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24)
가짜 용사 이야기-124화(124/310)
#20 :
[5. 트라이폴] 퀘스트의 혼재‘아, 아파…… 놔줘, 제발…….’
눈을 질끈 감았다.
꿈처럼, 숨을 참고 죽은 척을 하면 자신의 존재를 잊을 것만 같았으니까.
“뭐? 시간을 걷는 자?”
그제야 리암의 눈이 사쿠라이를 보았고, 곧 인식했다.
[경고 : 안리달의 사냥개들이 시간축의 균열을 찾아냈습니다!]그 눈동자에서 황당하단 듯한 기색이 스쳤다.
바로 그때였다. 사쿠라이 양옆의 시공간이 부자연스럽게 찢어진 것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튜토리얼의 그 균열이었다.
켈렉─샼이라는 존재가 기어 나오던 바로 그 균열이었다.
끔찍한 악취가 진동했다.
이제는 저것이 심연의 악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AUUUUUUUUUUU……!
사냥감을 쫓는 울음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시공의 균열에서 사냥개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혓바닥을 섬뜩하게 빼물더니 게걸스레 내밀었다.
그 눈동자가 무려 3개였다.
“젠장할, 그 아이를 놔줘!”
사냥개가 아가리를 벌렸었다.
머리가 하얗게 굳었다. 아귀 속은 끝없는 암흑이며 심연이었다.
「안리달인가. 옳다. 금기를 범한 자는 그대의 판결에 맡기는 것이 옳겠지.」
사냥개의 아가리가 사쿠라이의 머리통을 집어삼키려던 그 순간.
[『*L4#@논 단장』이 이제 됐다고 말합니다.]또 다른 균열이 사쿠라이의 머리 위에서 찢어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쿠라이가 간절히 기다리던 그것이 마침내 온 것이었다. 균열 속에서 뻗어 나온 건 정철의 팔이었다.
[전용 특성, 《세계의 기억》이 『거울의 기사, 리암』을 읽었습니다.]정철의 팔이 소녀의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당신은 영웅시대의 이야기를 ‘직접’ 목도했습니다! 《세계의 기억》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Lv.22 -> Lv.40.]하지만 역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손에 끌어 올려지자마자 사냥개의 턱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사냥감을 놓치고는 섬뜩하게 울었다.
슈’율큘라의 반응은 민첩했다.
「놈! 쉬이 달아나게 둘 성싶으냐!」
촉수가 다시 소녀를 겨누고 달려들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이번엔 죽일 기세였다. 원시적인 공포가 숨을 억눌렀다.
“개자식, 그렇게 놔둘까 보냐!”
촉수가 소녀의 손목을 휘감으려던 순간. 비췻빛의 빛줄기가 촉수를 꿰뚫고 지나갔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 빛에 닿은 촉수는 흡사 재가 흩날리듯 허공으로 잘게 부서져 내리는 것이다.
[NPC, 거울의 기사 리암이 기적 《신성의 업화 Lv.Max》를 사용했습니다!]고통에 겨운 비명이 고동쳤다.
「으으으으으으으음!」
섬광이 사출되어온 방향은 리암.
정확히는 그 거울 방패였다.
리암과 눈이 마주친 다음 순간, 소녀는 균열 밖으로 꺼내졌다.
[영웅시대의 이야기를 한 번 더 읽을 경우 숨겨진 직업 《신화의 사자(使者)》로 각성합니다. 현재 2 / 3.]눈을 떴을 때는 빛의 세계였다.
무겁게 내려앉았던 감각이 다시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현기증이 났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축축했다.
그때 누군가가 소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정철이었다.
“인생 최대 업적이 LOH 챌린저인 채로 죽고 싶었냐? 장례식장에는 영정 사진 대신 ‘생전 고인의 개 쩌는 플레이’가 올라가고?”
참고 또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 * *
“아슬아슬했어요.”
침상에서 사쿠라이의 상태를 살피던 가이네이브가 말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심연에 먹혔을 거예요.”
가이네이브의 실력은 잘 알고 있다.
이 아리따운 금발 숙녀는 성직자 NPC.
발군의 실력은 갖췄으나 뒷줄이 없다는 설정을 가졌기에, 대륙의 출셋길에서 멀어져 이 트라이폴에 와 있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문가에 기대서면서 겨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주저앉아 있던 피터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놈은 자기 때문에 사쿠라이가 위험에 빠진 줄 알고 이곳 지하 은신처로 이동하는 동안 줄곧 안절부절못했던 터였다.
