게 웃는 여자라. 절대 되고 싶지 않아. 될 수도 없겠지만.
한편 몸을 돌린 채 걸어가는 샤론의 입가에는 기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남자에게 십문자도에 대해 저런 수준까지 가르쳤다라…….’
재미있는 장난을 치네, 카밀라.
그렇게나 꺼리던 제자를 들이다니, 그것도 남자로.
죽음이 가까워져서 그런 거려나?
‘그 녀석 성격에 정말 그것뿐인 건 아닐 것 같은데,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