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53)
가짜 용사 이야기-153화(153/310)
#49 :
[8. 태고의 심연이 잠든 도시] 네이갈라스 레이드 (6)땅에 박힌 성검을 뽑아내며,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7보 거리, 《빙결창》이 빗발쳐 쏟아진다. 4보 거리, 《원철극》이 땅속에서 솟아올랐다.
빙결창과 원철극이 내 몸을 꿰뚫기 직전, 어린갑이 심연을 전 방위로 토해냈고 내 손아귀에서는 화염의 마방진이 깨부숴졌다.
[심연, 어린갑이 《심해의 회오리》를 시전합니다!]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불 뿜기》를 시전합니다!]원철극과 빙결창을 녹여버리는 《심해의 회오리》, 그사이에 《형질흡력》으로 《불 뿜기》를 삼킨다.
이것은 증폭과 동시에 연막.
화염이 일으킨 연기를 헤치고 앞쪽으로 돌진했다. 놈이 《합장》을 하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성검이, 화염의 칼날로 변해 있는 걸 알아챈 것이다.
그 찰나면 충분해.
《불 뿜기》는 이 짧은 시간을 벌기 위한 눈속임. 《형질흡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오판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
“잔꾀를……!”
놈은 줄곧 형질흡력을 의식하며 전투에 임해왔다. 결정적인 마법이 카운터당하지 않게끔.
현명한 판단이었지만, 상대가 나빴다. 나, 정철은 PVP 승률 8할의 실력자였으니까.
사납게 불타오르는 화염의 칼날이 그 머리통을 겨누고 날아들었고, 녀석이 뒤늦게 양손을 맞부딪쳤다.
‘모든 건 계산대로다.’
화염의 칼날을 치켜들던 때부터, 손아귀에서 대기하던 《대마력방호》를 깨부쉈다.
[전용 스킬, 《대마력방호》가 마법, 《합장》의 위력을 87% 무효화시켰습니다!]하지만 마지막에 승리의 미소를 지은 건 내가 아니었다.
“진짜는 이쪽이다.”
녀석이 맞잡던 양손을 풀었는데, 여전히 오른손에서 마법진이 빙그르르 돌아가고 있던 것이다.
[???, B*%@c가 마법, 《아수라 실혼경(阿修羅實魂鏡)》을 시전합니다!]성검이 머리통을 분쇄하려던 순간, 커다란 칼날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성검을 밀쳐냈다.
즉시 물러나야 한다…….
오랜 PVP의 기억이, 그렇게 조언해 오자마자 곧바로 뒤로 두 번 굴렀다.
콰과과과과과과……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칼 네 자루가 내리꽂혔다. 두 자루는 내 퇴로를 바싹 뒤쫓아 왔다.
성검으로 첫 번째 칼은 막아낼 수 있었으나 두 번째 칼의 공세는 놓쳐버렸다.
날카로운 고통이 어깨를 파고들며 세가 흐트러진 일순간, 칼 여섯 자루가 일제히 나를 덮쳐왔다.
“끝장을 내주마!”
0초.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성검이 칼들과 맞부딪쳤을 때,
[성검, 샤릴리온이 마법, 《불 뿜기》의 위력을 700% 증강시킵니다!]맹렬하게 타오르던 화염의 칼날이 7배의 위력으로 폭발해주지 않았더라면.
폭연 속에서, 신속하게 뒤로 물러섰다. 여섯 자루의 일격을 막아낸 양팔의 상태가 만신창이였다.
자세와 호흡을 억지로 추스르면서, 녀석을 노려보았다.
“……뭐?”
놈의 머리 위로 칼 여섯 자루가 떠 있었다.
인간의 칼이라기보다는 거인의 도끼날에 가까운 모습. 각각 날 길이가 족히 4미터는 되는 흉기였다.
검사 클래스가 아니니 어검술은 아닐 터.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스킬 사용 일람을 훑었다.
《아수라 실혼경》.
현현(顯現) 마법 계열에서 유일한 ‘신화 등급’ 스킬.
[신화시대의 신수(神獸), 삼두룡 아수라를 현현시켜 그 힘을 빌리는 기술.]이젠 눈에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허공에 떠 있는 칼들을 쥐고 있는, 신수 아수라.
