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54)
가짜 용사 이야기-154화(154/310)
#50 :
[8. 태고의 심연이 잠든 도시] 네이갈라스 레이드 (7) [몬스터, 하이르칸이 전용 기술, 《생명을 수확하는 자》를 시전합니다!]그으으아아아아악…… 하이르칸이 제 얼굴을 부여잡고 절규하기 시작하자, 악몽도 시작되었다.
등에서 피어오르던 영기가 일순 사신(死神)의 형상으로 빚어졌다.
그 압도감에 온몸에서 식은땀이 솟았다. 시커먼 두건을 뒤집어쓰고 거대한 낫을 쥔 무언가. 그 악몽이 음산하게 낄낄거렸다.
다음 순간, 거대한 낫이 일레이론을 묶으려던 사슬을 종잇장처럼 잘라내고 해골 기사 다섯의 몸통을 절단했다.
[몬스터, 하이르칸이 전용 기술, 《강령술 폭주》를 시전합니다!]형언할 수 없는 위력에 침을 삼키던 그때, 사신이 허연 안개로 폭발했다.
그 폭발에, 하이르칸의 배후를 파고들던 브뤼나가 기둥에 날아가 처박혔다.
안개는 한순간에 신전을 온전히 뒤덮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숨이 갑갑해오고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져 갔다.
무언가가 온몸에서 힘을 훔쳐가는 것만 같은 무력감. 보이지 않는 망령들이 몸을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무게감.
해골 기사들도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져갔다. 몸을 휘청거리는 일레이론에게 하이르칸이 다가온다. 그 순간.
「!」
하이르칸의 영혼검이 안개 속을 가른다. 청강검이 펼쳐놓았던 청강세가 흐물텅 무너지고 터진다.
하지만 거기에 검주는 없었다.
그 반대편에서, 동료의 무기 스타폴을 쳐든 채 나타났다. 박현수였다.
“제로 거리에서의 직격은 어때!”
스타폴의 힘이 혜성을 부른다.
이제 일일 힘 사용 한계치를 초과하여 더 이상 혜성을 쓸 수 없다는 알림이 도착한다.
하이르칸이 강령의 힘으로 그 힘을 어렵지 않게 막아 세우고 현수의 모가지를 비틀려고 하던 그때.
“사쿠라이!”
별안간 안개를 꿰뚫으며 빛의 사슬이 날아들어, 현수의 목을 비틀기 직전인 팔을 휘감았다.
그 뚫린 안개 너머로, 비장하게 손을 뻗은 사쿠라이의 모습이 보인다.
필두 권속이 오직 근력 하나로 그 사슬을 끊어내려던 그때, 흉갑 중심부에 엘더 사인이 새겨졌다. 언뜻 보기에 한자 같았다.
珍.
하이르칸의 영혼을, 그 핵을 감싸고 있던 육신이 그 빛의 폭주 속에서 파열하기 시작한다. 하이르칸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그 순간.
그 일순간.
안개로 뒤덮인 사방에서 솟구친 빛의 사슬이 그 핵을 꿰뚫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아버지, 이제…… 그만…….”
일레이론이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을 치켜들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저저, 미친!”
“뭐, 뭐지? 왜 안 멈춰?”
하이르칸의 영기가 다시 등 뒤에서 사신의 형상으로 합쳐졌다.
사신의 낫이 그곳에 있는 모두의 생명을 수확하려던 바로 그때, 사슬들이 팽팽히 당겨지면서 하이르칸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느려지고, 느려지고, 또 느려지다, 이윽고 멈추었다. 사신이 뿌연 연기로 흩어졌다.
육신을 잃은 고대의 갑주들이 지면에 나동그라지는 쇳소리, 이어서 원시인들이 힘을 잃고 뼈로 무너지는 소리들이 들렸다.
[스페셜 전투 퀘스트 완료 : 골공왕과 폐왕자.]사쿠라이와 야나가 “아아……”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바이로니카가 브뤼나를 부축해 일으켜주고 있었다.
