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11)
가짜 용사 이야기-111화(111/310)
#7 :
[3. 심연이 돌아왔다] 스팀펑크 월드“현수 씨, 이 게임은 몬스터를 잡아서 레벨업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식입니까?”
MMORPG의 기본은 몬스터 사냥을 통한 아이템 루팅과 레벨업, 저런 떨떠름한 반응이 놀라울 것도 없다.
근데 이건 미친 게임이거든.
그딴 거로는 한계가 있다.
“퀘스트를 진행하면 포인트를 줍니다. 그 포인트를 투자해서 레벨업하는 방식이죠. 이형체들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중반부까지는 대부분 영장류 간의 전쟁입니다.”
“아…….”
“보이십니까?”
손가락으로 앞을, 이쪽으로 말을 몰아오는 10명가량의 기마병을 가리켰다.
막연히 중세적 시대상을 기대했을까. 그런 것과는 달리 무언가 상당히 낯선 복장이라 놀란 것처럼 보였다.
등과 허리춤에 길쭉한 가스통을 메고 있었으며, 그 가스통과 호스로 연결된 장총을 쥐고 있었으니까.
저건 스팀코어(Steamcore).
증기총을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장착해야 하는 장비다. 화약의 힘 대신 증기의 힘으로 총을 발사하는 거다.
“대충 스팀펑크 세계관입니다.”
“스, 스팀, 뭐라고요?”
“화약 문명 대신 증기기관 문명이 극도로 발전했다고 보면 돼요. 그리고 저게 이 지역 최중요 시나리오와 관련되는 NPC들입니다.”
“갑자기 긴장됩니다.”
“긴장할 거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우리 현수, 아빠가 내주는 숙제나 하고 있으렴.
“능력치는 기량부터 20까지 찍으시고요, 스킬은 《속사》부터 찍어두어라…….”
“잠시만요, 20? 속사?”
우리 현수는 쓸모가 있어.
게임 초장부터 이렇게 자신의 재능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뉴비는 극도로 드물다.
그러니 지금부터 착실하게 키워둘 필요가 있다.
“저도 알려주세요.”
박현수가 어색한 손놀림으로 [능력창]을 조작하고 있을 때 밑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게임 잘해요. 이건 안 해봤지만…… 하면 엄청 잘해요.”
노야였다.
당찬 일본인 소녀.
“얼마나 잘하는데.”
“리그 오브 히어로즈 3시즌 연속 챌린저요. 챌린저 원딜이죠.”
“?”
“닉네임 까요? 여기서 랭크 검색은 안 되겠지만.”
리그 오브 히어로즈, 약칭 LOH는 한국의 민속 게임이었다.
본래 구식 AOS 게임이었는데, 기술 발전에 발맞춰 가상현실 버전도 출시되었다.
예전에는 ‘마우스 딸깍, 와 피지컬 쩐다’ 이런 모욕을 당했다는데, 지금은 진짜 반사 신경, 판단 센스 같은 게 쩌는 거 아니면 챌린저를 갈 수 없었다.
“뉴비 때 제외하면 버스 탄 적 없고요. 포지션 꼬인 적 없으면 서포터도 안 했음. Only 솔큐.”
“다 걸고?”
“다 걸고.”
사쿠라이의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
“흠. 사실 이 김치 오빠는 네가 보기보다 유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우리 애도 하면 할 수 있는 애라고!’ 같은 느낌으로.”
“그래요? 근데 어감이 뭔가 이상한데요? 그건 니트 자녀들을 변호할 때 부모들이 울면서 하는 소리 아니에요?”
“헉.”
이 무슨 예리한 감각…….
좋아, 스시 꼬맹이.
제법 재능이 있단 걸 인정해주마, 일단은.
“《세계의 기억》 스킬 찍고 있어. 난 퀘스트 급발진 시키고 와야겠다.”
우리 현수는 뼛속까지 군인.
나중에 듣기로 UDT/SEAL 출신의 엘리트 부사관이었다.
임무 수행에 요구되던 것은 대부분 ‘왜’가 아니라 ‘어떻게’라 그런지 내린 명령을 곧잘 이행했다.
나는 통일 전쟁의 선봉에 섰던 1사단 전진 부대의 장교.
그래도 땅개 출신 장교라고 무시하지 않도록, 내 소속 부대를 말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앞으로 나아갈 때 사쿠라이가 박현수에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서로 도우면서 해봐요. 아저씨, 제가 설정 같은 것들을 알려 드릴게요. 제 특성으로요. 막 떠오르거든요.”
