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14)
가짜 용사 이야기-114화(114/310)
#10 :
[3. 심연이 돌아왔다] 결사대“흠, 심연이라…….”
의수왕, 요르한 3세가 깃펜을 힘없이 놓았다.
의수왕은 말 그대로 양팔에 증기 문명 기술력의 첨단으로 제작된 의수를 차고 있다.
그 팔이 움직일 때마다, 증기가 푸슉 새어 나오고 톱니가 끼리릭 굴러간다.
사실, 저 의수뿐만 아니라 가슴팍 아래로는 다 기계식 장치라 봐도 무방하다.
요르한 3세는 일곱 살에 제위를 계승한 이후, 긴박한 성도의 정황 때문에 모든 전투에 직접 참전하여 군을 지휘하였는데 그러다가 몸이 잘리는 불상사를 당했다.
<황녀를 위하여> 세계관 최고의 기술자인 아인(兒人; Dwarf)들이 기계 육체를 제공하여 왕을 간신히 살려내긴 했으나…….
우리들의 시대에도 저런 기술이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이 시대에도 완벽하지 않다.
왕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요르한 3세는 저 육신을 성도의 평화를 지킨 표상이라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여겼다.
“결국 올 것이 왔구만그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아르츠레히드와 제롤드의 어두운 표정을 지켜보았다. 아르츠레히드가 말했다.
“법황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알리면 그가 올까?”
요르한 3세가 따뜻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성도(聖都)가 놈들의 정치판 놀이로 전락한 지도 몇십 년이네. 놈들에게 이곳은 성도가 아니야, 제롤드. 그저 칼일 뿐이지.”
“칼이라뇨?”
“정치판에서 뽑아드는 한 자루의 칼.”
조심스레 왕을 곁눈질했다.
양손에 의수를 착용하고 있는 왕은 진실로 명철한 두뇌와 판단력을 가진 스무 살의 젊음이었다.
만약 이 NPC가 저런 기계 육신의 설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성도의 평화는 계속 유지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요정과 연합하여 심연을 초기에 막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조촐한 병력으로도 요정왕 발데마르와의 평화를 이뤄낼 줄 알던 그는 진정 백성을 생각하는 성군이었으니까…….
“이 성도가 태양신들의 전유물이라고 주장하는 작자들이야. 법황은 한결같지. 뭘 더 바랄 수가 없어. 자, 친구들. 이제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고.”
[서브 퀘스트 : 심연이 돌아왔다 (3) 완료.]ㆍ 종말의 전조를 요르한 3세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이제 이 세계를 구해낼 방법을 왕과 함께 논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구해낼 방법이라…….
씁쓸한 웃음이 밀려 나올 뻔했다.
저건 그야말로 희망고문이었다. 이 세계를 구해낼 방법 같은 건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레벨업 포인트를 (+6) 얻었습니다. 능력치를 올리세요.]– 레벨업 포인트가 파티원들에게 분배됩니다. (-4)
이걸로 저쪽 2명도 2업씩 할 수 있게 되었다.
아깝지 않다.
이건 상장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도 같다.
박현수는 분명 강력한 동료가 될 것이었고, 사쿠라이는 이번 성과까지 보아야 하겠지만 공격대의 두뇌 역할을 해줄지도 몰랐다.
그래도 1인분은 하겠지…….
3시즌 연속 챌린저라는데…….
여하튼 충성심 있는 플레이어를 구하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초기 멤버는 그만큼 중요하다.
“황제에게도 서한을 보내보는 게 좋겠습니다.”
아르츠레히드의 대답에 요르한 3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의례에 맞게 보내긴 할 거야. 하지만 기대하지는 말게. 황제는 병들었으니까. 신체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
“지금 그 아래서는 다섯 황녀가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을 거야. 제국은 불에 던져진 항아리와도 같은 상황이네.”
새삼 감탄했다. 역시 엄청난 통찰력이었다.
황제는 바로 내일 사망한다.
살해당한 건지, 자연사인 건지.
그 직후 엄청난 사건, 황제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성배 전쟁이 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데아 반도에서 심연이 창궐하는 와중에도, <잊혀진 왕들>이 요정 왕국들을 진멸하는 순간에도 황녀들은 황위를 위해 싸우고 있을 것이다.
