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51)
가짜 용사 이야기-151화(151/310)
#47 :
[8. 태고의 심연이 잠든 도시] 네이갈라스 레이드 (4)회귀는 무슨 얼어 죽을. 회귀하는 NPC가 있으면 게임 참 재미있겠다, 그치? 샬류안 상놈아.
자기 이름 알고 있는 NPC 넣는 꼬라지 하곤…….
박현수가 <온 것들>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내가 엘리트인 걸 잊었나.
다 알고 있단 말이다.
<온 것들>은 없어.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났단 말이다. 이 게임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피터, 피터! 일어나!”
“아윽, 죄송해요, 대체 뭐가…….”
“뛸 수 있겠어?”
“앞에 협곡이에요!”
“저길 통과한 이후 흩어질 거야! 다들 준비!”
생각할 겨를이 없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놈이 사이코든, 컨셉질에 미친 등신이든, 관리자가 넣어둔 돌연변이 AI든 관계없이…… 여기에서 배제한다.
죽여서 이 배틀로얄 밖으로 추방한다.
[성검, 샤릴리온이 극악한 심연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성검, 샤릴리온이 주인에게 기적, 《광명의 정기》를 시전합니다!]그 사건은 협곡 지대를 벗어나기 직전에 터졌다.
[???, 울부짖는 파멸이 권속들을 소집합니다!]네이갈라스가 자꾸만 소환해대는 적들은 끝이 없었다.
본래는 이토록 강행 돌파하는 패턴이 아니라, 66번 기둥 내부에서 디펜스 퀘스트로 진행되어야 정상이니 이 숫자가 당연한 건가.
[MAP]을 닫고 왼쪽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무수한 해골 병사들이 삐걱거리고 있었다.“캡틴, 왼쪽 바위!”
차가운 소름이, 발끝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뒷골까지 치받쳤다.
저 녀석이……?
저 녀석이 여기 어떻게…….
검푸른 안광을 번득이면서 우릴 내려다보던 놈이 이쪽으로 단숨에 뛰어내렸다.
“피─!”
네이갈라스의 소집령에 따라, 최악인 놈이 왔다. 네이갈라스의 필두 권속, 해골왕 하이르칸.
“─해!”
뼈만 앙상히 남은 체구임에도 웅대한 체격에 고대의 판금갑을 걸친 모습.
어깨에 걸머쥔 무기는 역시 <영혼검(靈魂劍)>이었다.
길이가 3미터는 족히 되는 대검. 원시인들의 뼈로 벼려낸 무기로, 그 비참한 원혼들이 칼날에 저주를 부여한다.
‘나뿐이다.’
성검을 단단히 붙잡았다.
‘나 말고는 막을 사람이 없어.’
올려치는 성검과, 내리찍는 영혼검의 격세가 맞붙었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파장이 되어 지면을 휩쓸며 퍼져 나가고, 내가 발로 딛고 있던 지반이 움푹 내려앉았다.
힘 80으로도 완벽히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 흘릴 수밖에 없다. 성검을 살짝 비틀어 골공왕의 세를 흘려 넘겼다.
“오빠!”
영혼검이 지면을 내리치면서, 땅이 박살 나며 영기가 지반을 침식하기 시작한다.
지진처럼 갈라진 지반을 뚫고, 죽은 자의 군대의 손을 내뻗어 지면을 붙잡고 자기들의 몸을 끌어 올리기 시작한다.
몰살 패턴이다.
여기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으면 대략 3만은 넘는 사자의 군대에 둘러싸인 채 뒤진다. 물량에는 답이 없는 법.
하지만 나는 다르다.
이 패턴이 시작되길 노렸다.
하이르칸은 전사라기보다는 소환사 느낌이라 일대일 전투보다 일대다 전투에서 극강의 강함을 뽐낸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빈틈이 많이 나오니까.
물론 힘이 온전하면 일대일도 버겁겠지만, 지금은 잘 쳐줘도 50%도 안 되는 힘밖에 못 내고 있다.
우선 하나.
그 순간에 성검으로 놈의 오른쪽 손목을 갑옷째로 베어냈다.
그리고 둘.
그다음, 손목을 내리치던 성검의 방향을 틀었다. 발을 한 발 내디디면서 성검에 무게까지 실었다.
마무리.
