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55)
가짜 용사 이야기-155화(155/310)
#51 :
[8. 태고의 심연이 잠든 도시] 네이갈라스 레이드 (8)성검의 두 번째 참격을 황급히 피한 사이코 플레이어가 옆으로 굴렀다.
안 놓친다.
즉시 성검의 세를 허공에서 틀었다. 예상 범위 안이다. 성검이 놈의 왼쪽 어깨를 갈라 내렸다.
“크아아악───!”
고통에 겨운 비명.
놀랄 일도 아니다. 양쪽 어깨는 마법사에게 생명줄과도 같았다.
마력이 생성되는 ‘주결(呪結)’이 위치해 있으니까.
“────아수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녀석이 피를 쏟아내는 어깨를 붙잡고 꿇어앉더니, 거칠게 절규하기 시작할 때 즉시 성검을 치켜들었다.
머뭇거리다 생기는 변수는 허용치 않는다. 성검이 머리통을 겨누고 사납게 날았다.
「TAAARYIASSSSSSSSSSSSSSSSSSSSSSS!」
놈은 죽었을 것이다.
그때 아수라가 마지막 발악을 펼치지만 않았더라면.
[신수, 아수라가 고유 스킬, 《용의 숨결》을 시전합니다!]불꽃이 폭풍우로 밀려닥쳤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열기와 풍압. 내가 참격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나뒹굴 정도로 강렬했다.
놈이 피를 토했다. 어깨의 치명상 때문이 아니라 마력의 폭주에 의한 피일 것이다.
아수라가, 술자를 무리시켜 가면서까지 마력을 쥐어짜낸 것이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나는 칼끝을 염풍에게로 돌려야 했다. 저걸 무시하고 저놈을 죽이려 했다간 내가 죽게 생겼다.
[성검, 샤릴리온의 《형질흡력》이 《용의 숨결》을 무효화시킵니다!]《형질흡력》 덕분에 공격을 막아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연기 때문에 가려지는 시야가 문제였다.
성검이 염풍을 오롯이 빨아들인 뒤에야 시야가 열렸다. 그러자 기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수라가 놈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나를 노려보는 사이코의 몸에 꼬리가 마구 휘감겼다.
곧 놈을 입에 넣고 삼키자, 아수라의 거대한 형체가 시퍼렇게 번득이기 시작했고…… 이내 맹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구구구……!
주변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폭발이 전 방위로 퍼져 나갔다.
“쓰레기, 이쪽으로 와라! 널 죽이는 건 나다. 이 폭발이 아니라.”
“너야말로 이쪽으로 와, 등신아!”
저기에 휘말리면 죽는다…….
형질흡력으로 빨아들인 힘을 폭발시키는 동시에 어린갑의 《심해의 회오리》를 사용한다.
로헤이리츠의 공허충들이 저 폭발 앞에 자신들의 몸을 장벽처럼 쌓아 올렸다.
콰과과과과과과……!
그럼에도, 위력에서 밀린 우리는 저 멀리로 튕기고 굴렀다. 바닥을 몇 번이고 굴렀으나 낙법으로 재빨리 일어섰다.
흙먼지와 폭연이 자욱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삐이이이…… 귓가에서는 이명이 소용돌이쳤다.
고통스럽게 기침하며 칼을 마구 휘둘렀다. 그러나 연기는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공허의 사도, 너도 깨닫게 될 거다……. 이 세계를 구해내려면 저것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걸…….”
이명과 연기 사이로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까지 컨셉 한번 확실한 녀석이다.
“내가…… 반드시…… 이 종말의 굴레를 끊어낼 것이다…….”
놈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연기가 걷히고 시야가 열렸을 때, 놈도 아수라도 보이지 않았다.
구덩이밖에 없었다.
폭발이 만들어낸 거대한 구덩이.
온몸이 현기증으로 울렁거리고 있어서, 중심을 잡는 게 고작이었다. 체력과 마력 양쪽 모두가 엉망이었던 탓이다.
