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33)
가짜 용사 이야기-133화(133/310)
#29 :
[5. 트라이폴] 퀘스트의 종지부“이야앗!”
피터는 배신자를 상대로 제법 건투하고 있었다.
계속 밀리기는 했지만, 적어도 균형을 잃거나 허점을 내어주어 죽는 일은 없었다.
시간을 잘 끌고 있는 셈이다.
– 크세리니아는 배신자보다 강하다.
사쿠라이는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그 말을 분명히 떠올려냈다. 그 정철이, 분명 그렇게 말했다.
– 지금은 결계로 봉인되어 있어. 배신자가 배신하기 전에 그걸 풀어주기만 하면 돼.
결계를 푸는 암호가 참 독특했다. ‘우리는 뻐꾸기 남매’라고 했었지.
그래.
이제 용부인이 올 테고, 배신자도 최후를 맞이할 거야. 미끼로서 사쿠라이는 최선을 다했다.
피터가 왔다는 건, 수색조가 용부인을 풀어내준 뒤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안심하던 순간부터 일이 급박하게 전개되었다.
‘컨트롤 진짜 발로 하냐……!’
배신자의 발이 맹렬히 날았던 순간, 피터가 그걸 피하는 것이 반 박자 늦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명치에 발이 깊숙이 꽂히자마자 피터는 벽까지 붕 날아가 처박혔다.
칼을 놓친 피터는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지고 있었다.
“흐흐흐흐흐흐…… 꼬맹이들이 눈치 하나는 빠르군……. 하지만…… 나는 군주의 심복, 구텐트라스의 축복을 받은 자……!”
피터는 엎어진 채로 고통스럽게 끅끅거리고 있었다. 숨을 쉬려고 하는데 쉬어지지 않는 듯했다.
“헤이 퍼킹 양키 보이! 일어나! 아오! 겟 업! 왜 저런 허접이 전투 클래스인 거야! 이 3시즌 연속 챌린저 원딜은 비전투 클래스고!”
그러는 동안에도 배신자는 피터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배신자의 가슴팍은 지금도 서서히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끔찍했다.
새로 돋아나는 피부는 인간의 살갗이 아니라, 해양 갑각류의 그것이었으니까.
배신자가 피터의 머리통을 거칠게 움켜잡고 들어 올렸다.
피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힘없이 버둥거리기만 했다. 머리통이 비틀어지기 직전인데.
아, 진짜 답도 없네.
진짜, 진짜, 답이 없어.
그렇다고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방법이, 진짜 방법이 없나?
그때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다.
“야, 물고기 대가리!”
“곧 네 차례니 보채지 마라, 이 울보 꼬마야.”
“엘더 사인, Ten-Kai(전개).”
만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클라에논 단장』을 멋들어지게 펼친다. 동시에 눈동자에서 이지적인 빛을 반짝이는 게 핵심 포인트다.
“에, 엘더 사인이라고? 서, 설마, 그, 그 책은……?!”
당황한 배신자가 피터를 놓뜨리고 주춤 물러섰다.
“쓴다? 엘더 사인 쓴다? 무섭지? 무섭지? 아앙? 내가 주문을 마치는 순간 넌 끝나는 거야.”
“흐, 흐어어어억! 그, 그것만은!”
“상대를 잘못 골랐어! 이 몸께서는 3시즌 연속 챌린저라고!”
통했다.
허세가 통했다!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소름이 돋았다. 배신자의 머리통이 기괴하게 뒤틀려가고 있었다.
“……라고 할 줄 알았냐? 크크크크크크크, 날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봤군.”
“……!”
“엘더 사인을 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 모를 것 같냐? 그걸 욀 거면 몰래 숨어서 외웠겠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안 되겠군.
실질적 위협을 줄 필요가 있다.
“상대 원딜 점멸 없어요! 아 지금 탑 갱을 왜 가냐고! 바텀에 미드 텔! 상대 서폿 스펠 다 빠짐! 아 갱 좀 빨리 오라고!”
일부러 발음을 뭉그러뜨리고 LOH 게임 오더를 일본어로 달달달 읊어서 영창 외는 걸 연기했으나, 이 미친 게임은 통역 시스템이 너무 잘 구현돼 있었다.
큿소(썅)…… 이것조차도.
