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30)
가짜 용사 이야기-130화(130/310)
#26 :
[5. 트라이폴] 메인 퀘스트 공략 (4) [경고 : 당신이 내는 소음이 심해(深海)를 깨우고 있습니다!] [MAP : 당신이 설정한 포인트 ‘A’에 도착하였습니다.]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지쳐 있었으나 쉴 여유 따위는 없었다.
끼긱기기기긱기긱기긱기기기기긱.
“키헤헤헤헤헤헤헤!”
무서웠다.
망자와 심해목들이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포화는 무섭지 않다.
도로가 진창처럼 변하며 발이 푹푹 빠지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이 떨려온다.
심연의 진창이 나타났다는 것.
그건 바로 서든데스 포인트(Sudden Death Point)에 들어섰다는 뜻이니까.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마법, 《마력 방출》을 시전합니다!]정면, 내 쪽으로 펄쩍 뛰어오르던 해저인의 머리통을 대검이 꿰뚫자 핏덩이가 되었다.
왼발로 놈을 걷어차서 칼을 빼내면서 연달아 휘둘렀다.
하나, 둘, 셋…… 연달아 네 마리를 가볍게 처치한 뒤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달려야 살 수 있었으니까.
트라이폴 퀘스트가 위험한 이유, 바로 서든데스 포인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든데스. 말 그대로 피하지 못하면 즉사다.
그래도 제작진 놈들에게도 양심이란 건 있었는지, 서든데스 패턴이 출현할 경우 플레이어에게 미리 경고 정도는 해준다.
기억하기로, 아마 이런 알림이 올 것이다.
[경고 : 옛 바다의 지배자의 떨림이 느껴집니다.]띠링!
[???, 옛 바다의 지배자가 당신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역시나…… 눈을 한 번 깜빡인 순간 주변의 전경이 흉측하게 뒤틀려 있었다.
도로가 혓바닥처럼 질퍽하면서 뜨뜻하게 변한다.
건물들은 아가미와 어안(魚眼)이 박힌 괴생명체로 변해 몸을 마구 꿈틀거려 댄다.
[???, 옛 바다의 지배자가 결계 스킬, 《심연의 진명(眞名)》을 시전했습니다!]관리자들아, 지금 이 순간 부하들과 감자칩 집어 먹으면서 내 플레이를 채점하고 있냐?
좋아, 잘 봐라.
심연의 진명. <잊혀진 왕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결계 스킬.
물론 지금 같은 초반부에 등장하면 절대 안 되지만 슈’율큘라의 경우는 환술 결계라서 밸런스적인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광기 수치 : 65%]환술이라고 무시했다가는 죽는다. 바로 빠져나가야 한다.
몸 전체가 결계로 납치된 게 아니라, 정신만 납치된 상황이다. 요컨대 내 몸은 여전히 서든데스 포인트에 있는 것이다.
[전용 스킬, 《대마력방호》가 당신의 명령을 기다립니다!]손바닥에서 순백의 마방진이 빙그르르 돌았다. 망설이지 않고 깨부쉈다.
마력 고갈 때문에 비틀거릴 미래는 논외였다. 우선 탈출부터 하고 봐야 했다.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전용 스킬 《대마력방호》를 시전합니다!]동시에 세계가 추악한 생물체처럼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이건 빠져나가는 것도 문제다.
잠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왼눈으로는 밀려닥치는 해저인들이 보이는데, 오른눈으로는 《심연의 진명》의 기괴한 환상이 여전히 보이는 식이었다.
설상가상, 마력 부족으로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무조건 버텨야 했다.
살아야 했다.
무릎을 꼿꼿이 펴서 몸이 강제로 서게끔 만들었으며 이를 악물어 격통에 맞섰다.
칼자루를 단단히 쥐어들었다.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마법, 《마력 방출》을 시전합니다!]– 경고 : 마력이 부족합니다. 마법이 발동되지 않습니다.
