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20)
가짜 용사 이야기-120화(120/310)
#16 :
[00. 튜토리얼 결산] 시청자들 (1) [게임 : 일시정지]라는 황당한 알림을 받은 건 왕을 알현하고 있을 때였다.싱글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시정지가, 666명이 판돈으로 목숨을 걸고 있는 게임에 걸렸다고 생각해보라.
“자네 이름이 에델 바이스라고 했더냐?”
“그렇습니다, 전하.”
그때 나는 아르츠레히드와 요르한 3세의 양쪽에서 말을 몰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 또한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왕이 아르츠레히드만 소환해서 독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롤드의 보고를 받았지. 백성과 병사. 양쪽 모두가 백의의 마법사의 영웅담만 늘어놓는다더군.”
증기가 힘없이 솟구치는 가운데 옥음(玉音)이 맥없이 떨렸다.
이제는 모두가 안다.
의수왕 요르한 3세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부왕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말이야……. 임금에게 복이란 곧 참된 신하들을 얻는 것이라는 말이었어.”
왕의 시선이 아르츠레히드에게서 나에게로 건너왔다. 그 총명한 영웅의 눈빛이, 나를 보았다.
“요정들은 내가 신들의 저주를 받았다고 말한다. 버림받은 것이라고. 이 몸이 그 증거라고. 내가 부왕의 말을 지금까지 받들고 있는 건, 어쩌면 그 말을 어떻게 해서든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전하.”
“하지만 오늘에 와서야, 자네들을 만나고 그것이 내 조촐한 자위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군왕의 진리였어. 아아……, 그래. 나는 단언컨대 역사의 그 어느 왕보다도 많은 복을 받은 왕이야.”
뭐지, 이건 완전히 처음 듣는 말인데…… 가슴이 마구 뭉클거리는 걸 누그러뜨려야 했다.
[최고위 NPC, 요르한 3세가 당신에게 격한 총애를 보입니다. 호감도 +25] [요르한 3세의 호감도가 (72)가 되었습니다. 청할 경우, 친위대로 서임받을 수 있습니다.]친위대라고?
너무 황당해서 입을 다물었다.
이제 나는 평범한 영목 기사가 아니라, 친위대가 될 수 있었다.
이건 제롤드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과는 장비의 질과 영향력 자체가 다르다.
친위대가 될 경우, 이데아 반도의 인류 영역 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기사단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단 게 중요하다.
“부족한 몸이지만, 전하를 섬길 수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고맙다는 말밖에는 못 하겠군. 아쉽게도 내 몸은 서임식을 치러줄 만한 여력도 없는 것 같으니……. 성도로 돌아가서 제롤드에게 내 뜻을 전하게. 자네에게 필요한 것을 내어줄 테니.”
이런 기회는 놓쳐선 안 된다.
안 그래도 성도의 메인 퀘스트에서 벗어나 트라이폴로 갈 예정이었는데.
[축하합니다! 당신은 요르한 3세의 (친위대)가 되었습니다. 주군의 권세를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데아 반도 영향력이 +2680 (+2580)이 되었습니다.]2580!
역시 소국이지만 왕은 왕이다.
박현수도 같은 보상을 받기를 바랐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르츠레히드가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전하…….”
“고맙다, 아르츠레히드. 자네도. 에델.”
심장이 격렬하게 떨려왔다.
왕의 화법은 난해했지만, 그 속뜻은 분명했다.
‘경들 같은 신하를 둔 것이 기쁘다’라는 말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뭉클할까. 알지 못하던 패턴을 보았기 때문일까.
내가 요르한을 좋아하던 건 사실이지만, 그의 근본은 NPC에 불과한데 말이다.
[집행 관리자 명령 : 게임이 일시정지 됩니다.]그 순간 모든 소음이 멎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숨을 삼키려 했으나 숨조차 삼켜지지 않았다. 내 캐릭터도 정지되었던 탓이다.
말이야 게임의 일시정지지, 멀티플레이 게임의 일시정지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주로 한국에서 서비스하는 K-RPG 게임들이 패치 후 버그가 속출하여 임시 점검을 할 때 하는 짓인데…….
<황녀를 위하여>에서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황당한 사건이 연속되자 뒷골이 깨질 듯이 아파왔다.
엘리트 나이트가 등장한 것부터 요르한 3세를 대면한 것과 일시정지까지…….
[튜토리얼 정산이 시작됩니다.]다음 순간에야 나는 숨을 들이켤 수 있었다.
캐릭터의 일시정지 상태가 풀린 것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낯선 장소로 전송되어 있었다.
5개의 영좌(靈座)가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우린 그 관심의 중심부에 앉아 있었다.
서로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서로가 엘리트 플레이어라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엘리트 나이트] [엘리트 어쌔신] [엘리트 아처] [엘리트 헌터]이런 시스템 문구로 얼굴이 가려져 있었으니까. 속박된 것인지, 팔다리는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이야, 엘리트 플레이어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벌써 제 얼굴을 잊은 건 아니겠죠?」
또 낯익은 목소리.
