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2)
가짜 용사 이야기-12화(12/310)
제12화
마족의 선봉, 우루크 육군 주력이 구공화국의 인페르노 라인을 마침내 돌파했다.
요새에 포진한 할테네(Haltene; 공화국 지방자치군)들은 섬멸적 타격을 받고 무너지거나, 인근 도시로 후퇴했다.
“이때 구공화국에게 중요한 요충지는 두 곳으로 추려진다. 각각 인페르노 라인의 좌우 끝단에 위치한 도시들이지.”
동남부의 수도 <테르베노플>.
남서부의 항만 <아리스타포>.
“이곳은 인류와 우루크 양쪽 모두에게 더없이 중요한 거점이었다.”
이 두 곳을 모두 빼앗기면.
우루크가 남해안의 해로를 통한 보급로를 내륙 깊숙이 열고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고 나면 중부 요충 <아우렐리노플>을 겨눌 것이고, 마지막 칠대도시 <아우렐리노플>마저 함락되면 구공화국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부족별로 흩어져 있던 우루크의 육군 부대는 방면별로 합쳐졌다. 발크루쉬를 필두로 한 <테르베노플> 공략군과 키랄을 필두로 한 <아리스타포> 공략군이다.”
4년간 산발적으로 계속된 전쟁은, 마침내 후속 마족들이 결집하는 가운데 총력전의 양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필두,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
차석, 샤론 알터 타스알포.
그리고 그때, 이 최고참 페이쿼리어인 두 여걸이 급히 파견된 격전지가 바로 이곳, 항구도시 <아리스타포>였다.
“그리고 제군들도 알다시피,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도 이때 이곳에 있었다. 오늘 배울 역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유년기의 끝,
아리스타포 공방전 (3)
“인페르노 라인이…….”
<아리스타포>로 내려가는 길에 지나친 요새들은 모두 처참하게 붕괴했는데, 핏자국과 시즙이 잔혹한 투쟁사를 증언하는 듯했다.
“아니 나리, 여기서부터 걸어서 가야 한다고요?”
“그럼 개새야, 철도가 다 박살 났는데 어떡하냐?”
“히잉.”
인페르노 라인을 하나의 요새처럼 연결하던 철도들도 철저하게 파괴되어, 열차로 편히 이동할 수 있는 시간도 지극히 짧았다.
“아인들이 깔아놓은 철도는 이래서 문제야. 평화로울 때나 쓸 만하지, 이런 시대에는 좆도 쓸모가 없다고.”
“그러게 기병을 키웠어야지, 카밀라. 우리 아이들을 좀 봐. 투정 한 번 안 하고 얼마나 착해.”
샤론의 흑장미 병단은 988명으로 구성된 최정예 총기병 부대였다.
마상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권총을 부렸는데, 장총 또한 안장에 비끄러매 때로는 보병의 역할도 수행했다.
제국의 기사(본래 가문의 수행 기사였다 한다) 열 명이 전위 역할을 수행해서 그런지, 그 돌파력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기병과 보병 역할을 둘 다 할 수 있다니, 꽤나 효율적이겠는데.’
카이센에겐 그렇게 보였지만, 카밀라는 콧방귀와 함께 중지를 세웠을 뿐이다.
“기병은 엿이나 처먹으라지. 마족과 싸울 때 중요한 건 돌파력이 아니라 저지력이야. 고정 진지에서의 싸움을 해야 한다고.”
“윗분들이 카밀라처럼 변혁을 두려워하니 전쟁에서 밀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
실제 페이쿼리어들은 자신들의 개성에 맞는 병단을 꾸려서 행동했다.
일례로 제7석 류넬 알터 가우므리스는 골렘에 탑승하는 거신병들이 주축인 기갑 병단을 지휘했다.
카밀라는 라미네아의 막하에서 일궈낸 무수한 승리 경험으로 전열보병 만능론을 들이미는 쪽이었고.
“너는 후일 어떤 병단을 꾸릴 생각이야, 카이센?”
“나? 내가 무슨 병단을 꾸려.”
“너는 카밀라 님의 제자잖아. 남자가 페이쿼리어가 된 선례가 없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카밀라 님의 제자였다는 데서 비롯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야. 네 휘하로 모이는 병력이 엄청날걸.”
“제자 아니라니까 그러네.”
짜증스럽게 고개를 젓자, 리아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내비쳤다.
“페이쿼리어 밑에서 검술을 지도받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정말 모르는 거야? 진심으로?”
“그냥 나는 카밀라에게 쓸모 있는 심부름꾼일 뿐이야. 서로 거래하는 관계라고.”
