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13)
가짜 용사 이야기-113화(113/310)
#9 :
[3. 심연이 돌아왔다] 흑양, 영목, 성도 캐슬베이아“말을 쏴서 죽이세요.”
박현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맞힐 수 있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자신이 없습니다. 최소한 영점 잡을 시간만이라도…….”
“절대 이상한 곳에 쏘지 마세요. 특성 보정 날아갑니다. 첫 발에만 적용돼요.”
“특성 보정?”
내가 믿는 것. 내가 사냥꾼 클래스를 데려온 이유.
사냥꾼 클래스가 처음 쏘는 총알은 반드시 100%의 명중률을 보장받는 시스템 때문이다.
총을 평생 처음 잡아본 유저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나.
순간, 박현수의 눈동자에서 푸른색 안광이 터져 나왔다.
사냥꾼의 스킬 발현이었다.
총 명중률 보정을 60%나 향상시키는 무시무시한 특성.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서도 푸른빛이 감돌았다.
[플레이어, 파워풀엠페러가 전용 스킬, 《속사》를 시전합니다!]방아쇠가 당겨지며 격철이 돌았고, 푸슉, 증기가 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기렉이 타고 있던 말이 주춤 뒤로 물러서나 싶더니, 이내 볼품없이 지면에 대가리를 박으면서 기렉이 내동댕이쳐졌다.
총탄이 정확히 마갑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머리통을 꿰뚫은 것이다.
“……?!”
바닥에 엎어진 꼴이 내 예상대로 아르츠레히드를 향해 절하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이제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영주님께서 당신의 인사를 잘 받았다고 말씀하시는데, 인사를 참 잘하시는 것 같소. 어디서 배웠습니까? 흑양 기사단에 입단하면 그런 것도 알려줍니까?”
그러자 사쿠라이가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아르츠레히드의 병사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한마디씩 했다.
“하핫, 역시 흑양 기사단의 부단장님은 인사하는 폼부터 다른데.”
“엉덩이가 큼직하니 볼만하구만. 얼굴만 가렸으면 내가 바로 바지를 벗어 던지고 달려갔을지도 모르겠어.”
저질스러운 음담패설을 누군가가 던졌으나, 아르츠레히드와 엘우드도 은근히 웃고 있었다.
[전투 퀘스트 : 순례자의 방패를 선택하셨습니다.]ㆍ NPC, 아르츠레히드가 당신에게 호감을 표합니다. 호감 (+10).
ㆍ NPC, 엘우드가 당신에게 호감을 표합니다. 호감 (+8).
좋아. 기세는 이쪽으로 넘어왔다. 아르츠레히드와 엘우드의 호감도도 얻었고.
“한 발 더 쏴서 죽입니까?”
박현수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명중이 믿기지 않겠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갑옷을 뚫고 죽일 수 있습니까? 못 합니다.”
얼굴을 쳐든 기렉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모멸감, 분노, 증오, 살의.
“모조리 죽여버려!”
기렉은 힘 하나는 강력한 NPC다. 지금의 나와 박현수 정도는 아침밥 대신으로 씹어 먹을 수 있는 놈.
그런 놈이 분노해도, 흑양 기사단의 말들이 돌진하려고 앞발을 굴러도 딱히 겁을 먹지 않는다.
왜냐면 이제 올 때가 됐으니까.
흑양 기사들이 총구를 이쪽으로 겨누었다. 그리고 말 옆구리에 박차를 내질렀다.
말들이 천천히 달리다가 순간 가속해 돌진해왔다. 내리막길을 따라 달렸기에 속도가 금방 붙는다.
사쿠라이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저, 저기요?! 방법 있는 거 맞죠?”
“당연히.”
없으면 이렇게 행동하지도 않았어.
그렇게 대답하기 무섭게, 뿌우우우우…… 성도 쪽에서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온 것이다.
진청색 깃발 하나가 언덕 위로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곧 어마어마한 기마병이 위용을 드러냈다.
최소 200명의 철갑 부대다.
문장은 은실로 짜인 영목(靈木).
의수왕 요르한 3세의 직속 기사단, 영목 기사단이다. 이제 열세로 몰린 것은 흑양 기사단 놈들이었다.
놈들이 천천히 감속하며 멈춰 섰다. 축 처진 검은 태양의 깃발이 마치 겁먹고 꼬리 내린 들개처럼 보였다.
영목 기사단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행군해왔다, 5배는 많은 군세로.
