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02)
가짜 용사 이야기-102화(102/310)
제102화
저 모든 이야기의 종장,
유리 하 겔디나 (8)
「하, 하하하하하, 10초?」
요토스의 등 뒤에서 거대하게 일렁이던 일곱 머리의 용이 흑혈을 토해냈다.
「10초라고요? 나 요토스 욜레 요티아토스를 상대로는 1초조차 영원보다 길다는 사실을 모──」
창세의 어머니를 삼킨 불경 속에서 생겨난 타락의 힘, 창세의 섭리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힘.
「───보구, 유르벨타니아!」
그 불경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꿰뚫으며 날아든 창세의 창극, 요토스의 왼팔이 그 푸른 소용돌이 속에 삼켜진다.
경계(境界).
날카롭게 그어진 빛의 경계 너머로 요토스의 왼팔과 용머리 2개가 추방되었다. 절대신의 회복 능력으로도 재구축이 불가능.
‘도대체 뭐냐, 이놈은……?’
유르벨타니아는 유르벨뭉의 핵을 이루는 심장부 파편이다.
가장 강하지만 한계 또한 명확.
저 절대 경계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걸맞은 준비 동작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통상 모든 보구의 힘을 끌어낸 뒤에야 사용할 수 있었다.
「보구───!」
5개의 용머리가 다시 흑혈을 토해내어 섭리와 시공간 자체를 허물어뜨리나.
「───라니프시피렌!」
푸르고 맑은 금속음을 흘리며, 유르벨뭉의 빈 칼자루로 날아드는 두 번째 별.
그 별의 힘이 새로운 칼날을 구축할 때, 유르벨뭉의 칼자루는 칼집 안에 납도된 상태였다.
칼집 안에서 별의 힘이 증대되고 증강되고 또 증폭된다.
천섬발도(天閃拔刀).
흑혈의 소용돌이를 한 줄기 섬광으로 눈부시게 가른다.
검이 하늘을, 우주를 가른다.
그 허황된, 용사 이야기처럼.
모든 흑혈의 파도를 단숨에 찢어발기고, 경계의 신검이 요토스의 목전까지 들이닥친다.
쩌어어어어어엉────!
두 자루의 신검이 격돌하며 우주가 전율한다. 오감을 구축하는 섭리의 영역에도 이상이 발생해 충격음이 과도하게 크게 울렸다.
‘이딴 게 가능한 건가?’
이놈의 하찮은 신격은 아무리 잘 쳐줘 봐야 중상급에 불과하다. 일등 관리자 샬류안과 동급 정도지, 절대에 필적할 만한 신격은 결코 아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놈은 지금, 오직, 단지, 겨우, 검술 하나로 절대의 신격에 필적하고 있단 말인가?
100년도 채 못 산 필멸자가, 이 요토스 욜레 요티아토스보다도, 아니, 창세의 절대 무신 유르벨보다도 검에 능하다고?
아니, 잠깐. 칼집이랑 칼을 함께 쓰면서, 굳이 발도와 납도를 반복하는 저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검술은 분명 유르벨의…….
‘용납될 수 있을 리가.’
저딴, 저딴 놈이 유르벨의 화신이라고? 그래서 절대의 권좌에 오른 나에게 칼을 겨눌 수 있다고?
「언제까지…….」
그딴 불경이 용납될 수 있다고?
「……대체 언제까지 날 방해할 셈이냐, 유르벨!」
샤르홀린의 칼날에서 흑혈이 맹렬하게 치받치면서 카이센을 저 멀리 튕겨냈다.
「팔을 재구축할 수 없다면 새로 만들면 그만! 이것이 바로 절대 권능!」
타락한 선혈이 솟구치면서, 흑혈의 자태 그대로 왼팔의 형상을 갖춘다.
“은혜(恩惠).”
그때, 빛의 입자들이 몽글거리며 한곳으로 집속되기 시작했다.
