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07)
가짜 용사 이야기-107화(107/310)
#3 :
[2. 튜토리얼] 꿈틀거리는 혼돈“빨리빨리 걸어!”
시작부터 채찍이 내 등판을 후려쳤다. 눈앞에 번개가 몰아치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튜토리얼 시작 : 꿈틀거리는 혼돈.]– 기원력 1989년 5월 16일.
아니, 제발.
진짜 오지게도 뽑기 운 없네…….
그 악운이 인생을 건 튜토리얼에도 적용되다니, 환장해서 돌아가시겠네 진짜.
“이봐, 괜찮나?”
짜증을 부리며 비틀거리는 나를 근육질의 전사가 부축해 주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스타팅 NPC.
이름이 잭슨이었나 색슨이었나.
잭슨이든 색슨이든 중요하지 않다. 닉네임 설정 및 기타 등등 역할들을 행하고 죽을 NPC니까. 그래, 죽는다. 곧 있으면.
“괜찮습니다.”
달빛이 음산하게 비치는 숲속에서, 인간 포로들이 양손이 포박된 상태로 길고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어이, 더러운 인간 놈들. 그 주둥아리 안 닥쳐?”
모든 것은 내 기억 그대로였다. 포로를 인솔해가는 승자들은 요정병들이었다.
포로들이 2열로 이동했고, 그 양옆으로 요정군 병사들이 푸른 망토를 휘날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목숨을 건 게임에서 최악의 튜토리얼에 걸리다니, 미칠 노릇이다. 일단 뒤를 흘끗 돌아보았다.
대열의 선두에는 NPC 포로들이 있을 것이다. ‘켈렉─샼’이 등장할 때 다 죽을 테니까.
후미에는 대부분 플레이어들이 있을 터였고, 자기만의 ‘잭슨’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터였다.
“자네 표정이 왜 그런가?”
색슨, 아니 잭슨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좆같은 일만 연속적으로 벌어져서 그렇습니다.”
“어허, 이 사람, 젊은 친구가 신앙심이 부족하군. 이 모두 태양의 아버지들께서 주신 시련일 뿐이네. 이 시련으로, 우리의 죄는 모두 사함을 받는 것이야.”
“태양의 시련은 뭔…… 에휴, 예, 맞습니다.”
잭슨의 흉갑에 그려진 태양 3개에 시선이 갔다.
양명군(陽明軍).
대륙의 법황청에서 성도(聖都)의 수호를 목적으로 파견하는 신성 부대. 현실의 십자군을 모티브로 만든 세력으로 파악하면 이해가 쉽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양명군 소속이라는 설정이다. 엿 같게도 요정군에게 생포된 패잔 양명군.
이놈들 앞에서 태양에 대해 안 좋게 말했다가는 흰자위 뒤집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대는 꼴을 보게 되니 그냥 넘어가는 게 좋다.
“태양의 축복을 받은 형제님, 여기가 이데아 반도가 맞습니까?”
“당연한 소리를 질문처럼 하는 걸 보니, 정말 무서운 모양이군.”
“하아…….”
최악이었다. 대륙의 출셋길에서 한참은 떨어진 장소에서 시작되다니.
황녀들과의 친목 도모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성도 방어전 레이드를 클리어하기 전까지 말이다.
이곳은 성도가 위치한 장소, 요정과 인류가 끝없이 반목하는 땅, 이데아 반도였으니까.
앞으로 쉴 틈 없이 싸우게 될 것이다. 그게 NPC건 플레이어건, <잊혀진 왕들>이건.
“인생의 끝에서 이렇게 보게 된 것도 우연이군. 이름이 뭔가? 나는 잭슨이라고 하네.”
닉네임 설정이었다.
3초 정도 고민했다가 대답했다.
한국 이름은 독특해서 좋지 않았다. 영어가 가장 낫다.
“에델 바이스라고 합니다.”
[닉네임 설정 : 에델 바이스.]어머니가 좋아하던 꽃의 이름이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니 처연한 감정이 들면서도 전의가 치솟았다.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이 튜토리얼을 돌파해내야 한다.
“바, 바이스? 성(姓)이 있다니. 자네 귀족이었나?”
“아뇨. 어머니가 붙여주신 별명입니다.”
“우핫핫! 재밌는 친구로군. 병사가 되기 전의 직업은 뭐였나?”
“저는…….”
마침 잘됐다.
인터페이스 기초 조작 튜토리얼이다.