순간, 선두에서 말을 몰던 한 기사가 흑양 기사단 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덩치가 산처럼 거대하고, 혼자만 대투구 양쪽으로 커다란 뿔이 달린 기사.
영목 단장이자 성도의 군사령관, 노기사 제롤드였다.
“네놈들을 왕의 법도에 따라서 체포하겠다. 무기를 버리고 당장 항복해라.”
흑양 기사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에게 지휘관은 없었다.
기렉은 저기 언덕 위에서 씩씩거리고 있었으니까.
“뭣들 하는 거야! 모조리 쓸어버려! 검은 태양께서 우리를 비호하신단 말이다!”
그 말에 기사들이 동요하려 하자, 제롤드가 위압적으로 칼자루를 탁 움켜잡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왕의 판결을 받고 싶은가?”
과연 언제 봐도 장관이었다.
제롤드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영목 기사들이 일제히, 영목이 우아하게 돋을새김된 총구를 겨누었으니까.
“학살자 놈들에게 왕의 심판을!”
“왕의 심판을!”
그 아우성은 흑양 기사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고도 남았다. 허나, 제롤드가 손을 탁 치켜들자 이번에도 일시에 소란이 멎었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무기를 버려라.”
흑양 기사들은 결국 서로 눈치를 살피다, 하나둘씩 말에서 내리고 무기를 버렸다.
그러기 무섭게 제롤드의 기병들이 놈들을 포박해 압송해갔다.
기렉은 부하의 말을 빼앗아 자신의 영지, 실버스톤 성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놈은 자신이 ‘왕의 법도’에 따른 심판을 면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대륙에서 제법 명망 있는 가문의 차남이니까.
안타까운 건, 그게 사실이란 거다. 하지만 그래봐야 다른 왕의 심판을 받는다.
바로 요정왕 발데마르의 심판.
[전투 퀘스트 : 순례자의 방패 완료.]– 레벨업 포인트를 (+3) 얻었습니다.
– 레벨업 포인트가 파티원에게 분배됩니다. (-2).
3이라, 싱거운 전투 하나로 꽤나 짭짤하게 받았다.
“이렇게 될 것까지 알고 있던 거예요?”
“어.”
거듭 말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까불지도 않는다.
이번엔 제롤드가 아르츠레히드 쪽으로 말 머리를 돌렸다. 아르츠레히드가 투구를 벗고 제롤드를 반갑게 맞았다.
“엔더스킵의 영주.”
“제롤드 경. 덕분에 살았습니다.”
“자네와 나 사이에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나.”
“요정들의 피해는 어떻습니까?”
제롤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20여 명. 어쩌겠나. 저 빌어 처먹을 놈들 상대로는 선방한 셈이지. 발데마르의 분노가 크지 않기를 바라야겠네.”
제롤드 경은 어릴 적 아르츠레히드의 무술 교관이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르츠레히드가 용병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그 아버지보다도 더 통곡했다고.
“큰일로 번지지는 않겠습니까?”
“발데마르의 반응에 달렸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네.”
큰일로 번진다. 이 일로 발데마르의 대규모 군세가 일어난다.
물론 성도 방어전은 아직 시작되지 않는다.
그 일을 무마하기 위한 과정에서 의수왕이 죽게 되지만.
“그래, 캐슬베이아에는 무슨 볼일인가?”
아르츠레히드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제롤드도 나를 보았다.
“저 친구는?”
“방금 언변 하나로 흑양 기사들을 물리친 용감한 친구입니다.”
방금 호감도를 크게 올려놨기에, 이렇게 말하는 방식이며 태도까지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저 친구가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정말로 화급한 사안입니다.”
“무슨 일인가?”
제롤드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대투구를 벗었다.
짧은 고수머리 아래서 사자처럼 매서운 눈이 번득거린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상흔이 백전노장의 세월을 설명하고 있었다.
“저 친구가 저번 원정의 생존자랍니다.”
“살아 돌아왔다고? 거기서?”
“어떻게 왔는지 설명해줄 겁니다.”
제롤드에게 곧장 사건을 설명해 주었다.
심연이란 말이 세 번째 반복되었을 무렵에는 제롤드의 표정은 험악하도록 일그러져 있었다.
이후 나의 행보는 단 세 마디로 요약된다. 이때 박현수와 사쿠라이와도 떨어졌다.
준마에 탑승, 성도 캐슬베이아로 직행, 왕을 알현. 그렇게 의수왕, 요르한 3세가 알현실에서 나를 맞았다.