“어디야! 어디로 갔어! 나와!”
내 말은 난장판이 된 봉인묘에서 적적히 울렸다. 대답은 없었다.
[성검, 샤릴리온이 극악한 심연의 기운을 감지했습니다!]그때 샤릴리온이 나를 재촉했다.
로헤이리츠가 한달음에 내달려 봉인의 제단 위로 올랐다.
제단 끝에서 솟구친 것은 백청목(白淸木)이다.
지금은 네이갈라스의 사념에 침식되어가면서 녹아내리고 퇴폐해졌지만, 청성 미른가디아가 네이갈라스를 봉인했다는 징표.
그 지변을 이루던 것 또한 청성의 호수이나, 심연을 마구 토해내며 솟아오르는 용암의 기둥이 탑만큼이나 거대해져 가면서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즉, 봉인이 깨지기 직전의 광경.
내가 제단 계단에 기대 세워져 있던 봉인의 열쇠를 들어 로헤이리츠에게 던졌다.
직경 1미터의 거대한 원기둥.
나이트 페이스들이 그 원기둥을 받아들고는, 제단 중앙에 원기둥의 홈, 즉 백청목의 옹이구멍에 꽂았다.
로헤이리츠가 그 홈에 열쇠를 밀어 넣고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영혼을 삼키는 네이갈라스.
이제 녀석이 다시 봉인되면서 렙틸리언 군대는 다시 영겁의 시공간을 배회할 것이다.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구보다 이 세계의 멸망을 바라는 내가, 필사적으로 네이갈라스의 봉인을 지켰다는 이 상황이.
「……Shu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kkkkkKKKKK……!」
네이갈라스의 포효가 구슬픈 울음으로 변해간다.
용암의 기둥은 점차 스러지며 약해져갔다. 용암과 사념이 백청목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더니 이윽고 완전히 소멸했다.
백청목은 이제 뼈대만 간신히 남아, 건드렸다가는 잿더미로 부서질 것처럼 보였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영혼을 갉아 먹던 사악한 기운이 사라진 것이다.
[네이갈라스의 봉인이 갱신되었습니다.]알림이 들려왔다.
이제 일행들은 렙틸리언들로부터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데아도 그러할 것이란 안도감이 들었다.
[메인 퀘스트 완료 : 네이갈라스의 봉인을 지켜라.]– 레벨업 포인트를 (+80) 받았습니다.
– 레벨업 포인트가 파티원들에게 분배됩니다. (-64).
– 파티 리더 보너스 (+10)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업적 달성 : 나는 봉인자다.]– 레벨업 포인트를 (+10) 얻었습니다.
그 시스템 안내문 너머로, 아까 잘라냈던 사이코의 팔모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폭발 속에서 어떻게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걸까.
그 해답은, 장갑의 손가락에 걸려 반짝거리는 물체였다.
팔모가지를 들어 올리자 근골이 재로 바스러졌다. 그리고 팅, 반짝이던 물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이템 획득 : 테르시아의 눈물.]뭐, 테르시아의 눈물?
성배 전쟁 말기에서야 등장하는 아이템이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위엄에서 알 수 있듯이 무려 전설 등급이다.
[처연한 달, 테르시아. 거울의 기사 리암이 죽었을 때 그녀가 흘린 눈물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다고 한다.]<온 것들>의 지도자 테르시아.
이건 바로 테르시아의 눈물을 반지의 형상으로 정제해낸 것. 아수라에 이어 테르시아의 눈물이라.
[고유 능력 : 《달의 눈물》.]– 지력 수치를 15초 동안 (+5) 증가시킨다.
– 사용 시간 15초 / 대기시간 6000초.
……잠깐만.
생각도 못 한 아이템 조합에 나는 탄성을 뱉었다.
내가 지력을 85까지만 올려도, 《흑혈검법》을 필요한 순간에 《달의 눈물》을 통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증강 계열 아이템은 후반, 1레벨 업당 능력치 포인트가 비싸질수록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요컨대 +5는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어마어마한 증강 수치란 거다.