불이자 빛이자 물이 합쳐져 구축시킨 육신은 3개의 머리가 달린 삼두룡이었고, 위압적으로 솟아오른 세 쌍의 팔은 저마다 칼을 쥐고 있었다.
아수라가 세 쌍의 날개를 힘차게 펄럭였다. 돌풍이 불꽃으로 일어서며 나를 덮쳤다.
성검을 바닥에 박았다.
성검의 결계 뒤로 숨어 그 압도적인 풍압에 간신히 맞섰다. 그리고 머릿속을 침식하는 혼란에도 맞섰다.
‘말도 안 돼.’
저건 구현되지 않은 스킬이다.
그 어디에도 습득 방법이 나와 있지 않다.
그냥 『용현 레인 루드윅의 생애』라는 책을 읽으면 정보 툴팁이 활성화되기만 할 뿐.
‘대체 뭔 개 씹 버그를 쓴 거야.’
마법사 랭커들이 모두 시도했으나 습득하는 것조차 실패한 기술, 그랬을 터인데. 오우~ 버그 플레이 한 우물만 판 미친놈인가?
“이걸 막아내다니, 역시 샤릴리온이군. 하지만 다음은 없다.”
* * *
전방에서, 위쪽 절벽에서 원시의 군대가 네 발로 돌진해온다. 죽음의 군대를 지휘하는 필두 권속, 하이르칸.
‘저놈과 정면으로 붙으면…… 분명 죽겠지.’
압도적인 실력에 의한 정공법? 그건 정철의 싸움법이었다. 현수에게는 현수의 싸움법이 있었다.
“준비됐습니까?”
바로 옆에서 브뤼나가 스타폴을 꽉 쥐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손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현수도 청강검을 빼들었다.
“신호를 기다리세요. 셋, 둘, 지금!”
뼈들이 딱딱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왔다. 현수의 미친 짓은 그때 시작되었다.
브뤼나가 높이 쳐든 스타폴을 냅다 내리찍었다. 바로 제자리에. 하늘에서 곧장 떨어지는 혜성.
해골 병사들이 눈앞까지 밀려든 한순간, 청강검이 물처럼 녹아내리며 주인을 둥글게 휘감았다.
[장비, 청강검이 전용 스킬, 《청강세》를 시전합니다!] [NPC, 바이로니카가 전용 스킬, 《마도기능》을 시전합니다!]바이로니카가 그 힘을 변화시켰다. 청강세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면서 양옆에 서 있던 바이로니카와 브뤼나의 몸도 휘감았다.
퍼어어어어엉……!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폭연, 현수는 사냥꾼 특성으로 그 폭연 너머를 내다보았다.
머리나 팔이 박살 난 원시 군대가 절벽 밑으로 굴러떨어진다. 그 사체를 밟고 또다시 밀려오는 원시 군대.
숨을 돌릴 틈도 없다.
“한 번 더!”
“한 번 더 갑니다!”
신전 앞의 공간은 어느새 구덩이처럼 깊숙이 파여 있었고, 그 주변으로 뒤틀리고 바스러진 뼈다귀들이 굴러다녔다.
세 사람은 헐떡이면서 절망의 광경을 올려다보았다.
구덩이 밖에서 하이르칸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개골의 빈 눈구멍에서 안광이 섬뜩하게 타올랐다.
하이르칸이 해골 병사들을 팔로 쳐내고 발로 짓밟으며 앞으로 나섰다.
스타폴의 혜성.
하이르칸의 손에서 구슬피 울부짖는 영혼검이 그 혜성을 튕겨냈다. 도탄된 혜성이 신전에 처박히면서 신전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현수는 청강세를 펼쳤다.
검의 형태로 집약된 영혼들의 찢어지는 절규가 그 물의 장벽을 가볍게 뚫고 옆에 있던 브뤼나를 날려버렸다.
“브뤼나!”
현수는 바이로니카를 지키고 섰다.
영혼검의 참격을 한 번 받아냈더니 손목이 불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치솟았다.
지금 들이닥치는 두 번째 참격을 받아낸다면, 칼이 부러지고 그대로 죽을 것이다.
‘이게 필두 권속…… 정철은 이런 놈과 정면으로 싸웠던 건가.’
머릿속이 캄캄해지는 고통에 맞설 때, 악마의 낄낄거림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원시인들이 신전 내부로 쇄도해들고 있었다.
