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08)
가짜 용사 이야기-108화(108/310)
#4 :
[2. 튜토리얼] 동료 영입첫 번째 동료를 영입하게 된 과정은 상황이 이토록 좆같다 보니 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피비린내가 작렬하는 수라장.
그 한가운데에서 다급하게 숲의 아이들에게 죽은 요정의 사체를 뒤지고 있을 때였다.
불길했다.
단검 또는 장창을 챙길 생각이었는데, 칼집만 있고 칼이 없었다.
그때 내 목에 칼이 들어왔다.
창을 숭배하는 요정병 특성상 요정들은 지휘관 말고는 칼을 안 쓴다. 애초에 그조차도 과시용이지, 실전용이 아니다.
즉, 지휘관의 장검을 루팅한 플레이어라 할 수 있다.
“당신, 맞죠, 엘리트 플레이어? 아까 당신 얼굴을 봤어.”
“맞습니다. 진정하시죠. 우선 얘기부터 합시다.”
숨 가쁜 목소리의 주인을 조심스럽게 돌아보니, 건장한 체격의 아시아인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옆머리는 시원한 투블럭 커트였는데, 딱 한국 군인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번역 필터가 완벽하게 작동하므로, 중국인이나 일본인일 가능성도 있긴 하다.
근데 신장이 190? 200센티미터에 가까워 보였다. 엄청나군.
‘리얼 이세계 체험 절망편’ <황녀를 위하여>에서 저런 체격은 엄청난 자산이다.
“그러면 여기, 이 지옥에서 살아 나가는 방법도 압니까?”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해야 한다. 여기서 찔리면 다 끝난다.
그러자 군인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칼을 빙글 돌려 칼자루 쪽으로 건네주는 게 아닌가.
“이건 제 호의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전 지금 당신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
“그러니 나가는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일단 장검을 받지 않았다.
필요한 인간일 경우에만 살려서 데려갈 수 있었다.
이 튜토리얼에서 내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단 2명이었다. 그리고 그 2명은 정해져 있었다.
“특성이 어떻게 됩니까?”
“특성이요?”
“아까 NPC가 직업을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모르겠으면 당장 인터페이스부터 켜서 상태창을 확인하세요.”
군인은 어리둥절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빠릿빠릿했다. 마음에 드는 놈이군.
“《사냥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스킬도 읽어 드립니까?”
나는 그제야 칼을 받아 쥐었다.
[아이템 장착 : 요정군 장교 장검.]“갑시다. 지금부터 어린애들을 찾으세요.”
“어린애요?”
“비전투 클래스라고 합니다. 대부분 아이들에게 배정돼요. 제가 당신한테 질문했던 대로 특성을 물어보세요.”
“어떻게 말입니까?”
“《이야기꾼》 특성이 아니면 필요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동정도 연민도 필요 없어요. 살고 싶으면 제 말대로 하십시오.”
군인이 수라장이 되어버린 행렬 뒤쪽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망자 플레이어와 생자 플레이어가 뒤얽혀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저걸 다 내버려두고…….”
“당신도 절박한 소원이 있으니까 여기 온 것 아닙니까?”
“!”
“지금 도덕성 운운할 때가 아닙니다. 전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겁니다. 당신도 내가 그러길 바랄 거고.”
그는 한참 만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방법이, 방법이 정말로 없다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박현수라 합니다.”
오, 한국인.
하지만 해외에서 한국인을 제일 조심하라는 격언이 있다.
“정철입니다. 앞으로 본명은 밝히지 마세요. 닉네임이 낫습니다.”
박현수의 닉네임은 파워풀엠페러였다…….
아니, 현수야…… 초딩이니?
쑥스럽게 헛기침을 하는 인간에게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서 그냥 본명을 쓰라고만 일러두었다.
[경고 : 심연의 늪이 확장됩니다.] [경고 : 광기 수치가 80% 근처에 달했습니다. 성직자 클래스를 찾으십시오.]앞쪽으로 달아나는 플레이어 중 여자나 아이라면 아무나 붙잡아 특성을 물었다.
사냥꾼, 성직자, 운반꾼, 여전사, 사냥꾼…….
쓸모없는 이들과 적들을 내쳐두고 후미 쪽으로 달려 나갔다.
“노……올자.”
“킥킥킥킥킥.”
무참한 광경이었다.
망자들이 죽인 플레이어의 시체를 뜯어 먹는 모습이 보였다.
박현수가 소리쳤다.
“에델 씨, 저쪽!”
박현수가 가리킨 방향에 아이가 있었다.
후미 생존자 중 유일한 여자아이였다. 기껏해야 중학생쯤 되어 보였다. 좋아. 비전투 클래스를 받았을 확률이 9할은 된다.
사태는 화급했다. 망자가 달려들어 목을 뜯어버리기 직전이었으니까.
마법을 써볼까?
아니다.
내 엘리트 특성을 살피고 사용 가능한 마법이 있는지 찾아본 뒤 사용하기까지는 촉박한 시간이었다. 그때였다.
