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00)
가짜 용사 이야기-100화(100/310)
제100화
저 모든 이야기의 종장,
유리 하 겔디나 (6)
슈율켈리스 공략전, 마지막 악몽의 시작…… 그 처절한 싸움의 기억을 온전히 묘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리아 : 심해목들이야!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 최소 10만! 1진, 철새진 33대 편성! 마법 부대, 앞으로 나가세요!]해수면으로 올라온 슈율켈리스 공략전은 그 어귀에서부터 혼돈이 극에 달했다.
먼저 끝없는 두통에 숨이 막혔다. 뇌향 각하 대신 펼친 뇌향심공명진 때문에…….
모든 이들의 심연을 대신 감당하는,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들을 각하께선 늘 군말 없이 해내셨단 말인가.
[비몬 : 홀트란크스 진형! 저 저주받은 존재들에게 첫 번째 자손의 힘을 보여줘라!]찢어지고 부서지는 차원, 그 틈에서 끝없이 꿈틀대며 기어 나오는 존재들…….
절대 변이(絶對-變異) 개체들.
절대 변이 개체들은 요토스의 축복을 받은 존재들로 모든 옛것과 망자들의 상위 호환 격 존재였다.
[요한 : 마방진 발동!] [리아 : 발포!] [비몬 : 내찔러!]요토스를 섬겼다는 66명의 진왕.
그 권좌의 주인들이 가진 심연의 특색을 모두 가진 것이 절대 변이 개체들이었다.
광인의 상상을 찢고 나온 듯이 거대하고, 흉측한 형상의 그것들은 끝이 없었다.
토벌전에는 의미가 없었다.
돌파하여 그 심장을, 즉 수뇌 요토스를 베는 것만이 유일한 토벌책이었던 것이다.
[그리프베런 : 이제야 몸 좀 제대로 풀겠군. 전사들이여! 용맹하게 돌격하라! 돌격대의 칼날을 맛보여줘라!]수인 돌격대가 절대 변이 개체를 살육하며 나아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놈들은 죽지 않는다.
육신 한 점이라도 남아 있는 한, 끈질기게 되살아나서 희생자의 발목이나 발바닥으로 파고드니까.
불이나 빛으로 정화해야만 위협을 완전히 없앨 수 있었다.
[리암 : 시렌!]이러한 악조건만 가득했으나 불운만 가득했던 건 아니다.
홍염의 아키레아와 삼미호 시렌.
2천 년의 시대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고 손꼽아도 손색이 없는 화염 술사가 둘이나 있었으니까.
홍염의 불길과 연록의 여우불이 파도처럼 퍼져 나가며 절대 변이 개체들을 휩쓸었다.
[홍염 : 슈’율큘라는 안 보이나 저 멀리서 넨의 기운이 느껴져. 슈율켈리스의 심장부에 눌어붙은 게 분명하다.]또한 태곳적 악마의 미궁으로서, 기하학적 구조의 모순으로 인지적 혼란을 일으키는 슈율켈리스의 구조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초거대 거신, 0식(式).
기함 테리토스와 합체된 거신 0식이 내뿜는 힘은 그야말로 ‘절대적 폭력’이었다. 거기에 강철함대의 해상 지원이 이어졌다.
[할바론 : 뇌향 각하를 향해 가십시오! 각하를 따라가라, 카이센! 엄호해주마!]변화무쌍하게 일변하는 광대한 미궁의 돌기둥과 천장과 석상들이 그 주먹질과 포탄 세례에 산산이 깨어지고 분쇄되는 것이다.
“거신은 괜찮겠습니까?”
못내 걱정되었다.
예전에도 거신 49식과 함께 죽은 줄 알았건만.
[할바론 : 뮤 론델에서 진왕 두 마리와 싸우다 손상 부위가 좀 생겼지만, 이 정도로는 끄떡없다! 걱정 말고 가!]일식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계절 자체가 기괴하게 변했다.
소름 끼치게 무더워지면서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섬뜩한 한기와 함께 눈보라가 날리기도 하고…….
세계의 통제력이 패악의 절대자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제, 진정한 어둠이 찾아오리니…… 어둠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자들은 영겁의 사망에 이르리라.」
문어와 용이 결합되어 탄생한 사특한 형상의 부조상이 낄낄거리며 그렇게 속삭거렸다.
[리암 : 샤릴리온, 뇌향 각하의 신호에 가까이 접근했습니다만 밀실이라…… 건너편에 방이 있는 것 같은데 막혀 있습니다.]“그게 어디지?”