그 사이코 플레이어도 아마, 《아수라 실혼경》을 사용할 때 이것의 도움을 받았겠지.
녀석이 달아난 건 뼈아팠지만, 그래도 당분간 큰 위협은 되지 못할 것이었다.
놈은 주결 하나가 손상됐다. 이제는 그 힘을 절반도 못 써. 아수라도 다루지 못할걸.
그 안에 찾아 죽이거나 퀘스트 진도 쭉 빼놓으면 된다. 계산해보니 놈과의 싸움은 득이 좀 더 컸다고 볼 수 있겠다.
현자의 기억법 2단계를 인지한 것과, <테르시아의 눈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
흑혈검법이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버그 따위로는 이제 내 상대가 안 된다. 다른 엘리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니, 무슨 소리냐…….
피터가 죽었다고, 네 공대원이 죽었단 말이다. 근데 뭐, 득이 더 큰 전투였다고?
전투의 흥분 때문인가?
아니, 어린갑의 심연 때문인가?
방금 스스로의 몸속에서 들끓던 기쁨이 문득 무서워졌다. 뭐지, 잊고 있었나? 아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게 당연하단 듯이.
“로헤이리츠.”
내가 이러는 동안, 어느새 출구까지 걸어간 놈의 이름을 불렀다.
로헤이리츠는 나를 도와주었다.
로헤이리츠가 사이코와 편을 먹었더라면 나는 그때 죽었겠지.
“아까 고마웠다.”
하지만 이건 그게 정말 고마워서 하는 인사가 아니다. 방금 피터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느꼈을 때의 한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가식적으로라도 인사를 하지 않으면…… 무언가…… 인간으로서의 무언가가…… 저 냉기에 어느 날 완전히 얼어붙어 있을 것만 같은…….
그러자 로헤이리츠가 나를 흘끗 돌아봤다.
“왜 고마워하지? 쓰레기 주제에. 널 죽이지 않은 게 아니라 나중에 죽이기로 결정한 것뿐이다.”
그리고 이놈이 이딴 새끼라 분위기가 괜히 싸해지지도 않는다.
“야, 엿이나 처먹어.”
“너부터 많이 먹어라, 쓰레기.”
나는 중지를 세웠고 놈도 중지를 마주 세웠다. 이 세계에서도 중지는 통한다. 만국 공통의 욕인 것이다.
66번 기둥을 나갈 때였다.
그러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는 일은 정말 힘겨웠다. 한 발짝, 두 발짝.
생각할 게 너무나도 많았다.
정말, 너무나도.
그런데 생각에 할애할 힘이 없었다. 걷는 데에만 전력을 발휘해야 할 정도로.
“오빠!”
“엘리트!”
위에서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들.
아까 느꼈던 그 한기가 착각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 목소리에 지극히 큰 반가움을 느꼈다.
“세상에! 오빠, 갑주가 다 망가졌잖아요. 이거 수리돼요?”
“괼프 그놈한테 또 가봐야 돼.”
“어, 얼마나 고생했는지 훤히 보이네…….”
“남 말 할 처지냐, 야나? 넌 지금 한 달은 안 씻은 폐인처럼 보일 정도인데.”
“나, 나는! 바, 밖에서도 최, 최소 2주 간격으로는 씻었다고! 하, 한 달 안 씻은 적 없어!”
그걸 말한 게 아닌데…… 그리고 그게 자랑은 아니잖니.
러시아는 추운 나라라서 자주 씻는 문화가 없는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사쿠라이가 코를 막으며 야나로부터 다섯 걸음은 멀어졌다.
“에델 씨.”
그때 박현수가 왔다. 피터의 몸에 망토를 수의처럼 둘러 양손으로 안아들고 왔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여기 이렇게 내버려두고 가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아무도 피터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누구도 맞잡을 수 없는 침묵 속에서 가라앉은 시선들만이 죄책감을 여실히 증명했다.