‘아니, 안 돼. 거기에는.’
그러나 그 순간, 수백의 원시인들이 힘없이 박살 나며 허공을 날아 부서졌다.
음산한 영기(靈氣)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가운데, 한 해골이 신전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해골 기사 열댓 명이 그 양쪽을 보좌하면서, 감히 덤벼드는 원시인들을 쳐내고 박살 냈다.
“예를…… 갖춰라…… 왕자 전하의 어전이다…….”
하이르칸이 그 광경을 매우 괘씸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 틈에 현수는 브뤼나를 부축하며 달아났다.
반쯤 동시에 야나와 사쿠라이가 신전 밖으로 뛰어나왔다.
“돼, 됐어. 저, 정말 잘 버텼어!”
“저건?”
“폐, 폐왕자 일레이론! 이제 일레이론이 하이르칸을 상대해줄 거야!”
“왕자의 안식을 위해서, 시공간을 뛰어넘은 충심…… 일레이론을 도와야 해요.”
<소현자의 기억>.
사쿠라이의 이마에 영험한 빛을 내뿜는 눈이 새겨졌다.
키기기기기깅…… 소현자의 기억으로부터 이 장소에 얽힌 힘을 읽는다. 지면으로부터 솟구치는 빛의 사슬, 《봉인의 사슬》.
[몬스터, 일레이론이 전용 기술, 《봉인의 사슬》을 시전합니다!]바로 일레이론이 사용하는 저 기술이다.
“사, 사쿠라이 너…… 저 기술을 어떻게?”
“나중에 설명할게요. 지금은 할 일이 있잖아요.”
“아, 알았어, 날 지켜줘!”
해골 기사들이 일제히 옛 왕에게로 돌진할 때, 이 퀘스트를 통해 파멸의 선지자로 각성한 야나가 『클라에논 단장』을 펼쳤다.
“엘더 사인은 시간이 좀 걸려. 하지만 발동되면 확실하게 일레이론에게 시간을 벌어줄 수 있어!”
* * *
구원의 상징…….
영웅시대 이전, 신화시대에 <온 것들>을 도와 <잊혀진 왕들>을 척결했던 아수라는 모든 용족의 어버이라는 설정이었다.
용족은, <온 것들>이 심연을 몰아내기 위해 만들어낸 전투 종족이니까.
「KURAAAAAAAAAAAAAAAAAAAAAAAAAAASSSS!」
더 이상의 문답은 없었다.
놈이 다시 양손을 합장하자마자, 아수라의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5분 동안, 《아수라 실혼경》의 압도적인 힘에 절망했다.
[경고 : 어린갑의 내구도가 매우 낮습니다!]갑주 곳곳이 찌그러지고 부서져갔다. 어린갑이 아니었으면, 모두 치명상을 입었을 일격들. 아수라의 칼날에 직격당한 것만 일곱 번.
샤릴리온의 칼날이 놈에게 닿을까 싶으면, 아수라가 역으로 나를 덮쳐오는 식이었다.
생각해.
아수라를 피해서 놈을 죽일 방법을 생각해라.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공략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아수라를 먼저 무력화시키는 것.
요컨대 답이 없단 소리가 된다. 지금 전력으로는. 그 결과로 벌써 열두 번째 놈의 등 뒤를 파고들었을 때였다.
이번에도 용의 칼날이 날아와 성검을 쳐냈다. 그리고 다른 검이 내 옆구리를 후려쳤다.
폐부가 짓눌리는 격통.
바닥을 튕기며 마구 굴렀다. 시야가 샛노랗게 물드는 고통으로 숨이 막혔다.
“아프냐?”
왼팔 겨드랑이가 피로 미끈거렸다. 힘을 쥐려 하자 날카로운 통증이 꿈틀거렸다.
결국 오른손으로만 성검을 치켜들었다. 오른손에서도 힘이 빠져서, 칼끝이 파르르 떨렸다. 결국에는 한쪽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이게 당연한 거다.
이게 당연한 결과인 거다.
아니 이런 수박 씨 발라먹을, 극후반 보스 몬스터가 초중반에 출현했다고 생각해봐라.
“세계의 아픔을 느껴라. 네 욕심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이보다 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테니.”