[시렌 : 말했잖아. 길이 막혀 있어.]“길이 막혀 있다면 뚫고 가면 그만이다.”
선홍빛 뇌명의 형상으로 밀실의 천장을 뚫으며 급강하, 동시에 샤릴리온의 칼자루를 움켜잡는다.
룬 베기, Benekom.
그 뜻은 격파(擊破).
존재하는 모든 것에 창조의 명령을 저주로 새겨서 강제력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힘을 해방시킨다.
쩌어어어어엉─────!
무참하게 박살 나며 흩날리는 잔해와 먼지 저편으로, 슈’율큘라에게 침식당하며 육신이 변이된 뇌향의 모습이 보였다.
풍경조차 일그러지는 공포.
심해의 납골당에서 이미 영과 육신을 범하는 의식이 마무리된 것일까, 촉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진정한 지배자의 성지로 이어지는 관문, 심연의 지배자께서 오실 통로를 여노니…… 음흐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진왕의 환각이 의식에 손가락을 뻗치며, 만물의 법칙과 원근법조차도 뒤죽박죽으로 바꾼다.
지반을 뚫고 솟구치는 촉수.
바다가 사방에서 거대하게 솟구치며, 맹렬하게 부글거리고 끈적거리는 포말의 파도로 덮쳐든다.
“샤릴리온, 지금 슈’율큘라는 왕 다섯을 합친 것만큼 강해진 상태입니다.”
“알아.”
“그렇다면.”
리암이 입을 열다 망설였다.
여유를 부릴 수 없다고 말하려던 것일까. 뇌향을 구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려던 것일까.
“아니. 한 가지 방법이 있어. 내가 뭘 생각하는지 알 거다.”
다른 세계선에서, 다른 시간대에서 수십 수백 번을 나와 함께 싸웠다는 너라면.
분명 말하지 않아도 알 거야.
한순간 그 눈빛을 받은 리암이 의지를 굳힌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왼쪽을 맡겠습니다.”
아키레아와 시렌의 불길이 양쪽에서 덮쳐들던 파도를 막아 세울 때, 갈라디엘의 칼자루를 쥐었다.
낙뢰로의 위상 변환.
시간조차 쫓아오지 못하는 핏빛 세계에서 굽이치며 질주, 사방에서 솟구치는 촉수들을 단칼에 찢는다.
촉수의 숫자는 총합 48개.
의식을 더듬거리는 환각은 요니울란을 전개시켜 머리 주변을 난도질하는 것으로 무마시킨다.
「어둠의 길을 여노니, 영광의 지도자가 친히 이 세계에 강림해 모든 것을 깨우치시리라!」
슈’율큘라의 명령에 발목까지 차오르는 부패의 바다.
그 음험한 악취의 진흙질 뻘밭을 가르는 태초의 빛, 베르켄시아의 칼날.
슈’율큘라의 견제를 피해 양쪽으로 갈라졌던 카이센과 리암, 두 검광의 빛줄기가 어느 순간 하나로 합쳐진다.
[할바론 : 카이센, 문어발이 나오는 족족 죄다 뽑아내는 중이지만 망자의 숫자가 끝이 없다. 연합군의 체력도 한계다. 어서 그 문어대가리를 끝장내!]그렇게 말하면서도, 거신 0식에서 날아온 광탄 수백 발이 슈’율큘라에게 꽂히며 상당한 여유를 벌어준다.
“가자, 리암.”
빛의 춤사위가 길을 연다.
태초의 칼날이 먼저 찬란한 일섬, 일섬과 일섬 사이의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공백을 시편의 칼날의 일섬이 메운다.
베며 나아간다.
꿰찌르며 나아간다.
서로가 서로의 힘의 공백을 메우면서, 또 서로가 서로를 위해 시간의 틈새를 벌려주면서.
[알폰스 : 여기는 거신 144호기, 코어가 파괴됐다! 탈출한다!] [에드릭 : 변이된 큘륜이다!] [그라함 : 선진들을 본받아 용감히 맞서라, 첫 번째 자손들이여!]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하나의 의식에 통제받고 있는 2개의 몸처럼.
“리암!”
“샤릴리온!”
슈’율큘라와의 거리가 영점이 된 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렇게 외쳤다.
리벨덴의 파장 전환.