“카이센, 카밀라 님은 필두 페이쿼리어야! 심부름꾼 같은 건 필요 없어. 저분의 무위에 정말 너나 나 같은 심부름꾼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리아가 하도 진지하게 나오는 터라 카이센도 흠칫 당황하고 말았다.
카밀라의 무위……?
확실히 카밀라의 실력에 심부름꾼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도움을 준 건 사실 아닌가.
“저분에게 검술 한번 배워보고자 눈물까지 흘리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모두 내쫓겼어. 그런데 카이센, 너는 어때? 넌 엄청나게 위대한 분께 선택받은 거라고.”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었을 때 카밀라에게 예의를 갖추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모든 보물은 그것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되니까.
<아리스타포> 전선에 가까워질수록 열기가 한층 짙어지고, 짙게 흩날리는 화산재와 유황 냄새 때문에 얼굴이 따가웠다.
‘여름.’
태양의 열기가 화산재 속에서 이상하게 굴절되고 또 증폭되어, 여름의 태양은 발작을 일으킨다.
그 발작 속에서 병사들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맴, 맴, 맴, 맴, 맴…… 매미들은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그런 매미들의 비명이 완전히 묻히는 것으로 최전선에 도착한 걸 알 수 있었다.
“Kke────!”
우루크 족장의 호령에, 투박하고 조악하게 제작된 투석기들의 평형추가 일제히 퉁, 기울어졌다.
발사대가 허공에 커다란 호를 그렸는데, 투석 물체의 종류가 참으로 다양했다.
거석, 화염통.
그리고 인마(人馬)의 시체.
우루크 산병이 공성추를 들이미는 성문 쪽에서 비명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으나, 북소리에 묻혀 소리는 아득히 흩어졌다.
“저것들 봐라.”
카밀라가 팔짱을 낀 채 같잖다는 듯이 전황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육벽을 만들어놨네?”
옛 공화국 망루에서였다.
능선 위에 세워진 이곳은 본래 도시의 1차 방어 거점일 터였으나, 병단이 도착했을 때는 우루크 외곽 부대가 점령하고 있었다.
“후훗, 어떻게 할까?”
샤론이 말했다.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페이쿼리어는 일곱 명.
페이쿼리어 한 명 한 명의 전력이 모든 전장에서 필요한 시점에 두 페이쿼리어가 동시 투입됐다는 건 그만큼 전황이 급박하단 뜻이 된다.
“카밀라, 우리 둘이서 각자 천 마리씩만 잡으면 되지 않을까?”
“허세 부리고 앉았네, 미친년이.”
그때쯤이었다.
샤론 병단 소속 마법사가 입을 연 것은.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어요.”
빛의 나비, 루디옌들이 그녀 주위로 몰려들며 춤을 추는 광경을 보며 울프는 새삼 감탄했다.
제국의 무수한 마법사 중에서도 아주 희귀한 위광(僞光) 학파의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빛과 기적을 다루지 못하는 인류는 이를 마법으로 모방해 내고자 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위광 마법이었다. 그 창시자는 용현 레인 루드윅.
‘그렇기에 일각에선 3대 현자 용현(龍賢)의 후예들이라고도 불리는…….’
습득 및 사용 난이도가 높고 험하기로 유명했는데, 다들 정보전의 대가들이었다.
“대족장을 맡은 클랜은 정보대로 키랄. 현재 전장을 총지휘하고 있어요.”
“흥, 씹랄 놈들. 즈칸, 그 늙은이는 여전히 족장이고?”
“네.”
카밀라의 입매에 냉소가 서렸다.
지난여름에 스승님께서 그 노망난 우루크 새끼를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기어이 살아서 돌아왔군.
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키랄뿐만 아니라 하이 타르크의 옥시가르와 홀드림도 있어요.”
“상위권 하이 타르크가 셋이나?”
“예. 외곽 부대는 키랄의 젊은 거두인 수령 키슌이 맡고 있어요. 블라쉬우르프를 타고 다니는 기병대를 이끌죠.”
“후훗, 키슌뿐이겠어? 키란즈키 가가도 당연히 있을 것 아니야?”
키란즈키 가가는 키랄 클랜 최강인 여섯 명의 전사들을 뜻한다.
그 칭호는 딱히 개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구성원이 전투 중 사망한다거나, 다른 놈이 구성원에 비해서 엄청난 공적을 세워서 교체된다거나.
“숲이나 들판마다 인간 병사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어요. 원군으로 왔다가 기병대에게 전멸한 걸로 보여요.”
요한 울프 프로스트가 턱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흩어져 있던 할테네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도시 사령부와 소통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니…….”