중앙의 원. 다섯 영좌가 둘러앉혀진 그 원에서 양복 차림의 미소녀 셋이 나타났다.
소녀들 가운데 서 있는 건, 양복에 우산을 든 기괴한 소녀 샬류안이었다.
배틀로얄의 관리자들이구나.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모든 튜토리얼이 종료된 지금! 시청자분들의 유료 후원 시간이 온 거니까. 후후후. 이건 축복이라고요? 단번에 경쟁자를 앞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요.」
알겠다. 처음에 숨이 막힌다고 느꼈던 이유를.
주변에서 무수한 ‘시청자’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탓이다.
그 시선은 섬뜩했다. 동물원의 짐승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같은 인간의 시선은 절대 아니라는 걸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이, 부활이나 로또 연속 당첨 같은 건 누워서 떡 먹기라는 자들인가.
「1장부터 조우한 엘리트들까지 있고. 이야. 진짜 재밌네요. 진행 속도도 장난 아니고. 이번 시즌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죠? 시청자 여러분?」
[시청자들이 갈채를 보냅니다.] [VIP, *$%$루#가 모든 엘리트 플레이어에게 레벨업 포인트를 (+2)씩 후원했습니다.]「와우! 시작도 안 했는데 제대로 쏘시는 분 나오셨네. 아, *$%$루#분이셨구나! 반가워요. 이번에도 처음부터 출석하셨네요!」
[레벨업 포인트를 (+2) 얻었습니다. 능력치를 올리세요.]황당하다.
진짜로 받았다고?
「후후, 더 쏘실 분들 없으시죠? 좋아요. 지금부터 중간 정산에 들어가 보도록 할게요. 오늘은 일등상과 이등상만 다룰 겁니다.」
샬류안이 박수를 치자 허공에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영상 상단에 [일등상]이라는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갑자기 샬류안이 뒤로 물러섰고 붉은 머리의 미소녀가 앞으로 나섰다.
「배틀로얄 MMORPG 사상 가장 미친 여자! 엘리트 어쌔신, 탕옌의 활약은 이 이등 관리자 쟈렌키가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들이 흥분으로 미쳐 날뜁니다!]
갈채와 휘파람 속에서 영상이 재생되었다. 반면에 엘리트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야유를 뱉었다.
나도 그랬다.
어쌔신의 스타팅 튜토리얼은 대륙 남부였다. 그리고 저건 <황룡의 정원> 튜토리얼이고.
「엘리트 어쌔신의 튜토리얼은 최대 정원 30명인 튜토리얼이죠. 히히, 지금부터 잘 보세요!」
야유의 이유?
이름과는 달리 저렇게 쉬운 튜토리얼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별다른 적수가 없어서 생명의 위협도 없으니…… 어?
[시청자들이 광란의 도가니에 빠집니다!] [골드 멤버십, 루*Bxz$@가 엘리트 어쌔신에게 레벨업 포인트 (+1)을 후원합니다!] [VVIP, OD*&X가 엘리트 어쌔신에게 레벨업 포인트 (+7)을 후원합니다!]다음 순간 이 말이 무심결에 튀어나오고 있었다.
미친놈인가?
어쌔신은 인터페이스가 활성화되자마자 단검을 꺼냈다.
그걸로 옆에 있던 스타팅 NPC의 아가리에 칼을 박았다.
순간, 돌아서며 뒤에 있던 플레이어의 머리통을 칼로 찍었고 그 플레이어의 장검을 뺏어들었다.
이후 다른 플레이어들을 비슷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살인의 이유는 명약관화했다.
동일 튜토리얼 내 플레이어와 NPC의 몰살.
바로 [업적 : 학살자]를 따냄으로써 +15의 레벨업 포인트를 따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골 때리는 건 그다음부터였다.
「저 장면이 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시군요? 히히히, 이 튜토리얼은 본래 황룡의 알을 황녀에게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쌔신이 뭘 했을까요? 그래요! 그 알을 깨서 자신이 먹고 있는 겁니다!」
황룡의 알을 칼로 찍어서, 계란 먹듯이 빨아 먹고 있었다.
저 행위의 이유는…….
전용 특성, ‘황룡의 용혈’을 개방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말 낮은 확률로 페이쿼리어(Fakewarrior; 가짜 용사) 특성이 열리거든.
[시청자들이 엘리트 어쌔신의 광기와 만용에 진심으로 감탄합니다. 전체 후원 레벨업 포인트가 (+15) 들어왔습니다.]황룡의 용혈로 페이쿼리어를 노리는 거라면, 녀석도 기존에 헌터나 나이트 클래스였나?
아처일 확률도 있었다.
페이쿼리어들의 무기에는 궁검이라는 특수 무기도 존재하니까.
페이쿼리어는 세계관 설정상 여성 플레이어만이 할 수 있는 특성인데, 진짜 존나게 세다. 일반 특성과는 규격 자체가 다르다.