이 모든 참격의 과정 동안 축적된 힘을 발출시키는 것으로, 슈’율큘라의 본체의 촉수를 모조리 걷어낸 순간.
광염검(光焰劍).
베르켄시아의 칼날이 뇌향의 육신을 베어내고, 그 너머 영혼에 고이 감추어져 있던 핵(核)을 들추어낸다.
[아키레아 : 넨……!]질퍽한 종양 같은 핵.
그리고 태양처럼 눈부신 핵.
두 핵이 동심원을 이루며 합쳐지고 있었다.
[시렌 : 하지만 저걸 어떻게?]룬 베기, Bakhu.
그 뜻은 격리(隔離).
그 동심원의 중심부에 샤릴리온의 칼날로 정확히 새겨낸 창세의 문자.
‘이미 침식이 진행되었으니, 육신을 수복한다고 해도 곧 죽게 되겠지만.’
일순간 침식이 정지되었다.
‘그 전에 요토스를 죽이면 심연이라는 힘 자체가 사라진다.’
홀로 다른 시공간으로, 투명한 정육면체로 격리된 뇌향의 핵.
그 핵으로 수백 가닥의 촉수를 뻗던 슈’율큘라의 핵에서 그 우주적 육신이 재구축된다.
그걸 그렇게 하게 놔둘 것이라 생각했다면 정말 큰 오산이다.
쩌저저저적……!
초월적 열량의 검광을 토해내는 샤릴리온의 칼끝이 놈의 핵을 그 순간 관통했다.
[아키레아 : 됐다……!] [시렌 : 이제 요토스의 힘은 엄청나게 약해졌어…… 이거라면 놈이 강림한다고 해도……!] [할바론 : 성공했구나! 오래는 못 버텼을 텐데. 절대 개체들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이 세계에서 절망은 언제나 희망이 싹트는 시점에 찾아왔다.
칼에 와 닿는 감각이 기이하다.
핵이란 영혼이 만들어내는 보석이다. 보석을 꿰뚫은 느낌이 아니라, 이건…….
“피해.”
그래서 본능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단단하게 잠겨 있던 상자를 깨부순 느낌, 그래서 그 속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운 듯한…….
그래서 순간적으로 다급히 소리치고 있었다.
“피해────!”
다음 순간, 뒤틀린 광기와 일그러지는 환희에 찬 태고의 신의 초록빛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순간 세상의 빛이 암전했다.
모든 빛이, 두려워 떨며 숨었다.
그 저주받은 강림의 공포로 인해 세계 각지에 퍼져 있던 인간 중 정신이 예민한 이들은 모두 머리가 터져 죽었다.
그 광란을 어떻게 묘사할까.
모든 물질과 정신적 에너지가 섬뜩하게 비틀리면서 우주적 질서에 모순이 일어나는 그 광경.
별들이 제자리로 정립되었다.
창세의 주신, 겔드하리아의 심복이자 타락한 심연의 군주인 위대한 요토스 욜레 요티아토스가 창세의 섭리를 깨부수고 강림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피조(被造)의 아이들이여.」
정신의 광란, 착란의 악몽…… 메스껍게 몸부림치는 7개의 머리 달린 용(龍).
그 보좌 앞에서, 모든 피조물의 천수(天壽)가 곪아 부패한다. 어린아이가 노인이 되고, 남자가 여자가 되고, 노인이 태내의 핏덩이가 된다.
별의 시체조차 떨게 만드는 절대의 손가락, 시간과 공간의 영역조차 초월하는 절대적 형체의 윤곽.
선율이…….
광기의 선율이 들린다…….
그 강림의 폭풍에 정면으로 휩쓸린 카이센은 지면을 몇 번이고 튕기다가 기둥에 처박혔다.
‘강림한 것만으로 시공간이 붕괴하고 있다고……?’
그 일격에 맞서, 진성검 네 자루가 일제히 검광을 쏟아내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육신이 녹아내렸을 터.
그냥 녹아내리는 게 아니다.
그것이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 자체가 녹아내려서, 요토스의 심연에 휩쓸린 자는 시공간에게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게 된다.
「여러분의 그 하찮은 수작에 제가 몇 번이고 우롱당할 줄 알았습니까?」
살가운 웃음기마저 섞인 인사.
어떤 위협이라거나 살기도 섞이지 않은 인사였으나, 눈과 코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몇 가지 장치를 해놓았죠. 하나는 슈’율큘라에게 새로이 준 힘에 전이 역장을 설치한 거고, 다른 하나는 그 핵이 깨지는 순간 모든 진왕들의 힘이 제게로 모이도록 말입니다.」
“……?!”
