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22)
가짜 용사 이야기-122화(122/310)
#18 :
[5. 트라이폴] 버그 플레이어“트라이폴에는 두 부류의 적이 있어.”
새벽녘을 뚫고 남서쪽으로 힘차게 달리는 증기기관차 내부에서 사쿠라이에게 설명했다.
“하나는 ‘놈들’이고. 또 하나는 플레이어.”
“놈들?”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 정식 명칭은 아직 입에 담지도 마.”
“왜요?”
“누군가가 그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반응하거든. 심연의 종복들은 대부분 그래.”
그리고 마침내, 열차가 기적을 내뿜으며 정차했다. 3시간, 캐슬베이아에서 남서부의 트라이폴까지 걸린 시간이다.
트라이폴은 번창한 항구였다.
이 언덕 위에서 부두에 끝없이 늘어선 증기선들이 보였다. 증기선들이 뿜는 매연으로 항구는 새까맸다.
잡역부들이 배를 쉴 새 없이 오르고 또 내리며 짐들을 하역해 수레나 마차 따위에 싣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초반 구간에 폭발적인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장소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긴 하지만.
[새로운 지역 : 트라이폴 항만.]* * *
트라이폴 남문(南門).
“저, 정말입니다. 나리.”
청년 위병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었다.
“밤이면 바닷가에서 끔찍한 울음이 들립니다. 시민들도 하나둘씩 실종되고 있고요!”
“그리고?”
“그, 그리고 전, 전, 보았습니다. 어, 어, 어부를 바닷가로 끌어 내려서 생살을 뜯어 먹는 괴물들을요…….”
다 알면서도 새삼 소름이 돋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놈들’이다.
“그게 언제지?”
“어, 어제입니다! 저, 정말입니다! 위병장님에게도 말씀드렸지만 전혀 들어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겠지.
패턴이 여기까지 왔으면 위병장도 이미 놈들 중 하나가 되었을 테니까.
“부둣가에서 들려온 울음은 언제부터 소문이 퍼졌나?”
“사흘이 채 안 됐습니다.”
사흘이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떤 플레이어가 나를 제치고 트라이폴의 핵심 퀘스트에 접근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놈들이 벌써 등장했을 리가 없다.
<잊혀진 왕들> 가운데 하나…… 수런거리는 광기, 슈’율큘라의 하수인.
어인족(魚人族), 루틀웨.
여기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니다.
서두르고 있는 거지.
이 위병 NPC와의 마지막 대화가 바로 그 퀘스트의 핵심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니까.
“병사, 성내에 가족이 있나?”
“어, 어머니가 계십니다!”
“말 타는 방법은 아나?”
“예? 조금은.”
“이걸 타고 어머니를 모시고 성에서 달아나게. 곧장 엔더스킵으로 가. 거기서 ‘에델 바이스’라는 이름을 대게. 내 이름이야.”
“기사님……!”
나는 지금 기사였다. 정확히는 힘법사지만.
[아이템 증정 : 준마] [NPC, 위병 켈만이 당신을 향해 깊은 호감을 품습니다! (+35)]현재 장비는 영목 기사단 갑주.
마법사 특성에 맞지 않지만 무리해서라도 착용했다.
영목 기사단 의장은 NPC나 플레이어 양쪽을 상대할 때 유용하기 때문이다.
“기사님, 이걸 말하면 전 죽을 수도 있지만…… 보답은 해야겠지요.”
자, 지름길이 제시될 시간이다.
[서브 퀘스트 도착 : 시간이 멈춘 거리.]– 트라이폴 중앙 거리의 시민들은 노쇠하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위병 켈만은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당신에게 이 소문을 전해 주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 경고 : 심연(深淵)의 기운이 짙게 느껴집니다.
아주 지랄맞게 힘든 퀘스트에 반드시 붙는 경고문이다. 제대로 골라 왔단 소리다.
“기이한 소문이군. 하여튼 서두르게.”
“감사합니다!”
위병은 미숙한 동작으로 말을 몰아 성내로 달려 들어갔다.
