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25)
가짜 용사 이야기-125화(125/310)
#21 :
[5. 트라이폴] 퀘스트 가속 [긴급 전투 퀘스트 : <잊혀진 왕들>의 하수인들.]피터는 에델 바이스의 싸움을 보는 순간 고양되고 말았다.
해저인들이 들이닥치며 생겨난 공포를 단번에 짓밟은 감정은 벅차오르는 격앙감이었다.
에델의 칼은 능란했고 실전적이었다. 저 육중한 대검을 한 손으로 다루면서도 움직임에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수세를 펼치는가 싶으면 격세로 치고 나갔고, 격세로 나아가는가 싶으면 수세로 돌아와 세(勢)를 수습했다.
그 순간 해저인이 에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대검의 사각을 완벽히 노린 교묘한 수였다.
이 게임의 적들은 저토록 영리했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에델의 반응은 더욱 경악스러웠다.
대검을 놓으면서 그 손으로 해저인의 머리통을 붙잡더니 벽에 처박았다. 그러더니 몸을 빙글 돌려 박힌 머리통을 휘돌려 찼다.
철제 장화의 발길질에 어안(魚眼)이 으깨지며 뇌수가 사방으로 튀어나갈 때, 에델은 이미 대검을 다시 쥐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마력이 휘감긴 칼로 다른 해저인 2명의 몸을 일도양단했다.
‘대단해…….’
피터는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감히 평가해 보건대 에델에게 칼이란 몸 자체였고, 대검이란 그 몸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신검합일.
1회차 한 번 클리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검사 클래스로 성배 전쟁까지는 가봤었다.
아니, 그런 경험이 없어도 에델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단번에 알 것이다.
이 게임은 《검술》 스킬만 올린다고 검술이 능란해지지 않는다. 마법처럼 말이다.
요컨대 플레이어가 진짜로 칼을 잘 다뤄야만 결국 고수가 되는 식이다.
해저인들은 게임 중반부쯤 가야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적이었다. 그런 그들을 초반부터 압도적으로 학살하는 실력!
말 그대로 실력이다.
《마력 방출》을 제외하고는 칼만 쓰고 있으니까.
심지어 좁은 실내.
대검 계열의 사용에 불리한 장소였다.
‘엘리트 나이트인가 봐.’
그 생각부터 들었다.
그 생각만 들었다.
엘리트 소서러라고 했던 건 거짓말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싸움을 행하겠는가?
“얘!”
너무 몰입해서 보고 있던지라 그 다급한 목소리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하고 말았다.
“한 명 오잖니!”
“피터! 하나 빠져나갔다!”
큰일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해저인 하나가 이쪽으로 마구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거대한 개구리가 달려오는 듯해.
공포가 한순간 되살아나며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우아아아아!”
피터는 해저인을 향해 칼끝을 내지르며 달려갔다. 실수였다.
[패시브 스킬 : 《초급 검술》이 당신의 검술을 돕습니다.]달려들던 놈이 혓바닥을 길게 내뻗었다.
혓바닥은 끔찍할 만치 길었다.
목표는…… 침상이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피터는 자리에 멈춰 서면서 칼을 휘둘렀다.
혓바닥을 쳐내야 했다.
이때까지는 이게 놈의 노림수라는 것을 몰랐다.
순간 눈동자가 종이로 사악, 베이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혓바닥이 갈라지면서 분비물이 눈동자로 튀어들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아차, 눈을 미친 듯이 비비던 통에 칼을 놓쳐버렸다.
[상태 이상 : 심연의 악몽! 시야가 제한됩니다!]순간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걸 느꼈다. 다음 순간에는 쿵, 바닥에 몸이 꽂히며 등뼈가 욱신거려 왔다.
아팠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놈이 덮쳐온 것이었다.
“키에에에엑!”
귀 바로 앞에서 섬뜩한 고함이 들려왔고, 끔찍한 악취가 풍겨왔다.
[상태 이상 : 심연의 악몽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합니다.]시야가 흐릿하게 열렸을 때는 쩍 벌어진 아가리가 보였다.
피터의 머리통을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심장이 쉬지 않고 고동쳐댔다. 이렇게 강한 놈들을 학살하다니.
엘리트 나이트 때문이야. 그 검술을 보고는 헛된 자신감을 품었던 것 같았다.
아니, 그랬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만용의 대가를 치를 때였다. 이 게임은 언제나 그랬다.
─푸하악!
