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32)
가짜 용사 이야기-132화(132/310)
#28 :
[5. 트라이폴] 성검 샤릴리온 (2)이제 골인까지 고작 1초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허공에서 부서진 칼날이 빙그르르 돌고 있을 때, 나는 나를 겨누는 성검의 열기를 그저 감상하고만 있었다.
“키이이이헤헤에에에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소년 백작 크란노스가 웃어젖혔다. 정확히는 슈’율큘라가 시끄럽게 승리를 자축해대는 것이지만.
미안하지만 넌 졌어, 짜샤.
샤릴리온의 칼날은 탐스러울 정도로 날카롭고 아름답다. 1초 뒤면 내 것이 될 칼이라 그런가.
크란노스가 내 몸을 갈라 내리려고 칼을 치켜들었다.
피하지 않았다.
아직은 피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대망의 0초가 되었다.
[성검, 샤릴리온의 《형질흡력》이 《불 뿜기》의 위력을 폭발시킵니다!] [《형질흡력》이 순간적으로 《불 뿜기》의 위력을 700% 증강시킵니다!]바로 지금이 피할 때였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저 알림이 울리자마자, 그러니까 불꽃이 작열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순간 곧장 옆쪽으로 황급히 굴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폭음.
이어 후끈한 열기가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갔다.
매캐한 유황 냄새에 기침하며 쓰라린 눈을 비벼야 했다.
“키이이이이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크란노스는 화염에 휩싸인 채 이리저리 날뛰며 울부짖는다. 성검의 칼날에서 넘실거리던 불길.
그 불이 칼끝으로 집중되면서 순간 강대한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화염이란 심연의 천적.
1성 마법이긴 했지만 7배의 위력으로 일시에 닥쳤으니, 놈의 체력은 2페이즈로 넘어갈 새도 없이 작살나 버린다. 1페이즈의 체력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공략법의 핵심은 바로 저 《형질흡력》의 위력에 있었다.
《형질흡력》.
7초가 지나면 흡수했던 힘을 집중·증강시켜 폭발시키는 <성검 : 샤릴리온>의 고유 능력.
바로 그 7초에, 이용자는 땅이든 벽이든 어디라도 내리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폭발이 칼날에서 일어나 사용자가 휘말리고 마니까.
<성검 : 샤릴리온>.
이 검이 압도적으로 막강한 이유이자, 획득법을 아는 랭커들 사이에서는 또 기피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기에다가 사용할 때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엄청난 칼이다.
이 검을 자유자재로 다룬 건, 설정상 영웅시대의 인류제일검 샤릴리온과 초대 주인 에누엘밖에 없다고 한다.
크란노스는 굳이 따져보면 3대? 4대 검주쯤 되겠지만…… 저 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심연에 삼켜진 채로 이 검을 사용했다는 게, 검이 그걸 허용했다는 게 놀랍긴 하다.
여하튼 장점과 단점이 일체되었다고나 할까.
– 어이 정씨, 개소리 집어치우고 일로 와서 오더나 잘해.
음…… 예전에 성검 샤릴리온의 장점을 설파하다 저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 개소리가 첨가됐긴 하다.
가장 큰 단점이 있으니, 사용할 때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엄청난 걸 넘어서 행동 불능에 빠진다.
그래도 써야지 뭐…….
흑기사 클래스는 이걸 아주 잘 쓸 수 있다.
그나저나, 아르츠레히드의 대검을 박살 내버리다니. 한순간 등골이 싸늘해졌었다.
오랜만에 만났다고 너무 얕봤나?
초반이긴 해도 보스는 보스다.
흐릿한 연기 사이로, 쓰러져 흐느끼는 놈이 보였다. 이제 명줄만 끊어주면 끝이었다.
크란노스는 쓰러져 있었다.
심연의 망자가 내뱉는 신음은 이제 흘리지 않았는데, 그 앞으로 걸어가서 부러진 대검으로 얼굴을 겨누는데도 놈은 가만히 있었다.
보이는 얼굴은…….
염병할, 왼쪽이었다.
요컨대 소년의 얼굴.
소리 없이 흐느끼던 소년이 내게 물었다.
“……고맙다…… 위대한…… 기사여……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나……?”
“……에델 바이스.”
“아아…… 에델 경…… 그런데…… 내…… 누이는…… 무사한가……? 빙룡들은…… 약속대로…… 누이를…… 데리러…… 왔는가……?”
이게 성검 획득 퀘스트의 막바지였다. 고개를 끄덕여주며, 국어책 읊듯이 말했다.
“빙룡 군단은 오지 않았습니다.”
“……뭐?”
“하지만 그대의 누이는 안전합니다. 그러니 이제 고통에서 벗어나 그만 안식을 얻으시오. 샤릴리온의 후손인 그대에게 평안이 있기를, 크란노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모르고 넘어가는 정보다만, 이 보스전은 사실 비극의 이야기였다.