플레이어들을 영입한 뒤 해결하려던 퀘스트였건만…… 누군지는 몰라도 최소 3회차 유저야. 놈이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여유를 부릴 틈은 없어졌다.
중앙 거리의 시민들이 바로 루틀웨들이니까. 그리고 그 위험천만한 지역에 『클라에논 단장(斷章)』이 숨겨져 있다.
<잊혀진 왕들>을 상대하기 위한 고대신의 주문이 필사된 그 서적이.
사쿠라이가 속삭였다.
“퀘스트 설명만 봐도 무서워요.”
“직접 보면 더 끔찍해.”
예언서 『클라에논 단장』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했다. 거기에 《엘더 사인》이 무려 3개나 적혀 있으니까.
후반부 <잊혀진 왕들> 레이드에서부터 《엘더 사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공격대가 게임의 패권을 쥐게 될 것은 자명했다.
“근데 왜 안 가요?”
“왜 안 가겠습니까, 챌린저 누님. 기다리는 놈이 있으니 그렇겠죠?”
곧 우락부락한 인상의 위병장이 씩씩거리며 달려왔다.
“저놈이에요?”
“그래, 빠른데?”
도착한 게 빠르단 게 아니다.
위병장은 벌써부터 슈’율큘라의 축복. 즉, 어인화(魚人化)가 진행되어가고 있던 것이다.
사쿠라이가 내 다리 뒤로 슬그머니 숨었다.
“기사님. 저 녀석을 왜 보내신 겁니까? 여긴 제 관할이고 녀석은 제 부하였습니다!”
“무례한 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찢는 거냐!”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위압》을 시전합니다!]– 영목 기사단 갑주가 《위압》의 위력을 47% 증폭시킵니다!]
– NPC, 위병장 바루단이 위축되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안 그래도 병사의 숫자가 부족한데…….”
“오호라. 천한 네놈이 지금 왕의 친위대에게 일 처리를 따져 묻겠다는 소리구나. 어디 한번 계속 해봐라.”
“아닙니다요!”
“계속 해보라니까?”
[NPC, 위병장 바루단이 당신에게 완전히 굴종합니다!]“잘못했습니다, 나리!”
당황해하는 위병장의 양쪽 보조개 뒤쪽으로 아가미 같은 주름이 뻐끔거렸다. 어인화의 흔적이다.
“한 가지 묻겠다, 위병장.”
“아, 아는 선에서 최대한 열심히 대답하겠습니다.”
만약 내가 [아르츠레히드 결사대]로 지위를 다져놓지 않았더라면, 녀석의 무례함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아니, 지금처럼 잠식된 상태이니 내게 아가리를 쩍 벌리고 그 끔찍한 물고기 이빨들을 겨누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도시 내에 모험가들은 몇 명 정도 있나?”
“그 잡벌레들 말씀이신지? 외지에서 온?”
“그래.”
잡벌레는 게임에서 초보 플레이어들을 NPC들이 일컫는 속어였다. 아무것도 모르니 떠돌고, 도시에 빌붙는 유저들.
“스무 명 정도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것들이 말썽을 부리지 않은 지도 이틀 정도 됐군요.”
“사라졌다고?”
“예. 근데 갑자기 다 사라졌습죠. 속이 다 시원합니다. 이상하지요. 성문을 통과한 기록이 없던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예 행방을 감췄던데요.”
손끝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지금, 여기서 이놈을 족쳐야 하나? 루틀웨들에게 잡아먹힌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루틀웨가 그렇게 대놓고 나타났다면 도시가 이렇게 잠잠할 리가 없는데.
그러면 플레이어인가? 탕옌 같은 사이코 플레이어가 죄다 학살해버린 건가?
원래대로라면 이런 퀘스트가 왔어야 하는데.
[서브 퀘스트 도착 : 플레이어들.]– 번영한 항구 트라이폴은 예로부터 모험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였습니다.
– 다른 플레이어들을 찾아보고 힘을 합치세요!
* 만난 플레이어 0 / 4
보상 : 레벨업 포인트 (+2)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뭔가가 벌어지고 있었다.
리샤르 후? 아니, 요정이 침입했다면 도시는 루틀웨가 출현한 것보다도 더 난리가 나 있어야 해.
