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10)
가짜 용사 이야기-110화(110/310)
#6 :
[2. 튜토리얼] 버그 플레이 [독 감염 수치 : 57%]“왼쪽이요!”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도록 숲을 내달렸다. 순서는 이랬다.
하나, 노야가 방향을 알아내면.
둘, 내가 복창하고.
셋, 박현수가 그 방향의 함정들을 제거하며 전진하는 식이었다.
“오른쪽으로 회피!”
내가 먼저 방향을 지시할 때도 있었다. 지금처럼, 뱀의 공격이 있을 때였다.
한순간, 방향을 틀자마자 방금까지 있었던 장소에 거대 뱀이 맹독을 토해냈다.
───치이이이익!
공포로 심장이 요동쳤다. 맹독은 흡사 용암처럼 피격 장소를 송두리째 녹여 버렸으니까.
식은땀이 비처럼 흐른다…….
내가 긴장하고 있다고……?
게임으로 즐기던 것과, 실제로 즐기는 것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다음은 어딥니까?!”
사쿠라이가 비명 같은 신음을 흘릴 때, 박현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직진!”
그렇게 말한 사쿠라이가 내게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대체 저게 뭐예요? 드래곤? 드래곤 브레스?”
“맹독.”
“그냥 독인데 저렇다고요?”
“일본인이면, 만화, 많이 봤을, 거 아니야, 대충 대입해!”
숨 막혀 쓰러지기 직전인데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길 바라냐?
나와 박현수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누군가를 엎고 달리고 있으므로 내 상태는 더 최악이었지만. 안 그래도 마법사라 스테이터스 근력부터가 달려서 힘들다.
“그러니까 길, 길이나 잡아.”
태고의 맹독.
아마 그런 이름이었지.
나중에 레벨이 높아져도 거대 뱀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가 바로 저 치명적인 독에 있었다.
설정이 뭔가 이상하긴 하다.
이 세계의 용족은 뭔가…… 더 사악한 무언가를 본떠서 만들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용족들은 이런 독 따위는 안 쓰지만.
“KIEEEEEEEEEEEEEE!”
바싹 뒤쫓아오는 거대 뱀의 울음이 이 끔찍한 히든 플레이스에서 메아리쳤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했다.
저 거대 뱀이 이렇게까지 쫓아온다는 건 불가능한데? 거대 뱀들은 늪으로부터 20초 이상 벗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그들의 육신에 걸어둔 주박 때문이다. 다른 뱀들만 봐도 알다시피, 이곳까지 쫓아오지도 않는다.
주박.
일명 ‘늪의 속박’.
환골탈태에 실패한 뱀들은 뒤틀린 육신의 격통에 항상 시달린다고 한다. 그때 늪의 속박이…….
“……수호자가 뱀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보장해 준다고? 수호자가 아니라 창조주라고? 잠깐, 근데 왜 속박에서 풀려나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건데? 왜?”
정령에게서 정보를 듣고 있는지 사쿠라이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아.
순간, ‘그것’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차가운 불길이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저기요, 근데 저놈은 왜 자꾸 우리를 쫓아와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충격 때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잊고 있었다.
‘그 존재’가 곧 있으면 나타난다는 것을.
“아저씨? 괜찮아요?”
내 떨림을 알아챘는지 사쿠라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안 괜찮다고 짧게 답했다.
계획을 바꿔야 했다.
식시귀를 찾아다니며, 어쌔신의 자멸을 기다린다는 망연한 플랜은 이제 폐기되어야 마땅했다. 왜냐하면, 조금 뒤면.
[경고 : 늪의 수호자가 침입을 감지했습니다.]ㆍ 수호자 강림까지 : 300초.
레벨이 표기되지 않는 무언가가 곧 나타날 테니까. 그렇다면 결국 ‘그 방법’을 써야 하나.
하지만 망설였다.
‘그 방법’이 배틀로얄 MMORPG 버전에서도 먹히리라는 장담이 없잖아. 만약 버그가 픽스된 버전이라면?
근데…….
뒤쪽을 돌아본다.
거대 뱀이 그 끔찍한 몸뚱어리로 지면을 기면서 쫓아오고 있는 방향을.
