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05)
가짜 용사 이야기-105화(105/310)
#1 :
[1. 게임 시작 전] 정신병자와 공격대장 사이“제발, 제가 알아서 한다고요!”
내가 큰 소리로 고함을 친 상대는 항상 그래왔듯이, 내 늙은 어머니였다.
“철아,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수도 없잖아…….”
“또? 나가서 일하라고요? 절뚝거리면서?”
어머니는 외출복 차림이었다.
새벽마다 저 늙으신 몸으로 허드렛일을 하러 나간다. 그 임금의 대부분은 내 가상현실 게임비로 지출된다.
“내가 밖에 나가면 뭐라고 수군거리는 줄 아세요? 다리병신이래.”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에게 내 왼발을 신경질적으로 들어 보였다.
거기에 의족이 달려 있었다.
국방부가 조국 통일의 훈장이라고 떠들어대는 염병할 물건 말이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 거야. 철이의 잠재성을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몇 살인데 잠재성 타령이야. 지금 스물여덟이야, 스물여덟. 내 인생은 전쟁 끝날 때 같이 끝났어, 끝났다고요.”
어머니는 내가 절뚝이는 몸으로라도 일하기를 바랐다. 세상은 절뚝이 병신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는데 말이다.
“엄마는…….”
어머니는 설움이 치미시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어머니가 어서 떠나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레이드 시간인데 게임 밖으로 끌려 나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엄마 욕을 하는 건 참을 수 있어. 못 배운 아줌마, 청소부 아줌마, 한심한 아줌마. 그런데 그건 못 참아. 철이가 스스로를 다리병신이라고 깎아내리는 건. 마음이 너무 아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고개를 힘없이 돌리고는 한숨과 함께 현실을 짚었다.
“……다리병신 맞아요. 현실이라고요. 깎아내리는 게 아니고요.”
문득 내 불손함이 후회스러워졌다. 어머니의 헌신을 잘 알면서 왜 이럴까.
“그러니까 그만 비참하게 만드세요.”
어머니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방을 나갔다. 눈동자에 초점이 흐려져 있었고 쓰러질 듯이 비틀거렸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 저렇게 가시다가 사고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흔들었다.
멍청하게도 오늘도 문제없으리라 낙관한 것이다.
어머니가 떠난 뒤 절뚝거리며 거실로 나가보았다. 냉장고에 반쯤 남은 맥주 캔이 있어서 단번에 들이켰다.
썩은 보리 맛이 삶처럼 씁쓸했다.
……네깟 놈도 아들이구나.
불현듯 가슴속으로부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 삶의 비참함이 슬퍼서.
새벽부터 어머니에게 짜증이나 쏟아내는 삶이 혐오스러워서.
“염병하네, 진짜, 씹!”
의족 달린 발로 벽을 마구 걷어찼다. 그건 나를 걷어차는 발길질이자 세상에 소극적으로 덤벼드는 발길질이었다.
얼마나 그랬을까.
벽에 쓰러지듯 기대앉아 흐느끼며 무릎에 머리를 파묻었다.
나는 어머니의 자랑이었었는데.
자사고 수석, 명문 Y대 입학…… 그랬는데 통일 전쟁 이후 모두 무너졌어.
신의주 전선에서 매설된 지뢰에 왼쪽 다리를 잃어버린 그날, 모든 게 무너졌다.
신경성 통증의 후유증은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을 거라고 군의관이 말했다.
그렇게 나는 다리병신에 후유증까지 있는 병신이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전후 후유증(PTSD)이었다.
보였다.
늘 보이고 들렸다, 또렷하게.
죽어가던 전우의 얼굴이, 내가 죽인 적군의 얼굴이, 총성포성피비린내내장악취대검에묻은피쇠비린내고함호각흙먼지으흐흐하하하하하하하히히히히히히.
전쟁이 끝나고 통일이 됐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여전히 전쟁터로 뒤죽박죽이었다.
“뭐가 훈장 영웅이냐…… 국방부 개새들아…… 병신 되니 느그 아들이라면서 헌신짝처럼 쳐 버릴 거면서…….”
흐느끼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브레인폰(Brainphone; 뇌 내 이식 스마트폰) 알림음이 울렸다.
[철, 공대원들이 기다려. 아직도 얘기 다 안 끝났어?]공격대원 크리스였다.