[TIP : 왼손 주먹을 3초간 쥐었다 펴는 것으로 인터페이스를 활성화합니다.]인터페이스를 조작해 [상태창]을 눌렀다. 거기에 내 특성과 직업이 나와 있었다.
[에델 바이스]ㆍ 레벨 : 1.
ㆍ 능력치 : 힘 : 10 / 기량 : 11 / 지력 : 14 / 신앙 : 7
ㆍ 특성 :
《마법사의 기초 지식》
– 당신은 기초적인 마도 지식을 익힌 사람입니다.
“마법사였습니다. 반도란(1성) 등급이요.”
“흠.”
아직 특전 클래스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기억하기로 습격 이후에 활성화될 것이었다.
왜일까.
자꾸만 식은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몸을 질척하게 적신다. 진짜 목숨이 걸려서 그런 것일까?
고개를 들자 밤하늘에서 달이 빛나고 있었다.
본래 달은 4개 있었다는데, 영웅시대에 모종의 사건으로 추락했다고 한다. 그 4개의 달이 요정이 섬기는 여신들의 상징이다. 요정은 태양을 받드는 인류와 달리 달을 섬기니까.
여기서 문제는…….
저 하나 남은 달이 구름에 가려질 때, 놈이 나타난다.
꿈틀거리는 혼돈…….
<잊혀진 왕들> 중 하나가 이 세계에 재림하는 것이다. 심연(深淵)이라는 이름으로.
돌겠군…….
이 튜토리얼에서, 재앙의 시작과 끝을, 나는, 어쩌면 여기에서 나만이 정확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르르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다.
돌아버리시겠어…….
과연 마법사 된 몸으로 이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지 않나?”
미안하지만 잭슨, 불길한 느낌은 곧 실제로 강림할 거야. 지금쯤이면 이렇게 알림이 올 것이고.
[경고 : 광기 수치 급증.]– 1% -> 25%.
달이 한순간 먹구름에 가려지며 요정들이 동요할 것이며.
“뭐, 뭐야?”
“어머니의 빛이 사라졌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세계가 삐걱이며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고대 봉인의 균열이 깨지는 소리다.
요정과 인간, 모두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주춤거리는 그들의 눈동자에서 공포가 발딱거렸다.
“지, 지진인가?”
“빠, 빠, 빨리 걸어! 이것들이 뭐 하는 거야!”
“이 시발 귀쟁아, 지금이 걸을 수 있는 상황이냐!”
“뭐라고? 방금 지껄인 놈 누구야!”
지진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기야 하겠지.
하지만 아니다.
너희들 NPC와 노말 플레이어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저 지진 소리가 몰고 오는 것이 무엇인지 꿈에도 모르겠지.
파아아아아악───!
그 순간, 앞쪽 길섶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지면을 무참하게 박살 내며 솟구쳐 올랐다. 돌과 진흙이 정신없이 흩날리는 사이로 보이는 외형은 그야말로 광기.
절지동물의 섬뜩한 외형.
광대한 아가리에서 꿈틀거리는 수백 개의 누런 이빨.
심연 지네…… 켈렉─샼이 거느린 옛것 중 하나, 높은 레벨이 되어서야 토벌할 수 있는 막강한 녀석이다.
“어, 어, 어어어어?!”
하늘로 튀어 올랐던 심연 지네가 그 끔찍한 몸뚱어리로 선두 행렬을 덮쳤다.
지면을 내리칠 때, 심연 지네의 몸이 물풍선처럼 터졌다. 심연의 찌꺼기들이 선두의 NPC들의 몸에 달라붙었다.
NPC들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면서 밤의 요기가 요사스럽게 사방을 뒤덮었다.
“이보게! 에델! 저, 저, 저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저들은 죽지 않는다. 망자가 되어 적대 NPC가 될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게임 시작이다.
꿈틀거리는 혼돈, <잊혀진 왕들> 중 하나인 켈렉─샼이 곧 등장할 테니까. 물론 그 전에 탈출해야 했다.
다음 순간 엄청난 진동이 발생했고,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뭐, 뭔데, 대체 뭐냐고!”
혼란 속에서, 게임 시스템이 내 심장 박동을 강제로 조절했다.
[경고 : 광기 수치 급증.]– 25% -> 62%.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더운 피가 끓어올랐다. ‘리얼리티’를 위해 도입된 혁신 기능 중 일부다.
[절대 관리자 특전 – 《엘리트 소서러》 적용 완료.]ㆍ 각성 개방 – 방황하는 현자.