바로 그때, 그 머리통을 박살 내면서 거뭇한 칼날이 튀어나왔다.
코앞에서 칼날은 멈춰 섰다.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볼에 심연의 피가 튀더니 따갑게 끓어올랐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직후 해저인이 장난감처럼 번쩍 들어 올려지더니 문가 쪽으로 내던져지는 게 아닌가. 벽을 박고 고꾸라진 해저인이 단말마를 토해냈다.
[긴급 전투 퀘스트 완료 : <잊혀진 왕들>의 하수인들.]– 현재 레벨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의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 포인트가 (+7) 올라갑니다.
– 레벨업 포인트를 (+9) 얻었습니다. 능력치를 올리세요.
우와.
초반엔 1업 하기도 힘든데…….
“잘했다, 양키 보이.”
방금 전까지 해저인이 있었던 자리에서, 에델 바이스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꿈인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그 손을 맞잡아 일어섰다. 손을 맞잡는 악력도 장난이 아니었다. 대검을 휘두르던 손이니 당연한가.
가이네이브가 말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예요?”
“요르한 전하의 기사.”
“장난하지 말고.”
에델은 어깨를 으쓱했다.
“녀석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가이네이브와 에델의 대화는 듣고 있었지만, 소년의 눈은 그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소년은 멍하니 서서 참극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호기심이었다. 남자란 본래 그런 존재가 아닌가?
그러나 대부분은 원형을 잃고 박살이 나버린 터라 제대로 헤아리기는 어려웠다.
‘13, 16, 19, 24, 29……?’
황당했다.
저 사람, 혼자서 30명의 해저인을 해치운 거야? 그랬는데도 저렇게 말짱해?
“거의 끝나가요. 의식을 언제 되찾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친구들이 무사할지 걱정되네요. 도와주러 가 주시겠어요?”
“곧 올 겁니다. 제가 갈 필요가 없을걸요.”
에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복면 검사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아까 그들을 끌고 온 살수들이다.
“가이네이브! 무사하냐?”
가이네이브가 그 대답을 할 필요도 없었다. 썰려 나간 시체들이 풀코스로 전시되어 있으니까.
아연실색하여 시체들을 살피던 시선들은 왜소한 소년을 스치지도 않았다.
곧장 에델 바이스에게로 가 꽂혔다. 그 시선은 아까와 명백히 달라져 있었다. 경외감이 섞였다고 할까.
“당신이 한 거야?”
뭐,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괜히 ‘제가 아니라 저 남자가 한 거예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러면 오히려 더 비참해진다.
“하나는 저 꼬맹이가.”
아까부터 유일하게 복면을 쓰지 않는 여검사, 바이로니카가 물었다.
“이해가 안 되는데.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왜 순순히 잡혀준 거지?”
“뭔 일인지 궁금해서.”
검사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하나둘씩 헛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함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뭔 일이지?”
에델이 말했다.
진짜 궁금하다기보다는 다 알고 있으니 빨리 말하라는 듯한 태도였다.
같은 플레이어지만 힘과 경험, 모든 방면에서 압도적인 격차가 있었다. 분하다기보다는 기뻤다. 뛸 듯이 기뻤다.
이제 이런 사람과 같이 갈 수 있구나!
* * *
“가면서 이야기할게.”
예상은 했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탈출 퀘스트의 거점이 되었어야 할 지하 은신처가 폐허로 변해 있다니.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파티를 이루고, 퀘스트를 깨 나가야 할 이 장소가 말이다.
“몇 마리나 온 거지?”
“최소 팔십. 당신이 죽인 놈들까지 합치면 백은 족히 될걸.”
뒷골이 지끈거리네.
본래대로라면 이건 열두 마리 정도가 습격해올 이벤트였다.
복도에 해저인의 시체가 백 구나 널린 것도 문제였지만.
당연히 살아 있어야 할 NPC들이 5명이나 죽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잠시 후. 바이로니카는 말이 너무 거칠었다 싶었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미안. 갑작스레 동료들이 많이 죽어서 혼란스럽거든.”
나도 마찬가지다. 습격 이벤트가 히든 퀘스트의 NPC를 죽인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사쿠라이의 팔을 바라봤다.
등에 업힌 채 내 얼굴 양옆으로 늘어뜨린 양팔. 오싹한 반점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슈’율큘라의 주박.
그리고 그 주박을 물리쳤다는 가호. 가호는 중반 이후, 주박은 후반에야 등장하는 요소였다.
누군가가 판을 주무르고 있다?
