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41)
가짜 용사 이야기-141화(141/310)
#37 :
[6. 너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 1회차 (7)“나는 폭군으로 죽겠네. 자네는 성도의 수호자가 되어 이 땅에 평화를 가져와주게.”
현수는 놀랐다.
제롤드 경이, 그 황소처럼 우람한 노장이 입술을 깨물고 흐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츠레히드가 말했다.
“저는 못 합니다.”
“자네가 해야만 해.”
제롤드의 말에 아르츠레히드가 거듭 고개를 저었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전 용병으로 살았었습니다. 고용주의 돈을 받으면 허리를 굽히고 칼을 휘두르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핏속에 떨어지는 은화를 주웠습니다. 그게 저였습니다.”
“아르츠레히드.”
“그리고 전 사기꾼입니다. 결사대……? 그 말로 속여서 사지로 내보낸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병사들 앞에서, 오늘 로바르가 망나니짓을 할 때도 말리지조차 않았던 게 접니다. 놈이 그들의 명예를 비웃고 있을 때 바로 그 사기꾼이 침묵했다는 말입니다.”
“아르츠레히드, 내 친구여.”
“그런 놈이, 군권을 쥐기 위해 성군이셨던 왕의 명예를 더럽히면서 엘리아 왕녀를 죽이고, 강경했거니와 성도 방어를 위해 맹세한 수많은 기사들의 목을 쳐야 한다는 것? 전…… 저는 도저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현수를 당황시켰던 것은, 이 행동에 대한 요르한의 반응이었다.
“아아…….”
요르한은 아르츠레히드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마치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반응 같았다.
아르츠레히드가 왕의 긴 침묵을 승낙으로 받아들이고 뒤돌아섰을 때에야 샬롯이 고함쳤다.
“그대가 이 그릇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성도는 파멸뿐이다! 잘 알면서 도대체 왜 거절한다는 말인가!”
아르츠레히드는 샬롯을 외면하고 걸어 나갔다. 그러자 샬롯이 매섭게 걸어 나가 아르츠레히드의 손목을 낚아챘다.
“제발, 생색내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제 그만 받아들여야 해. 네 사명을! 명예가 더러워질까 두려운가? 여기 누구 하나 자네의 명예와 진심을 모르는 사람 없어! 없단 말이야!”
“제 사명이 수백, 수천 명의 인간을 살해하고 왕권을 장악하는 거란 말씀이십니까?”
아르츠레히드와 샬롯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뒤엉켰다.
“신들께서 제게 내린 사명이 그토록 잔인한 것이라면, 사는 것보단 차라리 죽는 걸 택하겠습니다.”
제롤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르츠레히드, 대체 무슨 궤변인가! 지금 자네의 말이 사리에 맞다고 보는 건가?”
“당신에게는 맞지 않겠죠. 하지만 천한 용병 영주의 사리에는 맞으리라 봅니다…….”
황당했다. 퀘스트가 이렇게 어이 없이 끝나버리나?
[메인 퀘스트 실패 : 숙청의 밤 (3)]– 숙청 이후, 성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했어야 했던 아르츠레히드. 그는 결국 성도 수호자의 사명을 포기했습니다. 숙청은 시작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로바르가 왕위에 오르겠지요.
아니, 이토록 면밀히 준비된 거사가 아르츠레히드 1명이 거절하는 것만으로 끝난다는 말인가?
요르한은 왜 침묵하는가?
성도를 위해 친족 살해 같은 막대한 불명예까지 감당해 내겠다면서?
– 어차피 이 세계는 본질이 게임입니다. 시나리오 전개에 있어서 단순해지는 부분은 또 지극히 단순해져요. 이번에 캐슬베이아에 남아 있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정철…….
머리가 어지러웠다.
현수는 앞으로 달려 나가 아르츠레히드의 앞을 가로막았다. 뭔가 구체적인 목표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비키게, 박현수.”
“비키지 못하겠습니다.”
긴장해서인지, 또 혀가 꼬이고 머릿속이 빙글 돌았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머리를 돌렸다. 되든 안 되든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자네…… 제발, 자네까지 날 고통스럽게 만들지 말아주게.”
“무례를 무릅쓰고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정철의 말에 따르면, 이 게임은 강력한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승리에 다가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현재 이 성도라는 집단이 박현수가 속할 수 있는 최강의 집단일 것이다.
하지만 그 집단이 하룻밤 사이에 로바르에게, 현수를 죽이려는 자에게 넘어간다면?
내일 처형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살아서 도망칠 수도 있겠지. 정철의 호의조차도 불투명해진 지금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어느 길로 가야 ‘게임 클리어’와 혜림이를 볼 수 있는지를 현수는 몰랐다.
이 지위에까지 오른 것도 알고 보면 모두 정철의 덕이었는데, 이제 그 엘리트와의 관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성도를 지켜야 했다.
현수와 혜림이의 삶을 위해서.
그리고 성도를 지키고 싶었다. 성도의 봄을 위해 죽었던 NPC들을 위해서.
