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49)
가짜 용사 이야기-149화(149/310)
#45 :
[8. 태고의 심연이 잠든 도시] 네이갈라스 레이드 (2)기둥의 도시, 라리엔으로 향하는 열차는 2시 30분에 캐슬베이아 정거장을 떠났다.
객차는 3개뿐이었고, 탑승객은 10명뿐이었다.
객차의 순서대로 플레이어들 따로, NPC들 따로, 그리고 낙타들 따로 탔다.
섭정 아르츠레히드의 명령으로 특별 편성된 이 열차는, 다른 역을 거치지 않고 별빛의 황야까지 직행한다.
“박현수 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 했어요.”
내가 [MAP]에서 이것저것 정보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 좌석에 앉은 브뤼나가 말했다.
“저한테 말입니까?”
“성도 퀘스트를 뒤바꿔준 덕에 엘리트 플레이어 공격대에 들 수 있었으니까. 스타폴도 받았고요.”
정보) 아직 안 줬다.
“그놈의 스타폴, 때가 되면 알아서 줄 테니 그만 좀 졸라.”
열차가 황야를 가로지르며 철교를 넘어갔다.
이따금씩 스쳐 지나가는 산악은 메말라 있었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황야는 드넓어서, 새들은 시체를 좇는 독수리들뿐이었다.
낙타 수십 마리를 거느린 상단은 아직까지도 증기 문명을 배격하는 요정들일 것이다.
[MAP : 파티 리더가 A포인트를 설정하였습니다.]옆자리에 앉아 있던 박현수가 고개를 갸우뚱 저었다.
“에델 씨, 여긴 아무것도 없는 장소 아닙니까?”
“기둥의 도시예요. 동굴이랑 지하에 숨겨져 있지요.”
2회차 브뤼나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내가 말했다.
“<잊혀진 왕들> 레이드에서 가장 필수적인 존재를 꼽으라 한다면, 다회차 유저들은 《파멸의 선지자》부터 꼽습니다. 전용 스킬 《엘더 사인》의 위력은 그토록 강하거든요.”
“아, 예.”
“네이갈라스 레이드건 켈렉─샼 레이드건 야나를 먼저 《파멸의 선지자》로 각성시켜 둬야 합니다. 여긴 라리엔에서 파멸의 선지자로 각성할 수 있는 포인트예요. 죽을 수도 있으니 잘 들으세요.”
정작 그 위기를 넘겨야 할 두 이야기꾼은 저쪽 좌석에서 잠들어 있었다.
어찌나 피곤했던지, 사쿠라이가 야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소원을 성취한 걸 꿈에서 알았는지, 야나는 침을 질질 흘리며 이상한 잠꼬대를 해댔다.
“깨울까요?”
피터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어차피 야나는 말 안 해도 알 거야. 전투 클래스인 너희만 잘 알고 있으면 돼.”
라리엔은 위험한 장소였으나, 공략법을 알고 전력도 충분하면 그렇게까지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관리자들이 또 난이도를 뒤틀어 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주의해서 손해를 볼 건 없었다.
손가락을 튕겨 파티 UI에 조 편성 목록을 활성화시켰다.
A조 – 탐색 : 사쿠라이 노야, 브뤼나, 피터.
B조 – 각성 : 야나, 파워풀엠페러.
C조 – 레이드 : 에델 바이스
초회차인 박현수와 2회차인 브뤼나가 반쯤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 저었다.
“왜 에델 씨 혼자입니까?”
“레이드? 혼자서 권속 다 잡겠다고요?”
“초반부에 네이갈라스에 활성화되어 있는 권속은 셋. 아직 봉인이 온전히 깨진 게 아니라, 나중에 열리는 진짜 레이드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약해요. 용부인 파티에서 둘쯤은 맡아줄 겁니다.”
“그러면 혼자서 나머지 하나를 잡겠다는 건가요? 네이갈라스 봉인은 안 깨져 있잖아요.”
“아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레이드는 다른 레이드야.”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내 머릿속을 휘젓는 불길한 예감.
– 플레이어? 나를 너희 같은 쓰레기들과 동일하게 취급하지 마라.
놈이 거기에 있을 것만 같은…… 세상사 좆같게도 이런 불길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더라.
“시나리오가 어지간히도 비틀리다 보니 권속이 다 깨어나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 다들 각오 단단히 해두고.”
“……!”
“그리고 현수 씨,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부재중인 상황이 온다면 당신이 리더입니다. 공대원들을 지켜주세요.”
