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18)
가짜 용사 이야기-118화(118/310)
#14 :
[4. 메인 퀘스트 시작] 왕림리샤르 후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도 중요한 정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놈…….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엘리트가 본명을 닉네임으로 설정할 리가 없었다.
“돌격하라!”
“어머니들의 이름으로!”
허탈했다. 엘리트 나이트가 열어낸 틈으로 적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전차 위를 나부끼는 깃발들에서 창백한 달, 고상한 달의 문장이 위협적으로 펄럭였다. 달 여신들의 문장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
1천 군세의 돌진은 대지를 전율시켰고, 그 함성은 내 귓가에서 절망으로 흐느껴 울었다.
– 철이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의 마음이 너무 아파.
그때였을까. 그 함성 소리가 어머니의 울음소리로 바뀐 것은.
나는 칼을 뽑았다.
아니, 칼이 저절로 뽑힌 듯했다.
전차대와의 격돌은 5초 정도 남았다. 죽음의 흙먼지가 점차 가까워왔다.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허리춤에서 거치적거리는 검대를 풀어서 멀리 내던졌다.
[아이템을 분실 : 낡은 검대.]절망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칼이 있다면, 칼만 있다면 아직 희망은 있었으니까. 그렇게 뚫고 나온 수라장만 수백, 수천 번은 있었다.
게다가 이 퀘스트의 진짜 목표는 살아서 버티는 것이지, 적 섬멸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제단에 수천 명의 목숨을 쌓아야 한다면 기꺼이 그리하리라.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먼저 한 요정 기병이 앞으로 치고 나왔다. 놈의 기병창이 석양 속에서 붉게 번득였다.
차가운 땀이 흘렀다.
칼을 양손으로 단단히 쥐었다. 우선 말의 다리부터 베어낼 심산이었다.
“란 리테아리! 데아루나!”
달의 이름으로 널 심판하겠다는 요정들의 언어였다.
순간, 그 말을 외던 입에 화살이 처박혔다. 기도문을 외던 요정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예기치 못한 전율이 전신을 스쳤다. 저 총탄, 박현수가 쏜 거다.
그때서야 들렸다.
뒤에서 말을 몰고 달려오는, 아군의 함성이.
[긴급 전투 퀘스트 : 격돌.]이런 멍청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임의 식견이 짧은 인간도 지금 작전이 실패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을 텐데. 엘리트도 아닌 주제에 이런 수라장 속으로 달려온다고?
그리고 요정의 중기병을 상대로 인간 총기병으로 충격 전법이라니, 멍청해도 너무 멍청하다.
“격돌 준비!”
나팔 소리에 이어 돌진 대열 중앙으로부터 아르츠레히드의 짤막한 지시가 전달되었다.
격돌 준비…… 격돌 준비…… 격돌 준비……!
엘우드 경을 통해 그 지시는 복창에 복창으로 전파되어 갔다. 결사대의 기총(騎銃)이 앞으로 주르륵 내려졌다.
적 전위 부대 앞에서 결사대 대열은 일렬횡대. 오직 한 줄기의 횡대였다.
놀랍게도 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건 바로 박현수였다. 남들보다 몇 초는 빨리 튀어나왔는지, 훨씬 앞을 달리고 있었다.
[플레이어, 박현수가 《사기 진작》을 추가로 사용합니다. 추가 능력치 (+1)를 받습니다.]다음 순간, 수천의 기수와 기마들이 적의(敵意) 실린 함성을 토해냈다.
“현수 씨!”
손가락 마디마디가 절로 저려오는 살기(殺氣)가 칼처럼 고막을 베었다.
“안 됩니다! 돌아가세요!”
정돈된 행진은 거기까지였다.
군마끼리의 격돌, 전차의 난입, 중심의 붕괴.
총탄에 맞거나 창에 머리통이 꿰찔린 말들이 연거푸 고꾸라진다.
피 보라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는 와중 바닥을 나뒹굴던 기수들이 군마의 말발굽에 짓밟힌다.
전투는 혼돈의 백병전이었다.