박현수가 단검을 빙글 돌리더니 콱 움켜잡았고, 앞으로 달려 나가며 휙 던졌다.
감탄이 나오는 솜씨였다. 단검은 정확하게 망자의 머리통에 꽂혔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그 앞에 망자들이 2명 더 있었으니까. 순간, 나는 박현수를 보았고, 박현수도 나를 보았다.
다음 순간 박현수는 아이 쪽으로, 나는 그 앞의 망자들 쪽으로 달려 나갔다.
우리들은 5분도 안 되어 눈빛만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상황에까지 와 있었다.
둘 다 군인이었기 때문일까?
그가 군인이라는 건 지금쯤 되니 분명해 보였다.
클래스가 다르더라도, 칼의 기억만큼은 내 몸에 각인되어 있었다. 전투의 기억도 엘리트 클래스의 특전이라면 특전일 것이다.
한 망자가 내게로 달려들었으나 허리를 가볍게 돌려 그 공세를 피해내자 망자의 이빨이 딱, 허공을 매섭게 씹었다.
그 순간 내 칼이 그 망자의 목을 내리쳤다. 칼이 목에 깊숙이 박혔다. 힘과 기량이 낮아서 전처럼 잘 되지 않았다.
명줄이 끊기는 떨림이 칼자루를 타고 전해져왔다. 망자의 몸을 거칠게 걷어차며 칼을 빼냈다.
“쿠헤히히헤!”
다른 망자가 뒤쪽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쓰러지는 망자의 몸에서 모가지가 대롱거릴 때, 내 칼날이 다시 허공에서 번득였다.
“《이야기꾼》이랍니다!”
좋아. 정말 쓸모 있는 동료를 찾았다고 생각하며 안도하던 그때였다.
박현수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땅속을 훑었다.
그 시선을 따라서, 진동이 오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절망은 언제나 그런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었다.
박현수의 시선이 천천히 나에게로 왔다. 그리고 멈췄다.
동시에 세 번째 심연 지네가 내 바로 앞의 지면을 박살 내며 하늘로 튀어 올랐다.
“와…….”
조금만 앞이었더라면 튀어 오르는 충격에 내 몸이 으스러졌을 수도 있었다. 지네가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진짜, 하…….”
단 1초 동안 모든 수를 생각했다.
저 심연 지네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살아서 어머니를 살려낼 방법, 심연의 찌꺼기가 달라붙지 않은 채 어딘가로 엄폐하는 방법…….
그딴 건 없었다.
“대체 뭐 합니까! 달리세요!”
현수야, 이게 달린다고 될 일이면 진작에 달렸어.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끝을 직감했던, 옛 전쟁터의 그 순간처럼.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눴던 그 북한군 병사와의 만남처럼.
우연일까……?
이번 순간도…… 그때와 비슷하게 전개된 것은? 그때 북한군 병사는 기적적으로 총을 거두었고.
– 날래 도망치시우. 저쪽으로 달리면 살 수 있을 거요.
지금은 내 특성이 기적적으로 발동되었으니까.
웅웅웅웅…… 초대형 은빛 마방진이 머리 위에서 강림했다.
마방진은 여섯 겹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히 겹쳐진 채로 회전하며 은은하게 빛났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 마법이 발동될 수가 없다는 자각이 들었던 그때였다.
《대마력방호》.
6성(成) 마법이다.
이 게임의 마법에는 7성 등급까지 있는 셈이니 두 번째로 강력한 등급의 마법인 셈인데…….
영웅시대의 숨겨진 주역 중 하나, 뇌향의 세츠넨이 고안해냈다는 기적에 가까운 마법.
요컨대, 심상(心狀).
이게 레벨 1에 특성으로 주어졌다는 말인가?
와, 돌았네.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다.
6성 마법을 발현시킬 재능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심연 지네가 마방진 위를 내려찍으면서 세 가지 알림이 동시에 귀를 울렸다.
[전용 스킬, 《대마력방호》가 심연의 기운을 무효화시킵니다!] [전용 스킬, 《대마력방호》가 피해를 무효화시킵니다!] [경고 : 마법 이해도가 낮습니다! 전용 스킬, 《대마력방호》가 사라집니다!]순간, 대마력방호의 마방진이 은빛으로 스러졌다.
이 정도면 충분해.
6성 마법 중 몇 가지 마법에게는 자아가 있다고 한다. 이 마법은 스스로 나타나 주인을 지키고 산화한 것이었다.
그 끝에, 심연의 찌꺼기도 충격파도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위로부터 강렬한 시선을 받고 있었다.
“저 괴물을 막았어……?”
“나 알아! 저 사람 엘리트야! 엘리트!”
“진짜?”
“어, 아까 봤어. 엘리트 소서러!”
상황이 안 좋은걸. 곧 거머리처럼 달라붙겠군.
근데 미안하다.
난 너희들이 필요하지 않아.