오른쪽을 노려보았다.
계속 공격할 틈을 노리는 어쌔신의 섬뜩한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을.
역시 그 방법밖에는 없나.
“어쩔 수 없네요. 버그 플레이로 갑니다.”
“버그 플레이요?”
“버그 플레이?”
나는 박현수에게 재빨리 요점만 말했다. 정확히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아까 계곡 아래 폭포 보셨죠.”
“네.”
“그 속으로 다이빙할 겁니다.”
박현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뱀이 그렇게 많았는데 당신 제정신이오, 라는 표정이었다.
사쿠라이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저 뱀을 따돌리고 다시 거기로 돌아간다고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나만이 알고 있는 버그일 것이다. 알아내게 된 계기도 순전히 우연이었으니까.
거대 뱀은 어느덧 20미터 거리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3초 정도 뒤면 필살의 간격에 닿을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고, 사쿠라이를 박현수에게 넘겼다.
이제는 내가 앞장서야 하니 몸이 가벼워야 한다.
지금 나에게 있는 칼은 단 한 자루. 바로 경험.
“수호자가 온다는 경고 들었죠?”
“네, 네. 들었습니다.”
“그 NPC. 레벨 표기가 안 돼요. 정체가 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운영진도 모른다는 말도 있을 정도라고요. 등장하는 순간 다 죽어요. 아마 만렙일지도.”
박현수가 침을 삼켰다. ‘만렙입니다’라는 말의 설명 효과는 대단했다.
진짜 레벨은 아무도 모른다.
그냥 바로 사망 패턴이라 얼마나 강한지도 모른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꿈틀거리는 혼돈’ 튜토리얼 때를 제외하면 그 NPC는 안 나온다.
근데 수호자가 아니라 창조주라니…… 지금까지는 몰랐던 정보다. 뱀들에게 창조주가 있다고?
정보를 요약할 시간이 없지만, 여하튼 거대 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녀석인 건 확실하다.
그 긴말을 단 한 마디로 요약 전달한 것이다.
“운이 좋다면 어쌔신도 죽일 수 있을 겁니다.”
쫓아올 수 있으면 쫓아와 봐라.
10미터. 260초.
거대 뱀이 등을 빳빳이 세웠다. 아가리를 쩍 벌렸다. 미숙한 공격대장은 이걸 ‘맹독 방출’ 패턴으로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현재 8회차 공격대장이다. 경험의 칼날로, 이 위기를 베어내 주마.
“제가 하는 동작을 모두 따라 해야 합니다. 갑시다!”
첫 번째, 주둥이로 내려찍기.
몸을 곧추세운 다음 아가리로 지면을 들이받는 기술. 3초 동안의 딜 타임을 내주는 기술이다.
캐릭터가 5미터 이내 간격에서 머뭇거릴 때, 사용하는 공격 패턴.
“먼저 오른쪽으로!”
태고 뱀이 흉측한 아가리로 지면을 들이받았다. 땅의 진동은 부서질 듯 살벌했다.
3초 동안의 공격 가능 시간.
물론 지금은 공격할 여유도 능력도 없다. 대신 냅다 달리면서 머릿속으로 초시계를 돌렸다.
“자, 이제 3초, 2초 1초……!”
두 번째.
‘원망의 넋두리.’
KIEEEEEEEEEEEEEEEEE!
거대 뱀이 목을 길게 빼들고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용이 되지 못한 뱀의 절규.
양쪽 귀를 틀어막으며 계속 달렸다. 달려야 한다. 다른 둘도 나를 잘 따라 하고 있으리라고 믿었다.
저 기술은 위험했다.
직격당할 경우 캐릭터가 ‘절망’ 상태에 빠진다. 절망 상태는 행동 불능 상태로 이해하면 된다.
“5초, 4초, 3초, 2초……!”
8초 동안 우리는 뱀의 꼬리 쪽까지 와 있었다. 꽤 선방한 셈이다. 거대 뱀은 전장이 어마어마하게 긴 편이니까.
“정말로 위험한 패턴은 지금부터!”
일명 ‘꼬리 휩쓸기’.
