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06)
가짜 용사 이야기-106화(106/310)
#2 :
[1. 게임 시작 전] 배틀로얄 설명회「서로를 의심하세요! 물론 협력해야 할 때도 있죠. 레이드라거나, 공략이라거나, MMORPG에 별별 거 다 있잖아요? 그래도 결국엔 죽이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잖아요? 다 경쟁자니까.」
관리자가 길었던 설명을 마쳤다.
나는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이제 겨우 열 살쯤 됐을 법한 소녀가, 살인이니 소원이니 아주 간단하게 말하는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게임 설명도 그랬다.
그래도 소녀가 차려입은 양복 차림보다는 덜 기괴했을 것이다. 그 작은 손으로 바닥을 딱딱 두들기는 검푸른 장우산은 말할 것도 없다.
「어때요? 재밌겠죠?」
<황녀를 위하여>, 그 미친 쓰레기 게임을 기반으로 한 배틀로얄?
아니, 미친놈아.
악마도 이마를 탁 치고 감탄할 그 발상은 대체 뭔데?
던전을 함께 공략하던 동료를 죽이고, 때로는 서로 죽이려 하던 적과 협력해서 레이드를 클리어하라니?
승자는 666명 가운데 오직 한 팀. 나는 거기에 ‘목숨’을 담보로 참가한 플레이어란다.
공격대는 25명의 정원으로 편성되니, 최대 25명만이 살아남는다고 보면 된다. 그것도 최대 25명이지, 레이드 끝에 몇 명 살아남을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그건 약과다.
그 25명에 들지 못하는 나머지는 다 죽는단 소리니까. 근데, 그렇게 살아남으면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한다.
“미친, 소원을 이뤄줘?”
“무슨 드래X볼이냐?”
“아재요,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드래X볼 타령이야. 요즘 애들은 그딴 거 몰라요.”
“너는 알고 있네 새꺄.”
가상현실 위에 구현된 콜로세움이 일시에 시끌벅적해졌다. 모두 나처럼 초대를 받은 플레이어들이라 한다.
「우리가 그딴 걸 왜 해야 하는데? 아니 이 시건방진 꼬맹아! 딱 봐도 같잖은 해킹 좀 배운 모양인데, 장난치지 말고 얼른 돌려보내! 곧 이딴 지랄이 나오겠네요. 나는 그런 거 정말 싫어하거든.」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도, 정말 아무도 그딴 말은 안 했다.
그냥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게 진짜인가 꿈인가 싶어 눈을 끔뻑거리며 수군거릴 뿐.
「자 그러면 누구를 죽일까요. 알ㆍ아ㆍ맞ㆍ혀ㆍ보ㆍ세ㆍ요, 딩ㆍ동ㆍ댕ㆍ동!」
그런데 저 꼬마는 진짜 광인이었다. 광인 짓을 하면 실제로 광인인 법이다.
「어라?」
군중을 장난스레 훑던 우산의 끄트머리가 나를 향한 순간, 머리가 터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안 되지, 안 돼. 이쪽은 귀한 손님이니까. 무엇보다 얼굴이 잘생겼으니 죽이기 좀 아까워…… 그러니 옆에 못생긴 아저씨!」
양복 소녀의 우산이 내 바로 옆으로 이동한 한순간이었다.
어?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동시에 시야가 새빨갛게 젖었다.
어라?
40대 중반의 히스패닉 계열 남성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지며 사방에 피를 튀긴 것이다.
이 낯익은 감각…….
전장에서 수백, 수천 번은 느낀 감각. 뼛조각이 볼에 박히는 아픔까지 생생하게 느꼈다.
아니, 진정해.
진정해라, 정철.
전쟁터에서 단련된 냉철한 판단력이 공황에 빠지려는 의식에 제동을 걸고 판단력을 가속시켰다.
뇌수와 뼛조각과 피가 사방으로 무참히 튀었지만, 어차피 가상현실에서의 죽음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영상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영상은 허락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시야 UI에서 재생되었다.
붉은 테두리가 둘러쳐진 영상은 오직 캡슐 밖에서 오는 현실 메시지에만 적용되었다.
