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45)
가짜 용사 이야기-145화(145/310)
#41 :
[7. 새로운 길을 찾아라] 기사단장 죽이기 (1)내성문(內城門).
현수는 그 성첩 위에 서 있었다.
심호흡을 하면서, 제롤드의 작전 설명을 되짚어 보았다.
– 강경파 주력인 흑양 기사들은 <검은 태양 신전>에 몰려 있지. 문제는 놈들도 지금쯤이면 눈치를 챘을 거고. 숫자가 우리보다도 많다는 거요.
신전이라…….
다시 <검은 태양 신전>을 내려다보았다.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우뚝 세워진 신전. 끔찍할 정도로 높은 첨탑을 5개나 거느린 괴상망측한 형상이었다.
– 로바르는 분명 탈출 계획을 세워두었을 거요. 분명 내성곽을 탈출하고, 서문(西門)으로의 퇴로를 열려 하겠지. 그것밖에 살길이 없으니까.
제롤드는, 인정하기는 싫지만 로바르가 뛰어난 무장이라는 점은 분명하니 주의해야 한다고 언급했었다.
현수는 동의하지 않았었다.
미친 짓이었다. 다행히 요르한 3세가 멋진 말로 현수의 무례를 무마해 주었다.
– 덕(德)이 없는 무(武)는 진정한 무가 아니다.
샬롯의 목소리가 회상 속에서 의식을 끌어냈다.
“박현수. 슬슬 준비해.”
샬롯은 내성 관문의 총책임자.
“알겠습니다.”
현수는 그렇게 대답한 뒤, [인터페이스]를 열어 [MAP]을 열었다.
[MAP : 『제롤드의 섬멸전 지도』를 활성화합니다.] [검은 태양 신전]·········┃
····[내성문]
·········┃
····[서문]
작전의 개요는 이러했다.
1. 구제 기사단이 내성 관문 수비를 책임진다.
2. 영목 기사단은 신전 공격을 책임진다.
3. 아르츠레히드와 엔더스킵 병력은 서문의 수비를 책임진다.
현수와 샬롯이 지키고 있는 내성문이 돌파당한다면, 서문까지는 일직선 코스였다. 매우 중요한 1차 방어선인 셈이다.
[??? 퀘스트 도착 : 몰락.]– 본 퀘스트는 디펜스 퀘스트입니다!
– 관문 수호 2 / 2
– 경고 : 관문 두 곳이 돌파당하면, 퀘스트가 실패로 끝납니다!
현수는 장총을 쥐었다. 렌이 준 장총이었다.
– 저주받을 하프 놈에게 국장은 무슨…….
침을 삼켜 치받는 분노를 삼켰다. 지금은 냉정해야 할 때였다.
그때였다.
조명탄 신호가 보였다. 신전의 벽돌담 쪽이었다. 나직이 포복해 있던 영목 기사들이 현수에게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현수의 차례가 왔다.
잠시 눈을 감고, 스킬을 발현시켰다. 서늘한 기운이 뼛속에 차오르는 게 느껴졌을 때 눈을 떴다.
[플레이어, 파워풀엠페러가 전용 스킬, 《숲을 걷는 자》를 시전합니다!]곧 불침번들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특성 덕에 어둠 속에서도 푸르게 색적되어 보였다.
정문 앞에 2명.
쪽문에 1명.
심호흡을 한 뒤, 장총에 탄창을 끼웠다.
“기다려.”
샬롯이 말했다.
“아직이야.”
방아쇠 위로 얹어진 손의 근육이 긴장감에 잠긴다. 쇠의 질감과 땀의 온도까지 확실히 알 정도로 촉각이 증폭된다. 그때 돌담에서 횃불이 매섭게 타올랐다.
“지금!”
[플레이어, 파워풀엠페러가 전용 스킬, 《필살 삼중사》를 시전합니다!]총탄들이 매섭게 날았다.
적들의 목울대가 꿰뚫렸다. 꿰뚫릴 때, 적들의 몸이 총탄의 힘에 밀려 뒤쪽 기둥에 처박혔다.
