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5)
가짜 용사 이야기-15화(15/310)
제15화
– 카이, 일어났어?
언제였을까, 그게 언제 꾼 꿈이었을까.
봄의 비릿한 향취.
푸르고 가까운 하늘의 정취.
눈을 뜨자 ‘당연하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어머니의 손길이 있었다.
왜일까.
이 온기, 이 몸 냄새를 맡자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진 건.
– 응? 왜 그래? 어디 아파?
어머니가 황망히 카이센의 눈물을 닦으며 물어왔다.
어머니는 언제나 이랬다.
아들이 작은 한숨만 내쉬어도 온갖 호들갑을 떠시는 어머니였다.
아들이 조금만 웃어도 행복해 죽겠다는 듯이 웃는 어머니셨다. 어머니는 삶의 축복이었다.
– 뭐지? 좀…… 나쁜 꿈을 꾼 것 같아.
– 나쁜 꿈? 기다려! 엄마가 그 나쁜 꿈을 그냥 혼쭐을 내주고 올 테니까.
– 어떻게?
– 어떻게든.
카이센이 풉, 하고 웃었다.
그러자 이게 웃어, 하시면서 어머니가 카이센을 덮쳤다.
어머니와 소년은 어린애처럼 깔깔거리며 봄의 풀숲을 뒹굴었다.
봄은 찬란했다.
어머니가 곁에 있고 집에 아버지가 있으며 또래 소녀들과 떠들고 있을 누나가 있는 봄은, 눈물겹도록 찬란했다.
왜 몰랐을까, 이때는.
– 엄마.
– 응?
– 그 칼 있잖아. 왜 맨날 가지고 다녀?
얼굴에서 풀떼기들을 떼어내 주시던 어머니의 손짓이 멈췄다. 쓰라린 미소가 따랐다.
– 아, 이거 말이지? 엄마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준 거라서 그래.
– 아빠가?
– 아니, 연인 같은 사랑이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동생 같은? 딸 같은?
– 난 동생이 없어서 몰라.
– 엄마보고 동생 낳아달라는 거야? 이 앙큼한 녀석.
– ?
– 그렇네. 그 아이가 언젠가 카이와 만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어머니의 미소는 비참했다.
칼자루를 어루만지는 손길에는 힘이 없었고 눈시울이 붉어져갔다.
– 엄마가 이렇게 살아 있는 걸 보면 엄마를 원망할 거야. 미워할지도 모르지.
– 왜?
– 모든 짐을…… 죄다 떠맡기고 도망친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 아이에겐 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미소가 견딜 수 없이 처연하고 또 슬퍼서, 카이센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걱정 마, 엄마! 내가 그 사람한테 잘 말해줄게. 엄마를 미워하지 말라고.
작전 성공이었다.
어머니가 맑게 웃으며 카이센을 끌어안았으니까.
– 어쩜, 어떻게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카이를 내 아들로 주셨을까…….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웃던 바로 그 순간, 불현듯 지반에 금이 가더니 세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엄마, 엄마, 엄마……!
어머니가 그 허물어지는 지면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걸 보며 황망히 손을 뻗던 그 순간.
발크루쉬의 문장이 시야 가득 섬뜩하게 명멸하더니, 불현듯 어머니의 어깨에 외날 도끼가 내리꽂히며 핏물이 솟구쳤다.
– ……내내내 더더더럽럽럽혀혀혀진진진 명명명예예예를를를 씻씻씻는는는 방방방법법법은은은…….
카이센이 절규하는 와중에 놈의 목소리가 어지러이 소용돌이쳤다.
– ……전전전사사사가가가 된된된 널널널 칼칼칼타타타케케케에에에서서서 죽죽죽이이이는는는 것것것뿐뿐뿐이이이다다다…….
죽여.
죽여버려야 해.
목소리의 진원을 향해 어머니의 소검을 치켜들던 그 순간, 헉, 막힌 호흡이 들이닥치면서 눈부셨던 백일몽(白日夢)이 끝났다.
– 꿈……?
또 그 기억인가…….
꿈이 끝났을 때, 온몸이 식은땀으로 질척했다. 긴 한숨을 내쉬며 목을 뒤로 잔뜩 젖혔다.
카이센은 참호에 있었다.
부상의 정도가 심했기에, 세츠넨의 공간 전이에서 가장 늦게 깨어났던 것이다.
즉, 아직 ‘용알 후송 임무’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임무의 내막을 모르던 카이센은 분주히 돌아가는 상황에 당혹스러워했는데, 그때 카밀라가 찾아왔다.