현수는 안심할 새도 없이 저 절벽 너머, 용암의 눈이 포효하는 66번 기둥을 쳐다보았다.
‘정철…….’
* * *
강자들의 연회, 공허의 힘과 삼두룡의 힘이 어지러이 뒤엉키며 66번 기둥 내부에 균열이 퍼지고 흙먼지가 끝없이 쏟아진다.
“공허의 사도, 넌 속고 있다!”
아수라의 절대 방어로도 다 쳐낼 수 없는 숫자의 악마와 벌레들, 아수라의 불꽃이 녹색의 괴물들을 휩쓸 때 악마들은 그 팔 하나를 부러뜨려 이차원으로 추방했다.
“저것들에게 기만당하고, 능멸당하고 있다고!”
이데아 인류 중 유일하게 영웅 등급 NPC다운 전투 능력……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누가 열세인지는 분명해져 간다.
어쩔 수 없다.
로헤이리츠 저놈은 주력 무기인 천살뇌를 쓰지 못하는 데다가, 지금까지 축적된 싸움으로 부상을 입고 있었다.
좋지 않은데…….
기둥 뒤에 숨어, 그 폭력적 힘의 격돌을 지켜보고 있자니 숨을 쉬는 법도 잊고 있었다.
로헤이리츠는 언젠가 반드시 죽어야 하는 놈이긴 한데, 그게 지금이어서는 안 된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 상태를 점검했다. 늑골 세 대가 나갔고 왼팔은 위팔뼈가 나간 듯하다. 성검을 양손으로 쓰긴 힘들 것이다.
지금 나가봐야 놈 말대로 거치적거리기만 할 거고.
박현수가 성공한다면 또 모르지만, 그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겠지…….
그때 어쩔 수 없이 나가야만 하는 순간이 생겼다.
삼두룡이 세 아가리로 토해낸 화력과 광력과 수력이 한데 뒤엉켜 지고한 힘의 격류를 이루고는 로헤이리츠에게로 쇄도했다.
“……!”
상성상 밀릴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공허의 사도는 근본을 따라 올라가면 소환사와 같으니까.
강력한 소환수 하나를 뽑는 게 아니라 물량을 찍어내는 타입. 굳이 따지면 골공왕 하이르칸과 같은 유형이다.
그런 소환사들은, 저런 아수라같이 규격 이외의 소환수를 뽑는 소환사들에게 일대일 승부는 개같이 발리게 되어 있다. 상성이 원래 그렇다.
“로헤이리츠!”
결국 마지막 방파제였던 기둥에서 벗어나, 성검의 힘을 집약시키며 내달렸다.
“넌 아직 죽으면 안 된다.”
당황스럽게도 그렇게 말한 건 내가 아니라 저 사이코였다.
로헤이리츠를 삼키기 직전이었던 힘이 문득 차원 역장의 힘으로 변했다.
다른 공간으로 내보낼 생각인 건가? 로헤이리츠가 공허의 회랑을 열어서 그 역장의 힘에 견뎠다.
“죽어야 할 건 바로 저놈이지.”
아수라의 머리 하나는 여전히 로헤이리츠를 봉쇄하였으나, 다른 두 머리가 나를 돌아보았다.
“끝장을 내주마, 외우주의 사도.”
멋있게 튀어 나갔으나 이제 제대로 좆된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라고 할 줄 알았냐?
기적적이게도, 로헤이리츠가 궁지에 몰리던 그때, 기대를 안 하는 척하면서도 고대하던 알림이 왔던 것이다.
[스페셜 전투 퀘스트 완료 : 골공왕과 폐왕자.]엄청난 양의 레벨업 포인트가 들어오는 걸 보고 짧게 전율하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박현수.
가능성이 극악이었던 도박. 그러나 나는 박현수에게 걸었었다. 이 양반이라면 해낼지도 모른다고.
그때 왜 그런 불가능에 판돈을 걸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포션 세 병은 그에 대한 조촐한 투자였을 뿐이고.