브뤼나가 휘파람을 불었고 피터가 두 눈을 끔뻑였다. 박현수가 고통스럽게 입술을 물었다.
“정말 제가 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의 영웅인데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에델 씨 도움을 못 받았다면 다 실패했을 일들뿐인데요.”
박현수가 칼자루 쥔 손이 부르르 떨리는 걸 보여주였다.
푸른 칼이다.
칼집은 푸른 법랑을 입힌 반면, 유난히 넓고 긴 칼날은 자체적으로 신비한 푸른빛을 거느린 저 칼의 이름은 청강검(淸江劍).
날 중앙에 음각이 파여, 무게가 가벼우며 균형감이 훌륭하여 적을 쳐낼 때 좋다.
박현수가 저 무기의 가치를 알고 있을까.
설정에 따르면, 황제 유레곤 칸드라군이 이데아로 떠나는 샬롯을 가엽게 여겨 하사했던 칼로, 영웅 등급이다.
청강검 또한 스타폴처럼 요정 플레이어들이 전리품으로 습득하는 무기였다.
로바르가 왕좌를 차지한 후 일으킨 ‘실버스톤 전투’에서 샬롯을 죽이는 요정 플레이어가 말이다.
박현수는 그걸 공짜로 받았다.
라리엔에 간다고 하니, 샬롯이 소중하게 여기던 그 검을 선뜻 내어준 것이다.
그걸 지켜보는 과정은 재밌었다.
내가 만약, 성도 퀘스트를 바꾸는 데 성공했으면 내가 지금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겠구나, 해서.
어쨌든 이로써 박현수의 무장도 다회차 플레이어들 부럽지 않게 강력해져 있었다.
전설 등급 말에 영웅 등급 무기를 가졌으니, 엘리트 플레이어 바로 밑 단계쯤은 될 것이다. 그 한 단계의 격차가 너무 커서 문제지.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자주 있을 거고, 익숙해져야 합니다.”
“제가 어떻게 에델 씨처럼…….”
“첫 전투 퀘스트 때 현수 씨가 먼저 뛰어오지 않았다면 저도 죽었을지 모르죠. 공대원들이 도와줄 겁니다. 당신이 그 중심을 이끌어 주세요.”
그러기 위해서 너를 골랐다.
너를 에이스로 선택했고 결코 버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니 너도 그런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해. 처음부터 잘할 필요는 없다. 서서히 완성되면 돼.
그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는 의지가 전해졌을까, 박현수가 결의가 맺힌 고갯짓을 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브뤼나가 양손을 과장스럽게 맞잡고 눈을 반짝였다.
“아아! 저도 캡틴처럼 멋진 남자한테 스타폴을 받는 게 소원이랍니다.”
말을 타고 이동했더라면 몇 시간이고 저렇게 떠들었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시대에 열차가 존재해서 정말 다행이야.
열차가 곧 감속하더니, 무인지경의 황야에서 정차했다.
“정차하겠습니다, 정차합니다.”
거기에서 철도가 끊겨 있었다.
이 앞으로는 미개발 지역이다. 정확히는 네이갈라스의 권능으로 사막화가 더욱 가속화되면서 도시며 역이 모래에 파묻혀버린 것이지만.
야나와 사쿠라이가 부스스 깨어났다. 사쿠라이가 화들짝 놀라며 야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럼 슬슬 스타폴 줄까?”
“네!”
“뻥이야.”
“아 씨.”
“씨?”
“번역이 이상하게 된 것 같은데요? 제 나라의 언어로 캡틴한테 축복을 빌어준 거예요.”
능청 떠는 레벨은 만렙이군…….
그래도 공격대에 이런 인물도 필요한 법.
“많이 바라지도 않아. 템 반만큼의 값어치 정도만 해줘, 제발.”
“와! 진짜 잘 쓸게요! 실망시켜 드리지도 않고요!”
이제 사막을 횡단해야 한다. 어린갑을 입을 수는 없었다.
[아이템 장착 : 사막 여행자의 비단옷. 사막 여행자의 터번.]사막에서 갑옷을 입겠다는 건, 몸을 불판 위에 올리고 굽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어린갑은…….
그 미친 습기 때문에 체감상 몇 배는 더 더워진다.
“오우! 예에! 오오우! 느낌 제대로 살아 있네요!”
벌써 옷을 갈아입은 브뤼나는 붉은색의 사막 비단을 너울거리며 스타폴을 힘껏 휘둘러보고 있었다.
그 엄청난 풍압.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휩쓸려 스타일이 엉망이 된 챌린저 누님(3년 연속 원딜로만)이 총집에서 권총을 스윽 꺼냈다.