“계속 업고 다녔단 말입니까? 그 난장판 속에서?”
“이 아이의 몸도 몸이지만, 이대로 끝내면 당신의 마음이 무너질까 봐 그랬습니다. 제가 첫 교전 때 그랬거든요.”
박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 마음 때문이라니……?
아직 일주일도 안 본 사이인데, 이 인간의 인간성 앞에서 초라해져 가는 나를 보게 된다.
그래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니, 말할 수 없는 울분이 차올랐다. 그 머리 없는 시체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날 용서해라.”
양손을 말아 쥔 채 부르르 떨던 사쿠라이가 외쳤다.
“오빠가 왜 사과해요! 그 나쁜 놈이 사과해야지! 그래서 없애버렸죠?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버렸죠?”
“놓쳤대.”
사쿠라이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뒤에서 크세리니아가 다가오고 있었다. 로헤이리츠, 바이로니카, 가이네이브가 함께였다.
“로우와 당신이 힘을 합쳤는데도 놓칠 정도면 정말 어마어마한 실력자인가 보네.”
“제 잘못은 아닙니다. 저 쓰레기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그만.”
“야, 엿 처먹어.”
“귀가 먹었나? 너나 많이 처먹으라 했을 텐데.”
그러자 바이로니카가 푸훗, 하고 웃었다.
“로헤이리츠와 그렇게 말다툼을 많이 하는 남자는 당신이 처음이야. 둘이 좋은 친구가 되겠는데.”
그 말을 들은 로헤이리츠와 나는 똑같은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이게 미쳤나.
가이네이브가 말했다.
“라리엔의 봉인이 갱신되면서 권속들도 휴면 상태로 들어갔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저 아이의 영혼이 빛의 인도를 받았기를 기도할게요.”
그때 문득 크세리니아의 눈동자에서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그 정체불명의 악당이 당신더러 외우주의 사도라고 했다던데. 사실이야?”
그러고 보니 아직 치킨게임은 끝난 게 아니었군. 긴장을 풀기는 이르다. 공대원들이 이 이야기에 대해 몰라서 다행이었다.
“그랬습니다만, 광인이 하는 소리를 신경 쓸 필요가 없죠.”
“당신을 정말 믿어도 될까?”
“예.”
크세리니아는 능글맞게 웃을 때가 많지만 사실 누구보다 신중한 캐릭터다. 로헤이리츠는 말할 것 도 없고.
새삼 샤릴리온 루팅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영웅시대의 용사의 이름을 그대로 가진 이 녀석이 내 결백을 변호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좋아, 알았어.”
순간적으로 우리 공대와 크세리니아 파티 사이에 드리워졌던 의심과 적대의 장막이 걷혔다.
“의심해봐야 뾰족한 수도 없으니…… 그만 나가자. 내가 걸어준 성흔도 이제는 한계야. 계속 여기 머무르다가는 영혼이 타락되거나 몸이 녹아내릴걸.”
맞는 말이다.
빨리 나가는 게 좋다. 이딴 곳에 더 머무를 필요가 없으니.
모래바람 휘몰아치는 사막을 얼마나 걸었을까. 다시 승강기를 타고 지상으로 오르면서 사쿠라이에게 물었다.
“이번에 네 활약이 엄청 컸다던데?”
정황을 묻는 게 아니라 칭찬해 주려고 한 것이었다.
해골 기사들은 본래 일레이론을 깨우기 전에 먼저 쓰러뜨려야 하는 예비 페이즈였다.
사쿠라이가 그 페이즈를 스킵시켜서 일레이론을 돕게 만들었다지 않은가.
“그 현자가 도와줬어요.”
“칼레이브?”
“이유는 모르겠어요. 갑자기 말이죠. 칼레이브가 준 책 있잖아요. 그 『지혜의 보고』를 읽어보면, 거기에 답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에 답이 있었나?”
“Kurs, Asis, Tessa.”