“서부의 정예 병력 10만 명이 모두 도시로 들어갔어요. 발란드 왕국의 구원군도 오고 있고──”
마법사가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흘렸다.
“맙소사.”
“왜 그러시죠?”
“트롤, 트롤이에요! 전신 갑주를 걸친 트롤이라니…….”
트롤.
신장이 15척에 달하는 거인종.
나중에야 이들의 기갑 전력화가 당연히 여겨지나, 이때의 정신적 충격은 이루 설명할 길이 없었다.
“트롤이라니, 트롤을 공성 병기로 쓴단 말입니까?”
“저렇게 갑옷을 갖춘 트롤은 처음 봐요. 공성추를…… 아, 도시의 남문이!”
마법사의 설명은 이어지지 못했으나 이후 상황은 예측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강렬한 진동, 굉음, 우루크 포위망에서 솟구치는 전투의 함성들.
카이센은 카밀라의 아라다만텔이 웅, 하고 우는 것을 보고 부지중에 몸을 떨었다.
‘아라다만텔, 너도 곧 닥쳐올 피의 냄새를 맡았나…….’
전투는 가속화되었다.
방위군 결집을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이 한 줌의 군세가 인류의 전부였다.
100만에 가까운 적을 상대로 섬멸전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고작 이 한 줌이.
“승산이 너무 낮습니다, 도원수 각하! 이대로 후퇴해야 합니다.”
“저 말이 맞습니다. 이 병력마저 잃으면 중부 전선마저 손쓸 도리가 없어질 겁니다!”
도원수 크라우잔은 62세의 노장이었으나 그 몸에 스민 살기는 거대했다.
두노스 왕조의 병부령이자 인류 연합군 육군 장수였던 그는 ‘검은 여름’ 당시 다섯 번의 대전투 중 하나를 승리로 이끈 명장이었다.
우루크를 상대하기 위해 고안된 철새진 또한 그의 작품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이 사용하던 보병 전술은 모두 그에게서 파생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흐음, 나도 마음 같아서는 물러서고 싶다만 사실 법황청에서 온 긴급 서한이 있어서 말이지.”
“긴급 서한이라 하심은?”
“<아리스타포>에 전황을 뒤집는 것이 가능한 전술 병기가 있으며, 이를 무슨 일이 있어도 확보하라는 지시였네.”
전술 병기.
전술 병기라니까, 장교들은 그저 멍하니 듣기만 했다. 왜 그걸 진작 사용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은 내지도 못한 채로.
법황청의 공문서에 그토록 장려한 미사여구가 사용된 적은 여태껏 없었던 것이다.
“페이쿼리어.”
도원수의 호명에 카밀라와 샤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자네들의 활약에 이 전투의 승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그래.”
“이봐요, 변태 영감. 언제는 안 그런 적이 있긴 했단 듯이 말해, 왜.”
“핫하하, 나는 말이야. 이제 그만 좀 이기고 싶네. 저 더러운 마족 놈들을 상대로 그만 좀 지고 싶단 말이야.”
“동감이에요, 후훗.”
“<아리스타포>가 무너지면 아마 남부는 확실히 무너지겠지. 하지만 말이야, 법황청의 용들이 말한 ‘최종 병기’라는 걸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건 한 줄기의 희망.
막연한 희망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던 시대.
법황청의 ‘최종 병기’라는 것이 그 패색 짙은 전장에서 연합군을 하나로 묶기 위한 방책이었을까.
늘 만면에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크라우잔의 어조가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그대들이 저 도시 안으로 들어가 그걸 가져올 수 있겠나?”
새까맣게 나부끼는 화산재, 무너진 성문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우루크 전투 부대.
불가능(不可能).
비현실(非現實).
무리수(無理數).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두 여걸을 바라볼 때, 카이센도 카밀라를 말없이 지켜보았고 그 광경을 가슴에 새겼다.
용사는 불가능을 논하지 않는다.
용사는 죽지 않는다.
용사는 실패하지 않는다.
가짜라고는 하나, 용사라면 그 원칙을 반드시 지켜내야만 한다.
그것이 용사(勇士)니까.
그렇기에 그 모든 걸 다짐하고 또 약속하기 위해, 두 명의 용사가 절도 있는 경례를 올렸다.
“뭘 재고 그래? 평소처럼 명령만 내려.”
* * *
뿌우우우우우…… 쇠나팔이 거칠게 울고 북소리가 병사들의 발길을 이끈다.
120기의 골렘이 큰 발자국을 남기며 전진, 이들은 돌격 대형의 1차 방파제 역할을 수행한다.
그 뒤를 잇는 건 길이 2미터의 파르제논 장창. 이들이 2차 방어진이 되어줄 것이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아리스타포> 탈환이 아니다. 페이쿼리어들을 도시 내부로 들어설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지.”