내 대검이 소리 나는 쪽으로 치고 나가면서 표적의 머리통을 으깨버렸다.
이어서, 두 번째 표적의 다리를 부숴버리고 세 번째는 모가지를 잘라버렸다.
“키히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역시나 혼자서는 무리였을까, 광란의 수라장이 펼쳐졌다.
저 소리가 내 고함인지 망자의 울음인지, 이 피가 내 피인지 심해목의 수액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았고, 마력 한 줌 둘러지지 않은 칼은 베고 찌르는 일을 힘겨워했다.
[경고 : 옛 바다의 지배자의 떨림이 느껴집니다.]하지만 죽음의 전조만큼은 또렷이 들렸고, 느껴졌다.
곧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든데스 포인트에 있었고, 서든데스 패턴은 막 발동되고 있었으므로, 뒤돌아서 다급히 퇴로를 열기 시작했다.
[시스템 : 서든데스 패턴이 시작되었습니다!]* * *
“키에에에에에에에에.”
멀리서 망자들의 섬뜩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쿠라이는 겁먹지 않았다.
그 울음은 정철이 달려간 방향으로 멀어져 갔으니까. 정철은 엘리트였다. 무진장 강했다.
분명 알아서 잘할 것이다.
지금은 그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자기 몸을 걱정할 때였다.
“좋아. 이동하자.”
마르셸이 손짓했다.
일행은 고양이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정철에게 대다수의 적이 쏠리는 건 사실이지만, 계속 주의한다고 손해 보는 건 없었으니까.
[MAP : 파티 리더가 설정한 포인트 ‘A’에 도착하였습니다.]배신자 마르셸은 당연하다는 듯이 일행을 선도하고 있었다.
그의 지시는 빠르고 정확했다.
적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도록 일행을 조심스레 이끌어왔다. 심연의 종복이니까 다 알겠지.
“바이로니카, 앞장서. 검사 꼬맹이, 너는 후미에서 가이네이브와 함께 와라. 울보 소녀는 내 옆에 붙으라고.”
그렇기에 더욱 불쾌했다.
이런 사내가 배신을 하다니? 현실보다 더 지독한 NPC들에게서 제작진들의 개차반 인성을 엿볼 수 있었다.
마르셸의 옆에 서자 그가 씩 웃었다.
– ……놈은 즉시 수색조 일행을 모조리 죽이겠지.
사쿠라이는 고개를 홱 돌렸다.
심장이 요동치며 배 속에서 불쾌한 팽만감이 벌떡였다. 그 웃음은 살인귀가 짓는 웃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 그놈을 죽이는 방법은…….
A포인트다.
슬슬 전략을 짜야 했다.
피터가 박현수나 정철처럼 미덥지는 못했지만 지금 믿을 건 그 소년뿐이었다.
‘맞아. 근데 왜 피터랑 얘기를 한 번도 못 했지?’
어?
무서운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아까 정철이 ‘배신’을 알려주고 떠난 이후, 마르셸은 계속 피터와 자신을 떨어뜨려 놓는 대열을 짰다. 자연스럽게 리더처럼 나선 이유도 그 때문인 듯싶었다.
“가자. 울보 소녀.”
“그렇게 부르지 마요.”
진흙탕처럼 질퍽거리는 도로를 지났고, 끼기기긱, 심해목으로 뒤덮인 아치형 삼중문도 통과했다.
두려웠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등골이 서늘해져 갔다.
사쿠라이와 피터 사이에서 마르셸은 여전히 하나의 장벽처럼 우뚝 서 있었다.
“저기요.”
“지금은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울보 녀석아.”
불가능에 절망하고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정철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 잊지 마. 너희들도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그 일침의 끝에서는 꼭 아빠의 목소리도 들렸다.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전의를 다졌다.
살아 나갈 거야.
퀘스트도 게임도 클리어할 거고.