거기에는 수많은 캡슐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가상현실 접속기였다. 그중 하나가 푸쉬익, 압축 공기를 터뜨리며 열렸다.
방금 머리통이 터진 남자였다.
남자가 캡슐에서 나와 숨을 헐떡거릴 때, 총성이 울렸다. 총 세 번.
머리, 심장, 복부.
머리통이 터지고 심장과 복부에서 터져 나온 핏물이 바닥에 퍼져 나가고, 시체가 꿈틀거리고 있을 때 영상이 꺼졌다.
“미, 미친……!”
“뭐야, 죽인 거야?”
“방금 저거 뭐예요? 게임 밖에서 오는 메시지 아니에요? 맞죠?”
그 모든 소란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둔탁한 파열음에 모든 소란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다만 우산으로 바닥을 내리쳤을 뿐인데, 모두가 창백해진 얼굴을 소녀에게로 집중했다.
만족스럽다는 듯, 양복 소녀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여러분들 소원 이루려고 온 거 맞죠? 그러니까 저 지랄하다 나한테 대가리 터지지 마시고요.」
소원이 있던 건 맞다. 근데 대체 누가 그 말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었겠는가?
옥상에서 겪었던 끔찍한 이명과 현기증이 초대의 일환이라고 했을 때는 얄미운 얼굴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은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믿지 못하겠는 이유는, 도대체 죽은 어머니를 어떻게 살려 내겠다는 말인가?
「내가 존댓말 좀 한다고 착한 년으로 보이나 본데, 나 정도면 착한 년 맞아요. 그러니 말 좀 잘 들어, 이 잡것들아.」
해킹 좀 잘한다고, 제깟 놈이 신이라도 됐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래서 중2병 걸린 급식들은…….
아까까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방금 이 사건으로 판도가 뒤바뀌었다.
이 사건은 실로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첫째, 너희들의 신원은 이미 우리가 확보하고 있다.
둘째, 목숨을 담보로 하는 플레이어라고 했다.
대충 요약하자면 저 소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다. 너희들, 여기에서 죽으면 진짜로 죽는 거다?
「왜 울먹거리고 있죠? 기뻐해야지. 경쟁자를 1명 줄여줬잖아. 사실 이렇게 1명 죽이고 시작하는 게 너무 효과적이라서 667명을 데려온답니다. 정원은 맞추는 게 좋잖아.」
차가운 땀이 흘렀다. 문득 후회감이 밀려왔다.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 NO를 눌렀어야 했어.
뉴스에서 봤던 적이 있다.
브레인 해킹이라고, 메시지 형식으로 해킹 코드를 보내 상대방을 실신시키고, 납치하는 행위가 있다고.
내 여생이 걱정돼서가 아니다.
형에게 미안해져서 그랬다.
형은 그때 나에게 온갖 쌍욕을 했지만 그건 어머니를 몹시 사랑해서 그런 것이다. 바쁜 업무와 생활고에도 내 재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형인데.
그런데 나는…….
마지막까지 가족한테 민폐만 끼치고 가는 건가…….
하지만 그 걱정을 한순간에 잠식시켜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관리자 소녀였다.
「후후, 지금부터는 동기부여의 시간입니다.」
양복 소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상이 맺혔다.
그곳은…… 서리늪 미궁이었다.
빙룡 스케사리를 쓰러뜨리는 <황녀를 위하여>의 최종 던전.
문제는 그 장소가 아니라, 거기에서 방금 막 빙룡 스케사리를 쓰러뜨린 플레이어였다.
“와, 저 흑형 타이론 아냐?”
“타이론이 누군데요? 복싱 선수?”
“멍청아, 복권으로 부자 된 그놈! 5연속 일등 당첨돼서 미국 FBI인지 CIA가 조사한 인간 말야!”
철갑을 입고 거칠게 헐떡이는 흑인.
분명 타이론이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왜 모르겠는가. 배가 아파서 그 기사를 몇 번씩이나 찾아봤었는데.
– 빈민층의 청년, 복권 5연속 당첨……. 불거지는 복권 조작설.
하지만 5년 전의 그 사건은 결국 ‘아무런 문제 없음’으로 판명 났었지. 타이론은 이후 세계적인 준재벌 중 1명으로 급부상했다.
