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27)
가짜 용사 이야기-127화(127/310)
#23 :
[5. 트라이폴] 메인 퀘스트 공략 (1)소현자 칼레이브.
켈렉─샼과 아쉬론을 봉인하는 공적을 세운 뒤로도, 줄곧 소(小)현자라고 불린 이유는 본인의 고집 때문이었다.
선조와 같은 칭호를 쓰기에는 자신의 지식이 너무나 보잘것없다고, 내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위대한 현자, 용현 레인 루드윅의 후손. 그 위대한 현자가 싸늘한 재로 변해 죽었다.
“아, 아아…… 아저씨……? 이게 아저씨라고? 이 잿더미가?”
바이로니카의 절규에 가이네이브가 울먹거렸다.
“바이로니카, 현자님께선…….”
“네가 정화했으면 됐잖아. 넌 성직자잖아. 아니야? 이때까지 뭘 한 거야! 마르셸, 넌 또 뭘 했어? 과자라도 까먹고 계셨나?”
그때 큘륜의 찢어지는 울음이 들려왔다.
지하 은신처가 세차게 진동하며 흙먼지와 돌멩이들이 떨어져 내렸고 천장에서 가스등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심연 지대 활성화 : 34%]야단났군. 심연 지대가 50% 이상 활성화되면 저 큘륜들이 바다에서 기어 나올 수 있게 된다.
이 트라이폴의 큘륜들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메인 퀘스트를 공략하고 여기에서 탈출하는 것.
“오빠,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칼레이브가─”
“─나중에 들을게. 지금은 바빠.”
겁에 질린 사쿠라이의 황망한 말을 끊었다.
어차피 칼레이브가 갑작스레 죽었다느니 같은 단순한 화제겠지.
공략은 이처럼 두 가지 이유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첫째, 바이로니카가 칼레이브의 죽음 때문에 깊은 실의에 빠졌다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부랑아로 빈민가를 전전하던 바이로니카를 거두어준 게 칼레이브였다는 설정만 알아도 둘의 깊은 관계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엿 같은 설정이 문제가 된다.
퀘스트가 뒤틀리는 꼴을 보면서 나는 바이로니카를 반드시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던 터다.
왜냐고?
데려가야만 깰 수 있을 테니까.
바이로니카의 특성은 《마도기능사(魔道技能士)》.
소현자의 수양딸 아니랄까 봐, 도구에 마술의 힘이 깃들게 하는 희귀 특성을 갖고 있다.
탐지와 수색에 특화된 클래스로 이번 퀘스트 공략의 핵심 역할을 맡아줘야만 했다.
둘째.
지하 은신처로 돌아온 뒤부터, 사쿠라이가 나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는 것.
바빠 죽겠는데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거머리처럼 내 오른쪽 다리에 착 달라붙어 있다.
“챌린저 누님, 버스 타고 싶으신 건 알겠는데 지금 이건 기사 폭행이거든요.”
“이건 LOH 아니거든요!”
“그럼 떨어지란 소리 안 할 테니 날 좀 도와봐라. 이러다가 우리 진짜 죽거든?”
“뭘 해야 하는데요?”
“지금부터 지도를 찾아.”
그렇게 말한 뒤 칼레이브의 책장을 걷어차서 뒤집어엎었다.
와르르르…… 고서들이 아무렇게나 쏟아지면서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사쿠라이가 입을 떡 벌렸다. 바이로니카가 소리쳤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지도 찾기.”
“지도? 지금 아저씨가─”
“─그래, 뒤졌지!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거지? 바이로니카, 네가 애냐? 운다고 살아나냐? 칼레이브가 네게 남긴 마지막 임무가 뭐였나? 네 임무를 기억해봐!”
칼레이브의 죽음.
나조차 예상치 못했던 혼란 때문일까. 잠시, 평소의 침착한 페이스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 반응 덕에 바이로니카가 살짝 당황해하며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맞아…… 임무가 있었지.”
실언을 한 건 아니니 사과할 필요도 없었다. 언제까지고 울면서 여유를 부릴 수 없단 건 사실이다.
“이봐, 지도를 찾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
문가에 기대 팔짱을 끼고 있던 검사가 질문해왔다.
저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바로 마르셸. 배신자다. 정확히는 배신할 예정.