헛소리를 하고 있단 게 바로 걸린다.
“운명에 감사해라!”
그사이 배신자의 주둥이가 물고기처럼 튀어나오고 이빨이 세 겹으로 자라나면서…… 점차 어인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위대한 구텐트라스의 축복을 받은 이 모습을 볼 수 있었음에!”
그 육신을 휘감더니, 곧 사방으로 폭발하듯 퍼지는 심해의 안개.
[NPC, 마르셸이 저주, 《심해의 보좌》를 시전합니다!]그 안개에 닿는 모든 것은…… 심해의 이끼로 뒤덮인 채 순식간에 부패되어 죽어간다.
“엘더 사인 쓴다? 쓸 거야? 진짜! 진짜 쓴다고! 써! 어?”
『클라에논 단장』 대신 칼레이브가 준 『지혜의 보고』를 꺼냈다.
말도 안 되는 허세였다.
곧 죽게 되려니 눈물도 안 나오고 그냥 다리가 마비되어 바들바들 떨리고만 있었다.
– 절실했던 소원을 기억해.
이대로 포기할 것 같아?
언젠가 빙룡 스케사리인지 뭔지도 죽여버릴 것이다. 이 게임 자체를 끝내버릴 거다.
“벌레에게 어울리는 죽음을 내려주마!”
안다. 굳이 따지면 나는 영웅이 아니라 벌레겠지.
근데 어쩌라고.
바퀴벌레처럼 구차하게라도 살아남아서 아빠를 다시 보고 싶어. 그게 그렇게 잘못됐어?
촤르르르르르륵……!
그때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함께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랍게도 현자 칼레이브가 주었던 아이템이 활성화되는 알림이 들렸는데, 이어서 들리는 목소리도 칼레이브의 그것이었다.
[신성 기사 샤릴리온, 그 영웅이 싸우는 동기는 용사 리암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구텐트라스의 안개가 도시 전역을 삼키며 지척까지 다가온다.
[샤릴리온은 전쟁 자체를 끝내겠다는 대의를 짊어졌던 반면, 리암은 단지 친구와 동료들을 살리고 싶다는 일념으로 싸웠다고 한다. 소중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 일념이 쌓이고 또 쌓여서…….]아니, 바빠 죽겠는데!
시끄러워요!
[역사를 살펴보면, 샤릴리온보다는 리암과 닮은 영웅들이 훨씬 더 많다. 어쩌면 영웅의 탄생이란, 고귀한 동기가 아니라 간절한 동기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닐까.]눈앞으로 닥쳐오는 안개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음성이 끊기자마자 발치의 지축이 부패해서 썩어 내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바로 그때, 이마에 칼로 무언가를 새기는 듯한 격통이 몰려왔다.
[진리, <소현자의 기억>이 전용 스킬, 《세계의 기억 Lv.41》의 기억력을 280% 증강시킵니다!]이, 이 고통은…….
아까도 느껴봤던 그 고통이다.
이 아성의 성문을 통과할 때 느꼈던 그 고통.
[《세계의 기억》이 『영목의 탄생』 이야기에서 기적, 《차원 압축 Lv.Max》를 《차원 압축 Lv.41》로 모방합니다!]순전한 우연이었다.
그 부패의 안개가 얼굴을 뒤덮기 직전에 주먹을 움켜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뭣?”
배신자가 입을 떡 벌렸다.
사쿠라이 본인조차 이해할 수 없는 힘이었다.
부패의 안개의 기세가 잠잠해지더니, 주먹 쪽으로 빨려 들어오며 작은 원으로 빚어져갔다. 생각해보니 낯익은 장면이었다.
‘에오스가 심연을 이렇게 끌어당겼었잖아.’
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에오스와 달랐다.
눈물이 뭉클거리며 차올랐다.
주먹을 펼쳤을 때, 심연은 창의 형태로 빚어진 게 아니었다.
─치이이이이잉!
대신…… 신발이었다. 아빠가, 열 살 생일 때 선물로 사주셨던 그 운동화.
“필멸자가 가질 수 없는 힘일 텐데…… 어떻게?”
“평소에 책을 좀 읽으면 돼. 아니면 3시즌 연속 원딜로만 챌린저를 찍거나. 물고기 대가리로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지만.”
