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56)
가짜 용사 이야기-156화(156/310)
#52 :
[9. 대관식] 나의 질문과 너의 대답, 너의 질문과 나의 대답 (1)행군을 하기에는 밤이 늦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육체적ㆍ정신적 피로가 모두 극에 달해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이갈라스가 다시 봉인됐으니 태고의 심연은 안 나올 거고…… 기다리다 보면 열차가 올지도 모르겠네요.”
열차는 야나의 우려대로 사라져 있었으나, 아르츠레히드가 이런 사태를 방관할 리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해야 할 일도 있었다.
피터의 시체를 볕 잘 드는 언덕에 묻었다. 다회차라서 안다. 곧 이런 죽음에 익숙해질 것이다.
지금은 첫 죽음이라 이런 거고…… 곧 모두가 이런 죽음에 무뎌지겠지.
그 위에 돌멩이들로 비석을 올릴 때, 사쿠라이가 말했다.
“오빠, 저 결정했어요. 제 소원은 먼저 죽은 모든 공대원을 살리는 거로 할게요.”
“뭐? 그러면 네 소원은 어쩌고?”
“오빠가 해주면 되잖아요. 공대원 모두의 소원을 이뤄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가능할 것인가?
그게 가능했더라면…….
“에델 씨 혼자만의 소원으로 부족하다면 저도 그렇게 소원을 빌겠습니다.”
“나, 나도……!”
“저도 거들죠. 그거로 스타폴 값은 다 치렀다고 봐도 되겠죠?”
공격대 첫 멤버들이 이런 바보들이라니, 정말 사람 복도 없다.
저런 막무가내식 소원이라니…….
하지만 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 관리자는 분명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했다. 뭐든지.
근데 왜…….
지난 다섯 번의 배틀로얄 동안 아무도 그런 소원을 빌지 않았던 거지? 그냥 들어줄 수 없던 건지, 아니면 빌지 않은 건지…….
그때, 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이 깨어났다.
그 소리는 알이 깨지는 소리 같다기보다는, 겨울날 호수에 균열이 가는 듯 맑고 청명했다.
빙룡 스케사리.
크기는 고양이 성체만 할까?
귀엽기까지 했다.
크세리니아가 출산 이후 늘 등의 바구니에 지고 다니던 알을 깨고 나온 것은 빙룡.
놈은 용족이란 말이 실례일 정도로 정말 너무나도 작았다.
다른 용족과 달리 빙룡에게는 용린이 없다. 피부를 뒤덮은 건 고드름 같은 얼음뿐.
“Ma, ma kiome!”
스케사리가 어미의 볼을 마구 핥자 크세리니아가 맑게 웃고 가이네이브와 바이로니카도 덩달아 웃었다.
“네 아버지가 네게 주신 이름은 스케사리란다. 용언으로 ‘세상의 겨울을 지새우다’라는 뜻이지. 스케사리, 용은 이름에 맞는 삶을 산단다.”
“Ai-bu, bububu!”
스케사리는 신룡.
신화시대의 삼신룡, 아수라와 같은 규격의 용이다. 그러니까 나중에 최종 보스도 되는 거다.
반룡 주제에 그게 맞냐 싶겠냐마는, 샤릴리온이 마지막 <온 것들>인 타르시요와 결합해서 남긴 자손이 리드 가문이다.
저 스케사리는 요컨대 무지막지한 유전자란 유전자는 죄다 섞인 결정체라 보면 된다. 그런 설정을 알게 되면 딱히 문제되는 건 없다.
“와……!”
사쿠라이가 탄성을 내지르며 거기로 달려갔고, 브뤼나와 박현수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저렇게, 저렇게 작은 것이…… 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이라니. 이 게임의 최종 보스라니.
“너, 너는 안 가도 돼?”
야나가 내 눈치를 봤다.
가고 싶으면 가라고 손짓했다.
왜인지 갈 수가 없었다.
– 죽여야 해.
7회차의 기억이 현실 위로 포개진다. 내 칼을 맞고 죽어가는 용부인 크세리니아. 그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크리스 마이어스.
– 부탁, 부탁이야, 내 아이는, 내 아이는, 이 세상의 심연을 위해 싸우고 있어, 부디…….
그때 나는 대검에서 피를 털어내며, 단호히 말했다.
– 크리스, 어서 마무리해.
– 정철, 다른 방법이…….
– 다른 방법은 없어. 이게 최선이야.
최종 보스 빙룡 스케사리.
그놈의 초월적인 냉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빙룡왕의 성흔, 즉 여의주가 필수적이었다.
루팅 방법은 쉬웠다.
‘여성 플레이어’가 용부인을 죽이면 된다.