리암이 높게 쳐든 베르켄시아의 칼날, 그 위로 포개어지고 또 포개어지면서.
요토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맞아, 베르켄시아의 계승자.’
오직 베르켄시아로만 끌어낼 수 있는 창조의 빛은 절대의 신격조차 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부동 상태에서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을 소모해야 했으니까.
‘아둔한 것이.’
초대 베르켄시아의 계승자 또한 저 힘을 끌어내려다가 오히려 내 손에 치명상을 입었단 걸 모르는 건가?
“평강(平康).”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어렵지 않게 처리했을 것이다.
그 심장을 취하고 베르켄시아를 회수하고 신명 나게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딜 보는 거냐, 요토스?」
이놈만.
이놈만 없었더라면.
검 한 자루로 우주의 질서를 겨누는 이 불경한 놈만 없었더라면.
「뇌향령어검 백팔검식(雷響令御劍-百八劍式), 개(開)!」
등 뒤로 펼쳐진 108개의 검의 날개가 빛으로 사출된다. 유르벨뭉의 부름에 응해 날아드는 보구의 힘을 그대로 모방하며.
청백의 칼바람에 휩싸인 요토스.
칼바람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수천 번의 참격.
「어딜 기어오르는 거냐…….」
그 순간 흑혈의 칼날이 샤르홀린의 검신을 타고 요동치며, 세계 그 자체를 침식하는 크기로 증대된다.
「지금 감히 어디를, 이 우주의 티끌만도 못한 피조의 짐승들이──!」
찰나조차 되지 않는 순간 속에서, 섭리 밖의 세계에서 한 송이의 꽃이 피었다가 지는 시간 속에서.
무수히.
수없이.
끝없이.
흑혈(黑血)의 칼날과 청경(靑莖)의 칼날이 맞부딪치고 격돌하고 충돌하면서 빛과 어둠이 폭발하고 또 폭발한다.
「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폭발음을 선명하고도 위압적으로 가로지르는, 두 신격의 기합의 충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감히 좇을 수 없다.
리암조차도 감히 목도하는 게 불가능했다.
칼을 휘두르는 동작조차도, 그 칼이 남긴 잔상을 뒤늦게 훑는 것조차도.
‘그 요토스와 막상막하라니.’
오직 참격이 만들어낸 빛의 마지막 떨림과 격돌의 금속음만을 들을 수 있을 뿐.
“진리(眞理).”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힘의 우열이 변하고 있었다.
육신이 필멸의 껍데기에 갇힌 존재와 육신조차도 절대적 신위로 구축된 존재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힘의 차이였다.
서둘러.
제발 서둘러줘.
영원보다도 느릿느릿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렇게 애걸했다. 빛의 칼날로 집결되는 빛의 파편들에게 리암은 간절히 빌었다.
“공의(公義).”
그때, 푸르게 날아들었다가 맑게 깨져 나가는 유르벨뭉의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꿈, 꿈의 한복판을 내달리고 있는 느낌이군.’
카이센은, 샤릴리온은 생각했다.
칼을 한 번 휘둘러 절대자의 신격을 깎아낼 때마다.
저 아련한 봄날, 바람결에 덧없이 흩날리는 벚꽃처럼 기억의 향기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 엄마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그 모든 여름의 날들.
그 모든 인연과 단절의 시간들.
– 칼 따윈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 봐. 그래서 행복해져라.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그 모든 삶 속에서의 이야기들.
– 카이센, 넌 혼자가 아니다.
절대자의 심연에 영육이 찢어지고 부서지고 녹아내릴 때마다, 기억의 시체들이 피로 이루어진 바다 위에 징검돌처럼 떠오른다.
– 약속을 잘 지키면 나중에 이슬라가 잔뜩 칭찬을 해주겠다!
– 이 머리, 라미네아 님을 따라서 한 거거든.
– 아바 아버지, 나의 길을 인도하소서.
피 흘리고.
피 흘리며 괴로워하고.