영상 속에서 무수한 알림이 울리고 있었다.
게임 클리어를 축하한다느니, 2회차 배틀로얄 MMORPG에서 우승했다느니…….
다음 순간, 떠들썩하던 콜로세움에 침묵이 돌았다. 영상 속에 저 관리자 소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 축하드려요. 타이론 씨. 당신과 당신의 공격대원들은 소원을 성취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소원이 뭔지 다시 말씀해 주시죠.
– 복권 당첨. 일등.
– 그렇게 쉬운 걸로 되겠어요? 진짜로? 어디 보자, 당신네 부공대장은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했던데. 그런 기적 같은 걸 빌어 보라고요.
– 복권 당첨이 쉬워? 진짜? 그러면 5연속으로 당첨시켜줘 봐.
– 멍청하시네요. 해달란 대로 해줬을 텐데.
스크린이 사라졌다.
「돈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것도 찾아보세요.」
당혹감을 느낄 사이도 없었다.
[시스템 : 플레이어 UI가 조건적으로 활성화됩니다.]눈앞에 직방형 인터페이스가 형성됐는데 순간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황녀를 위하여>의 인터페이스.
이 가상 세계가 <황녀를 위하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지만, 더 당황스러운 건 따로 있었다.
이 인터페이스에 나타난 신문 기사들은 모두 ‘기적’에 관련된 것들이었으니까.
[신이 임하셨는가, 사흘 만에 부활한 13세 소년.] [식물인간 상태에서 14년 만에 돌아온 아내…… 사랑의 힘?] [수수께끼에 싸인 성공. 어디서 그렇게 많은 재산이 생겼을까?]돈, 불치병 치료, 부활…… 없는 게 없었다.
모두 정말로 기적 같은, 아니 기적 그 자체를 다루고 있었다.
기사를 클릭해보면, 그 기사의 주인공 또는 주변 인물의 영상이 재생되는 식이었다.
영상 속에서 그들은 처절하게 싸웠다. 몬스터를 죽였고 플레이어끼리 죽고 죽였다.
영상을 끝까지 보면, 서리늪 미궁이 반드시 등장했다. 그리고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소녀가 등장해서 소원을 재차 확인했다. 눈앞의 양복 우산 소녀가 아닐 때도 있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총 63명, 앞서 행해졌던 다섯 번의 배틀로얄에서 생존한 우승자들입니다. 저들 모두 기적을 보상으로 받은 사람들이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일련의 영상들이 내게 말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네 어머니도 살려낼 수 있다고.
네 어머니를 살려내 주겠다고.
배틀로얄에서 우승하라고.
죽던 날, 어머니가 새벽에 흘리시던 눈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영정 앞에서 통곡하던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순간, 어머니와 형과 내가 함께 웃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갔다.
저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지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숨이 거칠어지면서 등판이 식은땀으로 차갑게 젖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존재다. 나 역시 사람이었다.
저것이 사기극이라는 의구심을 머릿속 한구석으로 밀어내고 짓밟아서 죽여버렸다. 대놓고 부정하기에는 아귀가 너무 딱딱 들어맞았다.
아니, 그냥 믿고 싶었다.
저게 진짜라고, 사실이라고, 그렇게 나 자신을 설득했다.
‘어차피 자살할 목숨이었어. 사기극이면 속아주마. 죽으면 죽는 거고.’
콜로세움의 플레이어들의 얼굴마다 결의와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까 ‘죽고 죽이라’는 말에 코웃음 치던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훑으며 살기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관리자가 그 의욕을 부채질할 때라고 생각했다. 관리자는 내 기대에 그대로 부응했다.
「저희는 기적을 다룹니다. 저희 고객층은 전지전능한 분들이시거든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운이 정말로 좋아요. 1년에 단 한 번 열리는 축제에 플레이어로 선발되었으니까요. 후후후후후.」
고객층이 무슨 소설처럼 신들이라도 되는 걸까. 묻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겠지.
나 역시 그랬다.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니 동기부여가 아주 제대로 된 모양이군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겠어요. 마지막 순서를 빠르게 진행하고 배틀로얄을 시작해 볼까요.」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졌다.