정철에게 무조건적으로 의지할 수 없었다. 정철의 말은 옳았다. 자신도 플레이어였고, 이젠 자신의 차례였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고 했다. 진짜였다. 기회는 얼마 안 있어 찾아왔다.
“이런 제기랄, 바이로니카! 안 돼!”
목적지의 호화로운 주랑을 통과할 때였다. 바이로니카가 돌발 행동을 벌인 것은.
반쯤 시체처럼 “오루넬카이타르오루오루넬아저씨아저씨”거리며 비척이던 바이로니카가 문득 앞으로 돌진한 것이다.
목표는 해저인이었다.
주랑 한가운데서 홀로 미친 듯이 킬킬거리던 물고기 인간이었다.
다음 순간 사쿠라이는 공포로 몸을 떨었다. 말도 안 돼. 저런 함정도 판단 말야?
– 놈들도 생각이란 걸 하거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이로니카가 달려들던 그 순간, 해저인이 웃음을 뚝 그치더니 끔찍한 어안으로 바이로니카를 노려보며 괴성을 토해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엑!”
그러기 무섭게 왼쪽 기둥에서 두 번째 해저인이 불쑥 튀어나왔다.
개구리였다.
흉측한 혓바닥을 내뻗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아오, 썅!”
달려 나가는 마르셸의 뒷모습에 가려진 탓이었다.
[NPC, 바이로니카가 마술, 《신념의 칼날》을 시전합니다!] [NPC, 마르셸이 권법, 《퇴철각권(槌鐵角拳) Lv.42》를 시전합니다!]처절한 싸움판이 벌어지던 그 순간, 이게 기회라는 직감이 왔다.
사쿠라이는 즉시 후미로 달려가 피터와 합류했다.
나중에 핀잔준다면 무서워서 달아났다고 하면 된다.
피터는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다른 적은 없는지 경계하는 듯했다. 고개를 불안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니까.
“헤이, 퍼킹 양키 보이!”
“?”
난감했다. 작전을 상의해봐야 하는데, NPC 가이네이브가 옆에 있었다. 그녀는 전투원이 아니었으므로 참전하지 않는 듯했다.
정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야 해. 정철이라면…….
아냐. 곧 생각을 바꿨다. 정철에게 있는 것들 대부분이 자신에게는 없었다. 정철에게 없는 것을 사용해야 했다.
“가이네이브 언니.”
“응?”
동료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가이네이브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러니까요…….”
정철에게조차 없는 비밀 병기가 사쿠라이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녀의 눈물이었다.
그 눈물이 필요할 때였다.
모든 거짓말을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소녀들만의 병기가 필요한 것이다.
사쿠라이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눈물은 곧바로 공급되었다.
눈시울이 젖기 시작하자 가이네이브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속삭였다.
“괜찮니?”
판은 차려졌다.
승부수를 던질 때였다.
“……진짜…… 믿어주실지…… 모르겠는데…… 마르셸…… 아저씨 있잖아요……?”
“왜 그러니. 마르셸이 짓궂은 장난이라도 한 거야?”
“……저보고…… 심연을 섬길 생각이…… 없냐고 그랬어요…….”
* * *
– 철아, 커서 뭘 하고 싶어?
– 오늘은 뭘 먹고 싶니?
– 생일에 어딜 가고 싶니?
어머니는 늘 이렇게 물었다. 기억하건대 내 원을 묻기만 하셨다.
당신의 삶에서, 나란 존재가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당신을 죽여 가면서까지 날 사랑하였던가…….
……GUAAAAA……
고막을 찢는 듯한 울음소리가 나를 깨웠다. 일어나 앉으려다가 맥없이 고꾸라졌다.
차가운 불덩어리가 왼쪽 발목에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발목이 으스러진 줄 알고 절망에 빠질 뻔했으나, 다행히 찰과상이었다.
[TIP : 체력을 회복하면 비활성화된 신체 부위도 회복됩니다.]무슨 일이 있었지?