엘리트 나이트인가?
칼을 칼집에 집어넣던 놈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자 차가운 땀이 이마를 적셨다. 하지만 놈은 아니야.
내 공략망을 뒤트는 일이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어.
뭔가, 뭔가 더…….
관리자에 가까운…….
그때 바이로니카가 복도 끝에서 멈췄다. 복면 검사 3명은 문밖에 남았고, 바이로니카와 가이네이브가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어둑한 방.
천장에 매달린 가스등에서 나방 두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다.
“어떻게 됐나, 베니?”
불빛 아래로 노인이 걸어 나왔다.
역시 그 녀석이다.
바이로니카를 애칭으로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
소(小)현자 칼레이브 루드윅.
벗어진 정수리야말로 현자의 상징이라고 떠드는 놈이었기에 우스꽝스러운 기억이 몰려왔다.
하지만 실력은 우습지 않다.
무려 6성 마법사다. 6성부터 현자라는 직함으로 불린다. 혼자서 전쟁의 판도조차 바꿀 수 있는 인물이란 소리다.
“맥스웰, 일레인, 하퍼가 죽었어요. 루랑 프랭키도요.”
“애도할 시간조차 없는 건 알 터. 대체 몇 마리나 온 거지?”
“백 마리는 족히 넘었죠. 참, 이 기사가 혼자서 서른 마리를 처리했어요. 이 남자랑 함께라면 거사도 성공할 것 같은데.”
칼레이브는 내게 눈길을 잠깐 주었다. 순간 눈빛에서 보랏빛 광채가 흘러나왔다.
[NPC, 칼레이브가 마법, 《능력 간파 Lv.97》을 사용합니다.]역시 현자답게 대단한 스킬 레벨.
2만 올리면 MAX를 찍는다.
칼레이브가 나직한 탄성을 뱉었지만 곧 미간을 움켜쥐었다.
“저 남자가 실력자든 아니든, 더 이상 네 고집에 맞출 수 없다. 이제 아가씨를 모시고 여기서 빠져나가야만 해. 이젠 항만 거리까지 위태로울 지경이야.”
“알아요.”
나 또한 미간을 움켜쥐고 싶었다.
에휴…….
시나리오 진짜 제대로 작살나고 있네. 최중요 NPC가 초반부터 심연에 잠식되다니.
[광기 수치 : 36%]– 당신의 캐릭터가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떱니다.
칼레이브의 귀밑에서 아가미가 꿈틀거리고 있다. 내가 아니라면 당연히 주름이라고 여길 정도로 미세하게.
아직 한 줄이었다.
초기 증상이라는 소리다. 뻐금뻐금.
“저 소년의 실력은 어떤가?”
“해저인 1명을 잡았다던데요. 그래도 데려가기엔 좀 그래요. 무장도 빈약하고.”
이건 정말 위험했다.
앞서 죽은 5명의 경우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칼레이브는 심연 사냥꾼 로헤이리츠와 함께 이데아의 최후 생존자로서 <잊혀진 왕들>의 대척점에 서야 하는 주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저도 할 수 있어요!”
피터의 만용에 가이네이브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꼬마야, 이건 장난이 아니야. 수백 마리가 나타날 수도 있어.”
“수, 수백 마리요?”
칼레이브가 초반에 탈락한다면, 《엘더 사인》의 가치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폭등할 것이다.
어쩌면 고대신의 예언서 5권을 모두 독식해야 <잊혀진 왕들> 레이드가 가능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 녀석이 없다면 누가 켈렉─샼과 아쉬론을 봉인할 것이며 로헤이리츠가 미쳤을 때 누가 제동을 걸어줄 것이냔 말이다.
묻고 싶었다.
엘리트 나이트? 사이코 플레이어? 아니면 관리자들? 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놓은 거냐?
“일행을 모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한번 찔러보았다.
대부분의 퀘스트에서 ‘파티원 모집’ 문구다. 칼레이브가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시간이 없네. 이젠 정말 모 아니면 도야. 아가씨를 구하러 중앙 거리로 가야 하네.”
“잠깐요. 그렇게 되면 구출조는 기껏해야 다섯입니다. 그쪽 성직자까지 억지로 대동하면 여섯이고요.”
“그럴 시간이 없다니까! 외지인 중에서 동료를 구할 생각이라면 그만두게. 베니가 사흘 만에 데려온 게 자네 한 명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들의 수준이 어떠한지는 예상이 가니까.”