「슈’율큘라는 여러분을 아주 잘 기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아주 잘 속아주었죠. 절망할 것 없습니다. 우둔한 짐승들의 수준에 걸맞은 반응이었으니.」
억눌린 광란의 선율 속에서, 요토스와 리암이 위치한 공간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벌레에 갉아 먹히듯이.
「자, 그럼 먼저 베르켄시아부터 회수해 볼까요?」
카이센과 시렌이 동시에 움직였다.
카이센은 요토스를 노렸고, 시렌은 리암의 옆으로 내달렸다. 전자는 실패했고 후자만 성공했다.
어렵지 않게 카이센의 참격을 튕겨낸 요토스가 빙그레 웃었다.
「내 귀여운 샬리를 죽인 게 바로 당신이군요. 잠시 후에 온 우주에서 제일가는 고통을 맛보게 해 드리겠습니다.」
* * *
해수면 위로 심연의 궁전, 슈율켈리스의 심장부는 절대(絶對)의 장막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리암……!]장막은 바다 전체의 크기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장막이 아니었다.
외부의 모든 간섭을 차단하는 하나의 우주(宇宙)였다.
[……시렌, 이쪽으로 오지 마……!]뇌향의 파편으로 장막 내부에서 요동치는 황잡한 떨림을 들을 수 있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장막 밖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광기 어린 신음…….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
구슬픈 통곡의 메아리…….
검푸르게 물든 하늘에서 별들이 걸쭉한 액체로 녹아서 떨어지고 있었다.
[요한 : 카이센, 어떻게 된 거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그 액체가 닿을 때마다 자연이 변화했다.
“요토스가 강림했습니다! 그리고 리암이, 리암이 요토스에게 끌려갔습니다!”
먼 고대의 모습으로 변했다가, 모든 게 썩고 무너진 미래의 모습으로 변했다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가.
[리아 : 카이센, 1진이 무너졌어. 수인병들이 잘 버텨주고 있긴 하지만 2진도 곧 뚫릴 추세야! 그러면, 그렇게 되면…… 전멸이야.]진성검으로 장막을 베고 또 베면서, 뇌향의 떨림으로 장막 내부의 상황을 읽었다.
리암이 두 자루의 베르켄시아로 처음에는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봉인된 <잊혀진 왕들>의 힘을 모조리 흡수, 절대 존재의 권위를 되찾은 요토스를 결국 한 끗 차이로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걸.
[리암 : ……베르켄시아가 두 자루가 있어도 안 된다고……?]그저 무력하게 들을 뿐이었다.
장막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으므로.
[리암 : ……그럼 대체 어떻게, 어떤 힘을 쌓아 올려야…….]진성검 아이자이야가 수중에 있었더라면 상황이 달랐을까, 아니, 룬 베기조차 안 통하는데…….
몸이 무력했다.
몸보다도, 마음이 더 무력했다.
1692년부터 시작된, 아니, 그 이전 어머니의 시대부터 시작됐던 이 끝없는 장난은 마지막까지 절대자의 장난으로 끝나는 것인가.
[리암 : ……미래에서 온 베르켄시아의 혼상세계(魂箱世界)마저 닿지 못한다니…….]참격을 마치고 아키레아의 등에 힘없이 내려앉는데, 뇌리에 새하얗게 절벽이 펼쳐졌다.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다시금 이런 방식으로, 손댈 수 없는 불합리한 방식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이 상황을.
그리고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순간마다 웃으며 다가오는 이 무력함을.
[할바론 : 진정하고 생각해라, 애송아! 전선에 남겨진 생존자들은 내가 책임지고 지켜내겠다! 너는 그 상황의 돌파구를 찾아내!]숨 막히는 묘지…….
우주적 존재의 노르스름한 웃음.
시간의 흐름 너머 불 꺼진 우주로부터 흘러나오는 악취…….
“역장이 왜 안 베어지는…….”
그런 간단한 말조차 마치지 못할 정도로 당혹감이 짙었다.
요토스는 날 비웃고 있었다.
요토스는 내 희망을 깔깔거리며 짓밟고 있었다. 그날,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빼앗아갔던 그날과 똑같이.
– 엄마의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
다시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내 칼로 벨 수 없는 곳에서.
제멋대로 절망을 완성해 놓으려 하고 있단 말인가.