“고대어군.”
“네. 뜻도 아세요?”
“아니.”
“……빛 속에서 우리는 영원한 형제다, 라는 뜻이래요. 왕자 일레이론과 스무 명의 용사들이 나눈 맹세래요. 해골왕 하이르칸을 몰아내기 전날 밤에요.”
“그게 답이었나?”
“네.”
『지혜의 보고』의 공략법은 신기했다.
그 문구를 읊자 해골 기사들의 머리 위를 맴돌던 강령술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 문구가 해골 기사들을 《망각의 저주》로부터 해방시켜준 거라고.
“저 맹세의 문구를 읊어주는 걸로, 옛 영혼의 맹약을 기억해 낸다고 적혀 있었어요. 진짜 해골 기사들이 정신을 차렸죠. 심연에 빠진 왕자를 돕기 위해서요. 오빠. 일레이론과 용사들이, 그 삶이 너무 불쌍해요…….”
폐왕자 일레이론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가 부왕의 압제로부터 백성들을 구하려 했다는 건 알려져 있었다.
그 거사가 실패하고, 강제로 왕좌에 앉혀진 채 원시인들을 다루는 도구로 쓰였다는 것도.
브뤼나가 말했다.
“세상 어디에도 알려져 있지 않은 고대어 공략, 그 방법이 다 적혀 있단 소리잖아요? 그리고 사쿠라이가 그걸 쓸 수 있고.”
정말 엄청난 아이템을 손에 얻은 셈이었다. 성도로 돌아가면 사쿠라이와 함께 이것부터 살펴보기로 결심했다.
“사쿠라이, 이야기를 보고 듣는 건 좋아. 근데 너무 몰입해서는 안 돼. 과도한 몰입은 이성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에델 바이스가 아닌 정철이 1, 2회차 때 그랬던 것처럼.
“무엇보다 이건 게임이 아니고 배틀로얄이야. 늘 명심해라.”
왜일까. 그게 사쿠라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처럼 느껴진 건.
승강기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고대의 모래 속으로 사라지는 도시를 안타깝게 내려다보는 사쿠라이의 뒷모습에서, 다시, 2회차 시절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안타까워하고 슬퍼해도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게 바로 이 게임인데.
“하아…….”
불현듯 햇빛이 미친 듯이 그리워졌다. 지하의 어둠은 이제 진저리가 날 정도로 갑갑하다.
《흑혈검법》.
<테르시아의 눈물>.
《파멸의 선지자》.
얻은 게 많았는데도 공대원을 하나 잃어서 그런가,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에델 씨,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우선 성도로 갑니다. 준비해야 할 게 많아요. ‘벌레들의 향연’이 곧 시작될 테니.”
“튜토리얼 때 그…….”
“예, 그놈입니다.”
그때 마침내 눈부신 햇살이 얼굴 위로 내리비쳤다. 야나가 말했다.
“근데 성도로 어떻게 돌아가? 아…… 따로 주, 준비해둔 방법이 있구나! 역시 엘리트 플레이어야!”
“무슨 뜻이지?”
“아까 나, 낙타들이 다 죽었잖아. 렙틸리언들한테. 열차에도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어. 바로 패턴이 발생해 가지고.”
“아, 그거 말이군. 걱정 마. 따로 준비해둔 방법이 있어.”
“여, 역시! 뭔데?”
물통 6개를 꺼냈다. 같은 숫자의 여분도 있었다.
라리엔을 떠나기 전에 빗물을 받아놓은 것.
샤릴리온으로 정화까지 해 두었으므로 성수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전술 행군.”
“네?”
“행군?”
내 말을 단번에 이해하고 황당한 표정을 지은 것은 박현수였다.
“잘 못 들었습니다?”
2040년.
대한민국 육군 기동 보병의 기초 군사 행군 거리는 주간 92킬로미터, 야간 105킬로미터.
라리엔에서 성도까지의 거리는 대략 93킬로미터.
행군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