머릿속에서 ‘지키고 싶다’와 ‘지켜야 한다’가 합쳐진 순간. 해야 할 바가 분명히 보였다.
“영주님께서는 울고 계십니다. 울고 계셔서, 정상적인 판단이 안 되시고 있는 겁니다.”
“내가 울고 있다고?”
“그래요. 죄책감 때문입니다. 오늘 낮에 장례식 때부터 계속 그러셨습니다. 아닙니까?”
아르츠레히드가 현수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현수는 왼발을 뻗어서 다시 그 앞을 막았다.
“영주님!”
일순 자신의 행동을 주워 담고 싶었지만, 그런 건 이제 불가능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여기서 아르츠레히드를 설득하지 못하면 어차피 내일 로바르에게 죽을 몸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내뱉기 시작했다.
“당신은 결사대의 죽음 때문에 슬픈 겁니다. 슬퍼서 제정신이 아닙니다. 저도 예전에 겪어봐서 압니다. 제 판단 때문에 5명의 전우가 죽었습니다. 슬펐죠. 절망스러웠습니다. 대신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털어내고 일어섰습니다. 저마저 죽는다면 누가 그들의 명예를 기억하고 알린단 말입니까?”
“그만…….”
“영주님께서도 오늘 말했잖습니까. 타르혜 론델의 봉화가…… 제가 머리가 나빠서 기억을 잘 못 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기리는 방법은 분명 말씀하신 게 맞을 겁니다. 군중들 모두가 박수를 쳤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건 절대 아닙니다! 영주님께서는 머리가 좋습니다! 저와 달리 말입니다! 오늘 직접 하셨던 추모 연설도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만해주게, 제발……!”
“로바르에게 군권이 넘어가고, 캐슬베이아가 불탄 뒤에도 이렇게 후회할 겁니까? 내가 그때 전하의 명을 받들었어야 했다고? 그때는 늦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습니다! 수백, 수천 명의 에밀과 렌이 오늘 당신의 판단 때문에 죽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도 정말? 그러시다면 가십시오. 영주님께서 그런 사람이시라면 제가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테니까.”
말을 마쳤을 때 현수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저 긴말을 어떻게 해낼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였다.
날카로운 정적이 흘렀다.
순간 영주와 일반 병사의 지위는 천지 차이라던 사쿠라이의 충고가 떠올랐다.
아아, 아둔한 현수.
또 일을 저질렀구나.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여기서 아르츠레히드에게 죽으나 내일 로바르에게 죽으나 결과는 같았으니까.
바로 그때 바닥에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그건…… 눈물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아르츠레히드의 눈물이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네. 난 늘 말만 앞서는 위선적인 놈이니까.”
현수가 억지로라도 혓바닥을 다시 놀리려던 순간, 대문관이 바로 나섰다.
“당신에게 자격이 없다면, 이 자리의 누구도 자격이 없을 겁니다. 아르츠레히드. 당신의 명예는 요정 세력에게도 널리 퍼져 있고 귀감이 되고 있는 걸 아시는지요.”
“그것도…… 밀정에게서 온 연락인가?”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온 연락입니다.”
황당함의 연속이었다.
대문관이 눌러쓰고 있던 두건을 젖혔는데, 귀가 길쭉했고 얼굴 피부는 구릿빛으로 시커멨다.
아까 느꼈던 기이함의 정체. 그것은 바로 그녀가 요정이었기 때문이다.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대문관의 미색은 과연 요정다웠다.
“자네는…… 흑요정이었던 건가?”
“그렇습니다. 트뤼엔이라고 합니다. 그 여론은 학우들과 주고받은 연락으로 안 것입니다. 아르츠레히드, 현실을 인식하세요. 현 세태, 심연의 재림은 인간 혼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요정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영웅시대처럼 뭉쳐야 합니다. 그래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심점은 성도가 아닙니다.”
“……?”
“당신입니다. 성도의 광장에서 화합의 상징 ‘타르혜 론델’을 다시금 호소했던 사내. 바로 아르츠레히드 당신이란 말이죠.”
“나는 그런…….”
“그 겸손함까지도 당신의 미덕입니다. 청하건대 성도의 수호자가 되어주세요. 왕이 되란 소리가 아니에요. 전하의 청을 받아들이시라고요. 그러면 저도 성도의 평화를 위해 당신을 전심으로 돕겠어요.”
트뤼엔이 품에서 은제 휘장을 꺼내들었다.
요정들의 갑주처럼, 펼쳐진 책 모양이 은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것이 탄성을 절로 뱉게 만들었다.
“저는 간룬델, 백요정 일등 대학의 학자였습니다. 전하의 은혜로 요정임에도 성도에서 복무할 영광을 누리고 있지요. 제 친우들이 요정 세력 곳곳에서 문관으로 복무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온건파지요. 그들과 당신의 연결 고리가 되어 주겠어요. 요르한 3세 전하께 그리해왔던 것처럼.”
아르츠레히드가 고개를 흔들려던 그 순간, 칼이 뽑혀 나오는 쇳소리가 들렸다.
제롤드 경이었다.
양손으로 칼을 쥐고 있었다.