크란노스가 서서히, 그리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
부러진 칼날로 그 머리통을 내리쳤다. 불에 그을린 심연의 육신은 손쉽게 으스러졌고, 이어 재처럼 바스러져 버렸다.
할 때마다 찝찝한 퀘스트야…….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 소년의 얼굴이어서 더더욱 그렇게 느끼는 걸까.
아니, 아니다…….
만약 크란노스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런 시나리오 전개가 있었더라면, 샤릴리온의 후손으로서 이 멸망을 막을 단초를 제공해 줬을지도 모르기에 그런 것일지도…….
[보스 퀘스트 : 백광검귀 크란노스 – 완료.]– 장래가 유망하던 소년 영주는 왜 심연의 권속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그 내막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야기꾼 동료가 설명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저 낯간지러운 대사를 읊은 이유는 사실 크란노스의 안식을 위해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녀석 들으라고 한 소리지.
바로.
[성검, 샤릴리온이 옛 주인의 명예를 향한 당신의 경의에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성검, 샤릴리온이 그대를 주인으로 섬기길 원합니다.
이 녀석이다.
[선택 퀘스트 도착 : 성검의 새로운 주인.]– <성검 : 샤릴리온>은 신성 기사 샤릴리온 이래로, 리드 백작가의 가보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성검은 오직 샤릴리온의 자손들만을 섬겼으니까요. 그 성검이 이제 당신을, 당신의 명예를 섬기기를 원합니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아이템 획득 : <성검 : 샤릴리온>.]– 업적 달성 : 나는 전설이다.
나이스!
아찔한 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제 중후반까지 무기 걱정할 일은 없었다. 말이 중후반이지, 잘만 쓰면 빙룡 스케사리를 죽일 때까지 쓸 수 있었다. 최종 무기로 쓸 수도 있단 소리.
쾌감이, 공포로 물든 건 바로 그때였다. 이 세계에 희망의 때란 본래 없었다.
[인벤토리]를 조작해 성검을 착용하려 했을 때 절망이 또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GUAAAAAAAAAA……!
귀를 의심하려 했다.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광기 수치가 폭주하는 걸 보면, 하, 진짜 빡치네…… 제발 작작 좀 하라고.
56%, 62%, 68%, 71%…….
놈이 확실했다.
[심연 지대 활성화 : 88%]큘륜.
슈’율큘라의 직속 하수인이 기어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경고 : 광기 수치가 75%를 초과했습니다!]길었다. 성검이 착용되어 신성력이 흘러나오기까지는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로 길었다.
[아이템 착용 : <성검 : 샤릴리온>.]– 성검, 샤릴리온이 주인에게 기적, 《광명의 정기》를 시전합니다!
75%…… 56%…… 41%…….
급속도로 진정되는 광기 수치.
《광명의 정기》는 성검 계열의 칼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기적으로 광기에 높은 내성을 주지만, 샤릴리온의 힘은 페이쿼리어들이 사용하는 성검들보다도 더욱 강력한 내성을 부여한다.
[경고 : 감히 사용할 수 없는 무기입니다!]– 페널티 : 캐릭터의 수명이 99% 감소합니다.
페널티를 받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으나, 그건 함정이다.
그랬다가는 샤릴리온의 힘을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뼈가 부서지고 힘줄이 끊어진다. 행동 불능이 되는 거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명을 99% 바쳤을 경우에는, 통증(그래도 견딜 만한)만 감수한다면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응~ 수명 99% 날아갔어~.
개똥템이야~.
이딴 식으로 토 달지 마라. 대략 3개월쯤 남은 수명은 흑기사로 각성할 때 다시 되돌려 받을 거니 문제없다, 이 말이야.
그나저나…….
이딴 검을 도대체 샤릴리온은 어떻게 100%, 200% 위력으로 사용했던 것일까? 그때 무언가를 박살 내며 또 움켜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다.
파공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거세게 날아왔다. 그 방향을 가늠하지 못했다.
“키이이이헤헤헤헤.”
키기기기키기기긱.
망자와 심해목 들의 울음이 들려왔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면, 막으면 된다.
[성검, 샤릴리온이 그대의 길을 인도하고자 합니다!]한순간, 등판에서 뽑혀 나온 성검의 칼날이 어둠 속에서 섬뜩한 섬광을 그었다.
보인다.
이것은 검의 기억, 인류제일검 샤릴리온이 수천 번을 베고 또 휘두르며 남겨놓은 달인의 기억. 최적의 경로.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큘륜이 통째로 던진 주택이, 성검이 허공에 그린 은빛 궤적에 일도양단(一刀兩斷)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널빤지처럼 말끔하게 두 동강 난 주택이 내 양옆으로 처박혔다. 먼지가 앞을 볼 수 없도록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쿵…… 쿵····쿵…쿵··쿵·쿵쿵쿵!
큘륜이 그 허점을 파고들었다.