이제 비장의 수를 보여줄 때였다. 그 시작은 상태창 활성화.
[지력에 레벨업 포인트 (+20)을 투자합니다.]– 지력이 (70)이 되었습니다.
– 경고 : 이제 (지력)을 올릴 때는 레벨업 포인트가 (4) 필요합니다.
[기사단장 죽이기] 퀘스트부터 ‘일부러’ 사용하지 않은 포인트를 지금 여기서 모두 사용한다. [지력에 레벨업 포인트 (+40)을 투자합니다.]– 지력이 (80)이 되었습니다.
– 경고 : 이제 (지력)을 올릴 때는 레벨업 포인트가 (16) 필요합니다.
[업적 달성 : 현자의 길을 걷는 자.]– 유레카! 20초 동안 지력에 (+10) 보정을 받습니다.
자, 이제 해볼까.
지금까지 지력을 올리지 않은 건 이 사이코를 상대할 때 [현자의 길을 걷는 자]의 업적 보상을 받기 위함.
지력 90.
현자 NPC에 준하는 지력.
본래는 1360이라는 무지막지한 포인트가 추가로 있어야만 올릴 수 있는 능력치였다.
수치가 85까지 오르면, 레벨 1당 요구 포인트가 256으로 널뛰어 버리니까.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물어봤자 쥐새끼에 불과해! 순순히 죽어라!”
지력 90의 《대마력방호》는 분명 아수라의 힘을 한순간이나마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승부는 그때 판가름 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수라의 첫 번째 공격을 피해내던 그때였다.
[지력 수치 90 : 《현자의 기억법》, 제2단계가 개방됩니다.]아, 왜 형이 거기서 나와…….
지금 마법 저장 슬롯이 늘어나서 뭘 한다고!
[전용 스킬, 《현자의 기억법》이 초월적인 흑기사 ‘정철’의 전투 기억, 《흑혈검법(黑血劍法)》을 기억해 냅니다!]어라……?
정철?
내 본명이자 <황녀를 위하여>에서의 닉네임?
[사용할 전투 기억 선택.]1. 흑혈검 13식
2. 흑혈검 28식 : 혈괴참
3. 흑혈검 절식 : 환영난무
어이가 없어서, 시간만 있었더라도 헛웃음을 흘렸을 것이다.
흑혈검법은 심연 계열 루트를 타는 검사 캐릭터의 최종 각성, 흑기사의 전용 특성으로 이른바 종결급 검법이었다.
그걸…… 기억해낼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해? 시스템적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흑기사의 각성 퀘스트는 친밀도를 Max까지 올린 NPC 5명을 제물로 바친 뒤 심연 사냥꾼 로헤이리츠를 죽이는 것.
로헤이리츠를 죽여야 한다, 거기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요컨대 극악의 난이도 때문에 극후반에나 개방되는 각성 스킬이란 거다.
그걸 지금?
“어딜 멍하니 쳐다보고 있나!”
인터페이스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아수라가 내 눈앞까지 쇄도해와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흑혈검 절식 : 환영난무》를 선택했다. 그리고 다급히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아앙…… 내가 방금까지 있었던 자리가 거칠게 가라앉았다.
《흑혈검 절식 : 환영난무》.
급하게 아무거나 고른 거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뉴비다.
환영난무는 세 번의 참격. 그 참격 하나하나에 폭발적인 위력이 담기는 흑혈검법의 극의.
이것뿐이었다. 아수라를 물리칠 만한 스킬이 있다면.
하지만…….
흑혈검은 심연을 칼에 두르는 검법이다. 그리고 성검은 심연의 대척점에 선 존재. 성검으로 흑혈검법을 구현해낼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어지간한 심연은 삼키는 게 가능한 샤릴리온이라면……?
눈앞으로 돌진해오는 아수라가 보이자마자, 곧바로 고민을 밀쳐내고 칼자루를 쳐들었다.