– 몇 살 처먹고 엄마 타령이냐. 바지에 오줌은 안 지렸냐?
머리칼도 눈동자도 어머니와 똑같아서, 카밀라는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존재였다. 성격은 완전히 딴판이지만.
– 엄마라고 한 적 없는데?
– 했는데?
– 안 했는데? 노처녀로 30년을 살더니 환청이라도 들은 거야?
– 하, 이 시건방진 꼬맹이가 날 노처녀 취급하는 날도 오고, 세상 참 염병이네.
그렇게 말하는 카밀라의 시선이 저 너머, 총성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전방으로 향했다.
항구도시 <아리스타포>.
황룡이 도시 상공을 날아다니며 신성한 빛의 파장과 벼락을 무수히 쏟아내고 있는 곳으로. 뇌향의 세츠넨의 싸움은 벌써 시작된 것이다.
– 아마도 오늘 난 죽겠지. 나 대신 스승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 스승님?
– 그래, 스승님. 알고 있으면서 뭘 물어?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 죽은 네 어머니가 바로 내 스승이셨어.
– …….
– 숨기려고 부단히 노력하던데, 잘하고 있기는 해. 탈영병의 아들인 게 알려지면 넌 바로 대가리가 깨질 테니까.
– …….
– 하지만 내 앞에선 의미 없어. 난 이 칼을 본 순간부터, 아니 네 얼굴을 본 순간 어렴풋이 알았거든. 네가 스승님의 아들이란 걸.
라미네아라는 존재는 카밀라와 카이센 두 사람의 삶에 드리워진 슬픔의 장막이었다.
장막에 가려서, 삶에는 빛 한 줄기 비쳐들지 못했고.
또 장막에 가려서, 힘없이 웃을 때조차 그 웃음의 그림자는 눈물로 젖어 있었다.
–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갑자기 그걸 왜 말하는데.
라미네아는 두 사람에게 있어 모든 것이었고 그 모든 것을 각자 다른 시간대에 잃어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을.
– 네 말대로 노처녀로 살다가 뒤질 날이 가까워지니까 노망까지 난 건지도 모르지.
뭔 개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카밀라가 허리춤에서 새하얀 칼집에 담긴 소검을 꺼냈다.
카이센은 당황했다.
4년간 계약의 보증으로서 가져갔었던 그걸 갑자기 던져주는 게 아닌가.
– 검술을 다 배우고 나면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었지. 자, 약속은 지킨다.
카이센은 머뭇거렸다.
4년 만에 쥔 어머니의 칼은 낯설었다.
칼에 어머니의 몸 냄새가 배어 있었나 싶었으나 어머니의 냄새도 미소도 이젠 잘 떠오르지 않았다.
– 야, 카이센.
그렇게 칼을 돌려주고 떠나나 싶었던 카밀라가 물었다. 그 목소리가 어째서인지 흔들렸다.
– 그 칼, 스승님께서 어떻게 다루셨냐?
평소였더라면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카밀라가 어머니의 제자였다는 충격과 어머니의 칼을 뜬금없이 돌려받은 당혹감에 혼란스러워서였을까.
–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사람이 준 거랬어. 보물처럼 여기셔서 어딜 가나 가지고 다니셨고.
카이센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숨도 쉬지 못했다. 온몸이 당혹감으로 젖었으므로.
– 그래?
여름의 바람이 불어와, 카밀라의 목깃 세운 망토가 퍼덕거리면서 가려져 있던 하얀 얼굴이 보였다.
눈물……?
그 붉은 입가에 투명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으며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다행이다…….
웃으면서 울고 있던 것이다.
4년 동안, 분노와 짜증을 제외하고는 어떤 감정도 내비친 적이 없었던 그 카밀라가…….
그것이 카이센이 본 카밀라의 첫 미소였다. 그리고 그 한순간 깨달았다. 카밀라의 미소는 어머니를 닮았다는 걸.
그렇게, 어머니의 미소를 품은 얼굴로 카밀라는 어머니와 같은 말을 했다.
– 카이센, 너는 살아라.
유년기의 끝,
아리스타포 공방전 (6)
카밀라가 이끄는 중군은 키슌 부대의 표적이 되었다.
고지가 눈앞이었다.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나아가면 숲이 끝나고 강이 시작되는 <레이보로 대교>가 나올 테니까. 그 대교를 넘고 무너뜨리면 승리였다.
하지만.
운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운명(運命)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닐까. 카밀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쏴! 다 죽여 버려!”
총병들의 십자 포화 속에서.
우루크들은 총탄을 맞고 고꾸라진 동족의 시체를 방패로 삼아 돌진했다.