결사대는 대부분 낙마한 상태로 낙마한 요정병들과 처절하게 뒤엉켜 싸우며 거친 숨을 흘렸다.
아군도 함께 낙마해서 그런지 전차들이 그 위험하기 짝이 없는 낫 달린 차륜을 끌고 이곳에 오는 게 아니라 멀리 돌고 있었다.
박현수가 총을 놓쳤는지 등 뒤의 방패와 허리춤에서 칼을 꺼냈다.
요정병이 저편의 렌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창날이 렌의 왼쪽 팔뚝을 뚫었다.
다음 순간, 기병창이 렌의 머리통을 투구째로 무참하게 으깼다.
“레, 렌!”
박현수가 멍하니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그때였다.
시야에 거대한 말발굽이 들어왔기에 옆으로 재빨리 굴렀다. 말발굽이 지면을 내려찍으며 섬뜩한 흙먼지가 일었다.
“엘리트 소서러!”
그 목소리.
그 냉소 담긴 목소리는.
그 혼돈의 한복판 속에서도 또렷한 전율로 들렸다.
“혼성 마법 같은 개수작을 대체 누가 부리나 했더니, 역시 네가 있었군.”
“리샤르……!”
“흐흐흐흐, 마법으로 그딴 장난질밖에 못 하는 네깟 놈이 엘리트 소서러 클래스를 받다니.”
일순 눈앞으로 시퍼렇게 짓쳐들던 창극, 그 창대를 베고 말의 모가지를 베어 기수를 낙마시켰다.
저놈, 저놈을 배제시켜야 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요정병들을 닥치는 대로 베고 쓰러뜨렸다.
“이거 무서운걸, 원래는 칼 쓰는 클래스였나 보지?”
검술이니 전투의 기백 같은 스킬들의 성취도가 오른다는 알림은 살갗이 잘리는 절삭음과도 똑같이 여겨졌다.
“그렇다면 나도 보여주마! 진짜 마법이라는 걸!”
그렇게 여유를 준 것이 화근.
전장의 흙먼지 속에서조차 놈의 손바닥 위에서 회전하는 두 겹의 마방진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 레벨에, 2성(成) 마법의 초고속 구축? 심지어 마법 사용에 페널티를 입는 요정 종족으로?
[플레이어, 리샤르 후가 2성 마법, 《뇌령》을 사용합니다!]그 순간, 전장이 뇌명에 휘감기며 일순간 색조와 명암을 잃었다. 그렇게 될 뻔했다.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전용 스킬, 《현자의 극의 : 대마력방호》를 시전했습니다!]내 머리 위에서 여섯 겹으로 정교하게 조립된 마방진이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끼릭, 끼릭, 끼리릭…….
마법의 재능과 마력의 문제로 곧 마방진은 산산이 깨어졌고, 입과 코에서는 핏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뇌전은 사라져 있었다. 리샤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너한테도 특전이 있었지. 처음부터 그렇게 좋은 스킬을 들고 꼴사납군.”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나한테 참마격이 있었으면 이 퀘스트는 몰살 퀘스트로 깰 수 있었을걸.
피 섞인 침을 탁 뱉었다.
입에서 쓴맛이 났고 귓가에서 삐이이, 요동치는 이명에 고막은 터질 듯했다.
“타임 오버다, 리샤르.”
“그 목숨 건졌군. 걱정 마라. 성도 공방전에서 죽여줄 테니.”
“그 전까지 네가 살 수 있을 거라 보나?”
3천 명의 결사대는 9할 넘게 사체로 변해 흙 위에 피 웅덩이를 남겼다.
이윽고 요정병들이 잔병 학살을 위해 둥근 진영을 펼칠 때, 저편에서 누군가가 말을 몰아왔다.
갑주나 군마의 의장이 다른 요정병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순은으로 달을 형상화한 상감 장식이 번쩍거린다.
[긴급 전투 퀘스트 : 격돌.]–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했습니다.
이제야 오셨군.
퀘스트가 실패했다지만 원래 이런 전개로 간다.