아까 5명이 뒤질 때 저놈이 뒤졌어야 했는데. 앞으로는 간단히 배신자라고 부르겠다.
“동선 설계. 알다시피 시간이 촉박해. 큘륜들이 바닷가에서 나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 심연 지대가 완전히 활성화되기까지는 60분.”
“동선이라. 상당히 전문적인 용어를 쓰시는군.”
그 비아냥을 무시하고는 바닥 위에 펼쳐진 여러 고서들을 뒤적거렸다.
보자, 여기 있을 텐데…….
지도가 크면 클수록 좋다. UI에 활성화되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인데, 이 퀘스트의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는 시간은 여유로울수록 좋다.
“분명 여기 어딘가 <트라이폴> 지도의 초확대본이 있을 것 같은데…….”
“제기랄, 그럴 거면 말을 해줬으면 됐잖아! 난 그게 어딨는지 알고 있다고.”
일부러 말을 흘리자 바이로니카가 수색에 동참했고 곧 저쪽에서 지도 두루마리를 찾아내 주었다.
“봐. 여기에 있잖아. 이것도 못 봐?”
그럼 레이드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부터 브리핑 시작이다.
자, 시작해보자.
정철 공대장의 <황녀를 위하여> 8회차 공략. 그 첫 번째 브리핑.
본래는 칼레이브가 해야 했지만, 그 칼레이브가 죽은 이상 내가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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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열람 가능한 역사 :
신성 기사 샤릴리온은 심해의 군주, 슈’율큘라의 봉인진을 완성하기 위해 해안가에 군사도시를 축조했다.
그 도시의 이름이 바로 <트라이폴>이다.
샤릴리온 생전에는 군사적 목적이 강했으나, 성도 왕국과 지중해(地中海) 바다를 연결하는 출입구 역할을 수행하면서 <트라이폴>은 자연스레 무역 도시로 바뀌어갔다.
* * *
“지도를 저 탁상 위에 펼쳐봐.”
그때 먼 지상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본능적으로 알아챘을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하면 죽는다는 걸.
낡은 지도가 곧장 책상 위에 펼쳐졌다. 앞서 말했듯 지도는 크고 상세할수록 좋다. 게임 시스템의 지도 기억 시간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MAP : 『트라이폴 도시 약도』를 보았습니다. 35분 동안 [인터페이스] – [MAP]에서 트라이폴 도시 약도가 활성화됩니다.]35분이면 충분해.
40분 동안 저 지역에 들어가 있으면 퀘스트는 실패한 것과 다름없으니까.
“지금부터 주목하세요. 바쁜 관계로 반말을 써도 쓸데없이 걸고넘어지지 마세요.”
피터가 엉거주춤 책상 앞으로 나아왔다.
가이네이브, 바이로니카, 배신자, 떨거지 검사 A, B. 챌린저 누님은 또다시 내 옆으로 붙었다.
시가지 공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 바로 동선 설계다.
이번 퀘스트는 총 세 가지의 굵직한 이벤트를 가지고 있다.
그 이벤트들을 가장 빠르게 통과하면서, 목표를 손쉽게 달성하는 방법을 짜는 게 동선 설계란 거다.
“수색 집단은 B포인트에서 아가씨를 수색한다. B포인트에도 없으면 C포인트로 이동.”
중앙 거리의 남서쪽 외곽을 검지로 찍어주었다.
수색하라는 듯이 명령하지만, 사실 B포인트 등탑의 지하실에 용부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시나리오가 아무리 뒤틀려도, 용부인은 그곳에 존재할 터. 그게 무시될 설정은 어디에도 없다.
“당신이 트라이폴에 대해 뭘 안다고? B포인트에 뭐가 있는데?”
뭐가 있긴.
네 아가씨가 있지.
“내가 사실 중앙 거리 토박이였어.”
“웃겨. 지금 장난해?”
트라이폴의 주민들만 아는 노래부터 시작해서 백작과 아가씨의 이름까지 술술 읊어주자 바이로니카는 입을 다물었다.
[NPC, 가이네이브가 당신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NPC, 마르셸이 당신의 전략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NPC들은 이처럼 단순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중요한 건 이 부분. 미끼 집단이 있어야 해. 미끼는 C포인트에서 A포인트로 돌진하면서 적을 유인합니다. 맞서야 할 적은 줄잡아 2백.”
이번에는 중앙 거리의 중심부를 찍었다.
