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09)
가짜 용사 이야기-109화(109/310)
#5 :
[2. 튜토리얼] 태고 뱀의 늪 [숨겨진 장소 : 태고 뱀의 늪.]나이트 페이스가 우리를 내려놓은 장소는 역시 이 계곡이었다.
계곡에 늪이 가득 펼쳐지고, 그 위로 독기가 피어오른다. 독 냄새 때문에, 공기가 답답하고 무겁게 속을 쑤신다.
심연의 늪은 아니지만 그것만큼 위험한 장소다. 저 늪 속에 괴물 뱀들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경고 : 독에 감염되고 있습니다.]ㆍ 감염 수치 : 3%.
이 장소에서 나가는 방법을 아느냐고? 나는 모른다.
“모른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박현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혈색이 파리했다.
방금 그 수라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거겠지.
“여기엔 주문이 걸려 있거든요.”
“주문이요?”
“무협지를 읽어 봤습니까?”
“당직 설 때 웹소설을 몇 번 정도…….”
“비슷해요. 진법이 걸려 있다고 보면 됩니다. 출구가 미궁처럼 계속 뒤틀리고 가려지거든요.”
“오, 꼭 황성 같네요. 관무불가침이라고 소설에서 잘 다루지는 않던데…….”
“관무…… 뭐요? 제가 무협지는 많이 안 봐서.”
“…….”
“……?”
“그럼 어떻게 빠져나갑니까?”
“모릅니다.”
내 시선이 박현수의 등에 업힌 일본인 소녀 쪽으로 향했다.
“전 모르지만 《이야기꾼》은 알아요. 그래서 데려온 거죠.”
“아.”
“일단 내려놓으세요. 지금은 힘을 아껴야 합니다.”
박현수가 내 말에 따랐다.
《대마력방호》를 본 뒤로 묘한 태도 변화가 있었다. 내 말을 더 충실하게 이행한다는 점일까.
우리 현수, 마음에 드는걸?
엠페러는 아닐지 몰라도 파워풀하니 아주 든든하군.
그나저나 이 일본인 꼬마는…….
소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몸을 움츠리다가, 기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는지 몸을 빳빳이 폈다.
“난 정철이다. 저쪽은 박현수. 네 이름은 뭐니?”
이름을 알아두어야 빠르게 친밀도를 얻을 수 있었다.
“노야, 사쿠라이 노야. 사쿠라이라고 부르세요.”
이 게임에서는 모든 언어가 통역되기 때문에 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저 어리다고 약하지 않아요. 얕보지 마요. 예전에 하던 게임에서도 랭커였고.”
의외로 당찬 성격의 소녀였다.
하긴, 저런 성격이 아니라면 이런 배틀로얄에 참가했을 리가 없으리라.
외모는 자세히 살펴보니 귀여운 편이었다. 사춘기 외모 문제 때문은 아닌 듯한데.
“특성을 써보겠니?”
“어떻게 쓰는지 몰라요.”
“마음속으로 읊어봐. 나는 이야기꾼이라고. 어서 하지 않으면 독이 올라서 다 죽을 거다.”
《이야기꾼》. 이야기꾼은 세계에 흩어진 이야기의 파편을 읽어내는 존재로, 마녀들의 후예다.
읽고 기억하고, 기록하고, 말해주는 비전투 클래스.
MMORPG에서 저런 클래스가 무슨 소용이냐는 멍청한 질문은 그만두기를 바란다.
최후의 던전까지, 전투 중에 입수되는 정보와 아이템에 대한 모든 해독을 담당하는 게 《이야기꾼》이다.
이야기꾼이 없이는 던전의 갈림길에서 옳은 길을 찾지도 못하고, 보스의 약점도 파악할 수 없다.
소녀는 독 수치가 20%에 가까워 오기까지 스킬을 발동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답이 없네.
현수처럼 빠릿빠릿해야 하는데.
튜토리얼 끝나면 버려야 하나?
그동안 내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상태창을 열었다. 저 아이가 스킬을 쓰기 전까지 내 특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에델 바이스]ㆍ 각성 : 방황하는 현자.
ㆍ 레벨 : 2.
ㆍ 능력치 : 힘 : 10 / 기량 : 13 / 지력 : 14 / 신앙 : 7 / 체력 : 13 / 마력 : 152.
ㆍ 특성 :
《현자의 극의》
– 당신은 세계의 진리를 마법의 권능으로 행하는 자입니다.
ㆍ 전용 스킬 : 《대마력방호》, 《현자의 기억법》, 《연산 보좌》 개방.
– 마법 이해도가 낮습니다. 스킬들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내심 놀랐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아까 대마력방호가 발동되었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특전으로 딸려온 나머지 스킬들도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자의 기억법》.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한 번 읽은 서적의 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할 수 있는 6성 마법일 것이다.