“훌륭한 성직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만약 메인 퀘스트와 히든 퀘스트가 동시에 발동하지 않았더라면, 이 주교급 성직자의 도움도 받지 못했을 터였으니까.
“아뇨, 굳이 제 힘이 아니었더라도…… 혹시 이 아이에게 가호 같은 것이 있나요?”
“가호라뇨?”
의아했다. <황녀를 위하여>에서 가호란, 사도로서 신들에게 받는 총애를 의미했다.
<온 것들>.
고대신.
<잊혀진 왕들>.
신이라면 모두 베풀 수 있는 이것은, 소유자에게 관련 기적에 절대적인 위력 보정을 준다.
하지만 중반으로 넘어가서야 활성화되는 기능인데, 이걸 왜 지금 묻지?
“뭔 일이 있었습니까?”
“아까 심연에 먹히기 직전에 말이죠. 엄청난 신성력이 느껴졌어요. 단언컨대 제 힘이 아니었어요. 대주교의 신성력, 아니 법황 성하 이상일지도 모르는 압도적인 힘. 그 힘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먹혔을 거예요. 손쓸 새도 없이요. 짐작 가는 부분이라도 있으세요?”
“전혀요.”
법황 이상의 신성력? 당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혼란스럽다.
책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사쿠라이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러자 파티원이 심연에 오염되었다는 알림이 쇄도했다. 광기 수치는 무려 99%까지 치솟았었다.
사쿠라이를 가이네이브에게 보이자 다행스럽게도 곧장 심연이 가라앉았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가이네이브가 해결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는 아시나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모르겠습니다.”
『클라에논 단장』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런 것을 발설했다가는 NPC에게도 압수당하는 게 이 세계다. 심지어 상대는 양명교단(陽明敎團)의 성직자가 아닌가.
“그쪽도 모른단 거군요. 뭐, 놀라운 일은 아니에요.”
뜻밖에도 가이네이브는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이상하다.
이런 NPC가 아니었는데.
“아시다시피 이 도시는 미쳐가고 있어요. 광기가 창궐하고 있는 거죠. 느껴지시나요?”
거듭 당혹스러웠다.
저 퀘스트 대사가 첫 대면부터 나올 말이 아니었다.
그 사이코 플레이어가 벌써 클라에논을 건드려놨기 때문인가?
“느껴집니다. 성문에서 한 위병이 이상한 소문을 전해 주더군요. 중앙 거리의 사람들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사쿠라이의 침상으로 다가서며 퀘스트 수락 대사를 국어책 외듯 읽었다.
[메인 퀘스트 : 납치의 이유.]– 당신을 은신처로 데려온 살수들은 어떠한 거사를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 도시에 퍼진 심연과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가이네이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미 중앙 거리의 대부분이 해저인이 된 걸 그들도 아는 것이다.
이 메인 퀘스트가 바로 그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크달칼론 백작의 장녀를 구출하는 일이었다.
“알고 있었군요.”
어깨를 으쓱하며 침상 머리맡에 걸터앉았다. 동시에 가이네이브는 침상에서 일어섰다.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지금 바이로니카를 불러오죠.”
이제, 막이 오른다.
슈’율큘라가 강림하기 전에 이 도시를 탈출하는 긴박한 퀘스트. 이데아 반도는 이처럼 종말의 수순을 밟아간다.
한숨을 내쉬며 사쿠라이의 이마를 쓸었다.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평생 이런 공략은 처음이다.
트라이폴에 와서 플레이어 하나 건지지 못했다.
심지어 사쿠라이를 잃을 뻔했다.
위안이 되는 건 단 하나. 클라에논을 쉽게 얻은 것. 근데 어라?
“잠시만요. 가이네이브 씨.”
“뭐죠?”
“이 표식, 가이네이브 씨가 한 겁니까?”
가이네이브에게 사쿠라이의 손목을 들어 보였다. 큰 반점이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느낌이 싸했다.
“전 기적만 부렸지, 이런 건 안 하는데요…….”
고개를 갸웃하던 가이네이브가 사쿠라이의 웃옷을 살짝 들춰보았다.
나와 가이네이브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
온몸에 문어의 빨판 같은 반점이 박혀 있었다. 섬뜩함의 정체를 곧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이건! 슈’율큘라의 주박이에요!”
주박이 꿈틀거리면서 새까맣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사쿠라이가 앳된 신음을 흘렸다.
