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39)
가짜 용사 이야기-139화(139/310)
#35 :
[6. 너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 1회차 (5)“오늘 밤 말이죠. 요르한 3세가 죽거든요.”
뭐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병으로 죽는 건가? 아니면 암살? 그러나 그 질문은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구제 기사단 규율. 제17조. 환자와의 밀접한 교제 행위를 엄격히 금한다.”
차가운 목소리였고, 낯익은 목소리였다.
샬롯 칸드라군.
문가에 기대서 있었다. 팔짱을 완강하게 끼고. 전투복이 아니라 백의 차림이었다. 저런 모습조차 우아하다는 게 놀라웠다.
“작일 입단 선서를 외던 녀석이 벌써 그 규율을 잊은 것이냐?”
“아, 아닙니다.”
종자 플레이어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재빨리 경례했다.
검지와 중지로 왼쪽 오른쪽 어깨를 차례로 누르고 주먹으로 가슴팍을 치는 것. 정말 비효율적이고 멋도 없는 경례였다.
대한민국 국군의 절도 있고 단호한 경례가 훨씬 나았다.
“물러가 봐.”
샬롯이 턱으로 문밖을 가리켰다. 경례를 받아주지도 않았다.
전과 달리 뭔가 살벌해서, 현수는 입 안이 바싹 말라오는 걸 느꼈다.
뭔 일이 있는 것이었다.
“벌써 여자나 꾀어내고 있다니, 제법 회복되었나 보구나.”
쾅. 플레이어가 나가자 샬롯이 문을 닫았다. 발로 차서.
샬롯이 창가 쪽으로 가는 동안 날카로운 침묵이 흘렀다. 들리는 건 철제 장화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뿐.
“애석하게도 성도에는 매춘굴이 없어. 그리고 구제 기사단 병원에 남녀가 몸을 섞을 병상 따위는 없고.”
“그런 게 아닙니다.”
뭐지?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죄지은 사람처럼 변명하는 듯한 말투가 나올까.
“어찌 되었든 간에, 내가 있는 동안에는 성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 정 여자를 안고 싶으면 트라이폴로 가봐. 거긴 그런 게 많으니까.”
“못 가는 걸 아실 텐데요.”
현수는 씁쓸하게 말했다.
결투를 마치기까지 현수는 성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전 내일 죽을 테니까요.”
대전사를 제시할 수 없다.
현수는 흑양 기사단 단장과 맞서야만 한다.
만약 대전사가 제시될 수 있었다면, 정철이 로바르를 대신 죽여 주었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반항아로서 이제 눈 밖에 났을 테니까.
“왜 그렇게 확신하지?”
“부끄러운 말입니다만. 아까 발을 날릴 때 전 그 발을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더군요. 저와 로바르의 힘 차이는 엄청납니다.”
솔직히 말했다.
빙빙 돌려 말하는 건 성미에 맞지도 않았고 재능도 없었다.
“요르한이 이렇게 널 내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용사들의 명예를 지켜낸, 어떤 기사보다도 위대한 병사를?”
“어쩌면 그 병사의 힘을 너무 과신하신 걸지도 모릅니다.”
“박현수, 요르한이 깃발을 꽂은 건 다 널 지키기 위해서였어. 어떤 재판이든 넘어가는 순간 넌 처형 판결을 받았을 테니까.”
샬롯이 병상의 발치로 다가와 걸터앉았다.
야릇한 꽃향기가 나서, 저도 모르게 성적 긴장을 느꼈다.
그녀가 붕대에 휩싸인 현수의 다리를 매만졌다. 어제 낙마했을 때 생긴 상처였다.
“다리는 이제 괜찮군. 통증은 있는가?”
“없습니다.”
샬롯이 붕대를 단번에 풀어냈다.
“질문해도 좋아.”
“물약만 마셔도 바로 회복이 되는데, 왜 이런 번거로운 치료를 받아야 합니까?”
“그대는 정말 이 세계의 사람이 맞는가?”
농담 같은 질문이었는데 도저히 농담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왜인지 숨이 막혔다.
“맞습니다.”
거짓말했다.
거짓말할 때 더듬거렸고 샬롯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아둔한 현수.
“물약이나 기적을 통한 치료는 응급치료라고 일컫는다. 단순 지혈이라고만 이해해. 순간적으로 회복은 하지만, 내외과적 후속 치료가 없으면 이후 각종 이상 증상이 발발하거든. 썩어 문드러진다거나, 골병이 든다거나.”
“내일 죽을 건데 이런 세심한 치료가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PVP가 벌어지든, 종자 플레이어의 말대로 벌어지지 않든.
“박현수.”
현수가 대꾸를 하지 않자 병실에 침묵이 돌았다.
한참 뒤에 창밖 나무에서 새가 짖었다. 그제야 샬롯이 입을 열었다.
“로바르와 엘리아가 왕권을 쥐게 되면, 저기서 우는 건 까마귀가 될 거야.”
전적으로 동의했다.
“성도가 처음이라고 했지. 그러면 로바르가 왜 망나니짓을 하는지도 모르겠군.”