[메인 퀘스트 갱신 : 중앙 거리의 아가씨.]–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당신의 도움을 바라고 있습니다. 중앙 거리에서 ‘아가씨’를 데려오라니, 트라이폴의 모든 악소문의 근원지인 곳이 중앙 거리입니다. 저들은 제정신인 걸까요?
* 수락할 시, 상세 사항을 NPC 바이로니카에게 전달받습니다.
* 거절할 시, 이름 모를 현자가 당신에게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칼레이브 저 양반이 정말…….
5명으로는 턱도 없는 미션을,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하고 있다.
이 퀘스트는 ‘그놈’을 상대해야 하는데 말이다. 아무리 나라도 혼자서는 아직 버거운 상대다.
슈’율큘라에게 정신까지 조종당하고 있는 건가? 의문은 순식간에 확신으로 바뀌었다.
백 마리 이상의 해저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들이닥친 것도. 주박이 느닷없이 나타난 것도.
아니,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칼레이브가 그럴 리가 없다. 그만큼 절박하겠지.
나도 절박해진다.
이 퀘스트를 외면할 수가 없다.
용부인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칼레이브의 타락이 확실시된 지금, 빙룡 스케사리를 한시라도 빨리 이데아 반도에 풀어놔야 한다.
스케사리가 성배 전쟁 동안 <잊혀진 왕들>의 세력 확장을 최대한 견제해줘야 하니까.
그렇다면 승부수 2개를 동시에 띄운다.
거점이 붕괴된 지금, 아마 이 퀘스트는 3차에서 5차로 곧장 건너뛸 것도 예상해볼 수 있다.
요컨대 정비 시간은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두는 게 좋다는 것이다.
“보상을 먼저 받겠습니다.”
“뭣?”
거래와 도발.
숨을 허파 가득 들이마시고 행동에 나섰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의뢰를 곧바로 받아들인단 말입니까? 그 머리카락처럼 돈도 한 푼 없는 거지 떼들이면 어떻게 하라고?”
[NPC, 바이로니카가 당신에게 분명한 적대감을 표출합니다.]당연히 그렇게 나와야지.
네 양부가 모욕당했는데.
“당신, 아저씨한테 말할 때는 예의 갖춰.”
“기다려. 저 사람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해. 실력 봤잖아.”
가이네이브가 바이로니카를 제지했다.
“제가 당신 동료를 치료해 줬잖아요. 그리고 칼레이브 님이 누군지 모른다고요? 무슨 그런 거짓말을 하시나요.”
“사실 알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멍청이로 보입니까? 중앙 거리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도 모르는? 수지가 안 맞습니다.”
“당신 진짜!”
계획대로다.
지금쯤이면 다음 패턴이 나올 때가 됐다.
“그만!”
칼레이브는 인간들끼리의 분쟁을 극도로 꺼리는 녀석이다.
귀가 울려서 어지럽다나 뭐라지만, 알고 보면 성정이 그렇게 인애적인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었는데…….
“뭘 원하나? 돈? 장비? 괜찮은 대검이 병기고에 한 자루 있긴 하네. 빨리 말해보게. 이 시간에도 놈들이 아가씨를 노리고 움직이고 있단 말이네.”
“엘더 사인.”
매서운 적막이 내리깔렸다.
원래라면 이딴 짓 안 한다. 여기 있는 모든 NPC를 적대할 수도 있는 사안이니까.
“당신은 현자, 당연히 엘더 사인에 대해서도 연구해 왔겠죠. 몇 가지 알아낸 게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아저씨.”
“그걸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당신이 없어진 시대에도 심연을 상대할 수 있게.”
어쩔 수 없어. 이제는 칼레이브, 네가 없는 상황에서의 공략전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넌 알고 있겠지.
지금 내가 대체 뭘 주문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아마 너라면 승낙할 거야. 날 믿어서가 아니라, 소중한 이들을 빨리 여기에서 내보내기 위해서.
“좋다. 아가씨를 데려와라. 그동안 내가 연구한 것들을 모두 찾아서 네게 주마. 하지만 약속해라. 절대 악한 일에 쓰지 않겠다고.”
“아저씨!”
“내가 알아서 한다!”
“약속하죠.”
한참 동안, 칼레이브와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칼레이브가 한숨과 함께 마주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알림이 울렸다.
[히든 퀘스트 수락 : 중앙 거리의 아가씨.] [서브 퀘스트 생성 : 이 세계에 공짜란 없어, 얼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