단말마 하나 새어 나오지 못했다.
쪽문에 서 있던 불침번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삼연발의 마지막 총탄에 곧 피를 토하며 고꾸라지게 되었지만.
“훌륭해!”
샬롯이 현수의 어깨를 툭 쳤다.
“매우 듬직한데?”
“아닙니다.”
기습 작전은 성공적으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바로 그때 종소리만 울리지 않았더라면.
대앵…… 대앵…… 대앵…….
빌어먹을. 적습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신전 꼭대기 쪽이었다.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는 위치였다. 《숲을 걷는 자》 감지가 닿지도 않는 위치였다.
뿌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종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트럼펫들이 사납게 울었다.
시작은 영목 기사단이었고, 이어 신전 후문 쪽 병사들도 호응의 나팔을 불었다.
“총병대, 조준!”
샬롯이 총병들에게 명령했다.
총병들이 성곽에 일렬로 도열하며 총구를 세웠다.
“다리오! 그대는 아래로 내려가 방책 방어 부대를 지휘하라!”
“그럽죠.”
“자신 있겠지?”
다리오 경이 특유의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없는 게 비정상입니다. 칼 없는 부녀자들이나 학살하던 개자식들이죠. 근본 자체가 검술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못한 떠돌이 기사들 아닙니까.”
“그래도 방심하지 말도록.”
캐슬베이아의 내성 관문은 견고하지 못했다.
종교적인 상징성이 높아서, 영웅시대 이후 보수를 거의 하지 못했다는 설정이었다.
그래서 박현수는 추가적인 방어선 구축을 제안했었다. 성문 앞에 말뚝과 장창병을 배치하자고.
샬롯은 현수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 제안을 통과시켰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순간, 다리오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히고 살기가 꿈틀거렸다. 다리오가 구제 기사들을 선도해 계단 아래로 내려가다가, 현수의 어깨를 툭 쳤다.
“정말로 고맙네. 박현수. 나중에 보답을 하게 해주게.”
“아닙니다. 무운을 빕니다.”
“무운이라. 이럴 땐 핏빛 태양의 은총이 있기를, 이렇게 말하는 걸세.”
다리오가 내려간 뒤, 정문 쪽 하늘에서 조명탄이 타올랐다.
두 대였다.
돌입 신호였다.
그 신호가 보이자마자 샬롯이 고함쳤다.
“제1파! 걸어, 당겨! 쏴!”
수십 문의 야포가 신전으로 포탄을 토해냈다.
석조 구조물들을 박살 내고, 모자이크 창문들을 깨뜨리며 내부로 철구가 굴러들어 갔다.
내부에서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고통스러운 기침들이 들려왔다.
“돌격!”
영목 기사들이 푸른 망토를 휘날리며 돌진하던 바로 그때였다.
신전의 거대한 청동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수많은 중기병들이 뛰쳐나왔다.
철갑과 검은 망토, 흑양 기사들과 그 종자들이었다. 모두 중무장을 끝마친 상태였다.
“제2파! 조준, 쏴!”
샬롯의 고함과 동시에 포탄들이 또다시 날았다.
그러나 야포들은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이대로는 아군까지 포격 범위에 닿기 때문이다.
총병대의 사격이 이어졌다.
그러나 전위대가 대방패를 들고 있었기에 총탄은 그 앞에서 무력하게 튕겨 나갔다.
“흑양 놈들도 확실히 대비를 하고 있었군요.”
현수의 중얼거림에 샬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바르, 그 간악한 녀석이 쉽게 당하리라는 낙관을 한 자가 있겠느냐.”
그때 신전 안뜰에서 제롤드가 엄청난 고함을 질렀다.
[NPC, 제롤드가 《사자후(獅子吼)》를 시전합니다!]현수는 한순간 귀를 틀어막을 뻔했다. 그토록 날카롭고 매서운 고함이었다.
성첩에 있던 현수가 그럴 정도이니, 면전에서 당한 흑양 기사들의 꼴은 더욱 처참했다.