즉시 박현수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리자, 플레이어들이 즉각 쫓아오기 시작했다.
“대단하십니다. 방금 건─”
“─잡담할 시간 없어요.”
박현수는 아이의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동양인 소녀였다.
또 한국인인가?
민족의 인연은 기이했다.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박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일본인입니다.”
그때 밤하늘이 길게 찢어졌다.
별들이 태양처럼 눈부시도록 살벌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세계는 밝아지지 않고 어두웠다.
“저건 뭐야?”
내게로 달려오던 플레이어들이 소름 끼치는 요기를 느끼고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뭐긴 뭐야.
타락한 별의 존재, <잊혀진 왕>, 벌레 군주 켈렉─샼…… 놈이 나타날 전조다.
“그냥 전부 좆됐단 소리다.”
저것만으로 광기 수치가 10% 격상했다.
이때를 놓친다면 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할 기회는 영영 없어진다.
내가 모르는 방법이 있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겠지. 왜냐면 이 튜토리얼은 전원 전멸하는 튜토리얼이니까.
그딴 미친 게임이 어딨냐고?
어, 바로 여기 있어.
나이트 페이스들이 달아나고 있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공허(空虛)의 권속인 저놈들 역시 강력한 존재긴 하지만, <잊혀진 왕들>의 적수는 못 된다.
“박현수 씨, 저 악마들 보입니까?”
“아, 예! 보입니다!”
“저놈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세요! 우리를 볼 때까지 말입니다! 반드시 저 애도 함께 봐야 합니다!”
“지금 말입니까?!”
“지금!”
그것은 나이트 페이스와의 이벤트를 진행시키는 조건.
나이트 페이스들 역시 필사적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감히 뒤를 돌아볼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켈렉─샼은 저놈들을 극도로 혐오하니까. 걸리는 순간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안 돼.
지금은 가지 마. 제발.
간절히 빌던 그 순간, 허공을 길게 찢고 나타난 균열에서 창백한 손가락들이 튀어나오더니, 밤하늘을 움켜잡았다.
6개의 손가락.
그러나 손가락 하나가 박현수보다도 몇 배는 더 크다.
[경고 : 광기 수치 92%]– 경고 : 캐릭터가 광기에 취해갑니다. 어서 그 장소에서 벗어나세요!
캐릭터가 광기에 취해 미치기 직전이었다.
8% 남았다.
100%가 되면 망자화가 진행.
시스템이 심장을 강제적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고 머릿속을 빙빙 돌게 만든다.
광기에 취해간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우리를 안 봅니다!”
절망이 들이닥치던 바로 그때.
나이트 페이스 한 마리가 뒤를 흘끗 돌아보았다…… 그리고 우리와 시선(놈에게 눈은 없지만)이 마주쳤다.
숨을 삼키고 그 눈을 응시했다.
우리 현수는 눈치가 빠른 남자였다. 박현수도 나이트 페이스를 맹렬하게 바라보았다.
공포에 질려 고개를 돌리려는 일본인 소녀의 얼굴을 박현수가 다시 돌리는 것이 시야 한옆에서 흘끔 보였다.
머릿속에서 시계가 돌아갔다.
3초.
균열에서는 이제 발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괴상하게 뒤틀린 발가락, 그 발가락의 형체를 이룬 건 사람의 영혼들.
영혼이 벌레와 구더기의 형태로 고통스레 뒤틀려 꿈틀거렸다.
2초.
미치도록 길었다.
그 3초를 다 세기까지의 한순간이.
1초.
눈을 깜박이고 뜬 다음 순간.
나이트 페이스가 우리 앞으로 육박해와 있었다. 일본인 소녀가 딸꾹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앞에서 보니 크고 괴이한 존재라는 걸 새삼 느낀다.
박현수의 표정도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그래도 이놈이 켈렉-샼보다 수천 배는 낫다.
밤의 얼굴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면의 악마, 나이트 페이스가 내게서 장검을 빼앗더니 종이 구기듯 박살 내어 뒤로 던졌다.
[아이템 파괴됨 : 요정군 제식 장검.]그 밤의 악마가 날갯짓하며 다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채찍 같은 꼬리를 날려 우리 셋의 몸을 휘감았다.
박현수가 몸부림치려고 했으나 가만히 있으라고 일갈했다.
[경고 : 광기 수치 : 98%]조금만 늦었더라도 우리도 죽었을 것이다.
균열에서 켈렉-샼이 얼굴을 쓰윽 내밀고 있었다.
광기 수치가 100%에 달해 절규하는 플레이어와 NPC들의 비명은 이 먼 하늘에까지 닿았다.
“끄으으으아아아아아아───!”
그때 우리만이.
튜토리얼에 참가한 50명 중 오직 우리 3명만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나이트 페이스의 꼬리에 들린 채 저 먼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박현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기억하건대, 게임 역사는 오늘의 사건을 [심연의 재림], [인간 세계 멸망의 시작]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튜토리얼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동일 튜토리얼 내 생존자 : 4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