극위성검이라는 최고 무기를 쓸 수 있게 되고, 수명을 힘으로 전환시키는 스킬도 생긴다.
그냥 되는 순간부터 신체 능력이 엄청나게 부스팅 되긴 하는데…… 과연 엘리트 어쌔신의 특전을 포기할 정도일까? 어쌔신 특전이 얼마나 쓰레기이기에?
하지만 저건 미친 짓이었다.
알을 까먹는다고 100% 개방된다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 분노한 황룡이 나타나는 이벤트가 발생하니까.
역시나 진노한 황룡이 등장했으나 어쌔신은 여유로웠다. 최후의 황룡, 글리아륜.
엘리트 어쌔신은 알을 마저 빨아 먹은 뒤 달아났다. 용케 10분간의 집요한 추격을 벗어난 뒤 튜토리얼을 ‘실패’했다.
‘실패’했다지만, 이 게임은 튜토리얼 지역을 살아서 벗어날 경우 게임 오버 당하지는 않는다.
메인 퀘스트의 궤도에서 벗어날 뿐이지.
「지금부터 3분 동안만 더 후원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엘리트 어쌔신의 성장이 기대되시는 분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새삼 깨닫는다. 내가 어떤 미친놈들을 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것인지를.
엘리트 어쌔신은 총합 +40의 후원을 받았다.
저 또라이가 한순간에 40레벨을 앞서서 성장하다니,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흘렀다. 상을 받으려면 저런 미친 짓을 해야 한다고?
이 ‘중간 정산’은 무언의 압박을 주기 위해 설계된 거군…….
이건 자신들의 유희니까, 엘리트라면 마땅히 저런 자극적인 플레이를 행해줘야만 한다고.
「자, 엘리트 어쌔신. 탕옌 씨, 후원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한번 해주시죠.」
이 중국 사이코 여자는 현실 판단도 빠른 놈이었다.
순간적으로 팔다리의 통제권을 얻었는지, 벌떡 일어서더니 절을 꾸벅 했다.
“더 열심히 미친 짓 하겠습니다.”
「우하하하하하! 진짜 재밌는 분이네.」
[시청자들이 낄낄거립니다.]내 플레이, 너무 정상적인 궤도에서 맴돌고 있는 거 아니야?
정상적인 궤도에서 비정상적으로 빨랐을 뿐, 그것조차 엘리트 나이트한테 추월당했고…….
봐라, 어쌔신은 미친 짓 한번으로 40레벨을 얻었다. 내가 히든 퀘스트 보상으로 피똥 싸서 받아낸 게 +10인데.
<황녀를 위하여>는 협력도 절실하나, 플레이어 개인의 기량 또한 절대적인 게임…… 특히 이런 배틀로얄에선 말할 것도 없다.
저 여자가 한순간 강해져서 내 목을 따러 온다면?
그때 애써서 키운 박현수나 사쿠라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동료로 영입한 그 둘의 목을 딴다면 내게도 상을 줄까? 그것도 미친 짓이라면 진짜 미친 짓인데.
하지만 스스로도 잘 안다.
그딴 짓은 절대 못 할 거라고.
아무리 배틀로얄이라지만, 같은 편, 그것도 내 공대원들한테 그딴 짓을 할 것 같냐……. 통일 전쟁 때도 부하를 버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후후! 이등상은 일등 관리자, 저 샬류안이 직접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더 들을 필요가 있나, 어서 되돌려 보내줬으면 했다.
미친 짓 한번 하지 않았는데 뭘.
이등상은 도대체 누가 받는 거지? 7명이나 전투원을 확보한 나이트 녀석인가?
그것만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상황은 최악,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최악이 된다.
「관리자들이 선정한 이등상은 일등상과의 점수 차이가 단 2점! 정말 아쉬운 차이였죠.」
샬류안이 장우산으로 땅을 내려치자 다른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이등상]나는 고개를 숙였다. 제기랄.
「자아! 지금부터 집중! 배틀로얄 시작 전부터 시청자 여러분의 사전 투표 1위를 차지한 남자! ‘이 플레이어 정말 기대된다’도 1위! 클리어 경험이 무려 7회에 달하는 전설적인 유저!」
7회차? 설명이 친숙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샬류안의 우산 끝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 요사스러운 눈동자로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온몸의 소름을 매만지며 침을 꼴딱 삼킵니다.]「클리어 확률 0.627%! 극악의 튜토리얼이었죠. 아아! 하지만 이 남자는 기어이 살아남고 말았습니다! 관리자들조차 잊고 있던 버ㆍ그ㆍ플ㆍ레ㆍ이로 말이죠!」
일순, 장내에서 함성과 갈채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고막이 터질 정도였다.
「지금부터 엘리트 소서러! 정철의 활약상을 시청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그 환호성 또한 나를 향하고 있었다. 당혹스러웠지만 왜일까.
마치 게임처럼, 다음에 들릴 알림을 막연하게나마 예상해볼 수 있었던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