5회차 클리어를 할 때, 이 스킬을 가진 영국인이 공격대에 있었는데 게임 공략이 정말로 편했던 걸 기억한다.
《연산 보좌》.
나에게서 탄성을 뱉게 만든 건 바로 이 녀석이다.
처음 본 기술이다.
그런데 설명을 보니, 2성 마법까지는 사용할 때 필요한 수학 연산을 모두 보조해 준다고 한다.
오우 예스……!
어떠한 마법의 촉매도 없이 바로 마법을 시전하는 마법사들은 여태껏 모든 마법의 극의를 깨친 현자들이거나 대마법사들이다.
마법의 등급은 5성 이상.
참고로 이 게임의 기나긴 설정 속에서 단 2명만이 7성의 극의에 도달했다.
그 대현자들의 이름이 아마 최초의 현자 에밋사 페이지와 용현 레인 루드윅이었던가?
예전에, 빙룡 스케사리의 심장을 일격에 꿰뚫던 내 검법 흑혈검(黑血劍) 절식 정도는 되어야 7성 마법에 견줄 만한 위력이 나온다.
7성은 바라지도 않는다.
2성 마법까지만 쓸 수 있어도 차고 넘친다…….
일단 튜토리얼을 끝마치고 나면 도서관에 가서 마법부터 슬롯에 저장해야겠다.
그때였다.
사쿠라이의 눈에서 녹색 안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기꾼 특성이 발동된 것이다.
“요정이 보여요. 저기 저거, 안 보여요?”
“우리는 못 봐.”
소녀의 특성 숙련도가 오르면 볼 수 있겠지만.
“그리고 요정은 아까 그 귀 큰 놈들을 부르는 말이다. 그놈은 정령이라는 놈이야. 네게 뭐라고 속삭이냐?”
“나가는 방법을 알고 싶냐고 물어봐요.”
당연히 나가고 싶다고 말해야지.
여기서 살려고?
답답함에 한숨이 몰려나왔지만 간신히 참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맞히면 알려준대요.”
건방진 것이 과연 정령다웠다.
이건 어떠한 거래가 아니었다. 단지 장난일 뿐이지.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대로 전해. 여기는 태고 뱀의 늪이야. 용으로 환골탈태하지 못한 뱀들을 격리해둔 장소지. 무척 위험한 장소이기도 해. 뱀들의 적의는 상대를 가리지 않으니까.”
“정령이 팔짱을 끼며 짜증을 내는데요.”
“닥치고 안내나 하라고 해.”
“그러겠대요.”
“좋아, 지금부터 전진 대형을 짜보겠어.”
박현수는 선두다. 《사냥꾼》 특성의 함정 감지를 앞세운다.
이곳은 식시귀(食屍鬼), 구울의 터전이기도 했으니까.
구울의 함정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니 조심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전 중앙에서 노야를 업고 길을 지시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노야가 덫에 걸리거나 식시귀의 습격을 받게 되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걸 위한 특별 대우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파티를 맺었다.
파티원끼리는 각종 이상 수치를 파악할 수 있는 UI가 활성화되니 아주 유용하니까.
[에델 바이스의 파티 3 / 3.]– 에델 바이스.
– 파워풀엠페러.
– 사쿠라이 노야.
전진 시작 전.
박현수의 눈에서 푸른 안광이 나왔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스킬 사용이 신기한 듯했다.
“마력이 부족해집니다. 그만하세요.”
“네. 숲 안이 훤히 보이는 게 신기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에델 씨. 한 가지 여쭤봐도 됩니까?”
마음에 들어.
닉네임으로 부르라고 한 뒤로 날 절대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군.
“뭡니까?”
“저희 말고 다른 플레이어 1명이 아직도 살아 있는데요. 대체 누굴까요?”
[동일 튜토리얼 내 생존자 : 4 / 50.]사실 나도 그 점이 이상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걸까.
내가 모르는 생존법을 아는 엘리트일까? 생각해봐도 그건 불가능했다.
‘빠른 진행’을 위해 엘리트가 존재한다고 했으니, 엘리트는 분명 분산 배치했을 터다.
이데아 반도에, 거기서도 이 미친 튜토리얼에 2명을 넣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럼 도대체 무엇일까…….
고개를 털어서 그 상념을 몰아내었다. 독이 벌써 25%다. 슬슬 벗어나야 했다.
사쿠라이를 번쩍 업어들자, 녀석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순순히 업혔다.
“이동합시다.”
그때 박현수가 또다시 질문했다.
눈에서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 상태였다.
“이상합니다.”
“뭐가 말입니까?”
“스킬을 썼는데…….”
그가 손가락으로 내 뒤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사람 형상이 보입니다. 야간 투시경 켰을 때처럼요. 이거 혹시……?”
어쌔신 클래스다. 차가운 한기가 등판을 훑고 지나갔다.
미친.
언제, 어떻게 따라왔지?
순간, 나는 축축한 바닥에서 돌멩이를 집어 들어 박현수에게 던졌다.