그리고 그렇게 돌진한 우루크들과 장창병 사이에서 핏물과 살점이 뒤엉켰다.
“WUHAHAHAHA!”
키슌이 들뜬 함성을 터뜨렸다.
별에서 뜯어낸 강철로 만든 운철 클로가 눈앞을 막아서는 카밀라 병단 병사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커헉……!”
“끄, 끄아아아아……!”
수인병의 머리통을 꿰뚫은 클로가 곧바로 다른 총병을 내리찍어 지반을 뒤흔들었다.
반대쪽 클로가 장창병의 목을 찢었고 그 몸통을 다른 장창병들에게 내던져 넘어뜨렸다.
“뭐야, 뭐야! 더 힘내서 싸워보자고! 용사 병단!”
공포, 본능적인 공포로 병사들은 주춤거렸다.
괴물, 괴물이다…….
수인병 셋이 동시에 덤볐는데도 단번에 죽여 버리다니, 손이 식은땀으로 끈적거렸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Tsh!”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다급한 고함이 터져 나온 건.
“여기, 긴 칼을 쓰는 검사가 있다!”
동시에 챠앙, 하는 쇳소리와 함께 새빨간 섬광이 번득였고 우루크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흐, 흐흐흐흐흐…….”
키슌이 살벌한 웃음을 터뜨렸다.
카이센, 거기에 있구나!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Shibettera! 그놈은 내 거다!”
하지만 그곳에 카이센은 없었다.
새하얗게 센 단발이 핏물로 엉겨 붙은 페이쿼리어 카밀라가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을 휘두르고 있었을 뿐.
“Huh……?”
키슌이 고개를 갸웃했다.
키슌 부대의 부관이자 친동생인 키쉐가 다가와 씨익 웃으며, 우루크의 말로 말했다.
“저거야? 저걸 칼타케로 잡겠다고? 혼자서 전사를 3만 명은 넘게 죽였어. 쉽지 않겠는데.”
“아니, 저건 아니야. 그리고 별로 안 내키는데.”
“무서워서?”
“키쉐, 너는 썩은 고기를 먹기 위해 목숨을 던지냐?”
“뭐?”
“이미 다 죽어가고 있잖아. 일대일로 싸울 맛도 안 나, 저런 건.”
그냥 부하들 틈에 숨어들어 기습해 죽이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저런 건 칼타케로 이겨봐야 본전치기고 지면 정말 부족의 명예만 실추된다.
키슌이 평가한 그대로, 카밀라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뒤였다. 카밀라는 숨을 헐떡거리며 생각했다.
‘운용할 생명력이 없어. 몸이 의식의 흐름을 쫓아오지 못해.’
그녀의 삶을 촛불에 비유하자면 이제 촛농만이 조금 남아, 겨우겨우 타오르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터였다. 그럼에도.
푸하아아악……!
카밀라의 칼은 날래고 강했다. 수천 마리의 우루크들이 그 발치에 피투성이 사체로 고꾸라졌다.
키란즈키 가가는 물론이고 이름난 클랜의 족장들도 별다른 승부조차 펼쳐보지 못한 채 일도양단되어 지면을 나뒹굴었다.
이 맹위에 겁을 먹을 만도 하건만, 놈들은 계속 카밀라를 노리고 전방위에서 몰려들었다.
“그래, 덤벼. 더 덤벼! 한 마리라도 더 죽여서, 외로운 저승길 길동무로 삼아줄 테니까!”
그렇게 악으로 외치던 걸 기억하고 있다.
순간.
바로 그 순간.
시야가 일순간 암전했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허공을 날고 있었고, 이어 거목의 줄기에 처박히기 무섭게 목구멍에서 핏물이 뜨겁게 솟구쳤다.
“봐, 역시 손맛? 손맛이 하나도 없잖아. 이거 하날 못 피하고.”
카밀라가 숨을 껄떡였다.
흐릿해진 시야로 먼저 복부에 뚫린 주먹만 한 구멍이 보였다.
그리고 그 구멍 위로, 고개를 위협적으로 까닥거리며 쿵쿵쿵 걸어오는 거대한 우루크…… 키슌이.
“카밀라!”
그때 황망한 비명이 터졌다.
일순간 대기의 공기가 결정으로 얼어붙더니, 키슌에게로 일제히 날아들었다.
“흐, 마법사인가.”
키슌이 곧장 덜 죽은 동족의 시체를 집어 들어 고드름들을 막아냈다.