이 레벨에, 이 퀘스트 전개를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참마격이 있었다면 모르겠다만.
“저항하는 자는 죽이되, 저항하지 않는 자는 생포해라.”
요정병들이 패잔병들을 밧줄로 묶기 시작했다. 박현수가 멍한 표정으로 끌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보고 깊이 안도했다.
다행히 살아남았군…… 기병 충돌을 경험해서, 아니면 NPC의 죽음으로 제정신이 아닌가.
아슬아슬하게 플랜 B 성공인가.
사실, 이 이벤트에서 아르츠레히드는 뭘 해도 죽지 않는다. 시스템적으로 그러하다. 물론 설정적인 개연성도 충분히 있다.
플랜 B는 요컨대 그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 아르츠레히드가 쓰러질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었다.
요정병이 나를 비롯한 포로들을 한곳에 내동댕이치듯 꿇어앉혔다.
결사대의 생존자는 단 5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엘리트 나이트의 개입으로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박현수가 살았으니 아무 문제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NPC에 불과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음…….”
마지막 포로, 박현수의 얼굴을 살핀 요정 장교가 고개를 저었다.
“영주도 기사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체 지휘관은 어디에 있는 건가? 영주와 기사로 보이는 자들은 반드시 사로잡으라고 명령했을 터다.”
전위대 사령관이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차분한 어조 뒤에 날카로운 칼이 숨겨져 있었다.
“당장 찾아와.”
요정병들이 아르츠레히드를 찾으러 황망히 흩어졌다. 나는 이 젊은 사령관이 누군지 알고 있다.
바로 요정왕 발데마르의 오른팔, 팔라딘 타키아르.
요정 세력 이벤트의 주축 세력으로, 발데마르가 암살당한 뒤 혼란에 빠진 요정 세력의 정세를 책임질 인물이었다.
요정들의 갑주 제작술은 예술의 경지까지 오른 정도였는데, 타키아르는 더구나 팔라딘이었으므로 갑옷이 예술품 그 자체였다.
등에는 팔라딘의 상징과도 같은 성창(聖槍)을 차고 있었는데, 그 위엄은 갑옷보다도 찬란했다.
근데 이상하다…….
전개가 뭔가 기이한데……?
원래는 아르츠레히드가 의식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서 멋있게 타키아르와 딜을 해야 하는데.
“엔더스킵의 문장이 있습니다. 영주인 듯싶습니다.”
갑주가 넝마가 된 채 끌려온 아르츠레히드는 혼절한 상태였다. 요정병들이 아르츠레히드를 타키아르 앞에 내려놓았다.
“얼굴을 보여라.”
요정 장교가 쓰러진 아르츠레히드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들어 올렸다. 원래 여기에서 이벤트가 시작되었어야 했는데.
“각하, 직접 하실 생각이신지?”
“그래. 물러나라. 첫 승전보를 내 직접 폐하께 바칠 것이다.”
뭐냐, 이건?
리샤르도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는지 고개를 갸웃했으나, 나와 시선이 맞닿자 피식 웃었다.
무서운 깨달음이 왔다.
이대로면 아르츠레히드도 죽고, 나도 저놈 손에 죽는다. 그렇기에.
“타키아르 각하!”
그 외침으로, 검대에서 칼을 뽑으려던 타키아르의 동작에 제동을 걸었었다.
칼날에서 석양이 핏빛으로 부서지는 동안, 요정의 눈동자가 푸르게 반짝이며 내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요정병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내 머리를 창대로 후려치고는 짓밟으려 했으나, 타키아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각하? 각하라…… 인간들은 아주 재미있어. 신념도 지조도 명예도 없는 것이 짐승과 똑같지. 자기 목숨이 위험할 때에야 비로소 예의를 깨닫다니.”
“아르츠레히드 공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지금 네가 나에게 명령하는 것이냐?”
“심연(深淵)이 돌아왔습니다!”
침묵.
벌레를 보는 듯한 경멸의 미소를 짓고 있던 타키아르의 입매에 잠시 경련이 일었다.