“그렇습니다.”
과연 그랬다.
그놈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설치고 있었다. 왜일까?
<엔더스킵> 전우들에게 들은 건 요정과 인간의 갈등뿐이었다.
“성도 내의 강경파들에게 자신과 그 신념을 거듭 주장하고 있는 거야. 군주도 지지자들이 있어야만 오롯이 설 수 있으니까.”
“이미 그는 흑양 기사단 단장 아닙니까?”
“성도에는 흑양 기사단뿐만 아니라 다른 강경파 세력이 상당히 많아. 요르한의 통치 아래 숨죽이고 있을 뿐이지.”
왜 자꾸 ‘전하’ 또는 ‘왕’이라는 칭호를 생략할까.
이상했다.
기사단장은 저래도 되는 건가? 아니, 로바르는 빌빌 기던데.
“성도의 평화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해.”
그때 새가 푸드득 날아올랐고, 샬롯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박현수를 보았다.
“300년 전처럼, 인간과 요정을 합심시킬 중심이 되어줄 건 성도뿐이야. 심연이 재림하는 상황임에도 대륙을 의지할 수 없으니 더더욱.”
눈썹을 치켰다.
대륙이라, 맞아, 정철도 분명 빨리 대륙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었다.
“대륙에 무슨 일이라도 생깁니까?”
“내 언니들의 욕망에 의해서 곧 피로 물들여질 거다.”
샬롯이 말꼬리를 흐리다가 처연히 웃었다.
그 미소에 현수는 일순 넋을 잃었다. 몰아닥치는 정보에서 얻던 혼란도 잊어버렸다.
“박현수, 하지만 그대는 성도의 평화를 지켜낼 기회를 만들어냈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현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물어보려던 순간 기사 5명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전원 구제 기사단이었다.
“단장님.”
“왔나?”
“예, 말씀대로 전하께서 궁정으로 소집령을 내리셨습니다. 저 친구도 함께 말입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기사들은 들떠 있었다. UDT에서 작전을 수행할 때 동료들이 자주 보이던 들뜸이었다.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의 흥분.
[메인 퀘스트 도착 : 숙청의 밤 (1)]– 요르한 3세, 그가 온건파 요인들을 소집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요?
메인 퀘스트? 이상한 일이었다.
트라이폴로 따라오지 않으면, 메인 퀘스트는커녕 서브 퀘스트를 받기도 어려울 거라고 정철이 말했었는데.
“다리오, 어전으로 가는 길이다. 예복은 가져왔겠지?”
“저 친구 체격이 여간한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맞는 예복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장대한 편은 아닙니다만.”
현수가 소심하게 반박했다.
“단 5분 만에 구할 수가 없었단 얘길세. 자.”
뒤에서 한 기사가 튀어나왔다.
단정히 개어진 예복을 양손으로 받들고 있었다. 검은색이었다. 현수에게 건넸다.
“이건 뭡니까?”
“구제 기사단의 의료복이다. 받아라.”
현수는 순순히 받았다.
자신에게 존칭을 쓰는 기사가 없다는 사실에 슬슬 익숙해지던 참이다.
“저는 기사단 소속이 아닌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면 이번 기회에 입단하는 건 어떤가? 언제나 환영인데.”
다리오가 씩 웃었다.
“뭐, 단장님께서도 자네를 정말 높이 호평하시─”
“─가서 말에 안장이나 올려놓아라, 다리오.”
샬롯이 말을 끊자 구제 기사들이 킥킥 웃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구성원 전부 귀족이라기에 딱딱한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족 같은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럽지요.”
기사들이 나갔으나 샬롯은 남아 있었다. 옷을 한참 매만지던 박현수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단장님은 안 나가십니까?”
“응?”
“제가 옷을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일단 남자입니다.”
“남자라.”
샬롯이 아하하 웃었다.
“박현수, 넌 정말 재밌는 사람이다. 옷을 입는 방법은 아느냐?”
말을 잘못했나?
샬롯이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현수는 볼이 벌게지는 걸 느꼈다.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며 중얼거렸다.
“전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아니, 이 의료복을 입는 방법을 아느냐는 말이다. 매우 복잡한 녀석이다.”
다음 순간 현수는 샬롯의 도움을 받아서 옷을 입고 있었다. 손길이 부드러웠기에 오히려 쑥스러웠다. 몸을 떨지 않으려고, 괜히 샬롯의 머리에 더운 콧김을 뱉지 않으려고 무진장 노력을 해야만 했다.
[아이템 착용 : 구제 기사단 의료복.] [경고 : 구제 기사단 단원이 아닙니다. 착용을 적발당할 시 적대 관계가 형성됩니다!] [구제 기사단에서 당신은 ‘세력가’ 직위입니다.]– 의상 착용 페널티가 사라집니다.
이상하다. 언제 구제 기사단에서까지 세력가가 됐지.
그때였다.
등 뒤에서 가죽끈을 매주던 샬롯의 목소리가 나직이 떨려 나왔다.
“고맙다.”
“단장님?”