“자네인가? 캐슬베이아에 온 걸 신들의 이름으로 환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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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열람 가능한 역사 :
샤릴리온이 마지막 <온 것들>인 타르시요와 결합하여 가문을 이루고 후손을 남겼으니, 이것이 리드(Reed) 백작가의 시작이다.
샤릴리온은 친히 성도의 보위에 오르지 않았는데(그는 대영웅이자 용사 파티의 유일한 생존자였으므로 누구든 따랐을 것이다), 대신 출신이 불분명한 소년을 왕으로 즉위시켰다.
샤릴리온이 후견인인데다 소년왕 본인에게도 통상 범주를 벗어나는 신성력과 패기가 있었기에, 반도의 모든 인류 세력이 그에게 칼을 바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것이 성도의 태조, 요르한 1세의 내력이다.
요르한은 <온 것들>의 언어로 ‘맡겨진 빛’이라는 뜻이라 한다.
* * *
캐슬베이아 변두리. 시끌벅적한 선술집.
[캬! 취기가 슬슬 오릅니다. 음주 수치 51%]현수는 마시던 술을 그대로 뱉어낼 뻔했다.
게임 알림음이 저렇게 정겹게 울릴 수도 있나? 심지어 진짜 취한 듯이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이 친구, 술도 정말 잘 마시는구먼!”
“렌, 원래 명사수들이 술도 잘 마시는 법이라구.”
“마시게! 더 마셔. 오늘은 내가 더 살 테니까.”
아르츠레히드의 부하들이 그의 등을 팍팍 때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 좋지. 그러면 한 잔 더.”
현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까 정철의 명령에 따라 한 기사를 쓰러뜨린 이후, 그는 이른바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통쾌하다느니, 서른 평생에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이었다느니, 온갖 수식 어구가 늘어졌다.
아까 심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엄청 불안해하더니, 그새 잊은 모양이다.
‘대체 무슨 게임이 이렇게 현실적인 거야.’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어젯밤 느꼈던 공포들부터 지금 쪄 죽을 것 같은 더위까지.
감각을 이렇게까지 현실적으로 구현해내면 오히려 불쾌하지 않을까. 이 게임이 왜 인기가 없었는지 슬슬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렌이라는 사내가 술병을 또다시 가득 채워왔다.
“오늘 형씨는 술통에 빠져 죽는 날이야.”
피곤했지만, 술기운이 절실했으므로 거절하지 않았다. 가상현실에 납치된 사건부터 튜토리얼에서 숱하게 죽어가던 사람들까지.
이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제정신으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술이 필요했다.
“형씨, 대륙에서 어떤 삶을 살았나?”
렌이 옆에서 넌지시 물어왔다.
슬픈 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녀석인데, 정말 눈만 보고 있으면 우는 것처럼 보였다.
“대륙?”
“어. 형씨는 이데아 출신이 아니잖아? 체격 보니까 장난 아니었을 것 같은데. 지고하신 법황 성하의 입발림에 넘어가기 전에 뭘 하다 왔냐고. 분명 뭘 약속받았을 것 아냐?”
현수는 움찔했다. 순간 혀가 꼬였고, 머리가 어지럽게 돌았다. 긴장하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러니까…….”
원정 전투니 심연이니, 당연하다는 듯이 병사들을 속여 넘겨주던 사쿠라이의 도움도 지금은 바랄 수가 없었다.
사쿠라이는 정철의 명령으로 성도에 도착하자마자 엘우드 경과 함께 대도서관으로 갔으니까.
주위에 둘러앉은 기마병 5명이 모두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낭패였다.
눈동자가 마치 TV 만화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똘망똘망 빛나던 것이다.
– 현수 씨, NPC들이라고 대충 속여 넘겨서는 안 됩니다.
정철은 헤어지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마치 이런 사태가 오리라는 걸 알고 있던 것처럼.
– 한번 의심을 사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황녀를 위하여는 현실을 모방한 게임입니다. AI도 사람처럼 진심으로 대하세요.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저들과 친분을 제대로 쌓아두세요. 현수 씨의 소원을 이루고 싶다면.
소원이라…….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하나.
막막했다. 사쿠라이가 충고했듯 소설을 써 내려가듯 대답하면 될까. 하지만 소설 한번 써본 적 없는 그였다.
“바이스 가문 아래서 위병으로 일하고 있었지. 스무 살 때부터.”