전위대의 방어진이 잠시 무너진 그때를 샬롯은 놓치지 않았다.
“제3파! 조준, 쏴!”
하늘에서는 총탄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땅에서는 영목 기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흑양 기사들에게로 돌진했다.
그때 한 구제 기사가 무어라 소리치자, 핏빛 기적이 내려섰다.
– 효과 범위의 아군들에게 생명력 보너스를 (+6) 줍니다.
자욱해지는 연기 속에서 처절한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검은 태양의 이름으로!”
붕붕 돌던 철퇴가 적의 머리통을 깨부수는 한편, 적의 총탄이 아군의 심장을 꿰뚫고 팔다리를 저몄다. 안뜰은 순식간에 피와 땀으로 젖어갔다.
[플레이어, 파워풀엠페러가 전용 스킬, 《속사》를 시전합니다!]현수도 거듭 총탄을 쏘았다.
제롤드의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던 흑양 기사가 목표였다.
도끼날을 하늘 높이 치켜들던 등판을 장총이 관통하고 지나가면서 그 중심이 휘청였다.
그 장면을 보았는지 샬롯이 나직한 탄성을 뱉은 것 같았다.
[NPC, 샬롯이 당신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5)]잘못 들었던 것 같다.
샬롯은 현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총병대를 지휘하느라 무척 바쁜데.
총병대의 총탄이 제9파쯤 날았을 무렵에는, 검은 태양 신전의 다섯 첨탑이 모두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백병전도 거의 갈무리가 되어가던 참이었다.
“뭔가 이상해.”
하지만 현수 역시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원군이 더 나오지를 않았다.
원군만 있었더라면 역으로 뒤집힐 수도 있는 전세였었다.
게다가 제롤드의 지휘 아래 전세가 뒤집히자마자, 적들은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항복해 나갔다. 너무 간단하게 말이다.
“로바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후문? 후문으로 간 거 아닙니까?”
“아니, 로바르는 후문을 선택할 만큼 아둔하지─”
불현듯 조명탄이 날아올랐다.
세 발이었다.
샬롯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세 발은 적들이 탈출했다는 신호, 즉 임무 실패의 신호였으니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성도 곳곳의 하늘에 조명탄들이 치솟고 있었다. 모두 세 발이다.
“무슨?”
각지에서 날아오르는 세 발의 조명탄들은 점차 서문 쪽으로 가까워지며 계속 올랐다.
흑양 기사단을 제외한 다른 강경파 잔당들이 서문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신전 공략에 투입되지 않은 다른 고명대신들이 임무에 실패했다는 소리였다.
위험했다.
주력부대가 대부분 신전 공격에 투입되었으므로, 서문에는 기사들이 많이 없었다.
그곳은 아르츠레히드의 엔더스킵 병력들이 주력이었고 대부분 잡병들이었다.
“서문 쪽으로 병력을 보내! 여기에 로바르는 없어!”
일련의 소동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기습 작전이 전면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
이제 시간은 강경파의 편이었다.
로바르가 서문 밖으로 탈출한다면, 강경파들을 규합해 반기를 내걸 것이 분명했으니까.
수비대 병력이 방어진을 거두고 서문 쪽으로 다급히 이동하던 그때, 두두두두…… 대지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뭐지?
미세한 떨림이어서 현수만 느낀 것 같았다. 《숲을 걷는 자》로도 간신히 느낀 떨림이었으니까. 신전 쪽이었다.
‘설마……!’
깨달음이 오자마자 박현수의 눈에 푸른 인형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열…… 서른…… 쉰…… 어?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던 청동문에서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연기 사이로 중기병대가 쏟아져 나왔다.
100여 명은 족히 됨 직한 기마대.
황금빛이 은은하게 그들 주위를 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기적을 써서 질식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한 듯싶었다.
기마대 선두에 로바르가 있었다.
무시무시한 뿔 달린 투구를 쓰고, 험악하도록 거대한 대망치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
‘저 미친.’