– 그래도…… 용부인은 우리를 계속 도와줬는데…….
– 서로 이익이 일치했을 뿐이야.
– 이번에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까?
– 자식을 죽이겠다는데 도와줄 리 있겠어?
라리엔에서의 사건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걸까, 구역질이 치받치며 다리가 꺾였다.
“저, 정철!”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혹여나 토사물이 나올까 싶어 왼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야나가 흠칫 놀랐다.
“이건……?”
야나가 바닥에서 반짝이던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테르시아의 눈물>이었다.
“사이코 플레이어가 갖고 있던 거야. 팔을 자르면서 빼앗았어.”
오…… 환성을 흘리며 보석을 살펴보던 야나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이, 이거 좀 이상한데?”
“이상하니까 너 달란 소리는 하지 마라.”
“그, 그게 아니고…… 팔을 자르고 빼앗았다며. 플레이어한테서 빼, 빼앗은 거면 ‘강탈한 물건’이라는 경고문이 10일 동안 뜨잖아? 적발 시 명성이 급락하고…… 원래 명성이 낮으면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렇지.”
“여기 그런 게 없어.”
야나에게서 <테르시아의 눈물>을 되돌려 받은 나는 멍하니 그 아이템 툴팁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진짜다. 없어. 왜 없지?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고개를 들고 야나를 마주 볼 수 있었다.
“이것도 버그를 쓴 건가?”
“아니, 이런 시스템의 근원적인 부분까지 건드리는 버, 버그가 존재할까……? 그리고 버그를 쓴 게 네가 아니잖아.”
“그러면 대체 뭐야 이건.”
야나에게 묻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건 혼잣말에 불과했다.
의문은, 의혹은 줄곧 있었다.
사이코 플레이어의 컨셉질이 과도해도 너무 과도하단 것과, 엘리트인 나조차 모르는 버그 플레이를 꿰고 있다는 점.
그 모든 의혹을 컨셉질과 버그 플레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일축해 왔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생각하면, 신념이 무너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으니까. 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건…….
– ……회귀자 아닐까요?
사쿠라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멍하니 그 이름을 떠올렸으나 이내 고개를 마구 저었다.
불가능해.
불가능한 일이다.
회귀자 NPC라고? 그럴 리가 없어. NPC라면 어떻게 샬류안에 대해 알고 또 나에 대해 알 수 있지……?
“아니, 아니야. 말도 안 돼. 이건 그냥 버그야.”
그때 문득 기적이 크게 울리더니, 저 멀리서부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땅울림은…….
모두가 벌떡 일어나 저편, 철도를 따라 달려오는 물체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증기기관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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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기장 할바론 사후, 아인 제정(帝政)은 붕괴하고 다시 삼왕국 체제로 회귀했다.
할바론의 후계자인 구스타프 율리우스(폭식공 토벌전 당시 강철함대 함대장)는 성도의 인류를 최대한 보조해주고자 한 가지 협정을 체결을 중계한다.
아인에게 구식이 된 문물을 매입하는 권한을 성도에 준 것인데, 이는 대단한 배려였다. 아인에게 구식인 것이 인류에게는 최신식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성도의 증기 기술력은 대륙의 기술력보다 10년 빠르다는 말이 있다.
물론 군사적 기술은 예외라, 탄피형 탄환은 매각되지 않았다.
* * *
그 보석은 정말 눈물의 빛을 품고 있었다.
달빛을 삼켜서 더욱 처연한 광휘로 내보내서, 죽던 날 어머니의 눈에 맺히던 눈물이 떠오르게 만든다.
영웅시대의 용사, 리암의 죽음을 보고 흘리던 눈물이라…….
“여기 계셨군요.”
박현수가 날 찾아왔다.
성도의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엘리둠 언덕, 엘리둠 교회의 종탑에 오르면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었다.
박현수의 손에는 닭꼬치 2개와 맥주잔 2개가 들려 있었다.
“당직 때 야식이 빠지면 섭섭하지 않습니까.”
“천하의 UDT한테도 그런 게 있는지는 몰랐는데요.”
“아시다시피 군대란 게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다른 사람들은요?”
“아시다시피 야나는 저질 체력이라…… 그거 좀 걸은 걸로 아직까지도 뻗었습니다.”
야나…… 그것 때문에 뻗은 게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성도에서 아르츠레히드가 급파한 열차를 샬롯 칸드라군이 갖고 왔기에 애초에 행군의 피로는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 박현수!
– 샬롯, 여기는 어떻게……!
– 이제 곧 대관식인데 주역들이 빠져서야 되겠나? 트라이폴 백작도 자리를 빛내줬으면 좋겠군.
야나, 그 녀석도 혼란스러운 걸 거야. 다른 공대원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일러두긴 했지만…….