“죽일까요, 마스터?”
“참아라, 서번트.”
“하이.”
권총이 나오던 각도 그대로 총집에 되돌아갔다. 이 무슨 충성심.
“지금은 남 머리통에 구멍 뚫을 때가 아냐. 악어가죽 벗기러 갈 시간이지.”
사막 지역에서는 말보다는 낙타가 체력과 기동성이 더 우월했다. 물도 한 번만 먹여놓으면 일단 괜찮았고.
<별빛의 황야>.
<기둥의 도시 : 라리엔>.
이 두 장소에는 밤이 되면 옛것들이 출몰한다. 심야가 되기 전에 《파멸의 선지자》 각성도 끝마치고 네이갈라스도 족치고 캐슬베이아로 귀환하는 게 베스트였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떡할까? 잘생긴 기사님.”
2번 객차에서 막 내려선 크세리니아가 물었다.
“어제 제 동료들이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기둥의 도시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20개의 문자를 찾아내야 한다고 합니다.”
“저도 들어본 적이 있어요.”
금발의 성직자 가이네이브가 말했다.
“뇌향의 세츠넨께서 기둥의 도시를 성도 인근으로 옮길 때, 용언을 이용해 그 자취를 감추셨다죠. 악한 손이 닿지 못하도록.”
“그래서 우리가 뭘 해야 하냐고 물으신 것 같은데, 어물대지 말고 빨리 좀 말하시지. 쓰레기 놈.”
로헤이리츠…….
넌 나중에 제대로 손봐주마.
“기둥의 도시가 지상에 나타나 있다는 전승지기의 말을 확인했습니다. 저희가 시가지의 동쪽을 수색하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우리가 서쪽을 맡을게. 20개라고 했지?”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때였다.
……SHiaaaaaaaakkkkkkkKK……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편에서 일고 있는 모래 폭풍의 소리였다.
“무슨 소리지?”
“제대로 찾아왔단 소립니다.”
폭풍이 걷히며 어렴풋이 사막의 한복판, 광대하게 펼쳐진 구조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티 리더가 설정한 목표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숨겨진 지역 : 고대 도시의 잔해.] [메인 퀘스트 갱신 : 태고의 심연이 잠든 도시 (2)]– 원시의 폐허를 찾지 말라. 그곳엔 오직 영겁의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영겁의 죽음은 죽음마저도 소멸시킬지니…….
– 전승지기 노인들조차 이 도시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큼은 기피하고 있습니다. 돌아가려면, 살고 싶다면, 지금뿐일 것입니다.
* 경고 : 옛 심연의 기운이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자…… 다시 시작된다.
아무리 수십 번 본 패턴이라지만 손끝이 떨리는 긴장감은 어떻게 억누를 수가 없다.
모래바람처럼 보였던 영체가 몸을 휘감고 더듬거리기 시작한다.
‘……산 자여…… 물러나라…….’
그 속삭임에, 그 더운 숨결에, 사쿠라이와 피터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까지 들렸다.
‘……어느 누구도…… 태고의 비밀을 엿보아서는 안 된다…….’
두려워할 것 없다.
이건 심연의 권능이 아니라, 이 지역을 격리시키기 위해 뇌향의 세츠넨이 만들었다는 결계니까.
참고로 뇌향의 세츠넨은 영웅시대의 위대한 삼룡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은 방해만 될 뿐.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전용 스킬 《대마력방호》를 시전합니다!]뇌향의 마법으로.
뇌향의 결계를 무효화시킨다.
빙그르 회전하는 순백의 마방진으로, 모래바람들이 구슬프게 신음하며 빨려 들어간다.
‘아…… 안 돼…… 돌아가라…… 그대들 말고도 이미…….’
할 일을 마친 《대마력방호》가 파편들로 깨어져 내린다.
그 파편들 너머로 보인다.
신기루처럼 흐릿했던 고대 도시의 잔해가, 수평선을 가득 메우면서 선명하게 펼쳐지는 것이.
이걸로 228번째 시작인가.
이곳, 기둥의 도시 라리엔을 지금까지 총 227번 공략했었으니까. 이제는 우리 집 안방이나 다름없는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자, 시작합시다.”
그러나 이 228번째 라리엔은 달랐다. 무언가, 핵심적인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그걸 발견한 건 야나와 사원 중심부를 탐색할 때였다.
“뭐 좀 찾았나?”
야나가 성벽 그늘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물론 성벽처럼 보이지는 않다. 지금은 초석만 간신히 남아 있는 실정이니까.