노련한 사냥꾼인 큘륜은 이 상황을 노린 것이다.
그 긴 다리로 한달음에 달려와 긴 팔을 뻗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몬스터, 큘륜이 스킬, 《광기 폭주》를 시전합니다!]귀청이 터져 나갈 것 같은 비명.
내 중심이 일순 흐트러진 순간, 흙먼지가 폭발하듯 갈라지면서 거대한 팔이 눈앞으로 들이닥친다.
죽었거나 치명상을 입었겠지.
성검이 그 찰나에 스스로 번득이지 않았더라면.
[성검, 샤릴리온의 《광명의 정기》가 《광기 폭주》의 위력을 99% 차단했습니다!]성검의 칼날에서 성광(聖光)이 뿜어져 나갔다.
목표는 큘륜의 눈동자였다.
역으로 놈의 시야를 차단해낸 것이다! 큘륜이 성광을 받고 아주 잠깐, 정말로 잠깐 멈칫했다.
성검이 시간을 벌어준 그때.
문득 순백의 벼락이 심해의 하늘을 난폭하게 찢었다. 그 벼락이 큘륜의 머리통에 내리꽂혔다.
[유물, 천살뇌(千殺雷)가 《살뇌(殺雷)》를 시전했습니다!]……이야, 생각보다 빨리 왔네?
큘륜의 거대한 몸뚱어리가 옆으로 고꾸라지며 지축이 흔들린다.
흙먼지가 폭풍우처럼 휘몰아쳤기에 성검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먼지 폭풍이 걷혔을 때, 머리통이 새까맣게 그을린 채 죽은 큘륜의 모습이 보였다.
뒤통수에 박힌 화살에서는 파지직, 전류가 발딱거리고 있었다. 반가운 전율이 솟는다.
그래, 정말 왔구나.
저것만 봐도 확실하다.
유물 등급 석궁, <천살뇌>.
이 미친 세계보다도 더 미친 새끼가 하나 있는데, 바로 저 무기의 주인 되시겠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천살뇌의 우레 소리가 뒤늦게 울렸다. 그 울음 사이로, 한 남자가 절도 있게 걸어왔다.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놈’이었다. 여자였다면 한눈에 반했을지도 모를 광경.
저놈이 왔으니 곧 나이트 페이스들도 나타날 것이다.
“잡아라.”
건방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 없는 공허의 악마, 나이트 페이스 두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양옆으로 내려앉았다.
심연의 권속과는 달리, 놈들의 움직임에는 어떤 소리도 없었다.
한 마리가 나를 거칠게 휘어잡았고, 다른 한 마리가 꼬리로 내 무릎을 휘갈겨 꿇어앉게 했다.
그 상황에 웃었다.
“지금 웃어?”
미쳤다고 생각할 만하다.
이 상황에서 키득거린다는 건.
하지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놈이 왔다는 건 안전 탈출이 100% 확정됐다는 뜻이 아닌가.
“히스테리 발작이라고 들어봤어? 그거야 인마.”
평소에는 세상 엿 같던 개자식. 그래도 지각 안 하고 와주니 반가운 마음부터 솟는다.
큘륜을 일격에 죽여버리는 유물 무기의 주인.
공허의 권능, 나이트 페이스들을 부리는 고대신의 사도.
위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역시는 역시였다.
괴기스러운 까마귀 가면을 쓴 남자가 바로 보였다. 이 가면이 놈의 트레이드마크다.
“…….”
나이트 페이스들이 사도의 명령을 엄숙하게 기다렸다. 얼굴 없는 악마, 즉 입도 없다 보니 애초에 말을 못하지만.
“신세대 망자들은 주둥이도 잘 터니 주의하라고 하더군.”
“누가.”
“내가.”
철컥, 천살뇌의 화살촉이 내 눈을 찌를 듯이 바싹 닥쳐왔다. 촉에서 전류가 매섭게 꿈틀거렸다.
겁내지 않는다.
원래 이렇게 미친놈이다.
그 시선이 나를 한참 동안 훑더니, 가면의 까마귀 부리를 갸웃하는 동시에 총구를 내려뜨렸다.
“생선 눈깔이 아니잖아. 혓바닥도 그 정도면 짧고. 근데 왜 망자처럼 웃은 거지?”
여전히 첫 대면의 인사가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놈이 까마귀 가면을 벗으면서 쪼그려 앉아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피부색은 놀랄 정도로 창백했으나, 짧게 깎은 머리칼과 눈동자는 기이한 암녹색이었다.
놈은 일반인이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는, 우울함과 같은 위엄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외모의 특질은, 놈의 정체에서부터 비롯된다.
공허(空虛)의 절대자이며 나이트 페이스들의 주인, 그 존엄하신 이름, 고대신 로덴칼.
그 로덴칼의 세 번째 사도(본인은 주제도 모르고 제일을 자칭한다)가 바로 이놈, 심연 사냥꾼 로헤이리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