달빛도 별빛도 없었으므로 콜로세움은 어둠에 잠겼다. 순간, 스포트라이트가 섬광처럼 떨어졌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은…… 나였다.
아니, 나 말고도 그 빛을 받은 사람이 4명이 더 있긴 했다.
「이 5명은 이 개쓰레기 게임을 5회 이상 클리어한 고수 플레이어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엘리트 플레이어’라고 부르죠.」
하…… 내가 가지고 있던 어드밴티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처리해야만 하는 경쟁자 넘버 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으니까.
「엘리트 플레이어는 처음부터 특전 클래스를 받습니다.」
《엘리트 나이트》.
《엘리트 소서러》.
《엘리트 어쌔신》.
《엘리트 아처》.
《엘리트 헌터》.
주변의 시선들이 벌써부터 적대적으로 변했다. 하나둘씩 항의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불공평하잖아!”
“저런 놈들을 왜 불러오는 건데요!”
“치워라! 치워!”
누군가 내게 침을 뱉었다. 몸에 닿지는 않았지만 그놈의 얼굴을 잘 봐두었다.
나는 초식동물이 아니었다.
당하면 물어뜯는 육식 짐승의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너 나중에 보자.”
관리자는 그 혼돈을 잠깐 동안 즐기는 듯했다. 잠시 후에야 씨익 웃더니 손을 들어 좌중을 진정시켰다.
「물론 페널티도 있습니다. 엘리트 플레이어는 서로 연합할 수 없습니다. 파티도, 공격대도 함께 조직할 수 없어요.」
그러자 한순간 혼란이 잦아들고 플레이어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저게 뭔 소리야?”
“서로 싸우라는 소리 아니에요?”
이것 봐라…… 저 말이 뜻하는 바는 명약관화했다.
엘리트 플레이어는, 4명의 다른 엘리트를 죽여야만 소원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5회차 이상의 유저, 이 지옥 같은 게임을 다섯 번 이상 클리어한 플레이어들이라.
없을 이유도 없었다.
사실, 제법 있는 편이었다.
초고속 배드 엔딩 같은 공략법 따위를 올리는 변태들. 어쨌건 <황녀를 위하여>는 출시한 지 무려 15년이나 지난 게임이었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노말 플레이어로 배정되었기를 바란 순간이었다.
말이 5회차 이상 클리어지, 클리어하는 게 극도로 빡세다 보니 플레이한 회차는 수백 번, 어쩌면 수천 번이 될 수도 있다.
이 게임은 다섯 번 ‘플레이’했단 것과 다섯 번 ‘클리어’했단 것에 하늘과 땅 수준의 차이가 있다. 그런 작자들의 역량이 어떠할지 감이 잡히지를 않는다.
나를 적으로 상대한다고 생각해보니 소름이 다 돋는데.
「엘리트 플레이어가 왜 있어야 하냐고 항의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우세요. 언제 한번 형평성 논란 때문에 엘리트를 빼봤었는데…… 어휴, 진행이 얼마나 답답하던지. 시청률이 뚝 떨어졌다니까요!」
엘리트 플레이어를 집어넣는 목적도 파악되었다. 분명 ‘빠른 진행’이겠지.
게임의 진행을 파악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나니까.
그렇다면, 5명은 각자 뿔뿔이 흩어질 가능성이 컸다.
<황녀를 위하여>는 방대한 맵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벤트가 발생하니까.
거기서 얼마나 확고한 군벌을 조직하고 상대방을 대면할 것인지가 승부처라고 판단했다.
‘아크라드 대륙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능하면 북부가 좋아. 힐더 황녀가 있으니까.’
제1황녀 힐더.
이후 벌어질 황제 선거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는 여걸이다.
전설급 NPC, 용기사 바르켄데르도 심복으로 거느리고.
「후후후, 엘리트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똑같군요. 저 표정을 보세요, 여러분! 벌써부터 신중하게 전략을 짜는 저 표정. 무섭죠? 지금 잘 봐두세요. 여러분들의 동아줄이 될 사람들이니까.」
다른 엘리트 플레이어도 보고 싶었지만, 무수한 인파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이제 엘리트 클래스를 배정하고 게임을 시작하겠어요.」
엘리트 나이트나 엘리트 헌터를 받는 게 베스트다.