말실수였다.
배신자의 등에서 날치의 날개 같은 것들이 울긋불긋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NPC, 마르셸이 저주, 《심연 폭주》를 시전합니다!] [경고 : 마력이 부족합니다!] [경고 : 마력이 부족합니다!] [NPC, 크세리니아가 성흔, 《냉기의 눈동자》를 시전합니다!]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눈보라가 매섭게 휘몰아쳤다.
아뜩해지는 시야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심연이 휘몰아치던 상태 그대로 얼어버린 것이었다.
“맞아. 책 좀 읽어. 남자들은 책을 참 안 읽어요.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고 말야.”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온몸에서 힘이 쭉 풀려 나갔다.
용부인 크세리니아.
《세계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당찬 소녀가, 성인이 되어 겨울을 몰고 나타나 있었다.
근데 외형이 조금 변해 있었다.
우아하던 은발이 겨울의 한기가 담긴 하늘색 단발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도 아담한 체격인데도 위세가 당당한 건 그대로였다.
등에 엄청나게 큰 바구니를 메고 있었는데, 정철의 설명에 따르면 저기 용알이 들어 있다고 한다(성 롱덴 등탑에서 출산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경우).
“고마워. 꼬마 모험가 친구들.”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말은 정말이지 옳았다. 살아남고자 했기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생글생글 웃는 크세리니아.
그 뒤로 바이로니카가 나타났다. 가이네이브의 어깨에 부축된 상태였다.
“마르셸…… 너……?”
“그러한 저급한 이름으로 이 구텐트라스의 하인을 부르지 말라.”
“뭐?”
“하등한 것. 이제 하찮은 역할극은 끝났다는 말이다.”
“너, 처음부터…… 그러면 어릴 적부터 우릴……!”
“아둔하기 짝이 없구나! 네가 아는 존재는 죽었다. 이 구텐트라스에게 육신을 바치는 영예를 누렸지!”
이제 체력도 정신력도 한계였다.
사쿠라이는 천천히 쓰러졌다. 이젠 쓰러져도 될 것이다. 용부인이 왔으니까.
“멈춰, 바이로니카.”
“아가씨. 말리지 마세요. 마르셸은 제게…….”
“알아. 하지만 마르셸은 내 심복이었기도 해. 그 복수는…….”
순간, 크세리니아가 교향곡을 지휘하듯 손가락을 우아하게 휘저었다. 그러자 손가락 하나하나에 눈의 결정 같은 마법진이 아름답게 맺혔다.
“……내가 해야겠지.”
크세리니아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번득이기 무섭게 눈보라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NPC, 크세리니아가 성흔, 《냉기의 눈동자》를 시전합니다!]구텐트라스가 곧바로 응전했지만, 압도적인 냉기가 배신자의 심연을 얼리며 농락했다. 심연이 토해져 나오는 족족 꽁꽁 얼어붙어서 산산이 깨지는 식이었다.
참으로 황당한 순간이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자연법칙이 철저하게 부정되는 순간이었으니까.
‘……님아, 근데 왜 아직도 안 끝남?’
정철의 설명에 의하면 배신자는 빠르게 처리해야만 2페이즈가 스킵된다고 했다.
– 만약, ‘감히 인간 따위가’라는 말이 들렸다면…….
구텐트라스가 사납게 포효하자 그 몸이 거대해져 가기 시작했다.
“가아아아아아암히이이이이이인가아아안따아위이이가아아!”
우드득, 골격이 뒤틀리는 섬뜩한 소리. 목이 길쭉해지고, 갑각류의 집게로 변형된 늑골이 등가죽을 뚫고 튀어나왔다.
놈은 거대했다.
이 거대한 회랑보다도 훨씬 더. 그 몸체가 커져가면서 방을, 등탑 상층을 작살낼 그때, 정철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스쳤다.
– ……죽었다고 생각해라.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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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백작가는 외형적 특질이 크게 나뉜다.
최초 부계 유전이 클 경우 흑발과 적안을, 최초 모계 유전이 클 경우 은발과 금안을 얻는다.
흑발과 적안을 가진 자는 검술 또는 마법에 재능을 보였고, 은발과 청안의 특질이 나타난 건 가문 역사상 크세리니아 단 한 명뿐이었는데 기적에 비정상적인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향간에서는 리드 백작가의 외형이 루드윅 방백 가문과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 게 아니냔 음모론이 돌았다.