“바이스? 거긴 어디야? 처음 듣는데.”
렌의 슬픈 눈이 매섭게 번득였다. 현수는 숨을 삼켰다.
“별로 크지 않은 가문이라 잘 모를걸.”
“대륙에는 가문이 엄청 많아. 지나가던 강아지도 가문이 있을 정도라고.”
노병 칼리옌의 농담에 술상은 또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알 턱이 없지. 바이스는 정철의 닉네임이었으니까…….
정철이 나중에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이다. 정철은 뭐든 해결하는 사내였다. 적어도 이 게임에서는 말이다.
현수는 일단 떠들고 봤다.
“집안에 돈이 없었어. 나는 돈을 벌어야 했지. 부모님은 전쟁에 휘말려 죽었고, 나에게는 여동생만 남았지.”
현수는 자신의 삶을 얄팍한 게임 지식에 대입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전쟁이었어.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군인의 자질이 있다고 하더군. 위병으로 일하면 내 여동생의 의식주를 모두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어. 일해야 했지. 싸우고 죽여야 했어. 그래야 여동생이 고기를 먹었고, 따뜻한 침대에서 쉴 수 있었거든.”
NPC지만 같은 군인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처연한 표정으로 그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농담도, 잡담도 들리지 않았다.
“여동생만을 보고 살았어. 그래, 나와 혜림이는 단순한 오빠 여동생 사이가 아니었어. 마지막 연결 고리였지. 이 세상에 남겨진 마지막 가족이었으니까.”
렌의 슬픈 눈이 진짜로 슬퍼 보였다.
“형씨…… 제기랄, 설마 그 여동생에게 일이라도 생긴 거야?”
방사능인지 생화학 무기인지 거기 노출돼서 생긴 불치병이래, 라고 나오려던 말을 간신히 삼켰다.
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단 다섯 번밖에 없는 병.
길어야 한 달밖에 못 산다고.
“저주가 걸렸다고. 풀리지 않는 저주. 살이 썩어가고 뼈가 안에서부터 마모되어가. 하지만 법황 성하께서 양명군의 사명을 잘 마치고 돌아오면 그 저주를 사해 주겠다고 했어. 그래서 이곳으로 온 거야.”
물론 법황 성하 따위는 본 적 없었다. 자신에게 저주는 불치병이었고, 법황 성하는 배틀로얄의 관리자였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현수는 화들짝 놀랐다. 엄청난 반응이 왔기 때문이다.
[NPC, 렌이 당신에게 격한 호감을 표합니다. (+15)] [NPC, 에밀이 당신에게 격한 호감을 표합니다. (+10)] [NPC, 칼리옌이 당신에게 격렬한 연민을 품습니다. (+18)]“아, 제기랄. 미안해, 형씨. 그렇게 어두운 이야기이리라고는 예상도 못 했어.”
“아니야. 덕분에 마음이 정리됐어.”
현수는 술을 한입에 들이붓는데 노병 칼리옌이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아르츠레히드 영주님은 요르한 전하의 총애를 받네. 내가 한번 여쭤보지. 어쩌면 이곳의 대주교가 저주를 사해줄 수도 있지 않겠나.”
“아뇨. 괜찮습니다. 법황만이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키야아! 취기가 계속 오릅니다. 음주 수치 71%]혜림이를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고, 그 아픔은 이 배틀로얄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목적의식을 되새겨 주었다.
– 오빠야, 그만 병원에서 꺼내줘라. 어차피 죽을 거라잖아.
병실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었다.
– 죽긴 뭘 죽어. 그런 말 하지 마.
– 천국 가서 엄마랑 아빠한테 오빠가 얼마나 훌륭한 오빠였는지 말해줄게.
– 그만해. 화낸다.
– 오빠. 나 너무 아프다. 몸도 아프지만 오빠한테 미안해서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그날 현수는 미친 듯이 울다가 그 메시지를 받았다.
배틀로얄의 초대장이라고 했지.
그는 그렇게 이 세계로 들어왔다. 문득 사쿠라이의 말이 떠올랐다.
‘배우지 않으면 버림받는다.’
아까는 혼란스러워서 건성으로 들었었지만, 술기운이 그 진리를 가슴속에 분명하게 울려주었다.
현수는 힘겹게 입을 뗐다.
맞다. 배워야 했다.
“내가 배움이 짧아서 이곳의 정세를 잘 몰라. 요정, 발데마르, 숲……. 혹시 자세히 알려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