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43)
가짜 용사 이야기-143화(143/310)
#39 :
[7. 새로운 길을 찾아라] 어린갑“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리샤르 후가 멍하니 되물었다.
아마, 모든 엘리트의 표정이 똑같았을 것이다. 시나리오가 뒤틀렸다.
그런데 그걸 관리자가 모른다고?
“정말로?”
리샤르, 네놈의 짓이 아니다?
“진지한 질문입니다, 관리자님!”
관리자들이 저런 일에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빠른 진행’을 위해 도입한 게 엘리트 시스템인데, ‘엘리트가 모르는’ 진행을 넣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었으니까.
“아니…… 그읍읍……!”
샬류안이 우산 끝으로 리샤르 후의 이마를 톡톡 쳤다.
「장난을 칠 때는 상대의 기분을 잘 보고 해야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한 번만 더 그런 쓰잘머리 없는 장난 쳐봐요. 머리통을 확 터뜨렸다가 싹 복구시켜 버릴 테니까.」
나는 리샤르와 샬류안의 행동을 살폈다. 당혹과 짜증.
쟈렌키와 막내 관리자를 흘끔 훑어보았다.
막내가 뭐라고 속삭이고 쟈렌키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행동이 많은 걸 설명해줄 때가 있다.
그렇기에 황당했다.
그러면 ‘시나리오가 뒤틀렸다’라는 시스템 알림은 대체 뭐였다는 말인가?
「다음에 만날 때는 엘리트 나이트 당신은 뒤져 있었으면 좋겠네요. 엘리트 소서러! 당신이 힘내 보라고요. 다음에도 나이트가 살아 있으면 너도 맞을 줄 알아. 그러면 이만!」
따악, 샬류안이 우산으로 지면을 내리친 순간.
[시스템 : 게임의 일시정지가 해제됩니다.]현기증이 일면서, 눈앞의 전경이 또다시 뒤바뀌어졌다. 원래 장소로 돌아왔다는 표현이 옳겠지.
“오빠, 들었어요?”
도중에 끊겼던 사쿠라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세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막혔던 숨을 토해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시나리오가 뒤틀렸대요, 오빠 이 알림 봤어요?”
“어.”
봤다.
관리자들의 소행도 리샤르의 간계도 아니라는 것을.
아직 100% 확신하기에는 일렀지만, 배 속에서 불쾌한 팽만감이 꿈틀거렸다.
누구야?
누구지?
대체 뭐지?
트라이폴에서 만났던 사이코 플레이어? 아니, 놈이 시나리오 자체를 바꿀 힘이 있다면, 거기서 날 살렸을 리가…….
머리가 터질 듯이 지끈거린다.
이번 정산은 진짜 혼란스러운 일들 천지였다.
뒤바뀐 시나리오 라인, 엘리트 아처의 멸망 루트, 그리고 크리스 마이어스…….
“흐흐흐흐, 심연을 들여다보고 온 얼굴이로군.”
괼프의 어딘가 섬뜩한 목소리가 그 혼란을 잠재웠다.
고개를 들자, 어린갑이 보였다.
원초적 공포와 초자연적 신비가 섬뜩하게 어우러지면서 생겨난 장비였다.
“심연도 네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다.”
해저 괴물의 등뼈로 전체적 골조를 이루고, 그 위를 검푸른 비늘 수백 개가 엮이며 덮는다.
형태는 언뜻 로브와 결합된 사슬 갑옷처럼 보이나, 그 물리 및 마법 방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으, 처음에는 예뻐 보였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소름 끼쳐. 심연이 새어 나와요. 오빠, 이거 진짜 괜찮아요?”
괜찮다.
어차피 시간 싸움이니까.
심연에 정신이 완전히 침식되어 망자가 되기 전에, 이 미친 게임을 끝내야만 한다.
“저는 줘도 안 입을래요. 어우, 팔에 소름. 물고기 비린내도 나는 것 같고.”
“나도.”
“냄새는 서서히 빠져.”
뭣도 모르는 꼬맹이들이 저렇게 떠들지만, 어린갑의 핵심은 외형이 아니다.
흉갑의 중앙에서 권속의 핵이 심장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갑옷 곳곳의 어린에서 심연이 일어서면서, 광역 결계를 펼친다. 권속의 심연이었다.
[고유 능력 : 《심해의 회오리》.]– 구텐트라스의 핵이 심해의 회오리를 생성, 전 방위로 방출합니다.
– 대기시간 60초.
내가 어린갑을 선택한 이유, 바로 이 고유 능력.
몇 번이고 말했지만, 심연의 모든 속성 중에 가장 강하다. 그 대가로 정신 침식이 있을 뿐.