기사단 단원들을 죄다 미끼로 쓰고, 치고 나갈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인가?
[NPC, 로바르가 전용 스킬 《태산괴력(泰山怪力) Lv.75》을 시전합니다!]시스템 알림이 들리자마자 로바르의 양손에서 새하얀 섬광이 일었다.
“아하하하! 길을 비켜라!”
로바르는 앞을 가로막는 영목 기사들에게 전투 망치를 맹렬히 휘둘렀다.
어이가 없어 경악스러웠다.
그 공격에 피격된 5명의 기사들이 저 하늘 멀리 날아간 것이다. 갑옷이 으스러지며 뼈가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당장 막아!”
“다, 단장님! 불가능합니다!”
로바르의 비정상적인 힘 앞에서 사태는 돌변했다.
제롤드도 영목 기사도 총병대도 달려 나가는 중기병대를 막지 못했다.
수비대 절반이 서문 쪽으로 이동 중이었던 구제 기사단 방책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히, 히이이이이이익!”
장창병들은 선두 병사들이 로바르의 망치에 무참히 으깨지자 뒷걸음질 치다가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기사들 또한 어찌할 방도가 없어 주춤거렸다.
놈은 저 어마어마한 위력으로 내성문을 박살 내고, 서문으로 향할 작심처럼 보였다.
‘아니, 내가 널 이대로 보내줄 것 같냐?’
현수는 장총에 새 탄창을 끼우려다가 관두었다. 멀리서 쏘아봐야 철갑과 마갑을 뚫지 못할 것이다.
대신 어떤 묘안이 떠올랐다.
장총을 등에 매고, 장검 칼자루에는 밧줄을 감았다. 갈고리가 달려 있는 밧줄이었다.
갈고리를 성첩의 틈새에 고정.
장검을 성첩 바로 아래로 내던졌다. 현수 하강의 낙하 포인트이자 무게 추였다.
“뭘 하는 거지?”
샬롯이 물었다.
“로바르를 죽이러 갑니다.”
현수는 양손에 기름 먹인 천을 둘둘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 시간이 없었다.
“횃불용 천으로 로바르를 죽이겠다고?”
현수는 대답하는 대신, 성첩 아래로 뛰어내렸다.
레펠 하강을 하듯이, 밧줄을 수차례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아래로 재빨리 내려갔다.
이것은 도박이었으나 결국 성공이었다. 익숙한 일이었으므로 노련히 해낼 수도 있었다.
UDT/SEAL에서 수없이 훈련받았고 또 실전에서도 수차례 경험해왔던 터였으니까.
“박현수!”
지면에 발이 닿자마자 기름 먹인 천을 풀고, 장총을 꺼냈다.
탄창을 끼우면서 고개를 들었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로바르의 기마대가 보였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대단한 위압감이었다. 두려움으로 뼛속이 떨릴 정도였지만, 이를 악물어 공포에 맞섰다.
– 현수 씨.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진다.
집중력.
몇천, 몇만 발은 족히 쏘면서 적응된 이 침묵의 시간. 거기에 오른손에서 푸른 기운이 춤추듯 넘실거렸다. 총구로 로바르의 군마를 겨누었다.
– 말을 쏴서 죽이세요.
기렉의 군마를 쏴 죽였던 순간을 떠올렸다. 마갑 틈새로 총탄이 박혀 들어가던 그 순간을.
당시 상황을 최대한 비슷하게 연출해 보고자 밑으로 내려왔다.
정철이 그때 말했다. 현수가 아니라, 현수의 특성을 믿는다고. 이번에도 그 알지 못할 ‘특성’이 유효할지도 몰랐다.
‘일단 쏴보면 알겠지.’
망설일 틈도 없었고, 로바르를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제압하고 싶었다.
장총이 총성을 내질렀다.
스팀코어가 회전하면서, 폭발적으로 공급된 증기가 총탄을 약실 밖으로 밀어냈다. 동시에 시스템 알림이 시끄럽게 메아리쳤다.
[플레이어, 파워풀엠페러가 《속사》를 시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