성검이 해골왕의 흉갑부터 머리끝 투구까지를 올려 가르면서 마무리 지으려던 그때, 절단면에서 심연의 모래가 휘몰아쳐 나왔다.
십, 저 패턴 도중에 이 패턴을 쓴다고……?
한순간 뒤로 물러서기 무섭게, 재앙이 연달아 닥쳐왔다.
옆쪽이었다.
지면이 폭발하며 무언가가 용솟음쳐 나왔다. 흙먼지 사이로 보이는, 희끄무레한 파충류 악마.
얼굴과 꼬리는 도마뱀의 그것이지만, 몸체는 인간이었다. 그 몸에, 거미처럼 수많은 다리와 눈알이 붙어 있었다.
원시 심연.
놈이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달려들었다.
“피터, 브뤼나!”
상황이 좋지 못했다. 골공왕의 판금갑을 베어 내느라고, 몸의 균형이 조금 흔들린 상태였다.
“너희가 마무리해!”
이 찰나에 성검의 세를 수습하고 놈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린갑의 심연도 이런 원시 심연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다.
“에델 씨!”
앞쪽에서 박현수의 외침과 함께 청명한 파공음이 들렸다.
순간적으로 칼자루를 놓고 그걸 움켜잡았다. 손아귀에 잡히는 칼의 무게감이 편안했다. 청강검.
역시 박현수, 전투 상황 판단 자체가 남달랐다.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전용 스킬, 《청강세(淸江勢)》를 시전합니다!]청강검의 칼날이 물로 변해 흘러내리더니, 내 주위를 둥글게 에워쌌다.
청강검의 고유 능력. 청강세.
영웅 등급 무기라 고유 시스템 문구는 없지만, 내 몸을 물의 방벽처럼 에워싼 이 능력은 방어 스킬 계열에서 성능이 제법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악마가 청강세에 몸을 처박았다.
물컹, 청강세가 부드럽게 말리며, 놈의 공세를 무효화시켰다.
말렸던 방벽이 다시 펴지며 놈을 튕겨내던 순간, 청강세가 다시 칼날의 형상으로 되돌아온 순간, 놈의 정수리를 박현수의 은탄이 정확하게 꿰뚫었다.
“지금!”
푸른 칼날을 그 아귀에 박은 뒤 거칠게 비틀었다.
끈적끈적한 핏방울이 어린갑의 바다 무늬 비늘을 적신다.
혐오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놈을 걷어차 청강검을 빼내면서 다시 박현수에게 돌려주었다.
[스페셜 전투 퀘스트 완료 : 원시 심연 4 / 5.]– 레벨업 포인트를 (+20) 얻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즉시 돌아본 곳, 하이르칸에게 달려들고 있는 브뤼나와 피터가 문제였다.
양팔의 솜털이 오소소 곤두서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빨라.
빨라도 너무 빨라.
왕의 권속들, 즉 옛 귀족들은 초고속 재생이라는 특이점을 지니고 있다. 완전히 봉인시키기 전까지는, 체력 게이지가 아무리 낮아도 결손된 신체 부위를 순식간에 재생시키는 힘이었다.
“멈─”
다급히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도 더 빨랐다.
골공왕의 영혼검 쥔 오른손(영혼검은 신체 부위로 판정)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이건 놈의 힘이 100%일 때나 발휘되는 속도다.
그 영혼검이 스타폴의 일격을 받아낸 순간, 그 혜성의 힘조차 받아친 순간, 피터의 장검이 놈의 갑옷 틈새로 파고들었다.
이둔참은 이(利)가 나왔다.
위력이 증강된 칼날은 그 몸을 곧잘 파고들었으나, 오히려 그게 독이 되었던 것일까. 차라리 둔(鈍)이 나와서 튕겨 나갔더라면.
“─춰!”
골공왕이 왼손을 채찍처럼 휘둘렀고, 그 주먹이 피터의 두개골과 뇌를 날려버렸다.
중추신경의 통제를 잃어버리고 멍하니 비틀거리던 몸이 모래밭 위로 고꾸라졌다.
그 주변이 붉게 물들어갔다.
“아, 아, 아, 아아아……!”
야나의 목에서 비명이 끓었다.
이게 피터의 마지막 모습일 것임을 직감했다.