내 두뇌가 곧바로 ‘넌 서든데스 패턴 막바지에 당했다’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눈앞에서 진행 중인 서든데스가 보였다.
간신히 세이프존에 들어왔군…….
트라이폴의 서든데스는 바로 슈’율큘라의 공격이다. 빌딩만 한 문어발이 지면 위로 솟아나 A포인트 방면을 광폭하게 훑어낸다.
놈은 나를 찾고 있었다.
수많은 해저인과 심해목들이 주인의 공격에 휘말려 으깨지고 짓이겨지는 모습은 정말 볼만했다.
운이 좋았군.
대검도 근처에 떨어졌고.
그 판단을 끝으로 나는 주변을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해저인의 시체를 찾아야 했다.
서든데스 패턴이 끝나자마자 보스전이 시작되니까.
첫 번째와 두 번째 해저인 사체 모두 개구리였다. 나는 물고기 인간을 찾아야 했다.
간신히 찾아낸 세 번째 시체.
물고기였다.
큼지막한 눈꺼풀을 들어보았다. 주먹만 한 어안(魚眼)은 다행히 온전했다.
다음 순간, 나는 그 어안을 파먹기 시작했다.
눈을 온전히 파낼 수 없었으므로, 손가락으로 긁어서 조금씩 파내서 먹어 보았지만 속도가 너무 느렸다.
[아이템 사용 : 해저인의 어안.]– 체력과 마력이 조금씩 회복됩니다!
결국 눈알에 입을 바싹 붙이고는 날짐승처럼 이빨로 뜯어 먹었다.
끔찍한 식감이었지만 먹었다.
물약 하나 없는 이 상황, 어안에 체력 회복 효과가 붙어 있다면 믿겠나?
[체력과 마력이 큰 폭으로 회복됩니다!] [경고 : 심연을 취해 힘을 회복하는 금기를 범했습니다! 정신이 심연으로 오염되어 갑니다. 정신을 잃을 경우 캐릭터가 심연에 잠식됩니다.]구역질이 나려고 할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고 어머니의 헌신을 생각했다.
심연으로 정신이 오염된다는 알림이 거듭 울리면서 머리에 격통이 쳐오를 때마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나는, 그렇게 실신을 견뎌냈다.
– 철이는 뭘 하고 싶니?
– 어머니를 살리고 싶으십니까?
– 철이는 뭘 먹고 싶어?
– YES or NO?
– 철아, 어딜 가고 싶어?
– 배틀로얄에서 우승한 사람은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요!
서든데스 패턴이 끝날 때쯤에 입가를 손등으로 훑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슈’율큘라의 다리는 솟아올랐던 구멍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새끼, 사라지는 것까지 섬뜩하고 위압적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시체들뿐이었다.
A포인트가 순식간에 보스전 장소로 변한 셈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발목의 격통은 여전했지만, 나는 다시 대검을 쥐어들었다.
[알림 : 비활성 신체 부위가 복구되었습니다.] [경고 : 캐릭터의 피로도가 절정에 달했습니다.]뒤이어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경고음이 들렸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경고 : 시나리오 보스가 등장합니다.]무엇을 하고 싶냐고, 어디로 가고 싶냐고……?
그딴 건 튜토리얼에서 47명이란 생명을 외면하고 탈출했을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어.
큘륜이 등장했을 때 항구에서 분투하던 플레이어들을 버렸을 때 확고하게 굳어진 지 오래고.
어머니가 있는 미래로 가는 것.
내 운명의 지표는 그것뿐이었고, 앞으로도 그것뿐일 것이다. 어머니의 제단에 바칠 제물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르츠레히드의 대검.
그 둔중한 칼날을 왼손으로 쓱 훑었다.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마법, 《마력 방출》을 시전합니다!]시퍼렇게 타오르는 칼날 너머로 놈이 보인다. 후레자식이 제사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자, 시간이 왔다.
부활의 제단에 첫 번째 번제(燔祭)를 올릴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