고레벨 캐릭터도 단 한 방에 빈사 상태로 만드는 기술이다.
피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0초!”
넋두리가 끝났을 무렵, 나는 박현수를 향해 손짓했다. 검지로 지면을 세 번 가리켰다.
알아들어야 했다.
일부러 말로 안 한 거니까.
여기에서 ‘그놈’을 배제할 생각이었으니까.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파워풀하게 알아들으시기를.
곧바로 지면에 포복.
지면의 축축한 진흙이 풍기는 썩은 내가 코끝을 찌른 순간 내 머리 위를 거대한 꼬리가 휩쓸고 지나갔다.
퍼어어어어엉─────!
주변의 나무와 바위가 산산조각 나며 굉음을 토해냈다. 고막이 먹먹했다. 자욱한 흙먼지가 숲을 덮어서 눈까지 따가웠다.
자, 이제 들릴 때가 됐는데…….
어디선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의 비명이.
순간적으로 파티 UI부터 확인했다.
[파워풀엠페러] ■■■, □박현수의 생명력은 그대로였다. 사쿠라이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살해당한 건 어쌔신인가.
이 패턴에서 놈을 죽일 생각이었는데, 내 전략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내 경험으로 어쌔신을 작살내준 것이다.
[동일 튜토리얼 내 생존 플레이어 3 / 50.]기다렸다는 듯이 알림이 울렸고, 영상 메시지가 왔고, 영상이 재생됐다.
어쌔신은 가늘던 목소리와 달리 30대 연배의 중년이었다. 캡슐에서 끌려 나온 어쌔신에게 총성이 울렸다.
탕, 탕, 탕…… 정확히 세 발. 보고 있자니 등판에 가느다란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 미친 게임…….
역시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고 있어. 죽으면 너도 저렇게 될 거라고…….
생각에 잠길 여유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상념에 잠길 때가 아니라, 실리적인 사고가 필요할 때였다.
뱀이 곧바로 쫓아올 터.
“지금입니다! 전속력으로 달려요!”
박현수는 다섯 보쯤 뒤에서 사쿠라이와 나란히 포복해 있었다.
역시 마음에 드는군.
내 명령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일어났다.
가까스로 폭포에 도달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뱀이 우리 뒤에 바싹 붙어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위험한데.
저 자식이 설마 폭포 밑까지 쫓아오나?
버그가 발동되기 전에 우리를 삼켜 버린다면──
[경고 : 늪의 수호자가 침입자를 진멸하기 위해 강림합니다!]하.
망설일 틈조차 주지 않는군.
이게 이 좆같은 튜토리얼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도대체 왜 이딴 튜토리얼이 내게 배정된 거냐고.
폭포 건너편에서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딘가 신성하고, 고고하면서, 기괴한 안개.
차원 역장을 찢는 차원문이 일어섰고, 그 문에서 사람의 형체가 걸어 나왔다.
늪의 수호자.
정체는 모른다.
그러나 저 NPC에게 ‘정철’ 캐릭터가 대체 몇 번을 죽었던가를 떠올리자, 버그가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에 대한 고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뛰어내려요! 눈 마주치는 순간 죽습니다!”
폭포 아래로 뛰어내릴 때, 저편에서는 수호자의 안개가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길었다.
폭포 아래의 수면에 처박히기까지의 시간이.
첨벙────!
누군가에게 후려맞은 것처럼 온몸이 따끔거렸다. 수면 아래는 캄캄하고 지저분했다. 물비린내가 역할 정도로 구렸다.
도박은 반쯤 성공했나.
버그 플레이, 아직 가능했구나.
[경고 : 진입 불가 지역입니다. 5초 이내로 해당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을 시, 다른 장소로 강제 전송됩니다.]사쿠라이에 이어서 박현수도 수면 안으로 들어왔다.
더러운 수면 아래는 섬뜩한 장소였다. 곳곳에 뱀들이 있었다. 몸을 둥글게 말아서 자고 있었다.
저것들이 깨어나는 순간에는…….
[경고 : 진입 불가 지역입니다. 3초 이내로 해당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을 시, 다른 장소로 강제 전송됩니다.]퍼어어엉!