“2백?”
정말 간단한 위치 지정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A와 B와 C를 스타팅 지점으로 고를 줄 아는 것만으로도 중수와 고수를 판가름할 수 있을 정도다.
A에서 직선거리로 남문이 있고, B에서도 직선거리로 남서쪽 샛문이 열려 있으니까. ‘미끼’와 ‘2백’이라는 말에 방 안에서는 침묵이 돌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미끼는 내가 맡고.”
미끼라는 말은 나의 희생정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과장이었다.
“거기로 가는 사람은 반드시 죽을걸. 트라이폴 백작이 그쪽에 있을지도 모른단 말야. 그 미친놈.”
바이로니카의 말은 틀렸다.
그 미친놈은 이미 죽었다.
더 미친 놈, 그러니까 이번 퀘스트의 ‘보스 몬스터’에 의해서.
어려운 상대지만, 솔직히 질 이유가 없었으며 내가 직접 잡아야만 하는 이유도 있었다.
그때 사쿠라이가 내 허벅지를 슬쩍 꼬집었다.
“오빠 미쳤어요? 《세계의 기억》에 따르면 트라이폴 백작이 엄청난 검귀라는데요.”
“네 눈에는 내가 초반 보스한테 질 놈으로 보이냐?”
이 퀘스트에서 내가 걱정하는 건 큘륜과 슈’율큘라지, 트라이폴 백작이 아니었다.
트라이폴 백작은 이미 죽었다, 그 아들에게.
그러므로 그 아들놈을 처리하는 건 나에게 많은 선택 이점을 준다.
바로 성검 샤릴리온.
캐릭터 설정에 따라서 최종전까지 종결 아이템으로 쓸 수 있는 강력한 대검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러세요? 그러면 저도 따라갈 거예요.”
“안 돼.”
사쿠라이가 내 단호한 시선에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렇지만 신화의 사자(使者)가 여기서 죽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죽일 놈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말예요.”
예상대로 가이네이브가 내 전략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끼가 2백의 적을 다 상대할 필요도 없지 않나요? 수색 집단이 아가씨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맞습니다. 그래서 연락책을 하나 만들어두죠. 전 마법사니까 《섬광》 마법을 신호로 보내지요. 《섬광》이 올라오면,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었지만, 내 다리에 달라붙은 사쿠라이의 팔이 가늘게 떨리는 걸 보자 말실수를 했나 싶었다.
“수색 집단의 신호는 생각해 두셨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바이로니카를 보았다.
“바이로니카가 허공에 《마법의 깃발》을 생성해주는 걸 신호로 보겠습니다. 물론, 수색 집단은 그 신호를 날리고 곧바로 퇴각하세요. 절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바이로니카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내 힘을 어떻게 알아?”
“내가 트라이폴 토박이라니까. 그 정돈 알아.”
정확히는 <황녀를 위하여> 8회차 유저라고 봐야지.
“야!”
“조용. 지금부터 인원 편성을 말하겠습니다.”
사실, 한 명 한 명 다 읊어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임무에서는 리더가 이름을 비장하게 호명해주는 걸로도 사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법이다.
“아가씨의 수색을 맡는 집단. 사쿠라이, 피터, 바이로니카, 가이네이브, 오루넬, 카이타르.”
“아이들은 두고 다녀오는 게?”
가이네이브가 그렇게 발언하자마자, 해저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가까웠다.
피터와 사쿠라이가 몸서리를 쳤다. 가이네이브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지 않겠네요.”
“이제 미끼 집단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미끼 집단이 일석삼조인 이유.
세 가지 패턴 중 ‘배신’ 패턴을 캔슬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칼레이브 같은 거물 NPC가 죽어 나갈 정도니까 저놈도 당연히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배신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음껏 흘려라.
“마르셸은 저와 함께 갑니다.”
“하하. 어째서? 왜 나만?”
널 죽이기 위해서지.
“어째서라니, 당신처럼 훌륭한 검사는 당연히 미끼가 되어야지.”
이로써 배신자가 용부인에게서 알을 빼앗는 이벤트도 바이로니카의 등을 찌르는 이벤트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심연 지대 활성화 : 36%] [메인 퀘스트 갱신 : 구출 작전 개시.]– 집단을 통솔하고 있습니다. 클리어 시 레벨업 포인트 (+10)을 추가로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