꼭 현실의 실정을 지적하는 것 같은 이 사건은 플레이어들에게서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제롤드 경이 미간을 꽉 잡았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전하, 흑양 기사단이 요정 상단을 습격했습니다. 그중 일곱 명은 성도의 백성이었습니다.”
“알고 있네. 자네가 출진할 때 나도 보고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일곱 명이라.”
무서웠다.
요르한 3세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해 있었다.
“내 백성들을 죽인 자들이니, 그대로 갚아 주어야겠지. 모두 형장으로 데려가게. 요즘 로바르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군.”
요르한 3세가 자리에서 힘없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증기를 뿜는 의수를 힘없이 들어 보였다.
“악을 더듬거리는 자는 신들께서 심판하신다는 계명이 있는 걸 아는가? 하하, 한데 어쩐 일일까. 빛께서도 참 무심하시군. 늘 신들의 계명을 욕보이는 로바르가 그토록 강건한데 나는 이 꼴이니.”
제롤드의 눈가가 축축해졌다.
“전하…….”
왕의 비극적인 삶은 곧 끝날 것이다. 곧 닥쳐올 사건으로 요르한 3세는 빛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리라.
“전하!”
왕의 문관이 집무실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신기하다.
예전에 알던 것과 달리 젊은 여성 문관이었다.
“무례를 용서하소서. 화급한 사안입니다.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문관이 붉은 서한을 왕에게 건넸다. 최중요 긴급 사항이란 뜻이다. 전보는 이 세계관에서 제일 빠른 연락 수단이었다.
통신 축선이 현대처럼 완벽하게 깔린 것이 아닌지라 중계국이 위치한 곳에서만 통신이 가능했으나, 전화는 전화다.
요르한의 명령에 따라 아르츠레히드가 서한을 대신 받아들고 펼쳤다. 서한을 읽던 아르츠레히드의 표정이 어두워갔다.
“발데마르가 군사를 일으켰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지금 실버스톤 성채로 향하고 있답니다.”
“흠, 기렉을 심판하러 온 건가. 군세가 어떻게 된다던가?”
사태는 급박하게 전개된다.
발데마르의 군세는 20만 명이다. 하지만 요르한은 그 20만 명을 어떻게든 구슬려서 돌려보낸다.
이후 성도 역사 사상 가장 위대했던 왕이 승하하게 되는 것이다.
“줄잡아 20만 명이고 선발대는 2만 명이랍니다. 백성들이 도망치고 있는데, 전차대(戰車隊)를 앞세우고 오고 있어서 몹시 위험하다고…….”
제롤드 경이 즉시 말했다.
“발데마르에게 심연에 대해 알려야 합니다.”
여성 문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심연이라뇨?”
요르한이 손을 들어 혼돈을 통제했다.
“발데마르에게 심연에 대해서 논한다면, 그가 군사를 물릴까?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야. 요정들은 왕에게 절대적인 권력이 없네. 제사장들의 동의도 구해야 하니까.”
다급한 사안 앞에서도 요르한은 침착했다.
NPC지만 멋있었다.
일등 지휘자의 자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왕이었다.
“아르츠레히드.”
“네, 전하.”
“난 지금 자네에게 죽음을 명할 것이네. 따라주겠나?”
아르츠레히드가 비장하게 꿇어앉았다.
“제 목숨은 전하에게 속한 것입니다. 맹세를 잊으셨습니까?”
요르한이 부드럽게 웃었다.
“인생의 끝에서야 비로소 자네 같은 친구를 만나다니, 슬픈 일이야. 아르츠레히드. 총기병 3천 명을 내주겠다. 가서 발데마르의 전차대를 요격해주게. 백성들이 대피할 때까지 버텨줘. 살아야 해.”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제롤드, 전군의 지휘관들을 의석에 집결시키게. 곧 갈 테니.”
“옛, 전하.”
“한 번의 전투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전쟁은 성도의 패망으로 이어지지. 실버스톤 전투만큼은 막아야 해.”
요르한이 힘없이 나를 돌아보았다. 이제 또다시 선택 퀘스트다.
“염치없지만 자네는…….”
[긴급 퀘스트 : 아르츠레히드 결사대 or 제롤드의 기사.]ㆍ왕은 두 가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르츠레히드를 선택할 경우 발데마르의 전차대를 저지해야 합니다. 제롤드를 선택할 경우 그의 기사가 될 수 있습니다.