여섯 자루의 칼이 눈앞으로 일제히 짓쳐들던 바로 그 순간, 진녹색의 악마들이 수백 마리는 넘게 뛰쳐나와 그 칼날들을 막아섰다.
“아니, 너는……?”
군홧발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가죽 코트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좀 보기 좋군.”
로헤이리츠는 컨셉충을 외면한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너와 나의 눈높이는 이 정도가 딱 좋겠어. 걷어차기에도 편하고.”
그 코트에 심연이 덕지덕지 눌어붙어 있었다.
이놈, 왜 이렇게 늦었나 했더니 그 개미지옥의 권속을 때려잡고 온 건가?
심연을 강박증에 가깝게 혐오하는 놈이니 그렇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거기서 나와라, 공허의 사도! 왜 그놈을 감싸는 거지?”
“귀쟁이 주제에 나를 아나?”
“알다마다. ……너는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착각이었을까, 사이코의 목소리에 희미하게나마 슬픔이 깃든 것처럼 들렸던 건.
“그놈은 세계의 적이다. 외우주의 사도, 이 세계를 파멸로 견인하려는 놈이지. 비켜라, 이제 마무리할 차례니.”
“이 쓰레기가 외우주의 사도라고? 외우주란 뭐지?”
“심연과 같은 거다.”
“즉 심연의 사도라는 거군.”
대화의 방향이 이상하다…….
로헤이리츠의 눈짓을 받은 나이트 페이스 두 마리가 나를 바닥에 찍어 눌러 제압했다.
“안 그래도 이 쓰레기는 만난 순간부터 광인처럼 행동했었지. 예절머리도 하나 없어서 조만간 심연처럼 패줄 생각이었는데, 좋은 명분이 생겼군.”
좋지 않아. 이 상황은, 정말 좋지 않다.
사이코 두 마리가 연합했다.
어린갑의 힘으로 나이트 페이스들을 물리치는 것까진 가능하겠다만, 그다음에 이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네가 마무리하겠다면 양보해주지.”
박현수가 성공한다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대는 접어두자. 박현수가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네놈 양보 따위는 필요 없어. 내가 죽이고 싶으면 죽일 뿐.”
로헤이리츠가 천살뇌를 꺼냈다.
이 배틀로얄에서 처음 만난 그 순간과 마찬가지로, 천살뇌가 정확히 내 미간을 겨눈다.
“잘 생각해, 로헤이리츠! 저놈은 날 심연의 사도라고 했지만 트라이폴을 박살 낸 것도 저놈이고 지금 네이갈라스를 해방시키고 있는 것도 저놈이다.”
“헛소리! <트라이폴> 사변은 내가 아니라 샬류안과 슈’율큘라의 짓이었다!”
“네이갈라스의 봉인을 깨고 있는 건 부정하지 못하는 걸 봐!”
다급히 설득하려 했으나 로헤이리츠는 오히려 그런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아쇠에 손가락이 얹어졌다.
끼리리릭…… 방아쇠가 서서히 당겨지는 소리가 들리고, 어쩔 수 없이 어린갑의 힘을 해방시키려던 바로 그 순간.
로헤이리츠가 일순간 총구를 돌려 사이코를 겨누었다.
곧이어 발사된 벼락의 화살이 아수라의 칼날에 무력하게 박살 났다. 사이코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짓이냐, 공허의 사도.”
“마음이 바뀌었다. 너부터 죽여야겠어.”
“뭣이?”
“너는 이놈이 심연의 사도라고 말했다. 근데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지금 네이갈라스를 해방시키고 있는 건 너잖아. 네가 심연의 사도처럼 보이는데.”
“이 일은…… 나중에 설명하겠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모두 이 세상을 위해서 한 것뿐이란 거다! 이제 거기서 비켜! 샬류안이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그놈을 죽여야 한단 말이다!”
로헤이리츠가 그 대답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공허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하도록.
“나는 죽이고 싶은 놈을 죽인다. 네가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죽이는 게 낫겠는걸.”
로헤이리츠는 사이코다.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여성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친 사이코 쓰레기 캐릭터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근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놈이 세상, 아니 이 게임에서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다. 사람 마음이 이토록 간사한 법이다.
로헤이리츠가 나에게 중지를 세웠다.
“거치적거리니까 짜져라, 쓰레기 놈. 심연 사냥의 시간이다.”
아니, 취소.
방금 한 말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