듣기로 미국 중산층이라고 했다. 어여쁜 외모에 성정도 온화하며 가정까지 화목했다.
웃음이 나왔다. 이 세계는 이토록 불공평한 세계다.
[지금 갈게.]짧게 답했다.
그리고 가상현실 캡슐 내부로 힘겹게 몸을 옮겼다. 그 좁고 아늑한, 나의 세계로.
[생체 코드 00BA2000A. 접속 승인. 어떤 게임 세계로 접속하시겠습니까? 보유 게임 : 1]“황녀를 위하여.”
[접속 프로세스 승인.]나의 세계는 가상현실 속에 있었다. 나의 친구들은 이 캡슐 안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이 세계 안에서 나는 절뚝거리지 않았다. 환각도 없었다.
거기서 나는 일류 가운데서도 정점이었다.
* * *
“크리스! 열일곱 번째 패턴 백업해줘! 마무리다!”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빙룡 스케사리의 죽음이 눈앞이었다.
스케사리…….
영웅시대에 인류를 구원했던 대영웅 샤릴리온의 후손…….
“OK!”
나와 나란히 달리던 크리스가 돌연 멈추며 전투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휘두르는 근력에 관성을 더하여 수세를 굳히는 아름다운 솜씨. 페이쿼리어 루트 끝판 무기인 극위성검 가우므리스를 저렇게나 잘 사용하다니.
순간, 시야를 시퍼렇게 물들이며 쇄도해든 스케사리의 꼬리가 그 광휘에 튕겨나갔다.
쩌어어엉───!
서리 동굴을 울리는 둔탁한 타격음. 바닥에 깔린 눈이 치솟아 눈보라로 휘날렸다.
“아자앗!”
크리스의 수세가 빙룡의 발악을 밀쳐내며, 빙룡은 거칠게 신음하며 나자빠졌다. 허점이 오롯이 드러나는 탈진 상태다.
이제 나의 차례다.
크리스를 지나쳐 앞으로 달려갈 때, 크리스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끝내버려!”
그렇게 말하는 입술에서 허연 김이 뿜어져 나왔다. 이곳은 빙굴 안이라 심히 추웠다.
“맡겨둬.”
등에서 마검을 뽑아들었다.
대검의 칼날에서 음산한 검기가 안개처럼 풀려 나왔다. 시커멓고 날카로운 검기가.
심연(深淵)의 검기, 이는 심연을 다루는 흑기사 클래스의 상징.
즈즈즈즈즈──!
눈 덮인 지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칼자루를 단단히 움켜잡았다. 폭풍우로 휘몰아치는 검기를 칼날 위로 오롯이 세운다.
그 검극이 꿰뚫는다, 심장을.
빙룡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겨울날 호수가 갈라질 때의 소리보다도 더 맑고 깊고, 또 구슬픈 단말마…….
빙룡, 스케사리.
대영웅 샤릴리온의 후손, 크세리니아 리드의 모태에서 나온 반룡.
빙룡 스케사리는 모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세상의 마지막 심연을 삼켜 자신의 혼에 봉했다.
저 서글픈 설정을 떠올리던 것도 잠시, 단말마의 몸부림이 끝났다.
칼을 뽑자 비릿한 혈향이 코를 찌른다. 칼날에 끈적끈적한 피가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듯, 최종 보스를 끝장낸 손맛은 원초적인 짜릿함을 자극한다.
피의 비린내와 땀의 누린내.
바로 이 현실감.
그래, 내가 이 게임만을 하는 이유다.
[정철 공격대가 서리 동굴을 격파하였습니다]– 게임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 경고 : 당신은 더 이상 레벨업할 수 없습니다.
– 게임 클리어 갱신 : 7회차.
– 히든 퀘스트 완료 : 절대 심연의 그릇.
순간 뭔가 이상해서, 눈앞에 출력된 메시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히든 퀘스트라니?
절대 심연의 그릇?
지금까지 이런 걸 본 적은 없는데, 봤다는 사람도 없고……. 빙룡의 시체 옆에서 숨을 헐떡이던 그때였다.
[대장! 수고하셨습니다!] [어서 나오시라구요! 헹가래 함 해드릴 테니까. 하하하!]공격대원들에게서 쇄도해온 귓속말이었다.