그 추측을 뒷받침하듯, 곧 시야 UI에 처형 영상이 떠올랐다. 가상현실 캡슐에서 강제로 끄집어내서 탕, 탕, 탕.
왜.
뇌의 상념과 달리, 몸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내달려서 성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고…….
왜 잊고 있었지.
이 게임이 얼마나 미친 게임이었는지를.
어제까지 열심히 키웠던 뉴비건 NPC건 바로 다음 퀘스트에서 죽는다. 정을 주면 죽는다, 그게 이 <황녀를 위하여>의 국룰.
그게 왜 배틀로얄에서는 다를 거라고 낙관하고 있었지?
채애애애앵……!
박현수가 달려들었다. 골공왕의 일격 중 하나를 청강세로 흘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새를 타고, 일섬(一閃), 골공왕의 심장에 성검의 칼끝을 깊숙이 꽂는다.
그럼에도 놈은 움직인다.
이놈, 아직도 움직이고 앉았어.
성검의 신성 효과는 골공왕 같은 사자(死者)의 천적. 그 몸에서 빛이 넘쳐 나오는데도 내 목으로 손을 뻗는다.
“이 나쁜, 나쁜, 나쁜!”
사쿠라이가 발악하듯, 어쩌면 피터의 죽음을 부정하듯 총을 난사하였으나 하이르칸의 육신은 저딴 상점템으로 뚫을 수 없다. 그때.
퍽.
그 해골 손모가지에 정확히 꽂히는 화살, 그 화살촉에서 살벌하게 튀는 전류.
두 눈에서 격동하는 전율.
그것은 벼락을 부르지 못했고 아주 잠깐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지만, 괜찮았다.
“……끝내버려.”
직후 족히 백 마리는 넘는 나이트 페이스들이 골공왕을 휩싸더니, 그 갑옷을 해체하고 뼈를 마디마디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 뼈마디들과 갑주가 가차 없이 공허 차원으로 추방된다.
물론 핵(核)은 거두지 못했으므로 조만간 다시 육신을 수복할 것이지만, 한동안은 다시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야, 너희들 괜찮아?!”
바이로니카가 소리쳤다.
로헤이리츠는 바이로니카의 마도구에 부축을 받고 있는 형편이었다. 부축이라기보다는 매달려 있다고 해야 하는 게 정확했다.
그것이 놈의 힘을 증명했다. 원시의 군대를 타파하고, 원시 심연들을 걷어내고, 하이르칸을 쫓아 여기까지 왔단 소리니까.
“방금 저놈이…….”
바이로니카가 입을 다물었다.
야나와 사쿠라이가 멍하니 주저앉은 그곳, 피터의 시체를 본 것이다.
로헤이리츠의 까마귀 가면도 그곳으로 시선을 보내더니, 곧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한심하기는…… 그거 하나 지키지 못했나.”
언제, 어떻게, 거기까지 달려가서 놈의 멱살을 움켜잡았는지는 스스로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 있었다.
“놔라.”
진정해라…… 이놈은 정확히 말했을 뿐이다.
맹렬히 날뛰는 심장을 눌렀다.
확실히 이놈에게 피터를 맡겨 놨더라면 피터는 지금도 살아 있었겠지. 살아서 웃고 있었을 것이다. 바이로니카가 저렇게 다친 곳 하나 없는 것처럼.
이건 내 잘못이다.
모두 다 내 잘못이다.
그 싸늘한 깨달음이 손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죽 롱코트의 멱살을 붙잡았던 손아귀의 힘이 풀렸다.
“현수 씨.”
“……예.”
“오는 길에 열차에서 말한 그대로입니다. 공대를 부탁합니다.”
떠들고 있을 수 없었다.
다시, 사방에서 렙틸리언과 원시인들과 해골 병사들이 몰려들고 있었으니까.
떠들고 있고 싶지 않았다.
뭐라도 좋으니 무참히 박살 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ShuiiiiiiiiiiaakkkkKK……!」
내가 성검을 등에 매며 발길을 옮기기 시작한 곳은 66번 기둥.
저기에 누가 있는지는 초심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기둥 꼭대기에 용암이 뱀눈의 형상을 이루고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네이갈라스의 눈이다.
저게 간헐적으로 포효할 때마다 적병은 끝없이 증원되었다.
“지금 혼자서 가시겠단 겁니까?”