그래도 신화시대 이전 별의 시대에는 강력한 마법의 성벽으로 세워져 있었다는 설정이란다.
“어. 사, 상형문자 2개.”
야나가 가리킨 곳에, 불온한 특질이 깃든 원시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하나는 기어 다니는 원시인.
다른 하나는 그 원시인을 찢어발기는 도마뱀 인간, 렙틸리언이다.
[탐색 성공 : 옛 심연의 자취 8 / 20.]– 옛 도시의 심연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역시 다회차 유저가 셋에다 크세리니아 파티가 있어서인가. 진척 속도가 내 계산보다도 빠르다.
벌써 8개.
12개만 더 찾으면 지상 구간 퀘스트가 끝난다. 그러면 지하, 즉 본편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지, 지하로 내려가면 마주치게 되겠지? 원시 심연들.”
“강한 놈들이긴 하지. 그래도 우리 적수는 아냐. 잡담은 여기까지만. 이제 일할 시간이다.”
“으, 또 햇빛에서 일하라니. 나, 난 어둠의 권속이란 말야…… 해, 햇빛은 나의 천적. 새, 생명력이 깎여 나가는 기분이야.”
“<잊혀진 왕들>이나 할 법한 대사로군.”
“나도 그냥 잊혀지고 싶어……. 부럽다. 나도 잊혀지고 싶은 마음으로 치면 왕 못지않을 텐데.”
“넌 잊혀지면 <잊혀진 왕들>이 아니라 그냥 <잊혀진 폐인> 아니냐? 아니, 폐인은 애초에 잊혀진 존재니 별명도 없겠네.”
“오히려 좋아.”
“…….”
“……?”
이후에 사원 유적지로 들어갔다.
내부는 온전히 설 수 없도록 천장이 낮았다. 악마적인 기운이 자욱해 숨이 막혔다. 우리는 무릎걸음으로 걸어서 들어갔다.
원시인들이 거주했다는 라리엔의 지상 건물은 이처럼 높이가 낮고 폭이 넓다.
렙틸리언들이, 원시인들에게 두 발로 걷는 것조차 불허했기 때문이란다. 놈들에게 사람이란 곧 가축이었다.
[전용 특성, 《세계의 기억》이 전투 정령 (6)기를 소환합니다!]야나의 화염 정령들이 어둠을 밝혀내면서, 이단적인 제의(祭儀)의 흔적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 난 중앙 제단으로 갈게.”
중앙 제단에는 ‘옛 심연의 자취’가 있다. 야나의 노련함이 점점 마음에 들어가고 있었다.
야나가 중앙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동안, 사원 내부의 부조(浮彫)들을 둘러보았다.
라리엔의 역사가 담겨 있는 태고의 부조들.
【<잊혀진 왕들>. 그 다섯 번째 여왕 네이갈라스의 심복으로서 렙틸리언들이 영광을 구가했던 별의 시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온 것들>. 그들과의 전쟁과 패망.】
부조는 앞으로 뻗어 나가며 장대한 역사를 그려내고 있었다.
<온 것들> 부조의 선두에 선 두 명의 대천사는 알카이오스와 카듀엘…….
야나가 향한 중앙 제단에, 마지막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바로, <잊혀진 왕들>의 재림과 인간시대의 종말…….
“어? 뭐, 뭐야. 뭐지, 이게?”
“왜 그래?”
“빠, 빨리 와 봐!”
중앙 제단에 소름 끼치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지하로부터 거대하게 튀어나온 쇠말뚝.
그것들이 ‘옛 심연의 자취’, 즉 인간시대의 종말이 새겨져 있던 부조를 3개나 지워버렸다.
저걸 부정하기라도 하겠단 듯이.
“말도 아, 안 되지? 이건 퀘스트 오브젝트인데…… 파괴될 리가 없잖아……? 그치?”
역시…….
네놈이 여기 와 있었군…….
“칼레이브도 로바르도 죽었어. 이제 그런 제약은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해.”
트라이폴에서 보았던 그 마법, 《원철극(原鐵戟)》이다.
똑같은 마법을 쓰고, 똑같이 퀘스트의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도 낙관적인 사고다. 매우 높은 확률로 그놈이다.
“대체 누가…….”
야나가 망연히 중얼거리던 그때, 소름 끼치는 열기가 사원 안으로 밀어닥쳤다.
모래 폭풍이 무시무시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파티원들의 다급한 연락이 도착했다.