던전 곳곳에 흩어져서 빙룡의 권속들을 막아내고 있었을 텐데, 빙룡이 죽었으니 권속들도 모두 쓰러졌으리라.
그래, 이 순간의 짜릿함 또한 놓칠 수 없지.
크리스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게임 클리어에 감동했는지 울먹이고 있었다.
“깨, 깬 거야? 이거 정말이지? 진짜지?”
“그래. 깬 거야.”
이곳 심층부에는 그녀와 나뿐이었다. 여기에는 단 2명만 들어올 수 있었으니까.
크리스가 내 파트너로 발탁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가장 강인했고 호흡도 잘 맞았으니까.
“깼어! 깼어! 우리가 깼어!”
“어, 깼어. 축하해.”
그 순간 크리스가 내게로 달려들었다. 딱히 피할 의미는 없었으므로 어색하게나마 호응해 주었다.
나와 함께 심층부를 클리어한 파트너들의 반응은 대개 이랬다.
놀랍지 않다.
나도 첫 클리어 때에는 이랬었으니까.
이 미친 게임은 클리어하기까지 ‘체감 시간’으로 무려 6개월이란 시간이 걸린다. 오늘이 바로 그 6개월의 결실인 것이다. 실제 시간으로는 6일 정도.
더 정확하게 말하겠다.
내가 공격대를 지휘하기에 클리어가 가능한 것이었다. 일반인들은 클리어를 꿈조차 못 꾸는 게 이 게임이다.
즉 미친 난이도의 쓰레기 게임이다. 그럼에도 이 게임은 제법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게임의 게임사만이 현실과 혼동될 정도로 엄청난 오감(五感) 동기화를 제공할 수 있었으므로. 변태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법이란 거다.
“그만 가자. 공대원들 기다린다.”
“있잖아, 정철.”
“듣고 있어. 가면서 말해.”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굳는 걸 느꼈다.
하, 또 저 질문인가…….
저것은 ‘게임 세계에서 어디로 갈 것이냐’는 질문이 아니었으니까. 이제 어떤 게임으로 넘어갈 거냐는 질문이었다.
당연한 질문이기도 했다.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고서는, 사람들은 대개 클리어한 게임을 계속 붙들지 않는다.
특히 이 <황녀를 위하여>처럼 난해한 게임은 더더욱. 무엇보다 이 쓰레기 게임은 여느 RPG처럼 캐릭터 데이터가 남는 게 아니라 삭제된다.
즉, 캐릭터 키우는 맛도 없다.
“같이 할래? 그, 그러니까 너랑 같이 하고 싶은 건 아니고 네가 다른 재밌는 게임을 잘 알고 있을까 봐…….”
“어디로도 안 가. 다른 게임은 몰라. 난 이 게임만 해.”
“설마 또 이걸 깨려고?”
“어.”
난 말이야…… 절대 말할 수 없는 이유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현실의 환청을 피해 여기 왔어.
이 게임만이 현실을 그대로 모방했거든. 예컨대 팔다리가 잘리면 그 고통이 정확히 느껴지고, 눈알이 파이면 눈알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과 함께 시각 센서가 고장 나기도 하지.
피비린내.
땀의 열기.
쇠의 냉기…….
모두 전장에서 느끼던 감각 그대로야.
그래.
전쟁이 늘 나를 찾아와서 괴롭혔으므로 차라리 내가 전쟁을 찾아가기로 한 거야. 이 방법은 이상하게도 잘 먹히거든.
“그러면 말야…….”
크리스가 얼굴을 붉혔다.
빙굴의 암흑을 비추는 횃불 탓에 크리스의 볼이 붉게 보였다.
“내가 요번에 가거든. 응, 한국으로. 그런데 큰일이 났어. 한국을 안내해줄 사람이 없는 거야.”
“브레인폰으로 지도 켜.”
단박에 거절했다.
녀석을 만나볼 자신이 없었으니까.
“사, 사람이 안내해줘야 좋지! 사람 사는 세계인데!”
“넌 예쁘니까 안내해 달라고 하면 안내해줄 한국 남자가 줄을 설걸. 한국에는 백인 여자를 좋아하는 놈들이 널렸거든.”
“싫어!”
이 게임은 현실적이다.