“난 너한테 뭘 알려줄 수 있는 게 없어. 전투 기술밖에 없어서.”
“그냥 저 엘리트한테 제가 쓸모가 있다고 말해주면 돼요. 아저씨는 이미 인정받고 있잖아요. 전 아니라고요.”
감각이 정말 날카로운걸…….
사실 박현수와 달리 사쿠라이는 아직 공대원 후보로 점찍어두지 않았다.
내가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24명. 그 24명은 정말 솎아내고 또 솎아낸, 최고의 정예 멤버들만을 데려가야 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잖아?
나 같은 미친 또라이가 4명이나 더 있는데, 여유를 부릴 수는 없지 않은가.
늘 생각해야 한다.
또 다른 ‘정철’ 4명이 지금 같은 게임의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그러면 동정심은 사치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쓸모없는 사람은 가차 없이 버리고 가야 한다.
“저는 양명군 소속 생존자입니다!”
그렇게 소리치자 기마대가 눈앞에서 말고삐를 당겼다. 위협적으로 말 머리를 코앞까지 들이밀 정도였다.
사실, 양명군과 성도 방위군들과의 관계는 상당히 나쁘다.
정확히는 모든 방위군과 나쁜 건 아니고, 이 세력과는 나쁜 편이다.
이들은 요정과의 공존을 꿈꾸지만 양명군은 배타적인 성질로 모든 요정을 구축하고 성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법황청을 용 군단이 이끌었다고 하는데, 용이 멸종하고 인간들이 그 감투를 쓴 이후로 법황청은 완전 광신 사이코 집단이 되어 버렸다는 설정이다.
양명군은 그놈들이 싸갈긴 욕망의 부산물이라고 해야 하나.
“양명군?”
“명줄 참 질기네.”
떠오르는 햇빛이 경기병 갑주 위에서 차갑게 부서져 내렸다. 기마 대열을 이끌고 온 사내가 입을 열었다.
“신성 양명군 소속인가?”
심장이 뛰어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오랜만이야, 엘우드.
그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 녀석은 내게 정말로 특별한 NPC였으니까.
“그렇습니다, 경.”
내 목소리는 잠겨서 나왔다.
“꼴이 말이 아니군. 어디서 온 건가?”
엘우드는 사자 기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덥수룩한 금발에 총명한 눈매가 사자와 정말 어울리지만, 그 별명은 사실 외모가 아니라 성정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누구보다 충의롭고, 그 누구보다 용맹한 전사. 성도 방어전에서 그가 죽는 순간에 얼마나 가슴 아팠었는지.
“숲에서요. 막 달아나 이곳으로 나왔습니다.”
“흠? 렌니오둠 전투의 생존자란 말인가?”
엘우드가 신기하다는 듯 되물었다.
설정상, 어제 내 소속 부대는 렌니오둠 평원 전투에서 대패했다. 2만 인간 대 7천 요정의 싸움.
그런데 개같이 처발렸다. 지휘관의 역량 문제도 있었지만 요정병들이 강한 것도 있다.
요정병들은 대개 시민병이고, 많은 훈련을 거쳤으나 양명군은 그냥 미친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놈들에 불과했으니.
포로로 잡힌 것도 그 설정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포로로 잡혔었지요.”
“어떻게 빠져나왔는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이 뭐냔 말이야. 요정이 숲에서 인간을 놓칠 리가 없는데.”
지금이다. 여기서 ‘이 말’을 하면, 우리는 이데아 반도 시나리오의 주축 플레이어가 된다.
“우선 제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태양의 아버지들께 맹세합니다.”
먼저 뜸을 들여서 분위기를 잡았다.
그리고 박현수와 사쿠라이를 흘끔 돌아보았다. 어리둥절함과 경외감이 반반 섞인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말하라.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는지를.”
“어제 달이 사라진 것 아십니까?”
“봤네. 정말 스산한 밤이었어.”
“그때 심연(深淵)이 돌아왔습니다.”
그 짧은 말에, 일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무거운 침묵이 돌았다.
말들이 가냘프게 울었다.
숲에서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기마병들이 서로 불안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NPC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스킬 《선동》의 레벨이 오릅니다. Lv.1 -> Lv.2
선동 스킬은 오르면 오를수록 NPC들을 속이기 쉬워지는 스킬이었다. 내 말을 거짓말로 의심하면서도 믿을 때 오른다.
믿을 수가 없겠지.