ㆍ 전용 특성 – 《현자의 극의》 개방.
특전이 적용되는 사이, 지면은 늪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암청색 늪이 아가리를 벌리듯 서서히 넓어진다. 심연화(深淵化)다.
[경고 : 당신의 근처에 성직자 클래스가 없다면 심연의 늪에 빠지지 마세요.]시간이 촉박했다.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클래스를 찾아서 데려가야만 한다. <황녀를 위하여>는 협력이 절실한 게임.
튜토리얼은 그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말도 안 되는 난이도로 유저를 수십 번 죽인다.
하지만 이번 게임은 달랐다.
죽으면 진짜로 죽는다.
《이야기꾼》 특성과 《사냥꾼》 특성을 가진 2명이 필요했다.
모두 이 숲을 빠져나가는 데 필수적인 스킬을 가진 클래스였다. 그 순간, 길섶의 나무 사이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
숲의 어둠 속에서 시퍼렇게 번득이는 안광.
당혹스러웠다.
‘숲의 아이들’까지 벌써 등장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밤하늘에서 별이 지나칠 정도로 찬란하게 번득이고 있었다.
<잊혀진 왕들>이 별의 존재이기에, 그들의 권능이 발휘될 때면 늘 저러했다.
그 하늘에서 악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정확한 명칭은 악마가 아니라 ‘나이트 페이스(Night Face; 밤의 얼굴)’.
기괴한 양각 뿔.
얼굴 없는 무면(無面)의 악마.
벌거벗은 신체는 녹색 근골로 매끈하나 성기가 없다.
순간, 그 악마 중 하나가 나를 보았다.
온몸에서 털이 바싹 일어서기 무섭게 곧바로 눈을 돌렸다.
저놈들과 눈을 3초간 마주치고 있으면 곧바로 이벤트가 강제로 발생하니 위험했다.
나중에 써먹어야 하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일단 이야기꾼을 찾아야 했다.
“태양의 아버지들이시여! 두, 두렵사옵니다. 두렵사옵니…… 커헉!”
이제 잭슨이 죽을 차례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이 날아와 기도하던 잭슨의 목을 꿰뚫었다. 독이 잔뜩 묻어서 살이 죽처럼 녹아내린다.
나는 그 화살촉에 내 손목의 포승줄을 필사적으로 비볐다.
“아오, 좀, 제발, 십!”
줄이 굵었던지라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인지 포승을 끊었을 때는 포로 행렬이 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어머니들의 이름으로!”
“물러서지 마라!”
“첫 번째 자손에게 영광을!”
장창과 방패를 쥔 요정병들은 숲의 아이들과 맞서고, NPC들은 꿇어앉아 기도하거나 황망히 달아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체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뒤쪽으로 냅다 달아나고 있는 건 플레이어들일 것이었다. 실로 멍청한, 뉴비들이나 할 법한 짓이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또다시 가까워오는 대지의 진동.
그 진동, 내 발아래의 땅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파아아아아아악!
심연 지네가 다시 하늘을 날았다.
뒤쪽이었다.
정확히는 달아나는 플레이어들 한복판. 강하한 지네가 질퍽거리는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찌꺼기가 달라붙은 플레이어들이 고통과 공포로 울부짖다가, 한순간 돌변하더니 미친 사람처럼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히히히히히히히히!”
“아하하하하하하하!”
눈동자에서 피어오르는 암청색 안광. 숲의 아이들의 그것 그대로다. 광기가 저들의 정신을 오염시킨 것이다.
저들은 어떻게 되는가.
일반적인 게임이었다면, 심연에 오염된 캐릭터는 영구 사용 불가가 된다. 그리고 적대 NPC인 망자가 되어 이 세계에 영원히 남게 된다.
문득 총을 맞고 죽던 플레이어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번 경우에는…… 죽는 건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메시지가 왔다.
[알림 : 영상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캡슐에서 꺼내지는 플레이어들.
총성은 또다시 들린다. 세 발.
탈락된 플레이어들에 대한 집행은 끔찍하도록 철저하게 수행되었다.
여섯 발, 아홉 발, 열두 발…….
목숨을 담보로 잡았다는 말은 다시금 증명되었다.
[현 튜토리얼 생존 플레이어 33 / 50.]게임에서 죽고.
현실 속에서도 죽은 망자들…….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 플레이어들 쪽, 즉 내 쪽으로 낄낄거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