피 흘리며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소명의 자리로 나아간 용사(勇士)들.
– 에, 에누엘…… 엘디아라는 뜻의 의미를 알고 있어?
– 에누엘, 당신이 나라는 장작을 앞으로, 세상의 불까지 가져가 주십시오.
– 에누엘, 너는 꼭 살아. 우린 죽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야. 이 땅 위에 꽃들이 가득 피어나게 되면…… 우리들의 무덤 위에 술 한잔 따라줘. 나는 그거면 족해.
– 에누엘, 우리는 이 세상의 장작이다. 불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거다. 내 말을 알겠느냐?
이 마지막 시대를 빛으로 밝히던 마지막 불꽃들.
“……그 모든 걸…….”
베고.
발(發) – 십문자도 5식, 돌발격(突發擊).
발(發) – 십문자도 6식, 섬무참(閃舞斬).
베이고.
“……품으며…….”
그 불꽃들의 빛은 이 시대에까지, 저 큰 도시와 작은 마을과 산골들과 바다 위와 강물들 위에 남아 있었다.
“……그들 중…….”
또 베고.
발(發) – 십문자도 7식, 진뇌룡(進雷龍).
또 베이고.
발(發) – 십문자도 8식, 뇌염검무(雷炎劍舞).
또 베고.
“……가장…….”
남아서, 이 시대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고, 비추면서 서로 웃고 있었다.
– 카이센, 네가 갈 길을 나의 불꽃으로 비춰주마. 너는 앞으로 나아가거라.
나는 가짜여도 좋다.
나는 불꽃이 될 수 없어도 좋다.
대신 장작이 되어서, 내 몸과 영혼을 새하얗게 불태워서 그 불들을 지키리.
“……귀한 것…….”
발(發) – 십문자도 9식, 절뢰도(切雷刀).
또 한 번 베고.
또 한 번 베이고.
발(發) – 십문자도 10식, 십자참수(十字斬首).
“사랑.”
신살검 유르벨뭉의 참격은 시간이라는 영역조차 베었다. 그렇게 생겨난 시간의 틈새는 새로운 참격의 여유로 이어진다.
“이제─────!”
베이고.
또 베이고.
다시 또 베이고.
“─────이 땅에!”
여러 파편으로 흩어져서 요티아토스 주위를 맴돌며 창세의 선율을 흘리던 유르벨뭉.
“새벽을 밝혀라─────!”
그 파편들은, 천섬(天閃)의 섬광으로 요티아토스의 신격을 베어내면서 다시 하나의 칼날로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발(發) – 십문자도 11식, 뇌격단(雷擊斷).
그 참격에 담는 것은, 마음.
그 참격에 싣는 것은, 분노.
그 참격에 얹는 것은, 증오.
발(發) – 십문자도 12식, 영멸섬(永滅閃).
억울하게 죽어간 모든 이들이 품었던 마음들은 유르벨뭉의 칼끝에서 창세의 선율로 맑고 청아하게 울렸다.
‘그리고 다시, 발(發)───’
그에 맞서는 흑혈의 칼날은 필멸의 육신과 덧없는 신격을 도륙하고 썩어 문드러지게 만든다.
그러던 다음 순간이었다.
수천만 번 반복된 푸른 칼날의 연무가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던 그 순간, 허점이라고도 할 수 없는 틈새가 아주 잠깐 노출된 순간, 불경의 칼날이 카이센의 심장과 영혼의 핵을 동시에 꿰찔렀다.
“────샤릴리온?!”
찰나조차 되지 않는 찰나 속에서, 순간조차 되지 않는 순간 속에서.
이제 힘을 낼 수 없는 몸인데.
이제 마지막 한 줌 남은 신격과 영혼조차도 절대적 무형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던 순간인데.
「나아가────!」
스스로에게도 의문이었다.
어떻게, 먼저 죽은 용기의 선진들과 똑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을까. 어떻게, 유르벨뭉의 마지막 파편을 불러들일 수 있었을까.