“나 제롤드, 이 칼과 늙은 목숨. 현 시간부로 성도의 수호자에게 오롯이 바치겠네. 영목 기사단의 충성도 함께할 것이고.”
순간 제롤드는 아르츠레히드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칼날을 양손으로 받들었다.
“성도의 수호자께 영광을!”
스르릉!
두 번째 기사가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칼을 바쳤다. 샬롯이었다.
“구제 기사단 단장 샬롯 칸드라군. 그리고 그 휘하 구제 기사단 기사 352명. 이 시간부터 성도의 수호자에게 그 칼과 신념을 바치겠어.”
샬롯의 맹세가 끝나기 무섭게 함성들이 터져 나왔다. 트뤼엔, 주교, 그리고 다른 기사 3명이었다. 그들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성도의 수호자께 영광을!”
“성도의 수호자께 영광을!”
“성도의 수호자께 영광을!”
아르츠레히드는 망연히 서 있었다. 수호자가 되겠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로.
하지만 현수는 알았다.
그가 수호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성도의 수호자’라는 외침이 방을 메우는 동안, 현수의 귓가에는 시스템 알림들도 함께 울리고 있었으니까.
[메인 퀘스트가 ??? 퀘스트로 갱신되었습니다.] [??? 퀘스트 갱신 : 성도의 수호자 (1)]– 영주 아르츠레히드, 그가 성도를 위해 칼을 뽑아들 것입니다. 숙청은 시작될 것이고, 성도의 왕좌는 피로 얼룩진 왕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것만큼은 분명히 압니다. 아르츠레히드의 왕좌가 로바르의 왕좌보다 몇 배는 나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 업적 달성 : 운명을 바꾸는 자.]– 보너스 레벨업 포인트를 (+15) 받았습니다.
18시 42분.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던 몇 분.
그 시차를 두고 나온 메시지는 더욱 의미심장했다.
[시스템 : 한 플레이어에 의해 시나리오가 뒤틀립니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를 대비하세요.
* * *
“마지막 과정이다.”
권속의 핵과 비늘 모두 드롭률이 1%도 안 되는 ‘전설’ 등급의 재료 아이템이다.
그런데 배신자가 ‘운 나쁘게’ 권속 변이 페이즈가 되었고, ‘때마침’ 나타난 로헤이리츠의 도움을 받았으며, 죽였더니 ‘운 좋게’ 핵과 비늘이 단번에 나왔다?
다음 정산에서 시청자들이 버그를 쓴 건 아니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네가 갖고 있는 모든 걸 여기에 바쳐라.”
다 끝났다고 말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게 삥을 뜯어야 했던 이유다.
물질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이놈은 이때 주는 돈이 부족하면 마음이 없다고 생각해서 갑옷을 주지 않는다.
레이드가 시작되는 거다.
품에서 호주머니를 꺼내 던졌다. 괼프가 불꽃 대신 심연이 들끓는 용광로에 그걸 털었다.
“흐흐, 금화만 5닢인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시야 아래쪽에서 왜인지 섬뜩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빠, 퀘스트 보상은 금화 3닢이었죠? 2닢 어디에서 났어요?”
“코인 좀 샀어. 수익률 80%.”
“여기 코인이 어딨어요! 현대 배경도 아니고 기껏해야 근대 배경인데!”
“있어.”
피터가 거들었다.
이 똘똘한 녀석.
“한 번 클리어하면 열려. 넌 뉴비라서 모르는 거고.”
“구라 치다 걸리면 머리에 구멍 뚫린다는 거 안 배웠냐 짜샤!”
그 사소한 소란을 잠재운 건, 괼프의 목소리였다. 망치 소리가 멎어 있었다.
“다 되었다. 와서 네 눈으로 직접 보아라.”
괼프가 부집게로 용광로 안에 마지막으로 갑주를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심연의 암청색 폭발.
심연의 기운이 밀려닥치면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심연은 정신을 침식한다.
그럼에도…….
그런 현기증 속에서도…….
마침내 세상에 자태를 드러낸 어린갑은 과연 어둠의 예술 그 자체였다. 사쿠라이와 피터가 탄성을 흘렸고, 나도 새삼 넋을 잃었다.
“……오빠, 이건 갑주가 아니라 예술품 같은데요?”
그 앞으로 나아가던 순간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가, 솟아오르던 기쁨을 순식간에 박살 냈다.
[시스템 : 한 플레이어에 의해 이데아 시나리오가 뒤틀립니다!]리샤르 후.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그 자식이 무슨 짓을 벌인 것이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차갑게 식혔다.
그놈밖에 없었다.
엘리트 플레이어밖에 없었다.
시나리오를 뒤튼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 자식은.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우연이었다.
그때 UI 좌측 상단의 시간을 보았던 것은.
18시 42분.
[집행 관리자 명령 : 게임이 일시정지 됩니다.]세계가 멈추었다는 것은 ‘시청자’들의 평가가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멈춘 시간은.
이 배틀로얄의 규칙 속에서 인간이 아닌 것들의 장난감 된 나의 운명을 절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제1라운드 정산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