[플레이어, 에델 바이스가 전용 스킬, 《흑혈검 절식 : 환영난무》를 시전합니다!]한순간, 넋을 잃고 성검의 찬란함을 바라보았다.
심연의 자리를 성광이 대신했기에 스킬 구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성광이 칼날 주위를 맴돌다가 곧 사납게 소용돌이치더니 성검을 허연 뱀처럼 휘감았다.
휘감긴 빛이 우우…… 울부짖고, 사이코의 고함과 함께 대검 세 자루가 달려들고, 그때 ‘성검의 폭풍’을 휘둘렀다.
순간적인 판단이 맞았다.
다른 성검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샤릴리온만큼은 형질흡력 능력 덕에 흑혈검법의 모방이 가능했다.
챠챠챠챠챠챠챠챠챠챠챵……!
성검의 폭풍이 용검들과 맞부딪치던 순간, 성검을 휘감던 폭풍이 수백의 칼날로 흩어지더니 아수라를 난무(亂舞)했다.
[검의 극의에 달한 자. 검기가 그대의 참격을 기억할 것이다.]흑혈검 절식은 위의 특질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검법.
눈에 보이지 않도록 빠르고 막강한 검기에, 아수라의 대검들은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스킬의 레벨이 표기되지 않았으니 내가 7회차에 사용하던 대로 Max 레벨인 듯했다.
그러면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납득이 간다. 놈의 《아수라 실혼경》 숙련도는 기껏해야 30레벨쯤이었으니까.
콰과과과과광……!
깨어진 칼날들이 땅에 떨어지며 박히면서 흙먼지가 일 때, 그 흙먼지를 연막처럼 이용해 놈에게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저 앞에서 흠칫 물러서는 사이코가 눈에 들어왔다.
“……샬류안, 그 악신이 또 무슨 짓을 한 거냐?”
“아름답고 위대하신 샬류안 님께서 밸런스 패치를 해주셨다.”
곧 있을 정산을 대비해 아부 한번 해주고.
류안아, 오빠 보고 있지?
만약 내가 ‘힘법사’라는 말을 듣지 못했더라면, 그래서 대검을 사용한답시고 ‘힘’ 능력치를 올리지 않았더라면, 샤릴리온을 루팅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행운을 움켜쥐지 못했겠지.
용검 한 자루가 날아왔다.
《흑혈검 절식 : 환영난무》의 힘을 또 보고 싶다고? 기꺼이 위력을 다시 보여주었다.
……챠챠챠챠챠챠챠챠챠챠챠챵!
허공에서 수백의 칼날이 벚꽃처럼 현란하게 흩날리며 춤을 출 때 용검이 처참히 부서져 떨어졌다.
“아수라!”
마지막 발악만이 남아 있었다.
아수라가 마지막 거검 두 자루를 내찌른 순간, 성검의 폭풍이 절정에 달하며 폭발했다.
두 용검은, 폭풍의 단말마 속에서 부서지다 못해 잘게 바스러져 버렸다.
20초가 지났다.
[지력 수치 80 : 《현자의 기억법》, 제2단계가 비활성화.]모든 팔이 잘린 아수라가 구슬프게 울부짖을 때, 지면을 박차 앞으로 튀어 올랐다.
“너무 억울해하진 말고.”
그리고 뒷걸음치던 사이코를 향해 성검을 내리쳤다.
“상대가 나잖아.”
붕대와 살갗을 저미고 뼈까지 잘라내는 감각이 칼자루에 전해져왔다.
“대체, 대체 어떻게……!”
잘려 나간 팔모가지가 허공에 피를 뿌릴 때, 성검을 빙글 돌려 참수를 준비했다. ‘뉴비’의 질문에 짤막한 답변을 남겨주면서.
“엔딩 두 번 더 보면 알게 돼.”
나는 8회차.
놈은 다섯 번 멸망을 봤다고 하니 6회차.
엄밀하게 따져보면 내가 2회차나 앞선 선배이지 않은가. 반박은 받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