ㆍ 보상 : [1] 아르츠레히드와의 전우애.
ㆍ 보상 : [2] 영목 기사단 입단.
영목 기사단에 입단할 시 주어지는 장비들은 초호화다.
정말 말 그대로 ‘초호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저들이 이때 제롤드를 선택한다.
거기에다 아르츠레히드를 따라가면 죽을 게 분명해 보이니까. 보상도 그저 전우애라니, 너무 막연한 보상이 아닌가.
하지만 저것이야말로, 이데아 시나리오 해결의 핵심이다. 핵심을 쥐어야 시나리오를 빠르게 끝마칠 수 있다.
서두를 이유는 충분했다.
성도 방어전을 빨리 해결해야, 성배 전쟁의 주축 세력으로 참전할 수 있게 되니까.
어쩌면 대륙의 마법대학에서 마법을 본격적으로 배울 여유가 생길지도 모르고.
그렇기에 아르츠레히드를 흘끗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또한 전하의 백성을 지키러 가겠습니다.”
[긴급 퀘스트 : 아르츠레히드 결사대를 수락하셨습니다!]* * *
“대체 무슨 생각인가?”
궁성 회랑.
앞서 걷던 아르츠레히드가 순간 멈춰 서서 물었다.
“나와 함께해서 얻는 게 뭐가 있지?”
뭐가 있기는, 당신이 긁지 않은 일등 복권이라는 걸 알지.
“아르츠레히드 영주님을 위해 가는 게 아닙니다. 백성을 위해 가는 것이지요.”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구석구석 쥐어뜯었다.
진의를 가늠하려는 것일까.
물론 진의를 읽어낼 턱이 없긴 하지만.
[NPC, 아르츠레히드가 당신에게 호감을 품습니다. (+10)]아르츠레히드가 허탈하게 웃었다.
“참 사나운 운수야. 자네 같은 멍청이만 부하로 맞게 되는 영주라니…….”
저 말에 악의는 없었다.
아르츠레히드가 몸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서 가자고. 일단 자네한테 제대로 된 무장부터 줘야겠군. 그래도 명색이 결사의 돌격대인데, 갑옷 정도는 제대로 입어야 하지 않겠나?”
기마병의 갑주를 받는 진행이다.
영목 기사단 갑주보다는 못하지만 괜찮은 장비다.
“괜찮습니다.”
“괜찮다니?”
하지만 나에게 갑주는 필요 없었다. 마법사는 사슬이나 판금 갑옷을 입으면 여러 가지 페널티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제가 이래 봬도 마법사라서요.”
이제 본격적으로 마법을 다뤄볼 생각이었으니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 결사 퀘스트를 깨려면, 특기를 전면적으로 잘 발휘해야만 하니까.
“마법사? 자네가?”
아르츠레히드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어, 사실 나도 어이없어.
아르츠레히드와는 함께 캐슬베이아의 성명도서관(聖明圖書館)으로 향했다.
지구의 빅토리아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고상하고 고풍적인 건물의 외관들에 새삼 눈이 크게 뜨였다.
건물 여기저기서, 도시에 활력을 부여하는 증기기관에서 연기가 정신없이 솟아오르고 그 연기로 시커멓게 물든 하늘에서는 비행선이 유유히 날았다.
검과 마법과 총과 증기의 시대, <황녀를 위하여>의 세계관의 단편이 한눈에 펼쳐지는 장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정한 강자들은 여느 에픽 판타지처럼 냉병기나 술식을 사용했으나, 일반적인 병사들은 기술에 기대는 시대상이라고 해야 하나.
“찾아봤어?”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산처럼 쌓아둔 사쿠라이를 찾을 수 있었다.
“말씀하신 것들 반은 찾아놨어요. 나머지 반은 아예 없고요.”
반이라, 정말 분발했구나.
3할도 어려울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실래요?”
사쿠라이가 의기양양하게 양피지 종이를 책상 위로 쭉 펼쳐놓았다.
한 장, 한 장 제각기 다른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아까 내가 주문해 두었던 것들이다. 1성에 속하는 초급 마법들.
“어디 보자…….”
사쿠라이가 성심껏 그려놓은 15개의 마법진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초급 마법사가 기억할 수 있는 마법은 최대 6개.