일단 엘리트 소서러는 꽝이었다.
나는 마법에는 소질이 없었으니까. <황녀를 위하여>에 있어서 마법은 재능의 영역이었다.
마방진 구축에 있어서 수학 계산 능력을 요구하는데, 이걸 하지 못하면 어떤 짓을 해도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참고로 나는 문과다.
문과라서 조금도 죄송하지 않다.
「탕옌, 엘리트 어쌔신.」
다행이다.
일단 엘리트 어쌔신도 꽝이었다.
다른 엘리트 플레이어들이 어쌔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공격대장으로 제일선에서 공격대를 이끌어야 할 리더에게 어쌔신은 최악의 클래스라고 생각하니까.
사기를 증강시키는 스킬도 없고 탱킹도 안 된다.
「리샤르 후, 엘리트 나이트.」
하, 욕설이 튀어나왔다.
베스트는 엘리트 나이트를 받는 거였는데…… 이제 남은 것은, 즉 차선책은 엘리트 헌터뿐인가.
「파울 리드, 엘리트 아처.」
남은 클래스는 소서러와 헌터. 심장이 차갑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런 십.
난 이런 2개의 갈림길에서 운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표적으로 고등학교 반 배정에서도 쓰레기 교사가 있는 반에 걸렸고 군부대 난수 배치에서도 전방 1사단에 배치되었다.
불길했다.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던 그 예감이 이번에도 적중했다.
「정철, 엘리트 소서러.」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사지에서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우스갯소리가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리……, 엘리트 ……터.」
아득히 떠오르던 어머니의 얼굴이, 산산조각 깨어지는 순간인가.
「어머어머, 엘리트 플레이어분들 표정 좀 봐! 가관이네! 이봐요, 설마 자기 적성 그대로 배틀로얄에 임하려던 생각이었어요?」
“……?”
「그러면 진짜 재미없잖아요! 의도적으로 뒤튼 거예요. 가장 약한 쪽이 되게끔. 후후후후후후후!」
야 이 미친…… 저딴 발언을 위안이라도 삼으라고 뱉는 거냐?
그러나 이상하게도 위안이 됐다.
그러고 보니 환성 지르는 엘리트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제 동생이 어제 죽었습니다.”
정신을 추스르고 있자니 누군가가 관리자에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 게임을 끝마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여동생의 시체가 썩을까 봐…….”
「게임 시간으로는 최대 6년. 현실 시간으로는 사흘입니다.」
“예?”
「그리고 썩든 말든 걱정하지 마요. 아무런 문제도 안 되니까. 당신네들이 파리 잡는 것처럼 쉬운 일이에요. 그분들한텐.」
다시, 심장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파격적인 시간 설정이었다.
최대가 사흘.
내가 빨리 깨면 빨리 깰수록 어머니의 시체가 온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썩은 시체의 몸으로 살아나는 건 어머니도 바라지 않을 테니까.
「따라 해보세요. Doubt, Cooperate, Kill.」
사람들이 어정쩡하게 따라 했다.
「의심하라, 협력하라, 죽여라. 이번 제6차 배틀로얄의 구호입니다. 잘 나왔죠? 제 아이디어인데, 후후후!」
관리자 소녀가 축복을 내리듯이 양손을 번쩍 들었다.
「자, 배틀로얄의 용사들이여! 부디 재밌는 결과를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비극, 희극, 영웅극, 뭐든 좋습니다. 훌륭한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인간은 우승 여부에 상관없이 특별상을 받기도 합니다. 모든 건 그분들의 뜻대로지만요.」
다음 순간, 콜로세움의 밑바닥이 느닷없이 사라졌다. 밑바닥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스포트라이트도 꺼지고 말았다.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추락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침착했다.
이건 죽음이 아니니까.
<황녀를 위하여>의 튜토리얼로 진입되는 과정이었던 것뿐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생체 코드 00BA2000A. 접속 승인 : 외모 커스텀 불가능]– 플레이어 UI 활성화.
– 튜토리얼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