4년, 4년이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류는 마족에게 짓밟히고 짓밟히고 또 짓밟히길 반복해왔다.
그 모든 전황을 뒤집을 단초가 바로 저 도시 안에 있다고 황룡들이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그걸 탈환해 내야만 한다. 인류 반격의 서막을 올리기 위해. 전원, 전투 준비!”
저 멀리서, 붉은 깃발이 수평선을 뒤덮으며 산개했다.
인간의 살가죽으로 만든 깃발이었다. 누군가의 부모의, 친구의, 자식의 핏물로 물들인 깃발들이었다.
고막을 터뜨릴 듯한 전투의 함성을 휘몰고, 적의 외곽 부대가 몰려온다.
“제1열 및 포병대 발사 준비.”
“제1열, 발사 준비!”
“포병대 발사 준비! 포탄 장전!”
처처처처처처척…….
창병 뒤에 도열해 있던 총병들이 일제히 총구를 쳐들 때 카이센은 말 위에서 숨을 골랐다.
‘전투 직전의 고양감.’
전신의 감각을 예민하게 일깨우는 긴장감.
칼이 내뿜는 차가운 쇳내.
그 냄새가 허파 깊숙이 들어가면, 육신의 혈관이 덩달아 서늘하게 물든다.
“포탄이 발사되는 것과 동시에 우회기동을 시작하겠어. 모두 준비.”
돌파 부대의 선봉을 맡은 건 샤론 알터 타스알포의 흑장미 병단이었다.
카밀라 병단의 부대원들은 마상 전투의 경험은 부족한 편이었으므로 본대의 예비대로 편성되어 돌파대에서 제외되었다.
단 한 명, 카이센을 제외하고는.
“또 숙제 하나 해야겠다.”
“?”
“샤론을 따라가. 중요한 임무다. 뭘 해야 하는지는 알겠지? 너 혼자서라도 그 특급 병기인지 뭔지를 갖고 나오라고.”
그 순간 리아는 귀를 의심했다.
그토록 막중하며 또 불가능한 임무를 맡긴다고? 하지만 더 어이없었던 건 카이센의 대답이었다.
“이번 건 좀 큰데, 초식 2개다.”
“이제 알려줄 초식도 없어, 상놈아. 하나밖에 안 남았다. 이른바 최종 비기지.”
아하, 이런 식이었나?
샤론은 상황이 참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나저나 카밀라에게 상당히 신뢰받고 있네.
“진짜겠지?”
“내가 구라 치는 년으로 보이냐?”
카이센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카밀라를 쳐다보더니, 끝내 태도를 납도하면서 일어섰다.
‘십문자도의 최종 비기라.’
이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단 건가? 그렇다면 이번 작전이 끝나면 발카로를 죽이러 갈 수 있으려나…….
“자, 그럼 모두들?”
샤론이 부하들을 돌아보며, 평소에 가면처럼 쓰는 미소와는 다른 진솔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너희와 함께 걸어가는 길 위에 승리가 있기를.”
그 이상의 말도 그 이하의 말도 필요하지 않다.
최고의 페이쿼리어가 전투 직전에 부하들에게 내비치는 진심.
부하들 모두 상관의 그 진솔한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는다.
“나리도 저런 멋진 대사 한 번쯤 해주시죠.”
장총 진이 눈동자를 능글맞게 굴리자 카밀라가 중지를 똑바로 세웠다.
“좆까.”
평소와 마찬가지로 진이 흠씬 얻어맞는 것으로 이 사달도 끝날 것 같았으나, 카밀라가 문득 부대원들을 돌아보았다.
“병단 규칙은 변한 거 없어. 한심한 놈이나 쓸모없는 놈은 다 두고 간다.”
“옙, 당연히 그러셔야죠.”
“하지만 느그들은 내가 하나하나 직접 뽑은 놈들이니 한심한 놈도 쓸모없는 놈도 없지.”
“……?”
“그러니까 이번에도 평소와 마찬가지야. 아무도 버리지 않는다.”
그 순간 귀를 의심하지 않은 자가 있을까.
늘 난폭하고 사납고 차갑기만 한 카밀라 나리께서…….
다음 순간 수인병들이 함성을 쏟아낸 것을 시작으로 용병들의 의기가 충천했다.
“포병대 발사!”
푸쉬이이익!
포탄에 장착된 대형 스팀코어가 가열되는 소리에 이어.
퍼버버버버벙…… 둔중한 발포음이 화산재의 허리를 가르고 울려 퍼졌다.
“전진!”
그것을 신호로 샤론이 말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했다.
“전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