툭투두두두둑…… 단말마를 흘리는 우루크의 몸이 파르르 흔들렸다. 결정체가 갑옷과 살갗을 찢고 들어오는 소리는 키슌의 귀에 화음처럼 감미로웠다.
입에 싱거운 미소가 맺혔다.
“강한데?”
그래서 난감하네.
마법사처럼 전사답지 못한 것들은 영 상대할 맛이 안 나는데. 카이센은 도대체 어디에 있지?
《빙륜계환(氷輪界環)》.
순간 울프가 수인을 맺자 카밀라와 울프 주위로 빙경(氷鏡)들이 푸른 방호막으로 솟아올랐다.
무리해서 사용한 마법이 신체에 부담을 주었기에 코피가 왈칵 쏟아졌다.
울프가 카밀라의 몸을 흔들며 소리쳤다.
“카밀라, 정신 차려, 카밀라!”
카밀라가 핏물을 쿨럭거리며 떨리는 손을 뻗어 울프의 볼을 만졌다. 겨우 입을 열었다.
“여긴 왜 왔어, 이 등신아…….”
지금까지 미안했어…….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하지 않았다.
긴말을 남길수록 남겨진 자에게는 깊은 상처만 남길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하……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도망칠 정도로 내가 망나니로 보였어?”
울프가 힘없이 웃었다.
울프는 카밀라를 사랑했으며 카밀라 또한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그 감정을 철저히 숨겨왔다.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무엇보다 카밀라는 곧 수명이 다해 죽게 될 자신에게 울프가 얽매이는 걸 원치 않았기에.
하지만 이제는 숨길 이유가 없다.
“부숴!”
“꺼내서 도륙을 내라!”
우루크들의 도끼질 소리가 커져왔다.
쩍, 쩌적, 쩌저적…….
울프는 빙경에 균열이 이는 모습을 초탈한 태도로 지켜보았다.
‘이제, 금방이겠구나.’
잠시 후면 저 빙경이 깨지고 카밀라와 울프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그럴 거라면 여기서 편하게 자살하는 것이…….
마지막 단말마까지 끊긴 걸로 보아 병단은 전멸한 게 분명했다.
스릉, 울프가 단검을 뽑은 순간.
빙경이 반쯤 부서지며 우루크가 보인 순간.
우루크의 웃음소리 속에서 재빨리 카밀라의 심장에 단검을 꽂으려던 그 순간.
“저리 꺼져────!”
불현듯 들려온 기합성.
기합에 이어 우루크들의 비명이 솟구쳤다.
“……!”
“……!”
“……!”
도끼질 소리가 일제히 멎었다.
우루크들의 이목이 소란이 들려온 방향으로 집중되었다.
마침 그 방향의 빙경이 부서졌기에 울프도 소음의 진원지를 볼 수 있었는데.
두 눈이 전율(戰慄)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검귀가, 앞을 가로막는 우루크들을 무차별적으로 도륙하며 길을 만드는 광경.
첫 우루크는 목을 베어 죽였고.
둘째, 셋째 우루크는 무기 쥔 손목을 잘라 무력화시키고.
이어 달려든 네 번째 우루크는 가랑이 사이로 몸을 미끄러뜨리며 하반신과 복부를 길게 갈라 고꾸라뜨렸다.
“UhAHAHA!”
시큰둥하게 울프의 빙경을 쳐다보던 키슌은 그 광경에 온몸을 흔들며 웃었다.
왜일까?
울프가 멍하니 그 이유를 중얼거렸다.
“카이센……?”
카이센.
바로 그 카이센이었다.
4년 전에 근성 하나로 병단에 들어와 카밀라에게서 검술을 배웠던 소년.
“저 녀석이 어떻게 여기에……?”
카이센?
죽어가던 카밀라가 몸을 떨었다.
그 소년의 칼날 아래 순식간에 우루크 전사 십여 마리가 고꾸라진 상황이었다.
우루크 전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핏물을 시뻘겋게 뒤집어쓴 카이센이 악귀의 현신처럼 보였던 것이다.
숨을 헐떡이던 어린 악귀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누군가를 찾는 것일까.
그러다 그 시선이 싱글싱글 웃는 키슌에게 꽂힌 바로 그 순간, 잘린 우루크의 머리통을 그쪽으로 걷어차면서 칼끝을 내지르고는.
“Ogure wi irishina ro chi Kaisen(나는 홍련의 아들 카이센이다)────!”
우루크들의 언어로 포효했다.
이 자리에, 이 전장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듣고 납득할 수 있도록.
“──────Hishime ki KALTAKE ro gimarasu(네놈에게 칼타케를 신청한다)!”
4년 전.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이 당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그러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