외모 커스텀도 일절 불가능했다.
크리스의 미색은 갑옷을 입고도 반짝인다. 현실에서는 더욱 아름답게 반짝일 것이다.
“그 예쁜 여자가 오는데 시간이 없는 거야?”
“어. 8회차 가야지.”
“내가 이렇게 부탁해도?”
나도 사실은 너를…….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차갑게 거리를 두었다.
“네가 뭔데?”
두려웠다.
진실로 두려웠던 것이다.
내 현실의 비참함을 본 크리스가 나를 경멸할 날이 두려웠다.
이곳에서의 정철은 천재 공격대장이었다. 모든 이들이 나를 존경했다. 현실에서의 정철은 다리병신 정신병자였다. 모든 이들이 나를 경멸했다.
너에게만큼은…….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크리스의 기억 속에서 천재 공격대장이기를 바란 것일까.
“게임에서 좀 친하게 지냈다고 현실에서까지 그런 친절을 바라는 거냐?”
크리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에 가슴이 아팠지만 확실하게 짚고 가야 한다.
“저, 정철…….”
“좀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줄 알았냐? 어이가 없네. 착각하지 말고 다른 놈들한테 가서 꼬리 쳐.”
귓가에 경고음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게임 종료 요청 : 강제 코드, 승인 시 30초 이후 게임 종료.]게임 종료라고?
또 어머니인가…… 넌더리가 났다. 오늘은 정오까지만 일하신 모양이었다.
고개를 저었다. 클리어한 날, 공격대원들과 작별 인사 정도는 나누어 주어야 했다.
“이따 나간다는 메시지 띄워.”
그 순간 온 건 현실, 그러니까 가상현실 캡슐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뇌리에 섬뜩한 깨달음이 왔다.
어머니? 아니, 아니야. 어머니는 가상현실 캡슐을 다루는 법을 몰라. 그러니까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도 모른단 말이다.
곧 영상이 떠올랐다.
[형 말도 씹냐? 지금 어머니 돌아가시기 직전인데, 미친 새끼야! 게임 참 재밌게 하나 보다, 어?]가상현실 캡슐에 부착된 카메라에 비친 것은…… 내 형이었다.
[너 때문에 지금 죽어가고 계신다. 넌 뒤졌어. 당장 튀어나와. 캡슐 부수고 꺼내기 전에 당장 나오라고!]* * *
그날, 어머니는 택시에 치였다.
경찰이 택시의 블랙박스를 확인하니, 적신호일 때 길을 건너다 치였다고 한다. 길 위에서 정신없이 비틀거리시다가.
갈비뼈가 으스러진 고통 속에서도 내 이름을 부르다 죽었다고 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나를 걱정했다고 했다.
당신은 왜 평생을 나를 위해…….
이딴 것도 아들이라고…….
캡슐을 사준 것도 매달 게임 이용료를 내준 것도 어머니셨다. 당신은 평생 가난했다. 나는 보답 한번 못 했는데.
장례식에서 형은 흐느끼면서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나는 여기에 앉아 있을 자격도 없다고도 했다.
부정할 수 없었다.
형은 가정을 꾸려서 어머니에게 손주를 안는 기쁨을 느끼게 해드렸고, 매달 생활비도 수준에 맞지 않게 드렸다.
어머니는 내 가상현실 이용료 때문에 일을 하신 것이다.
어머니 영정에 절하지도 못한 채 장례식장에서 절뚝거리며 뛰쳐나왔다. 그리고 도망치듯 옥상에 올랐다.
죽을 생각으로 말이다.
그 메시지가 온 게 바로 그 무렵이었다.
[어머니를 살리고 싶으십니까?]– YES or NO.
분노와 자조로 뒤엉킨 헛웃음이 나왔다.
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딴 걸 장난이라고 하고 있냐?
이 개새야, 할 장난이 있고 안 할 장난이 있는 거야…….
근데 만약.
정말로 만약.
이것이 세상을 주재하는 신의 장난이며, 그 장난에 어울리는 대가로 정말 저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날, 그렇게 어머니를 구하기로 마음에 홀린 일순간 세계 자체가 변했다.
내가 정점인 세계로.
천재 공격대장 정철의 세계로. <황녀를 위하여> 게임 속에서 펼쳐지는 배틀로얄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