“돌겠네. 제대로 돌아가는 퀘스트 하나가 없어요.”
“예?”
“그 앞에서 꺼지라고 했다.”
위병장이 황급히 비켜섰다.
일단 사쿠라이를 데리고 성문 옆 마구간부터 들러 당나귀를 샀다.
“말 탈 줄 모르는데요.”
“슬슬 배워야 해. 하지만 오늘은 아냐. 고삐는 내가 잡을 거니까.”
사쿠라이가 당찬 꼬마라고는 하나 본질적으로 비전투 클래스다. 적의 표적이 되기에 안성맞춤.
하지만 나귀에 태우고, 대검을 등에 찬 기사가 종자처럼 소녀를 수행한다면 그 ‘소녀의 외형’은 무기가 된다.
세도가의 아가씨로 보일 테니까.
“플레이어인 것처럼 도시를 훑어보지 마. 알겠어?”
“네.”
“당나귀는 군마가 아니야. 피를 보면 흥분한다. 그때 목을 만져주며 잘 달래야 해. 굴러떨어져서 머리통 깨지기 싫으면.”
“곧 피를 본단 말이네요?”
“아마도.”
고개를 끄덕인 뒤, 중앙 거리로 이동했다.
슈’율큘라에게 잠식되어 가는 도시는 곳곳에서 섬뜩한 기운을 풍겨내고 있었지만, 아직 외곽 지대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공포 수치 : 24%]– 캐릭터가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떱니다.
중앙 거리로 향하기 전에 노상 거리에 간단한 볼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NPC 구출이다.
그 사소한 선행이 트라이폴 메인 퀘스트로 진입하는 열쇠가 된다는 걸 몇 명이나 알까. 『클라에논 단장』은 메인이라기보다는 히든 퀘스트에 가까우니까.
“사과 하나만 먹어보면 안 돼요?”
사쿠라이가 주변 노상을 훑으며 군침을 흘렸다.
나중에 찡찡거리는 게 귀찮을 성싶어서 하나 사주었다. 사과는 동화 2닢. 얼마 하지도 않는다.
이쯤이면 나올까 싶어 주변을 서성거린 지 10분. 그때 사쿠라이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오빠, 저기 누가 있어요.”
그쪽으로 조심스레 시선을 돌린 순간, 심장에서 경련이 이는 것을 느꼈다.
뭐야, 뭐지?
지금 무언가가 엄청나게 잘못되었거나 또는 위험하다는 본능적인 깨달음이 왔다.
“오빠, 저거 플레이어예요. 레벨이 나와요.”
소년, 소년이었다.
평범한 외모에 주근깨가 점점이 박힌 서양인 소년이었는데, 양손으로 책을 안아든 채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중요한 건 외모 따위가 아니다.
저 책, 바로 저 책이 문제였다. 저 낡고 부식된 뱀 가죽 장정의 고서 말이다.
“『클라에논 단장(短章)』……?”
그 멍한 중얼거림에,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 안 돼요!”
그 말이 들리자마자 주변의 정경이 부옇게 부서지며 어지럽게 돌았다.
눈을 세 번 정도 끔뻑였을까.
나는 웬 피바다 위에 서 있었다. 피비린내가 코를 아찔하게 찌른다. 사체들이 징검돌처럼 놓여 저 앞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환상 결계?”
긴장감으로 전신의 근육이 전투태세로 전환되며 곧장 등에 찬 대검으로 손을 뻗었다.
“오빠, 튜토리얼 때랑 똑같이 이상한 곳으로 옮겨진 건가요?”
“아니, 여긴 실제 공간이 아니라 결계 내부 공간이야.”
하지만 이렇게 순간적으로, 환술에 빠지게 한다고……?
눈이 마주치고 목소리를 들은 게 전부인데? 그 꼬맹이, 엄청난 환술사인 건가?
그러나 시스템 로그가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했다.
[???, ???가 결계 스킬 《???》을 시전합니다!]물음표라니?
아니, 이딴 버그가 다 있나?