“각하 정도의 인물이시라면 이미 보고를 받으셨을 겁니다! 양명군이 전멸된 그 전투에서 승전한 요정병들도 실종되었다는 걸!”
“……!”
“제가 그 일의 생존자입니다. 벌레 군주가 돌아왔습니다!”
요정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장교들이 타키아르에게 다급히 고했다.
“목숨이 아까워서 내뱉는 헛소리입니다. 제게 맡기소서, 제가 저 건방진 주둥이를 치겠습니다.”
그렇게는 안 될걸.
타키아르는 너희들처럼 일차원적으로 생각하지 않거든.
무엇보다, 내가 하고 있는 말 대부분이 아르츠레히드가 타키아르를 설득할 때 쓰는 말이다. 문제 될 여지가 단 하나도 없다는 거지.
“아르츠레히드는 요르한 3세의 총애를 받는 인물, 아르츠레히드를 처형하면 인간과의 전면전은 불가피해집니다! 그러면 심연이 요정의 뒤통수를 칠 것은 자명한 일!”
리샤르 후 주위로 다른 요정들 네다섯 명이 몰려들어 무어라 따지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대로 내버려둬도 돼요?”
“여기에서 죽여야죠!”
“안 돼. 저놈을 죽이려면 아르츠레히드부터 죽여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내가 모르는 시나리오를 보게 된다.”
그러나 리샤르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녀석도 알고 있는 거다. 엘리트 플레이어니까 당연히. 놈은 아까 분명 나를 성도 공방전에서 죽이겠다고 했다.
그건 바로, 성도 공방전 전까지 인간 세력이 건재해야 되는 걸 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대사다.
“저희를 풀어주시면, 왕께 각하의 자비를 전하겠습니다. 요정왕과 저희 왕과의 회담이 좋게 진행될 수 있도록.”
회담, 회담이라…….
타키아르가 짧게 탄식하더니 반쯤 뽑힌 칼날을 도로 집어넣었다.
결사대 생존자들이며 요정병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기에 나는 <황녀를 위하여>에 빠져들었었다.
이토록 현실적이니까.
NPC들이 멍청하지 않고,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반응이 유동적으로 달라지니까.
“네 용기가 가상하구나. 같잖은 수작인지 용기인지는 곧 알게 되겠지. 좋다. 풀어주마. 하지만 풀어주는 건 이 영주뿐이다.”
“……!”
“심연이 돌아온 게 사실이고, 왕께서 너희들을 살리겠다고 결정하면 살려주마. 하지만 거짓이고, 왕께서 죽음을 원하신다면 너흰 모두 죽음을 애걸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어갈 것이다. 네가 그 세 치 혀를 놀린 까닭에.”
타키아르가 부하들에게 말을 가져오라고 시키는 동시에 저 뒤쪽의 언덕을 가리켰다.
위압적인 흙먼지가 폭풍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전위대가 일으키던 먼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규모의 흙먼지.
이윽고 압도적인 군세가 언덕 위로 나타났다.
“보아라, 너희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실 분의 왕림이시다.”
전차, 기병, 보병…… 헤아릴 수조차 없는 쇠붙이의 행렬.
요정의 기갑부대, 나무 거신들이 지축을 흔들며 걸어왔고 공군인 용수리(DragonEagle; 용을 닮은 수릿과의 아종) 기수들이 석양을 가득 메우고 날아왔다.
그 선두에서 순은의 갑주를 입은 누군가가 위엄차게 말을 몰아왔다. 양옆에서 팔라딘들이 왕을 보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깃발과 전포(戰袍)마다 왕관 쓴 달의 문장이 은실로 수놓여 웅장하게 펄럭였다.
1회차 때부터 여전히, 이 광경을 볼 때마다 압도되고 만다.
요정왕 발데마르와 성 은월(銀月) 친위대의 행진.
[긴급 퀘스트 : 아르츠레히드의 결사대 클리어.]– 레벨업 포인트를 (+6) 얻었습니다.
– 레벨업 포인트가 파티원들에게 분배됩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