“오늘, 네가 아니었더라면 결사대원들의 넋도 편히 쉬지 못하였겠지. 그걸 아느냐.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너보다 용감했던 사람은 없었다는 걸.”
“아닙니다. 단장님도 최선을 다하셨잖습니까.”
“아니, 내 행동은 소리 없는 아우성과도 같았다. 내 신분, 내 지위에 비추어 보았을 때 방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야.”
현수가 뒤를 돌아보려던 때, 가죽끈이 허리를 꽉 옥죄었다. 짧은 신음을 토하자 샬롯이 웃었다.
“어딜 보려는 게냐. 지금은 성도의 평화를 위해 서둘러서 움직여야 한다.”
* * *
[새로운 지역 : 심연의 대장간.]해저의 동굴은 축축한 암흑에 젖어 있었다.
그 동굴의 어둠을 밝히는 샤릴리온의 검광.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이 해저의 동굴 크기를 가늠시켜 주듯 크고 깊게 울렸다.
“자신의 야공 기술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죽는 게 서러워서 심연과 계약한 대장장이, 괼프?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요!”
흠, 내가 만나러 온 녀석의 정보를 아주 완벽하게 짚어주시는 챌린저 누님.
이곳은 해저 수백 미터의 공간.
구텐트라스의 명령을 받은 옛것을 이용해, 이 숨겨진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물고기가 다시 내뱉어준 이후, 우리는 이 동굴을 계속 주파하고 있었다.
끄으으으…….
……끄으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저 비명은 바로 영혼을 두드리는 소리다. 영혼을 하나로 엮어서 병기를 만드는 소리다.
“오빠, 뭔가가 와요!”
“괼프의 창조물들이야. 뒤에 붙어 있어.”
“저도 헤드샷을 쏠게요! 저 챌린저 원딜이니까요!”
그러자 피터가 볼멘소리를 냈다.
“왠지 내 뒤통수에 총알 박힐 것 같아…….”
“진짜 박아줘?”
“미안.”
웅웅웅, 사쿠라이의 허벅지에 매단 스팀코어가 회전하기 시작하며 권총에 증기를 공급한다.
한 정에 각각 다섯 발씩.
호신용으로는 확실하나, 심연의 존재를 상대로는 은탄을 장전하기 전까지는 위력이 조금 떨어진다.
“그러면 한번 해봐.”
샤릴리온을 양손으로 붙들고 자세를 잡는다.
동굴의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심해의 괴물, 그러나 그건 생물체가 아니었다.
심해 생물체들의 뼈와 비늘을 기계처럼 조립한, 무기물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그런데도 놈은 움직였다.
생물체보다도 자연스럽게.
생물처럼 아가미를 뻐끔거리는 모습은 언제 봐도 혐오스럽다. 전신에서 심연이 검푸르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잘 보세요, 챌린저 원딜의 환상적인 에이밍을!”
사쿠라이가 총구를 들기 무섭게 방아쇠를 당겼다.
오오!
고대 심연의 이마에 총탄이 정확하게 꽂힌다. 그러나 명중률이 무색하게 튕겨 나가는 탄환!
“스미마셍(죄송합니다).”
급속도로 겸손해진 챌린저 원딜!
질주해오는 괴물의 팔을 샤릴리온의 칼날로 쳐낸 다음, 즉시 뒤돌며 역수로 고쳐 쥔 성검을 겨드랑이 사이로 내찔렀다.
“피터!”
“네!”
성검의 칼날에 움직임이 봉쇄된 놈의 뒤를 노리고 피터가 뛰어올랐다.
그 칼날이, 이둔참의 빛으로 번득인다. 운이 좋았다. 이둔참의 효과가 발동한다.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칼날이 놈의 몸속에 박힌다. 메마른 무언가가 찢어지는 듯한.
이어서 성검의 칼날에서 빛이 폭발하자, 놈이 전신으로 빛을 내뿜다가 그대로 불살라졌다.
“둘 다 잘했다.”
“저 챌린저 원딜(자칭)은 뭐 안 한 것 같은데요.”
“야, 울트라 퍼킹 양키! 두유 원 투 다이?”
저것들은 왜 옥신각신 못해서 안달이야…… 좋아해서 싸우고 뭐 그런 건가?
“야 이것들아, 사랑싸움 그만하고 얼른 와라. 리젠되기 전에.”
“사, 사랑싸움 아니거든요!”
“사랑싸움이요? 제가 얘랑?”
“아오, 이 초딩만도 못한 놈들아. 그냥 좀 오라고! 리젠된다니깐?”
5분 정도 더 걷자 마침내 긴 암흑이 끝나기 시작했다. 검푸른 빛을 발하는 심연의 조명이 나타난 것이다.
긴 동굴이 끝나는 대신 공동이 펼쳐진다. 이 광대한 공간에는 발목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 물이 검푸른 빛으로 발광하여 사위가 희미하게나마 열렸다. 공동 중심부에서 쇳소리와 비명이 규칙적으로 교차했다.
“오빠?”
그때 다리에 찰싹 달라붙은 채 따라오는 사쿠라이가 황망히 말했다.
“여기에서 보스 몬스터가 나온다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