또 어떻게.
나를 제압하고 리암에게로 일순간에 쇄도하려던 요토스의 발목을 베어낼 수 있었을까.
저 어린 유년의 날, 스승님의 정강이 갑옷을 무력하게나마 공격했던 그때처럼.
“타르혜 론델.”
요토스가 지면을 박차서 만들어낸 도약의 힘이 순간적으로 상실되었다.
그 순간으로 충분했다.
아름답고도 찬란한 위용을 갖추며 일어선 빛의 칼날이 어둠의 장막을 베어 내며 전율하기까지는.
「아니……?」
그와 동시에, 시간을 초월한 싸움 속에서 절대자의 혼백 위에 새겨두었던 문자가 해방된다.
YuRi.
Ha.
Gel.
Dina.
만세의 시작, 창조란 게 이루어지기 전에, 창세신들이 오직 사랑만이 가득한 세계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한마음 한뜻으로 했다는 이 말들을 조합하면 아래와 같다.
Yuri Ha Geldina.
어두운 곳에 빛이 있으라.
이는 각인참의 초월적 응용, 창세신들께서 손을 맞잡고 행했던 권능이 천 년이 수십 번 지난 이 시대에 다시 발현되게 만드는 힘.
세계에서 악(惡)을 모두 제하고 오직 선(善), 즉 빛만을 남겼다는 그 명령이, 외우주의 어둠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 힘은 설령 그것이 우주의 절대자일지라도, 그 존재적 악을 완전히 멸각한다.
「────────!」
창조의 빛 속에서, 머리 일곱 달린 용의 형상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분열되어 갔다.
절대 심연이 사라져간다…….
선과 악이 명료하게 분리되듯, 그 갑주가 붕괴되고 신검이 불살라지며 윤곽이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한다.
「이건…… 이럴, 이럴 수는…… 이건───!」
요토스가 저렇게 자신의 신격조차 도려내고 달아나도, 조금도 걱정되지 않아.
「───흐, 흐흐, 흐흐, 흐하하, 흐하하하하하하하하!」
다시 육신을 수복시키며, 웃어젖히기 시작해도 염려하지 않아.
「나는 절대자! 절대의 힘을 누리고, 절대의 권능을 설파하며, 절대의 축복을 내리는 존재, 요토스 욜레 요티아토스다───!」
나는 가짜.
그리고 너는 진짜.
알잖아? 가짜 주인공은 이야기를 끝낼 수 없어.
「───하하하하하하하! 겨우 이따위로, 타르혜 론델의 빛에 살짝 휩쓸렸다고, 그렇게 쉽게 끝날 줄 알았나!」
그건 바로 너.
진짜 주인공, 진짜 용사의 몫이니까.
“너에게 절대 신격이 남아 있었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넌 지금 샤릴리온의 힘으로 절대 신격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다……!”
고맙다.
마지막 시력으로나마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게 해줘서.
「────아니, 안 돼, 이건, 왜 신격이, 재생되지 않는, 샬류안! 쟈렌키! 아쉬론! 네이갈라스! 지금 어디에 있지? 이런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것들! 절대자로서 명한다, 이 불경한 것을 당장──!」
끝이 보이지 않던 장난의 끝을.
무수한 광입자로 분해되어 베르켄시아의 칼날로 끌려가는 요토스의 모습을.
“포기해라, 다 끝났어! 넌 이제 이 베르켄시아에 존재 자체가 흡수되어 영원히 소멸한다……!”
슬프도록 따스하고, 눈물겹도록 따뜻한 창조의 파동이, 낮고, 부드럽고, 눈부시게…….
알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먼저 몸을 훑고 지나가서 저 먼 땅들로, 어머니를 묻은 고향으로, 스승님이 죽은 그 땅 위로, 선배님과 동기들이 죽었던 그 산맥 아래로, 타르시요를 묻은 북부의 설원으로, 그리고 세상이 아니게 된 곳들까지도 퍼져 나가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창세의 여명(黎明)을…….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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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릴리온…….”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들을 수는 있었다.