「카이센, 싸울 준비는 마쳤느냐?」
그때 문득 들려온 아키레아의 질문에 망연한 침묵으로 대답했다.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는데, 무슨 저런 무의미한 질문을…….’
아키레아는 뇌향의 세츠넨을 안고 있었다.
가쁜 호흡의 세츠넨은 육신을 수복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의식이 없었다.
동생의 육신을 고속으로 침식하는 심연의 종양들을 아키레아가 불꽃으로 불살라내고 있었다.
「내가 길을 열겠다. 내 삶의 여정을 마칠 때가 왔구나. 너는 그 너머, 네게 주어진 소명을 마치러 가라.」
“각하, 대체 어떻게 길을 여시겠단……?”
「모든 진룡은 왕과 그 권속을 봉인하기 위해 태어났다.」
“각하, 스스로 더 잘 아시잖습니까! 각하의 육신은 이제 한계입니다! 대륙을 한나절 만에 가로질러 주시고, 슈’율큘라와의 싸움을 도와주신 것도 기적이었는데!”
아키레아가 문득,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슬픈 미소를 지으며 동생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내가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건, 버텨오고 또 버텨왔던 건,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만날 때 나의 생애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길 바라서였다. 그러나 늘 부족하단 생각만 들더구나…….」
“각하, 지금 무슨…….”
「지금에 와서도 확신이 없어. 하지만 이제는 때가 왔구나. 더는 지체할 수가 없다.」
틀렸어. 홍염 각하께서도 심연의 침식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절대 일식에 의해서 심연의 힘이 더욱 강화되고 있어서인가.
잠시 후에야 알았다. 틀린 건 아키레아가 아니라 내 생각이었다는 걸.
「나, 알라키쉬가 사랑으로 낳은 딸이자 용현이 은혜로 길러주신 장녀 아키레아는 화염의 여의주 5개를 모두 가진 유일무이한 진룡이다.」
“……?”
「이 봉인의 힘을 일점에 집중시키고 증폭시켜서 쏟아낼 수만 있다면…… 잠시나마 길이 열릴 것 같지 않느냐?」
그제서야 알았다. 무엇을 위해 아키레아가 저런 말로 서두를 떼었는지를.
[할바론 : 각하, 제가 도울 수 있을 겁니다. 테리토스에는 힘을 일점에 집중시켜서 위력을 증폭ㆍ방출시키는 기능이 있습니다.]또 그제서야 확실히 알았다.
왜, 카렌덴께서 신화시대의 체험 속에서 슈르비엘을 희생시켜서 저 너머의 미래로 가는 길을 예행시켰던 것인지.
[할바론 : 카이센, 결정은 네가 해라. 어떤 결정을 하든 돕겠다. ……할 거라면, 각하와 함께 이 포문 앞에 서라.]이러한 순간.
이러한 때를 예비해서였던가.
“……각하께서는 위대한 삶으로 이 세상을 눈부시게 밝히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때 눈앞이 희뿌예지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니, 분명히.
용현에게 물려받은 피와 영혼이 흐느껴 울고 있는 것이리라.
“이제, 그 삶의 불꽃을 저에게 맡기시고…… 편히 가십시오.”
아키레아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았을까,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래, 이제 너에게 맡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심했다는 듯, 고맙다는 듯…… 300년 세월 속의 풍파와 추억과 회한과 기쁨이 포개지는 그런 웃음을 흘렸을 리가 없으니까.
그 육신이, 일순간 온 세계를 밝힐 정도로 맹렬한 불꽃으로 폭발하기 직전에.
「내 사랑하는 동생, 넨은 맑은 아이다. 맑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게 해다오.」
세상 전체의 크기와 세상 전체의 무게를 가진 아픔을 짊어져야 한다고 해도.
[할바론 : 에너지 충전, 200, 1600, 4400, 9500%!]그 모든 죽음을 징검돌 삼아서.
그 이름은 없되, 슬픔과 분노와 증오는 다 똑같은 크기로 가지고 있던 이들의 시체를 즈려밟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해도.
[할바론 : 지금이다, 카이센!]나는 가리라.
나는, 끝까지 가리라.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모든 절망과 악몽의 주인, 요토스 요티아토스 네놈이 있는 곳으로.
“삼켜라────!”
나는 가리라.
비록 가짜에 불과하지만.
나는 용사(勇士)이고, 너는 마왕(魔王)이니까.
“────샤릴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