그때 우리를 뒤쫓아온 거대 뱀이 낙하하는 거대한 충격이 수면을 강타하면서 잠들어 있던 뱀들이 똬리 속에서 대가리를 천천히 꺼내 그 소름 끼치는 눈으로 나를 보았고.
[경고 : 진입 불가 지역입니다. 2초 이내로 해당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을 시, 다른 장소로 강제 전송됩니다.]지금까지 우리를 쫓아오던 뱀이 사쿠라이를 향해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달려들었고, 당황한 소녀의 입에서 기포가 솟아올랐고.
[경고 : 진입 불가 지역입니다. 1초 이내로 해당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을 시, 다른 장소로 강제 전송됩니다.]한순간, 자고 있던 뱀들이 앞다투어 내 쪽으로 달려들던 순간, 쩍 벌린 아가리가 사쿠라이를 삼키려던 그 순간.
[시스템 : 강제 전송 프로그램 활성화.]내 도박이 성공했다는 알림과 함께 내 시야가 캄캄히 물들었다.
죽은 게 아니다.
다른 장소로 강제로 전송되는 것뿐.
[새로운 지역 : 솔안개 숲.]사위에서 어둠이 걷혔을 때, 내 몸은 <솔안개 숲> 지역의 어귀로 이동해 있었다.
소나무가 뿜어내는 솔향이 연기처럼 그득한 장소다.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온몸이 비린내에 젖어 있었지만, 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뱉고 말았다.
빛, 찬란한 빛이었다.
튜토리얼 클리어를 축하하는 빛이었다.
동쪽에서, 여명의 태양이 세계의 어둠을 걷어내며 떠오르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본래 3개의 태양이 존재했다 하나, 지금은 저렇게 하나뿐이다.
그러면 어떤가.
하나로도 족했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 모두가 하나의 악몽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빛살이었다.
“아름다워…….”
뒤에서 사쿠라이가 중얼거렸다.
박현수가 엉거주춤 다가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얼떨떨하단 표정이었다.
그가 자신의 볼을 세 번 때렸다. 믿기지가 않겠지.
“제가…… 살아 있는 겁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래요. 살아온 겁니다.
네, 다 죽은 겁니다.
그 답변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알림이 대신 해 주었으니까.
[‘꿈틀거리는 혼돈’ 튜토리얼 클리어 : 축하드립니다!]ㆍ 도전 과제 :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자’ – 달성.
[메인 퀘스트 도착 : 배틀로얄 MMORPG.]ㆍ 튜토리얼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이제 본격적인 배틀로얄 MMORPG가 시작됩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경쟁ㆍ협력하면서 게임을 클리어하세요!
ㆍ 현재 생존 플레이어 554 / 666.
ㆍ 보상 : 소원 성취 (당신의 소원 : 모친의 부활).
헛웃음을 삼켰다.
이게 메인 퀘스트로 오는구나.
벌써 100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다는 당혹감. 그리고 내 보상이, 분명하게 명기되어 있다는 데서 오는 황당함.
그 혼란 속에서 조용히 전의를 불태웠다. 반드시 클리어해 주겠다. 그래서 보상을 받고 말겠어.
“저, 저기 누가 와요!”
저 멀리서, 말 탄 기사들이 이쪽으로 달려오자 박현수가 주춤거렸고 사쿠라이가 그 옆으로 다가가 붙었다.
“당황할 거 없어. 이곳, 이데아 반도의 핵심 이벤트가 막 시작되려 하는 것뿐이니까.”
“핵심 이벤트?”
“그래. 그리고 저건 그 퀘스트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놈들이지.”
그건 바로 성도(聖都) 캐슬베이아 공방전.
인간과 요정의 피비린내 나는 성전의 절정. 이제 그 순간까지 쉴 새 없이 달려가야만 했다.
그 레이드를 클리어해야만 아크라드 대륙으로 갈 수 있으니까.
그래, 퀘스트의 설명은 틀리지 않았다. 본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인 것이다.
[튜토리얼 퀘스트 : 완료.]– 레벨업 포인트를 (+3) 얻었습니다.
– 레벨업 포인트가 파티원들에게 분배됩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