너의 힘없는 발소리를.
소리 죽여 흐느끼며 다가오는 너의 기척을.
“……정신 차리세요, 샤릴리온, 제발……!”
왜 우냐.
기뻐해야지.
신나게 웃어야지.
“……일어나란 말입니다! 이제, 이제 다 끝났는데! 이제야, 이제야 다 끝났는데! 당신은, 당신은 어째서 이렇게……!”
넌 모든 악몽을 끝냈어. 이 땅 위에 진정한 평화를 이룩했어.
개선가를 한 몸으로 받으며 모두에게 돌아가야지. 온 세상을 구원한 진짜 용사로서.
가짜는 잊혀져야 해.
가짜 용사는 이제, 사라져야 해.
모든 걸 새하얗게 불태운 장작은 그 쓸모가 없어졌으니 버려지는 게 맞는 거야.
“……카이센? 이놈이 지금 어떻게 된 거냐……?”
“……샤릴리온……!”
“……아, 카이센……!”
“……일어나란 말입니다……!”
“……샤릴리온……!”
네가 우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울잖아. 그러니까 웃어줘.
나는 내 삶의 여정에 만족한다.
단지, 나중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 날 내가 죽은 이 자리 위에 도라지꽃 한 송이를 심어줘.
그러면…….
어머니가 좋아하셨다는 그 꽃이 피어난 그때에야 비로소…….
나도…….
이 세상에 정말로…….
봄이 온 줄 알 테니까…….
봄이…….
영원무궁…… 끝나지 않는…….
따뜻하고…… 아늑하고…… 따스한…… 아무도 칼을 잡을 필요가 없고…….
또…… 누군가가…….
용사가…… 될 필요가 없는…… 봄이…… ■.
* * *
용사는 무릎을 꿇은 채로 고요히 죽어 있었다. 칼 쥔 죽음이 이토록 고요할 수 있는 것일까.
육신의 맥동은 무참하게 끝장나고 영혼도 소멸하였으며 신격은 삭제되었다.
그럼에도, 그 얼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환한 미소였다. 무거운 짐을 목적지에 내려놓은 이들만이 지을 수 있는, 그러한 미소.
「…….」
마지막으로 현장에 도착한 뇌향의 세츠넨도 그 미소를 보았다.
세츠넨은 천천히 나아갔다.
육신을 침식하던 심연은 완전히 사라져 거동에 불편함이 없었다.
모두가 물러섰다.
도대체 누가 세츠넨의 슬픔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내 사랑하는 아이야.」
꿇어앉은 채로 죽은 영웅 앞에 세츠넨 또한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었다.
놀랍구나…….
라미네아의 품에 안겨 있을 때는 그토록 작았었는데…….
그 놀라움이 너무 슬프구나…….
어미의 품에 안긴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던 그날과 똑같이, 세츠넨은 영웅의 이마에 이마를 맞대고 울음 같은 미소를 지었다.
「지친 얼굴이구나. 이제 그만 편히 쉬어라.」
1692년 개전 이후 처음으로, 용사는 편안히 쓰러졌다.
끝내, 마침내, 비로소.
죽어서까지 필사적으로 굳게 쥐고 있던 칼자루를 놓으면서.
칼자루를…….
반평생 쥐어온 칼자루를…….
죽어서도 놓지 못하던 그 칼자루를, 마침내, 이제야, 이제서야, 이제 와서야, 편히 놓으면서…….
팅………… 팅……… 팅… 팅……….
칼을 내려놓고 누운 그 모습이, 평안했다. 그 마지막 표정이, 진실로, 진실로 진실로 진실로, 평온했다.
저 먼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일까.
봄바람이 살랑이던 마루에서 어머니의 다리를 베고 새근거리며 졸던 유년의 나날과 똑같이.
그래…….
용사(勇士), 지금 여기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