하지만 3개는 이미 사용할 수 없는 특전 마법으로 채워져 있다.
[마법사 클래스 : 마방진을 보았습니다. 마법을 저장하시겠습니까? 저장 슬롯 3 / 6.]마법에 재능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경험과 지식뿐.
– 1성 같은 초등 마법은 수학적 지식이 부족해도 대충 사용할 수 있는 데다가, 술자가 어떻게 조합하고 응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성능이 확연히 달라져.
신태엽이라고, 진짜 내가 지금까지 봐온 마법사 플레이어 중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녀석이 해준 조언이다.
멍청이의 변명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저 말은 항상 주효했단 말이지.
자, 어떤 조합을 가져가야 할까.
[1성 마법, 《공기 방벽》을 네 번째 슬롯에 저장합니다.] [1성 마법, 《불 뿜기》를 다섯 번째 슬롯에 저장합니다.]이것도 신태엽에게 배운 것.
이 둘이 있으면 2성의 《화염벽》 마법을 흉내 낼 수 있는데, 저 마법이 시간을 끄는 데 아주 탁월한 효과를 낸다.
남은 슬롯은 고작 하나인가…….
2만의 적을 상대로 암담하군.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시끄러운 알림이 귓가를 때렸다.
[전용 스킬, 《현자의 극의 : 대현자의 기억법》이 발동합니다!]ㆍ 마법 기억 슬롯이 ‘6 -> 50’개로 확장됩니다.
50개? 50개라고?
말도 안 돼.
극위 마법사의 기억 슬롯도 30개에 불과할 텐데.
[전용 특성, 《현자의 극의 : 대현자의 기억법》 이해도가 낮습니다. 마법 기억 슬롯이 50 -> 8개로 축소됩니다.]……그럼 그렇지 싶었다.
“그만 가세, 에델. 시간이 없네.”
벌써 준비를 끝낸 걸까, 뒤에서 아르츠레히드가 재촉해왔다.
엘우드 경은 벌써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박현수와 다른 기마병들을 데리러 갔을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1분이면 됩니다.”
하지만 2개가 더 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자의 기억법》은 엘리트 특전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왜냐면 지금 저장할 이 3개의 마법으로 대단한 마법을 행할 수 있게 됐으니까.
떠나려 할 때, 사쿠라이가 작은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결사대 퀘스트가 뭐예요? 위험한 거 아녜요? 딱 봐도 완전 위험한데.”
“내가 말했지? 방법이 없으면 까불지도 않는다고. 걱정 말고 기다려.”
공격대장은 모든 리더가 그러하듯 채찍과 당근을 고루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번엔 당근을 줄 차례였다.
“그리고 이번엔 잘했다.”
“그러면? 아까 약속한 거 있잖아요. 그거 된 거예요?”
“예, 챌린저 누님께서도 끝까지 가셔야죠. 캐리해주셈.”
그 말을 이해하자 사쿠라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도의 눈물인가.
어젯밤 재채기 건으로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겠지.
이건 단지 네 노력의 보상일 뿐.
내 말을 처절하도록 열심히 이행해 내었으니까. 《세계의 기억》을 5에서 15까지 올린 것부터 마방진 조사까지.
“고생했어.”
사쿠라이는 지금부터 8회차 정철 공격대의 공격대원 넘버 투가 된 것이다.
참고로 나는 한번 공격대원이 된 사람을 내친 적이 없다. 신태엽처럼 제멋대로 탈주하던 놈이 아니고서야.
이게 너에게 행운인지 아닌지는, 불행히도 다른 엘리트 플레이어들을 대면한 뒤에야 알게 되겠지만.
“가자고, 에델! 이젠 정말 시간이 없네.”
“예! 여기 앉아서 레벨업 포인트나 기다리고 있어라. 물론 다음 숙제도 있어.”
사쿠라이에게 《세계의 기억》을 Lv.20까지 올려두라고 말한 뒤 아르츠레히드를 따라 성큼성큼 출입구로 향했다.
“죽지 마세요.”
그런 내 뒷모습에 사쿠라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 죽어.”
죽을 생각 따위는 없어.
여기서 절대 죽지 않는다.
아르츠레히드와 의수왕을 죽여야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러할 테니까.
“게임 초반에 죽을 것 같냐.”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하면서.
잃어버린 어머니의 목숨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지옥 밑바닥까지도 가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