[파티 : 사쿠라이 노야가 B포인트로 파티 리더를 호출합니다!] [파티 : 파워풀엠페러가 B포인트로 파티 리더를 호출합니다!] [파티 : 브뤼나가 B포인트로 파티 리더를 호출합니다!]야나를 데리고 황급히 사원 밖으로 나갔다. 야나의 얼굴이 당혹감에 젖었다.
“이, 이 패턴이 벌써 나, 나올 리가 없는데…… 뭐지……?”
모래가 안개처럼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살갗이 델 정도로 뜨거운 안개였다.
도시 전역에서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현재 온도는 섭씨 50도를 넘어 60도로 치솟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폭풍이 아니다.
울부짖는 파멸, 네이갈라스의 권능이지. 놈의 봉인이 더욱 빠르게 깨져가고 있다.
“……끄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멀리서 낙타가 도륙되고 잡아먹히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열차역에서 여기까지 우릴 태워다준 녀석들이었는데.
“나, 낙타가!”
“왜 그래. 네가 태양이 싫다고 하니 임금님께서 친히 태양을 지워 주셨잖아. 기뻐해야지.”
“내, 내 잘못이라고?!”
당황할 것도 없다. 왕의 권능이 나타났으니, 그 하수인들이 하나둘씩 깨어나는 건 당연지사.
이 도시의 옛 지배자들이, 시가지를 서성이며 우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이젠 서둘러야 했다.
놈이 네이갈라스를 완전히 깨우기 전에 죽여야 한다. 지상에서 힘을 뺄 수도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는 노릇.
“야나, 엎드려!”
시가지를 내달리다가 성검을 발검, 즉시 악마의 머리통이 선혈을 흩뿌리며 위로 솟구쳤다.
언제 봐도 실로 괴이한 두상.
악의적으로 비틀린 양각 뿔. 악어의 턱, 파충류의 뱀눈, 잘린 머리통이 입을 뻐끔거리며 사악한 저주를 내뱉기 시작한다.
[???, 죽음을 소멸시키는 도마뱀이 당신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그 머리통을 짓밟아서 터뜨린 다음, 야나의 팔을 잡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뜨겁게 휘몰아치는 열풍을 얼마나 헤치고 나아갔을까, B포인트에서 동료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야나의 정령들 덕에 길을 찾기는 쉬웠으나, 비현실적 고온 때문에 체력의 손실이 너무 심하다.
“캡틴, 어떻게 된 거예요? 벌써 왕이 깨어난 거예요?”
브뤼나가 소리쳤다.
“아직은. 그렇게 하기 전에 지하로 내려가야 해!”
B포인트는 시가지 중심부 광장.
‘옛 심연의 자취’ 20개를 찾았을 때, 지하 구간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곳이다.
브뤼나가 내 지시대로 기적 《미명의 칼날》을 펼쳐놓았기 때문에 광장에는 안개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요? 자취를 다 찾긴 했는데!”
“네 스타폴로 강제로 작동시키면 돼!”
“강제로 작동시켜요? 어떻게?”
“바닥을! 스킵 루트다! 어서!”
“현수 씨, 엄호하세요! 피터, 너도 돕고!”
“네!”
“알겠습니다!”
“챌린저 원딜의 환상적 에이밍을 가진 저도 도울게요, 오빠!”
“참아라, 서번트.”
“하이.”
스타폴과 샤릴리온이 모두 있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기둥의 도시 진입 루트.
원래는 야나를 《파멸의 예언자》로 각성시킨 뒤에 내려갈 생각이었으나,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이상 방치했다간 계속 깝칠 게 분명하니, 배틀로얄 밖으로 마실 보내 드려야겠다.
아, 너무 억울해하진 말고.
중후반에나 갖출 수 있는 아이템들만 잔뜩 루팅해온 나를 보고.
네가 뭘 어쩌겠어. 상대가 난데.
“근데 오빠, 로헤이리츠랑 용부인은 어쩌고요!”
“마침 저기 오고 있네! 브뤼나, 빨리!”
브뤼나가 눈을 흠칫 떨더니, 내 말을 신뢰하였는지 스타폴로 지면을 내리찍었다.
혜성 낙하.
혜성 같은 힘을 샤릴리온이 그대로 빨아들인다. 새하얗게 물결치는 검을 지면 깊숙이 꽂았다.
7배의 위력 증강 폭발.
섭리의 영역을 범하는 힘의 파장에 지축 전체가 뒤흔들리더니, 광장 바닥이 땅속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경고 : 당신은 지금 태고의 금기를 범하고 있습니다!] [경고 : 고대의 기둥이 당신을 향해 손짓합니다.] [탐색 실패 : 옛 심연의 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