* * *
“망자도 아닌 주제에.”
등탑 상층부가 박살 나기 전에, 나는 로헤이리츠와 실로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냐?”
“성검의 검주에게 안식을 주고 있었지.”
“그 미치광이 검귀 말이군. 성검이 탐나더냐?”
“어른 말고 어린 쪽.”
“둘 다 똑같다.”
[성검, 샤릴리온이 상대를 베어낼 것을 청합니다.]참아라, 샤릴리온.
지금은 심연 사냥꾼을 철저하게 이용해먹을 때다. 죽이는 건 먼 나중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슬며시 그 미끼를 던졌다.
“아이쿠.”
일부러 바닥에 튕기게 만든 저것은 바로 바이로니카의 머리핀이다. 바다 장벽에서 뒷목을 잡아끌 때 꿍쳐둔 것.
“엇차차.”
일부러 천천히 움직였다.
로헤이리츠가 보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마침내 로헤이리츠가 고개를 흘끔 돌렸다. 시선이 머리핀에 꽂히자마자, 나이트 페이스가 내 손목을 우악스럽게 낚아챘다.
로헤이리츠가 머리핀을 주워들어 살폈다.
“이걸 어디서 손에 넣었지?”
“바이로니카와 친구였거든. 말 못 할 정도로 친한 친구였지.”
일단 속을 살살 긁는다.
“친구?”
이놈은 싸가지가 없긴 해도, 의붓남매인 바이로니카를 일편단심으로 짝사랑하던 놈이었다. 나름 순정파 설정인지, 늙어 죽을 때까지도 다른 여자를 만나지도 않았다.
“친구든 뭐든 알 바 아니다. 어디서 손에 넣었냐고 물었다.”
“침대.”
“침대?”
순간 의도한 대로 장화가 내 얼굴로 날아들었고, 내 위기를 직감한 성검이 거칠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
성스러운 울음이 나이트 페이스를 당황케 만들었다.
몸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칼자루를 움켜잡으며 즉시 발검, 성검이 청명한 쇳소리와 휘황한 성광을 토해냈다.
[성검, 샤릴리온의 《형질흡력》이 ‘나이트 페이스’를 무효화시킵니다!]알림이 울리자마자 나를 다시 붙잡으려던 나이트 페이스가 소리 없이 절규하며 칼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나이트 페이스는 공허 속성으로 빚어진 소환체다. 즉 《형질흡력》의 효과를 받는다.
7초.
성검이 나이트 페이스의 암녹색으로 물드는 동안, 왼손을 내뻗어 로헤이리츠의 발길질을 막았다.
“진정해. 네가 죽여야 할 상대는 내가 아냐. 로헤이리츠.”
“보면 볼수록 수상하군.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고 있지?”
어떻게 모르겠냐.
내가 널 네 번이나 죽여 봤는데.
“칼레이브와 바이로니카를 죽인 놈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바이로니카도 지금쯤 배신자에게 죽었을 것이다. 그 분노를 철저히 이용해주마.
4초.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
<천살뇌>가 나를 죽이라고 주인에게 간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챠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성검 : 샤릴리온>이 건방진 까마귀를 죽이라고 내게 탄원했다.
헛웃음을 삼켰다.
에고 웨폰들끼리의 신경전은 언제 봐도 흥미로웠다.
그때 로헤이리츠의 손가락이 가늘게 꿈틀거렸다. 내 몸도 본능적으로 경계 태세로 들어갔다.
“그 둘이 죽었단 말이냐?”
놈은 의심스러운 상대를 살려두는 성미가 아니다. 싹이 자라기 전에 쳐내는 놈이지.
1초.
그러니 반드시 놈은 뽑는다.
<천살뇌>를.
0초.
한순간, 성검을 먼저 매섭게 휘둘렀다.
[성검, 샤릴리온의 《형질흡력》이 ‘나이트 페이스’의 위력을 폭발시킵니다!] [《형질흡력》이 순간적으로 ‘나이트 페이스’의 위력을 700% 증강시킵니다!]로헤이리츠를 노린 게 아니다.