이 어린갑과 성검, 그리고 정산으로 얻은 레벨업 포인트로 나는 <잊혀진 왕들>과 어느 정도 맞설 수 있을 정도다.
아직 이기지는 못하지만.
계획대로면 중반에 슈’율큘라의 상급 권속을 토벌하면서 얻을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손에 얻게 될 줄이야.
“오빠.”
사쿠라이가 슬며시 속삭여왔다.
“엄청 대단한 아이템 같은데. 이거 제작비가 금화 5닢으로 돼요?”
괼프는 원래 이런 말에 반응하는 NPC가 아니다. 그런데 놈이 반응했다.
“대가는 다른 걸 더 받는다.”
“뭐?”
“이건 구텐트라스의 부산물이다. 흐흐,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여기에 내 눈을 심어놨다.”
다 찢어지고 훼손되어 형태가 절반도 남아 있지 않은, 검푸른 망토였다. 심해의 물기로 젖은 원단에서 악몽의 기품이 느껴졌다.
이런 건 어린갑에 없었는데?
망토의 중심부에 기괴한 눈알이 그려져 있는 것이 꺼림칙했다.
“지금 뭐 하잔 거지?”
“네 마지막이 보고 싶어졌다. 네 영혼이 심연에 완전히 잠겼을 때 이 눈이 뜨이게 될 거다. 예언 하나 하지. 넌 빛을 좇으려다 절망하고 결국 심연의 종복이 될 거다. 그 마지막 모습을 즐거이 감상하마.”
“처음 이야기한 것과 다른 것 같은데?”
“받지 않겠단 건가?”
이런 개자식…….
업자들이 돈 받고 나면 갑으로 변신하는 건 현실이나 여기나 똑같다.
레이드 패턴이 발생되기 직전이었다. 괜히 까불었다가는 다 무너지고 만다.
“아니, 받아들이지.”
심연의 음험한 기운이 흉갑에서 박동하며, 심해의 냉기가 영혼 깊숙이 번진다.
[아이템 착용 : 어린갑.]갑주를 이루는 비늘들이 촉수처럼 꿈틀거렸으므로 착용감은 최악이었다.
심연 계열 장비가 뭐 이렇지.
하지만 최악의 착용감은 입을 때만 느껴진다. 모르핀에 중독될 때처럼 뇌에 젖은 솜이 가득 들어차는 감각이 쇄도한다…….
[시스템 : 마법사 클래스입니다. 천 갑옷 착용으로 마법 위력 보정을 (+5%) 받습니다.]천 갑옷 판정을 받을 정도로 가볍다. 권속의 비늘로 만들었으므로 통상 판금 갑주보다 단단하다.
완전히 나를 위한 아이템.
움직일 때 어떤 페널티도 받지 않는다. 대검을 현란하게 휘둘러야 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죽여라…….
모두 죽여 삼켜라…….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광기를 억누른다.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광기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업적 달성 : 권속의 권능을 훔친 자.]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성검에 어린갑까지.
지금 나는 어떤 엘리트 플레이어보다도 압도적으로 강할 것이다. 크리스 마이어스…… 너보다도.
“나도 예언 하나 하지, 괼프.”
“음?”
“네놈이 원하는 장면은, 이 세계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보지 못할걸.”
그러자 괼프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 건 예언이 아니라 소망이라고 하는 거다. 흐흐흐흐흐흐.”
* * *
“진짜 기분 나쁜 놈이었어요! 오빠가 말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대가리에 구멍을 뚫어줬을 텐데!”
사쿠라이가 바닷물로 장비를 닦으면서 투덜거렸다.
심해의 괴어의 도움으로 해변으로 돌아온 터였는데, 온몸이 놈의 위액으로 기분 나쁘게 질퍽했다.
이 상태로 도시로 돌아갔다가는 이상한 오해를 받게 될 것이다.
“피터, 모닥불을 피워라. 옷 좀 말리고 도시로 돌아가자. 그동안 상태창을 점검하고.”
[인터페이스]를 열었다.트라이폴 퀘스트 및 정산에서 얻은 포인트를 쓸 때였다.
[에델 바이스] [각성] : 방황하는 현자 [레벨] : 92힘 : 40 / 기량 : 27 / 지력 : 60 / 신앙 : 7
– 잔여 레벨업 포인트 : 102
새삼 어이가 없었다. 이 배틀로얄, 진짜 말도 안 되게 불공평해.
1라운드가 막 끝난 참인데, 현재레벨 92에 레벨업 포인트 102가 추가로 들어와 있었다.