플레이어인지 NPC인지도 표시가 안 되고, 이름도 스킬 이름도 표시가 안 된다고?
“버그? 게임 좀 할 줄 아는 녀석인가?”
“오빠도 저런 버그 쓸 줄 알아요?”
“나도 모르는 버그야.”
엘리트 나이트일지도.
그런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았지만 영특한 이 꼬맹이도 그걸 알아들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버그고 뭐고 저 총 좀 주세요. 저 챌린저 원딜이에요. 총 오지게 잘 쏜다 이거죠. 제가 엘리트 나이트 대가리에 구멍 뚫어 버릴게요.”
오우야…….
이것이 일본의 중학생인 것입니까?
그때 저 사체의 징검돌을 밟으며 누군가와 걸어왔다.
“조무래기를 24명 죽이니 드디어 대어가 걸렸군.”
조무래기 24명?
피바다에서 꿈틀거리는 사체들의 얼굴을 흘끗 보자 전투의 긴장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인종이 다양했다.
이 세상에는 황인이 없다.
이목구비는 백인과 똑같지만 피부가 짙게 탄, 흑인 비슷한 인종이 존재하긴 하는데 아드리온 대륙이 멸망하면서 극소수를 제외하면 종적을 감췄단 설정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사이코 플레이어냐?”
조명은 결계 공간 상부에 위치한 붉은빛 광원 하나, 그렇기에 놈의 형태를 정확히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뭐…….
이런 악취미적 결계를 꾸리는 걸 보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아, 개같이 빡치네. 공대원 발품 팔려 왔더니. 욕설이 미친 듯이 튀어나왔다.
“야, 이 개새야. 뒤질래? 아, 안 그래도 엘리트 나이트 때문에 머리 터질 것 같은 상태인데.”
그런데 놈의 반응이 이상했다.
“플레이어냐고?”
“너 일로 와 봐. 형 진심으로 화났다.”
“흐흐흐흐, 흐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조차도 뭔가 기이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웃음, 분노를 방출할 방법이 없어 웃음으로 방출하는 느낌이었다.
“나를 너희들 같은 쓰레기와 똑같이 보지 마라. 다른 세계를 제물로 바쳐서 소원을 이루려 하는 패악의 존재들아.”
“오빠, 저 사람 미친 거 같아요! 이상한 컨셉질을 하고 있어!”
“원래 사이코 짓거리 하는 놈들이 대부분 저래. 너에게 총을 안 준 걸 땅을 치며 후회한다. 저 미친놈 대가리에 구멍을 뚫어줬어야 했는데.”
“그쵸? 내가 누구? 챌린저 원딜, 헤드라인 에임 쩐다고요. 타타탕! 그냥 트리플 킬, 쿼드라 킬! 사쿠라이 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사쿠라이가 손가락 총으로 놈을 놀리던 그 순간, 등판이 식은땀으로 싸늘하게 젖었다.
진짜 뭐지, 이 자식…….
왜 머리 위로 레벨창이 안 뜨는 건데? 쓸 줄 아는 버그가 대체 몇 개야?
“영목 기사단의 갑주라, 이 세계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대단도 하군.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대체 몇 명을 기만했고 몇 명을 죽였지?”
“너 대체 누구냐? 설마 리샤르냐? 버그로 꼴값 떨지 말고 나와. 약속한 대로 모가지 따줄게.”
리샤르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놈은 본래 마법사 플레이어였던 것 같으니까.
근데 그놈이 이런 성격을 갖고 있었나? 저번에 만났을 때는 지극히 플레이어다운 놈이었는데.
“그 죄악, 죽음으로 사죄해라.”
그 당혹스러운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탁, 놈이 기도하듯 양손을 깍지 껴 맞잡았다.
합장(合掌)……?
제국 마법의 7성 체계에서, 즉 대현자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 요컨대 몇 안 되는 7성 기술이었다.
즉, 이건 블러핑이다.
벌써 저걸 쓸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을 리가 없으니. 그래도 저걸 알고 있단 건 다회차 플레이어란 소리가 된다.
“칼의 사도, 네 피비린내를 세계 구원의 제단에 향불로 바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