지금 놈이 돌연 뽑아든 <천살뇌>의 화살을 노린 것이다.
[유물, 천살뇌가 《살뇌(殺雷)》를 시전했습니다!]성검의 칼날이, 지근거리에서 쇄도해온 벼락의 화살과 격돌.
격렬한 쇳소리에 이어 공허가 700% 위력으로 폭발했고, 공허의 폭발이 천살뇌의 화살을 무(無)로 삼켜버렸다.
역시 <성검 : 샤릴리온>.
유물 천살뇌조차 상회하는 위력.
“로헤이리츠! 바이로니카를 죽인 놈은 지금 저 등탑에─!”
말은 끝마쳐지지 않았다.
다른 굉음에 삼켜졌기에.
“─────감히, 인간 따위가아아아아!”
내가 등탑을 가리키려던 그 순간 등탑 상층부가 산산조각 깨어져 내렸다.
흙먼지와 돌 파편 속에서, 권속의 화신(化身)이 소름 끼치는 포효를 터뜨리고 있었다.
「LUUUUUUUDEEEEEEEEEEEEELLAAAAAAAAAAAAAA!」
뭐야.
배신자의 최종 페이즈?
그건 사쿠라이가 공략에 실패했다는 소리인데.
[몬스터, 구텐트라스가 저주, 《왕의 심연》을 시전합니다!]– 경고 : 대지가 전율합니다!
몸의 균형을 간신히 잡았다. 머리통이 터질 것 같은, 기압의 뒤틀림.
심연 내성이 약한 생명체라면 죄다 머리를 터뜨리거나 망자로 만들어 버리는 힘.
오직 <잊혀진 왕들>과 놈들이 거느린 권속만이 사용할 수 있다. 구텐트라스는 슈’율큘라를 섬기는 해갑작(蟹甲爵), 저 힘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하다.
이유는 모른다.
머릿속은 용부인의 행방을 찾으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래야 엔딩까지의 진행이 순조로워지니까.
하지만 내 시선은 그보다 작은 소녀의 행방을 좇았다.
찾고 또 찾고 미친 듯이 찾았다. 허공으로 퍼져 나가는 잔해들 사이를.
사쿠라이.
피투성이 소녀가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찾았을 때, 나이트 페이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저걸 구할 방법은 나이트 페이스의 도움밖에 없었다. 지면에 격돌하면 목뼈가 으스러져 즉사다.
나이트 페이스가 주인을 바라보았다. 공허의 사도의 까마귀 가면이 그 폭발 속을 훑고 있었다.
순간.
까마귀 가면이 멈칫하는 게 보인 그 순간.
[NPC, 로헤이리츠가 권능, 《공허의 시간》을 시전합니다!]놈이 황급히 엄지손가락을 튕겼고, 난데없이 나타난 나이트 페이스 10여 마리가 등탑을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로헤이리츠의 시선이 한 여자에게 꽂혀 있었다.
바로 바이로니카였다. 가이네이브, 용부인도 거기에 섞여 있었다.
‘뭐야, 등판에 칼이 꽂혀 있지 않잖아.’
바이로니카를 살려냈다고?
이 멍청한 꼬맹이들. 바이로니카의 죽음을 이용하는 게 좋을 거라고 충고했더니…….
한 나이트 페이스가 떨어지던 바이로니카를 꼬리로 휘감았다. 이어서 가이네이브, 용부인도 낚아챘다.
다른 나이트 페이스가 피터와 사쿠라이를 꼬리로 잡았다. 체격들이 작달막해서 한 번에 잡혔다.
“모두 살아 있다.”
로헤이리츠가 짧게 말하며 <천살뇌>에 화살을 메겼다.
정말 짜증 나는 놈이지만, 이 녀석은 거짓말은 안 한다. 살아 있다면 살아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공허의 사도는 공허를 통해 그 하수인들과 텔레파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까.
크세리니아의 몰골을 보았는지 성검이 거칠게 울부짖었다.
[성검, 샤릴리온이 심연의 권속을 사냥할 것을 청합니다.] [메인 전투 퀘스트 도착 : 심해의 권속.]심연 사냥꾼과의 갑작스러운 협력전은 놈이 나를 쏘는 것으로 막을 올렸다.
[유물, 천살뇌가 《살뇌》를 시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