[경고 : 슈’율큘라의 하수인들이 당신의 파티원의 위치를 찾아냈습니다.]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이건 히든 퀘스트의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나오는 알림이었다.
메인 퀘스트와 히든 퀘스트가 어지럽게 섞이면서, 상황이 통제할 수 없게 휩쓸리는 건가?
진정해.
진정해, 정철.
머릿속을 가라앉혀.
이럴 때야말로 실용적인 사고를 할 때였다. 과호흡으로 새하얗게 변하는 머리를 가라앉힌다.
“바, 바로 주박을 해제해야……!”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가이네이브가 광채가 흘러나오는 손으로 사쿠라이의 몸을 더듬었다. 기적을 사용하는 것이다.
[NPC, 가이네이브가 《저주 정화》를 사용합니다. 저주가 정화될 때까지 가이네이브를 보호하세요!]– 저주 정화 수치 : 2%
“심연이 어떻게 이리 강한…….”
똑똑똑.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심장이 크게 전율했다.
‘놈들’이 왔다.
피터가 문을 열어주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피터. 문에서 떨어져.”
“네?”
“어차피 열려. 박살 나면서.”
“뭐, 뭐라고요?”
“너, 검사 클래스라고 했지?”
피터가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쾅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 격렬해졌다.
“칼 잡고 사쿠라이를 지켜.”
문과 내 얼굴을 번갈아 살피던 피터의 눈동자가 공포로 떨렸다.
“당장 와서 자리 잡아!”
내 윽박에 피터가 달려와서 장검을 어정쩡하게 꺼내들었다. 그때 나는 자리에서 등에 찬 대검의 칼자루를 쥐었다.
[아이템 착용 : 아르츠레히드의 대검.]아르츠레히드가 선물로 준 대검.
결사대 퀘스트의 숨겨진 보상 중 하나로 초반에 그 성능이 걸출하다. 그가 용병단에서 복무할 때 사용하던 물건이니 당연한 성능.
손아귀에 잡히는 칼자루가 묵직했고, 균형감이 예술적이리만치 살아 있었다. 적의 머리통을 잘 으스러뜨릴 수 있다.
“몇 명 새어 나갈 거야. 잘 지켜야 해. 피터. 사쿠라이가 다치면 세종대왕님이 만드신 위대한 한국어로 24시간 동안 쌍욕을 먹게 해주마. 하지만 잘 지켜낸다면 그 보상을 주겠어.”
“그, 그건 좀 무섭네요…….”
어차피 녀석이 상대해야 할 적은 기껏해야 둘일 것이다. 그것도 가이네이브가 처리하겠지.
[저주 정화 수치 : 6%]없을 수도 있지만, 그 상황조차도 저 뉴비에게는 사선을 넘나드는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키에에에에에.”
“키힉히히히힉!”
쾅쾅쾅쾅쾅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 너머로 놈들의 질퍽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힘법사.
어제 생각해낸 고풍스러운 표현으로는 마검사의 출사표를 던질 때가 드디어 온 듯싶었다.
[시스템 : 마법사 클래스입니다. 갑옷 착용으로 전체 능력치 보정을 (-10) 받습니다.] [시스템 : 마법사 클래스입니다. 대검 착용으로 힘, 지력 보정을 (-15) 받습니다.]미친 걸까.
오랜만에 손에 쥔 대검의 친숙한 감각 탓일까.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는 이유는.
공포가 아니라 전율일 거다. 몸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이 감각은.
옛 전투.
그 짜릿한 기억들이 몸속으로 밀려들고 있는 거다.
역시 나는 정신병자인 건가.
아니면 목숨을 걸었다지만 결국에는 게임이기 때문인 걸까.
콰아아앙!
다음 순간, 육중한 참나무 문이 박살 나면서 놈들이 팔딱팔딱 뛰어 들어왔다.
[저주 정화 수치 : 9%]어안과 아가미. 완전히 슈’율큘라의 하수인이 되었는지 얼굴이 개구리이거나 물고기다.
초반임에도 레벨이 무려 50쯤 되는 강적들.
왼손으로 대검을 쓱 쓸었다. 옛 흑기사 때 그러했던 것처럼.
다른 점이라면 암청색 심연이 아니라 청명한 푸른색의 마력이 칼날을 휘감았단 부분일까.
뭐든 좋았다.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었다.
다시, 이 세상을 일곱 번 멸망시킨 공격대장 ‘정철’처럼 싸울 수만 있다면.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마법, 《마력 방출》을 시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