우리 현수는 역시 유망하다.
그 돌멩이를 건넨 이유를 즉각 알아챈 것이다. 적이라는 사실을.
박현수는 일전에 단검을 던질 때처럼 신속하게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돌멩이는 나무에 박히며 파열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켰네?”
장난기가 가득 섞인 목소리였다.
그 점이 미치도록 불안했다.
“여기는 아무래도 불리할 것 같고…… 홈구장에서 보자고.”
킥킥거리는 웃음소리.
저쪽 풀숲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박현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면목 없다는 듯이 머리를 긁었다.
“죄송합니다. 숲속으로 달아났습니다. 쫓아갈까요?”
“아닙니다. 쫓아가면 오히려 위험합니다.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아요. 소리로 듣자니 현수 씨 돌멩이 방향을 보고 피한 겁니까?”
“네. 그렇게 보였습니다.”
내 머리가 쑤셔오는 이유.
놈의 장난기 서린 웃음. 킬러 플레이어 같기 때문이었다.
킬러 플레이어는 MMORPG에서 ‘몬스터 사냥’이 아니라 ‘플레이어 사냥’을 즐기는 사이코 연놈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런 놈이 배틀로얄 MMORPG에 들어왔고, 지금은 우리 등을 노리고 있는 형편이라…….
숲은 놈의 말 그대로 어쌔신 클래스의 홈구장이었다. 거길 들어가는 건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사쿠라이.”
“네.”
사쿠라이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두려움을 숨기고 있음을 알았다. 어쌔신의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겠지.
“정령한테 다른 길을 알려달라고 해. 지금 정령은 숲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있지?”
“네.”
“계곡 강변을 가로지르는 길을 알려달라고 해.”
“지금 미쳤냐…….”
사쿠라이가 제 입을 탁 막았다.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 물어봐요.”
타당한 의문이다.
강변에 도사리고 있는 놈들은 용이 되지 못한 위대한 존재들이니까.
그래도 놈들은 소리가 나지 않으면 덮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쌔신 클래스보다 낫다.
사이코 연쇄살인마와 동거하느니 집안일을 열심히 도와주면 잔소리 안 하는 마누라랑 같이 사는 편이 낫지 않은가.
놈이 우리를 따라오다가 식시귀의 덫을 밟기를 간절히 비는 수밖에.
“잘 들으세요.”
나는 박현수와 사쿠라이에게 속삭였다. 어쌔신 놈이 듣지 못하도록 나직하게.
“절대 소리를 내서는 안 됩니다. 발자국 소리는 괜찮아요. 하지만 질문이나 재채기 같은 건 절대 안 됩니다.”
“소리를 내면…….”
“반드시 죽는다. 상대는 용이 되지 못한 뱀입니다.”
사쿠라이가 등 위에서 바르르 떨었다.
여기 오는 동안 무수한 죽음을 봤을 거고, 나와 박현수가 아니었더라면 망자에게 죽었겠지.
죽음의 공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갑시다. 현수 씨는 후위에서 어쌔신 놈이 따라오는지 살피세요. 강변 쪽으로 가면 함정도 없으니까.”
다급하게 강변을 가로질렀다.
거대 뱀이 꿈틀거리는 소리에 사쿠라이가 비명을 지를 뻔한 위기를 제외하고는 괜찮았다.
위기는 막바지에 생겨났다.
왼쪽으로는 폭포, 앞으로는 내리막길, 오른쪽으로는 숲.
“엣취!”
사쿠라이가 기어코 재채기를 하고 만 것이다. 재채기 소리가 고요한 계곡에 천둥처럼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사쿠라이가 울먹거렸다.
당연히 고의가 아니었겠지. 나도 알고 있어. 근데 좀 화나네.
“이건, 그러니까, 정령이…… 길 안내값이라고…… 갑자기 제 코 쪽으로…… 계속 참았는데…….”
정령 놈들의 장난은 정말이지, 아오 씹.
화낼 시간도 없어…….
수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만 봐도 안다. 뱀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단 걸. 자기들의 잠을 방해한 비천한 종족들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것이다.
“현수 씨.”
긴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박현수는 곧장 앞장서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다음 순간, 물이 용솟음치며 물보라가 흩날렸다. 그 소리에 어깨너머로 뒤를 흘끗 돌아보았다.
뱀이 수면 위로 솟아올라 있다.
용이 되지 못해 흉측하게 비틀린 형상.
돋아나다가 멈춘 다리와 뿔은 기형아처럼 안쓰러웠고 자라다 만 수염은 위엄차다기보다 지저분했다.
그 흉측한 존재가, 추레한 뱀눈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한다. 그러더니 곧.
“KIEEEEEEEEEEEE!”
분노의 고함을 내지르자 계곡 곳곳에서 다른 뱀들이 튀어 올랐다.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황망히 박현수의 등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