메인 퀘스트 보상을 착실히 먹여오며 키워낸 사쿠라이보다도 최소 3배는 높은 셈이다.
“와. 43이나 들어와 있어. 대박.”
사쿠라이의 소박한 환성을 들으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그렇구나…….
노말 플레이어들은 들러리고, 엘리트가 주연배우라는 소리군. 주연들끼리의 살육극이 메인 플롯일 테고.
하지만 주연배우의 어드밴티지는 양날의 칼과도 같았다.
하나의 영화에 존재할 수 있는 주연배우는 하나뿐. 다른 주연 후보들과 경쟁하며 살아남을 때 비로소 주연이 된다.
– 엘리트 플레이어는 서로 연합할 수 없습니다.
엘리트 나이트.
엘리트 아처.
엘리트 어쌔신…….
리샤르는 한순간이나마 나를 앞서갔었고, 아처는 <잊혀진 왕들>의 사도가 되어 배드 엔딩을 공략하려 하고 있으며, 어쌔신은 공략 궤도를 종잡을 수조차 없는 사이코 자식이었다.
그런 괴물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죽이는 길의 끝에만, 어머니가 계신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살생부 명단에 엘리트 헌터가 있었다.
크리스 마이어스.
기껏해야 2회차일 네가 왜……?
언젠가, 어느 장소에서, 내 성검의 칼날에 몸이 꿰뚫리는 크리스의 환영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 환영 속에서, 피를 토하던 크리스가 흐느끼며 내게 말했다.
– 깨, 깬 거야? 이거 정말이지? 진짜지?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심호흡을 해서 몸속을 휩쓰는 현기증부터 진정시켰다.
크리스는 어차피 대륙에 있다. 성도 방어전이 끝나고 대륙에 간 뒤에 생각하면 될 터. 그 전에 다른 엘리트에게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지금은 능력치다.
일단 능력치부터 찍자.
[힘에 레벨업 포인트 (+20)을 투자합니다.]– 힘이 (60)이 되었습니다.
– 경고 : 이제 (힘)을 올릴 때는 레벨업 포인트가 (2) 필요합니다.
[힘에 레벨업 포인트 (+20)을 투자합니다.]– 힘이 (70)이 되었습니다.
– 경고 : 이제 (힘)을 올릴 때는 레벨업 포인트가 (4) 필요합니다.
[힘에 레벨업 포인트 (+40)을 투자합니다.]– 힘이 (80)이 되었습니다.
– 경고 : 이제 (힘)을 올릴 때는 레벨업 포인트가 (16) 필요합니다.
대륙의 델라이텐 마법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성검을 주력으로 쓸 셈이었으니, 무리하는 감이 있더라도 힘부터 80까지 올렸다.
[업적 달성 : 나는 보디빌더다.]능력치 80부터는 최상위 구간이다.
Max는 100이고, 또 85, 90, 95가 될 때마다 레벨업 요구 포인트가 배로 뛰지만, 80만 되어도 어지간한 적들은 다 쥐어 팰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진다.
내가 파티원을 적게 데리고 돌아다니고, 후원금도 팍팍 받는 마당이라 레벨업 포인트가 별것 아니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황녀를 위하여는 본디 단체로 몰려다니는 게임이고, 퀘스트 보상 받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여하튼 내 계산대로라면 성배 전쟁 개전 때에야 갖춰졌을 스텟을 벌써 얻었단 소리다. 후원 시스템이 사기는 사기다.
[기량에 레벨업 포인트 (+22)를 투자합니다.]《형질흡력》이 부족한 이능력을 보충해 주니까, 지금은 지력보다는 기량을 올리는 편이 좋다.
[레벨] : 154힘 : 80 / 기량 : 49 / 지력 : 60 / 신앙 : 7
근데…….
엘리트 아처가 풀액셀을 밟아 버렸는데, 내가 대륙에 갈 때쯤 그곳이 온전하긴 할지 모르겠다.
아, 돌아 버리시겠네, 진짜.
[성검, 샤릴리온이 당신의 고뇌에 신음합니다!]네 옛 주인, 샤릴리온에게는 고뇌 같은 게 없었겠지?
성검은 침묵했다.
영웅시대에 검 한 자루로 심연을 벤 용사, 샤릴리온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들려주지 않은 채.
그때 사쿠라이가 옆에 앉았다.
“오빠, 이제 좀 알려주세요. 지금 성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래…… 너희들도 알 필요는 있겠지. 오늘 밤 요르한 3세가 죽어.”
“왕이요?”
“어. 로바르는 왕위를 계승하고 즉시 군대를 소집하지. 그리고 그 군대는 그린데스크 포인트에서 요정왕 발데마르에게 전멸당해.”