“괜찮으십니까?”
박현수가 나에게 닭꼬치 하나와 맥주잔 하나를 넘겨주고는 난간에 몸을 기댔다.
“좋은 경치네요. 스팀펑크에도 스팀펑크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일 대관식이 예정되어 있기에 성도의 거리는 상당히 붐볐다.
왁자지껄 떠드는 상인들, 주점에 모여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나뭇가지로 검술 장난을 치는 꼬마들.
나는 성도에 도착한 이후, 줄곧 이곳에서 성도의 밤거리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물어본 적이 없었군요. 현수 씨, 당신은 왜 이곳에 들어왔습니까?”
“……?”
“소원 말입니다.”
왜 문득 그걸 묻고 싶어졌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미리 확인해보고 싶던 걸지도 모르겠다. 먼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말하려니 부끄럽군요.”
현수가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가 먼저 말하면 에델 씨도 소원이 뭔지 말해 주겠습니까?”
“그러죠.”
“저에게는 희귀병에 걸린 여동생이 있습니다. 이름이 박혜림이죠. 사쿠라이 또래입니다. 늘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책을 읽지요. 사쿠라이처럼 책을 좋아합니다. 둘이 만나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봄날의 강변을 걷는 이야기였다.
긴 겨울 동안에도 완전히 바스러지지 않은 단풍이 발치에 밟히는 듯한, 그런 감각.
듣는 사람도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감각.
“소원이 그 동생이겠네요.”
“예.”
“저는 저 때문에 죽은 어머니를 위해 여기 왔습니다.”
맥주잔의 맥주를 단번에 들이켰다. 취기가 말이 나아가야 할 길을 열어주었다.
“현수 씨, 당신은 소원에 얼마나 절실합니까?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그 소원에 매달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그야…….”
“제가 예전에 말했죠. 이 게임의 엔딩을 본다는 건, 이 세계를 멸망시키는 거라고.”
“예, 근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이미 시나리오가 계속 바뀌고 있는데…… 어딘가에는 멸망이 아닌 다른 엔딩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런 엔딩은 없어.
이 게임의 관리자들이 멸망을 원하고 있으니까.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그 엔딩을 보여줘야만 해.
“그런 엔딩은 없습니다.”
“……!”
“말이 나온 김에, 만약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말입니다. 이 세상이 게임이 아니라 어딘가에 존재하는 실제 세계라고 해도…… 현수 씨는 저를 따라 그 엔딩을 볼 자신이 있습니까?”
분명 잠깐이었으나, 마치, 잠시 세계가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영원보다도 더 길게 느껴지는 침묵이 흘렀다.
박현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정말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알게 되었을 뿐.
“에델 바이스?”
숨을 씨근거리는 사내가 어느새 우리 옆에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귀하께서 에델 바이스…… 맞으십니까?”
내 위치를 찾아온 건, 장갑에서 번쩍거리는 추적용 마도구 덕분이리라.
나도 그 복장인 가죽옷과 방한모를 보고 그 정체를 바로 알았다. 이 NPC는 편지 배달부다.
그리핀을 타고 다니며, 초고속으로 편지를 전달하는 자들. 이 세계에는 아직 전화기가 대중화가 되지 않았다. 특히나 이런 대륙 간에는 더더욱.
대체 누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을까.
아마도 NPC일 것이었다.
그리고 짐작 가는 인물이 있었다. 아르휀 공작. 로바르를 죽인 이유로 살해 협박 같은 걸 하는 거겠지.
“아우, 한참을 찾아다녔습니다.”
배달부가 가슴팍에서 밀랍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꺼내들었다.
“듀렌 대공께서 귀하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순간 손가락이 굳었다.
듀렌? 듀렌? 훗날 철혈 재상으로 이름을 떨치는, 정치와 군사 양면으로 탁월한 영웅급 NPC?
성배 전쟁에서 용기사 알렉산드로와 함께 제1황녀 힐더를 승리로 이끄는 사내?
“듀렌이 왜 날?”
“저야 모르지요.”
침을 삼키며 그 편지를 받아들었다. 밀랍의 인장에서, 봉황이 날개를 펼치며 포효하고 있었다. 듀렌 대공 가문의 문장.
“자리를 비워드려야 합니까?”
“아뇨, 잠시만 기다리세요.”
인장을 뜯어 두루마리를 펼쳤다.
이례적이게도 편지 서두에 발신인이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을 대충 훑어 내려가려 했으나, 창에 꿰뚫린 듯 시선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가, 눈을 의심했고, 끝내는 경악했다.
[정철 공격대의 부공대장이었던 크리스 마이어스가 공대장이었던 정철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