“하이르칸을 완전히 봉인하기 위해서는 공국의 계승자 퀘스트를 깨야 합니다.”
“에델 씨.”
“야나의 도움을 받으세요. 당신이 공대를 지휘하고. 44번 기둥에서 각성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공국의 계승자도 깰 수 있습니다.”
“에델 씨!”
“한 가지 부탁을 하자면…… 1시간 안으로 하이르칸을 무력화시켜 주면 고맙겠습니다.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죽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이 죽고요?”
“당신보다는 낮은 확률로.”
사방에서 쏟아지는 렙틸리언들을 얼굴 없는 악마, 나이트 페이스들이 도륙하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상냥한 사람입니다.”
막 달려 나가려던 내 발목을 움켜잡은 건, 어지러이 솟구치는 비명이 아니라 바로 저 목소리였다.
“가장 위험한 곳으로 뛰어들면서, 늘 남 걱정부터 하지요. 결사대 퀘스트 때부터 확실히 느꼈습니다. 당신은 사실 정말 상냥한 사람이라고. 통일 전쟁에서도 훌륭한 장교셨겠죠.”
무슨 소리냐.
난 쓰레기 같은 놈이다.
어머니를 죽게 만들어 이 배틀로얄까지 들어왔고, 그 소원을 위해 튜토리얼 때는 47명을 죽게 방치했다.
“반드시 남은 모두를 살리겠습니다. 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리고 1시간 안에 하이르칸도 저지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가십시오. 무운을 빕니다.”
한순간이지만.
정말 한순간, 조금이지만.
아르츠레히드가 어째서 마음을 바꿔서 성도의 수호자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걸 가져가십시오.”
가지고 있던 체력 포션 모두를 박현수에게 넘겨주었다. 박현수가 멍하니 포션을 내려다보았다.
“……이걸 저한테 다 주고 가셔도 됩니까?”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피터의 아이템도 다 루팅해 가세요.”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66번 기둥에서 네이갈라스가 또다시 포효하자, 군세가 또 집결했다.
박현수가 내달려 사쿠라이를 업어드는 게 보였다.
“아저, 아저씨, 얘, 얘 있잖아요, 뭐지, 이상하다, 아까까지 살아 있었는데, 죽은? 죽은 건가?”
“가야 돼.”
“얘는요, 얘, 얘는 안 데려가요?”
“데려갈 거야. 망토로 덮어서.”
박현수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66번 기둥을 다시 쳐다보자, 로헤이리츠가 옆에 와서 섰다.
“저기 그놈이 있다고?”
“아마도.”
“안내해라.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반쯤은 죽여 놔야겠다.”
나를 불신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트라이폴 사건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는 몰라도 더없이 든든했다.
“나를?”
“그놈을. 원한다면 너도 덤으로 반쯤 죽여주지.”
“싸가지 없는 새끼.”
“흥. 베니, 넌 저것들을 따라가라. 제 몸도 간수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되니 네가 도와. 나이트 페이스 다섯 마리를 붙여주지.”
그리고 이것도 바이로니카를 안전한 곳에 놔두려는 건지, 아니면 정말 내 공대원들이 걱정된 건지는 몰라도 더없이 든든했다.
“알았어. 맡겨둬. 죽지 마.”
곧 등 뒤에서, 스타폴의 혜성이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청강검의 칼질 소리도 들렸다. 우리는 돌아보지 않았다.
[숨겨진 지역 : 66번 기둥.]66번의 문은 황동제였다. 네이갈라스의 부조가 음산하게 세공된 거대한 문.
문 양쪽으로 흔적이 있었다. 원철극의 쇠말뚝에 꿰뚫린 렙틸리언 시체 여섯 구.
그 순간, 시체들의 손가락이 일제히 꿈틀거리더니 황동제 문을 가리켰다.
오냐…….
재촉하지 않아도 간다…….
로헤이리츠가 문을 걷어찼다. 돌쩌귀가 박살 나며 문 한쪽이 주저앉았다.
어두운 실내 안쪽으로부터 심연의 모래바람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악취가 지독했다.
그나마 맑은 외부 공기를 마지막으로 허파 가득 밀어 넣은 뒤, 내부의 어둠을 성검으로 찢으며 몸을 날렸다.
회귀자를 한 번 더 회귀시켜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