사쿠라이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벌떡 일어나며 발을 굴렀다.
“마, 막아야죠! 그렇게 되지 않게. 왜 안 막아요?”
“안 막는 게 아니야.”
쓰라린 웃음을 지었다.
피터가 미처 맺지 못한 말을 대신 맺어주었다.
“못 막는 거야. 그게 시나리오니까.”
“참 나, 정신병자가 스토리를 썼나? 요즘 안 그래도 한국전쟁 때문에 세계경제가 망가져서 이딴 피폐물은 팔리지도 않는데.”
“그리고 청(淸)요정 대제사장이 트라이폴 백작령 전체를 차지해. 물론 이것들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슈’율큘라가 깨어나면서 그냥 몰살당하니.”
“그럼 이제 뭘 할 거예요?”
“어린갑을 맞추면 리샤르 후부터 죽일 생각이었는데.”
진심이었다.
엘리트 나이트를 지금보다 압도적으로 능가하고 있는 순간은 없을 테니까.
“리샤르 후? 누구죠, 공대장님?”
“그것도 몰라? 정말 바보네! 엘리트 나이트의 이름이야!”
“으으.”
얘야.
너도 내가 알려줘서 알았잖니.
그리고 피터 저 녀석은 사쿠라이랑 동갑이면서 기를 못 펴는군.
“지금은 뒤틀린 시나리오가 뭔지 정보 수집부터 먼저 해야겠다. 항구부터 가봐야겠어.”
“항구는 왜요?”
“메인 시나리오가 뒤틀렸다고 하잖아. 대륙으로 바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확인해야지.”
관리자들조차 모르는 시나리오의 뒤틀림. 어디로 가야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된 이상, 내일 바로 엔더스킵으로 가서 박현수부터 회수해 와야겠어. 동료 한 명 한 명이 귀중한 상황이다.
“아,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해…… 시, 시스템이 아직 막혀 있거든…….”
뒤이어 들려온 건 소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성검이 날카롭게 울었고, 사쿠라이와 피터가 후다닥 일어나서 총칼을 잡았다.
성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더듬거리는 목소리였다.
“누구지?”
일부러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마치 만화의 주인공처럼.
캬, 고수의 여유.
내가 한 거지만 존나 멋있어.
……이러려는 게 아니고, 만약 날 죽일 생각이 있었더라면 저렇게 말을 걸었을 리가 없다.
바로 습격해오거나 몰래 미행하며 기회를 엿봤겠지.
지금은 저런 일에 일일이 반응하기에는 너무나도 지친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쉬어야 하는데.
“게임 초반부에 샤릴리온에 어린갑이라…… 히히, 제대로 찾아왔다…….”
언제 나타났을까. 여행용 로브로 몸을 감싼 여성이 20보쯤 뒤에 서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아나?”
“응, 트라이폴에서 활약하는 것도 봤지…….”
“넌 거기 없었는데.”
“트라이폴에 있었단 소리는 아냐. 난 이야기꾼, 《천리안》 스킬이 있어…….”
“천리안이라.”
그러자 사쿠라이가 다급히 피터에게 속삭였다.
“천리안? 천리안이 뭐야?”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기술이야.”
“그럼 저 여우가 사실 마법사란 거야?”
“아니, 세계의 기억을 통해 이야기꾼도 다룰 수 있어.”
여우?
웬 여우?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게 내버려둔 채, 어른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에, 엘리트들만 이 게임에 박식한 건 아냐. 물론 너처럼 초반에 성검이나 어린갑을 얻어낼 정도는 아니지만…….”
“싸울 용건이 아니라면 얼굴을 까고 이야기해야지.”
여자가 한참 머뭇거리다가 두건을 걷었다.
푸석푸석한 금발 고수머리를 어깨 위로 아무렇게나 내려뜨렸고, 새하얀 얼굴의 진청색 눈동자에는 윤기 하나 없었다.
많아봐야 20대 초중반.
음침한 미모가 지금껏 게임 속에서 봐오던 폐인들처럼 퇴폐적인 인상을 주었다.
“엘리트 소서러, 내가 너한테 그 정보를 팔게…… 어때?”
“무슨 정보?”
“시나리오를 뒤튼 플레이어가 누구인지, 그리고 뒤틀린 시나리오가 앤티키아나 성도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지, 그 정도……?”
“알고 있다고? 그걸? 진짜로?”
“그래! 난 다 봤어. 다 알고 있지. 켈렉─샼…… 그리고 아르츠레히드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꽤 재밌다고!”
“대가로 뭘 원하는데?”
“클라에논.”
“!”
“나, 나에게 『클라에논 단장』을 넘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