이 세계의 원주민들에게 심연의 재림은 인정하기에 너무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건이었다.
“저희들은 그 혼란 속에서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이다.
종말은 다가오고 있었다.
[NPC, 엘우드가 불안감을 느낍니다.]이제 엘우드는 우리를 영주의 성으로 데려간다고 말할 것이다. 그가 처리하기에는 너무 민감한 사안이니까.
“대장님.”
한 기마병이 엘우드에게 말했다. 다급한 표정이었다.
“영주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지금 즉시.”
어두운 표정으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엘우드가 나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자네, 내 영주님에게 함께 가주겠나? 직접 증언해주게.”
그 제안을 받기 무섭게 퀘스트 알림이 귓가를 울렸다.
[서브 퀘스트 도착 : 심연이 돌아왔다 (1)]ㆍ 기사 엘우드는 당신의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심연이라니, 누가 그런 말을 곧바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당신에게 동행을 요청합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은 거절할 시 엘우드의 병사들과 적대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단 점이다. 물론 거절할 이유가 없지만.
“내 영주님은 훌륭하신 분이야. 자네를 하대하지 않고, 기쁘게 맞아들일 걸세.”
됐다. ‘심연’ 두 글자가 들어가는 건 전부 핵심 이벤트라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이 이벤트를 따라가면, 성도 방어전의 최고위 지휘관이 되는 사내를 만날 수 있다.
‘순례자의 길’의 수호자이자 엔더스킵(Ender’s keep)의 영주를 말이다.
“영주님을 뵐 수 있다면야 영광이겠습니다.”
“짐, 리드네! 말에서 내려라.”
짐과 리드네가 말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엔더스킵 세력은 단출했지만 병사들 개개인이 용맹한 편이었다.
“숲을 수색해보고 있겠습니다.”
“조심해서 하도록. 곧바로 병사들을 수배해서 다른 말을 보내주겠네.”
군마에 올랐다. 박현수와 사쿠라이는 리드네의 말에 오를 것이다.
혼자 타고 가려다가,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는 시간에도 할 일은 있었다.
다시 내려서 사쿠라이를 내 쪽으로 불렀다.
“챌린저 누님, 이쪽으로 오시죠.”
“제 이름은 챌린저가 아니거든요? 노야라는 이름이 있다고요.”
사쿠라이를 안장 앞에 올려주고, 그 뒤로 올라 말고삐를 잡았다.
“네, 챌린저 원딜 누님.”
그리고 대열이 출발하고 1분쯤 지난 뒤에 사쿠라이가 입을 열었다. 아까 재채기를 한 이후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안쓰러웠다.
네 잘못이 아닌 걸 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 편이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하는 데 빠를 것 같았다. 대등한 동료는 필요하지 않았다. 수족이 필요하지.
“저기 있잖아요.”
“지금 《세계의 기억》 스킬 레벨이 몇이지?”
내 질문부터 했다. 사쿠라이에게 숙제를 내줄 셈이었다.
《세계의 기억》 스킬은 이야기꾼 특성의 첫 스킬이면서 핵심 스킬.
길 찾기, 고어(古語) 해독, 보스의 약점 파악 등이 모두 이 스킬 하나로 해결되었다.
“4요.”
4면 제법 많이 올려놓은 셈이었다. 정령과 얼마나 떠들어댄 거지?
그래도 부족했다.
심연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30은 되어 있어야 하니까.
“세계의 기억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많이 오르거든? 지금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5까지는 올려. 인강 듣듯이 계속 듣고. 성도에 도착하기 전에는 10이 되어 있어야 해.”
“성도요? 지금은 어디로 가는데요?”
잠시, 말발굽의 먼지 사이로 아침 황혼을 건너다보았다.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성도 방어전 마지막 날.
저 황혼은 핏빛으로 보이겠지. 벌써부터 온몸이 전율로 찌릿하게 떨렸다.
“성도 방어전의 영웅들이 모인 장소.”
그렇기에 혼잣말하듯 대답해 주었다. 그쯤이면 충분했다. 비록 게임이지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이 아이도 곧 보게 되고, 절실히 깨닫겠지. 저런 수식 어구로도 부족한 영웅들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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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종족의 영웅, 만병기장 할바론은 영웅시대 말미에 탄피형 증기 탄환을 개발하여 이를 인류에게도 전면 보급했습니다.
허나 할바론이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종족 간의 연대가 끊어졌고, 이 기술력 또한 아인 종족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