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59)
가짜 용사 이야기-159화(159/310)
#55 :
[10. 앤티키아] 결전, 엘리트 나이트 (1)“흐흐, 엄청난 말썽을 일으키고 온 모양이군. 장난 아니게 망가져 있어.”
심연의 대장장이, 괼프가 말했다.
“알고 있으면 어서 수리나 해주시지.”
“이 갑옷이 아니라 네 정신을 말한 거였다. 흐흐흐.”
“그러고 보니 물으려 했었다. 너 갑옷에다 뭔 개짓거리 해놨지?”
어린갑을 입는 순간부터 감정이 이상해진다.
감정이 더 충동적으로 변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에는 화내지 않는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하게 변해간다.
나에게 멱살을 붙잡힌 괼프, 예전 같으면 건방지다면서 레이드 패턴이 발생할 수도 있었으나 음흉하게 웃기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흐흐흐흐흐, 침식 속도가 내 생각보다도 빠르군. 속도가 빠른 게 아니라 삼킬 게 얼마 없었는지도.”
“그게 무슨 소리지?”
“네가 갖고 있는 인간성(人間性)이 원래 보잘것없었거나, 아니면 이미 마모되어 있었거나. 둘 중 하나란 소리다.”
괼프가 풀무질을 통해 심연의 용광로에 불을 올리고, 그 안에 부집게로 집은 어린갑을 집어넣었다.
“곧 즐거운 일이 벌어지겠군. 보인다. 네가 곧 심연에 잡아먹히게 되는 미래가.”
“닥쳐.”
“심연은 늪이다. 한번 발을 담갔다면 빠져나갈 길이 없지. 빠져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게 빠지게 된다, 흐흐흐흐흐흐.”
제작과 달리 수리는 정말 금방이면 끝난다.
애초에 심연의 힘으로 제작된 거라, 장비 자체에도 재생의 힘이 있다는 설정 때문이라나.
어린갑을 걸치면서 나직이 경고했다.
“내가 널 다시 안 찾아오기를 기도해라. 그때는 널 죽이러 오는 걸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동굴을 나서려는데, 괼프의 어안이 흉측하게 찢어지더니 뜻 모를 말을 남겼다.
“그날만을 고대하지. 절대(絶對) 심연의 그릇으로 선택받은 위대한 존재여.”
* * *
앤티키아로 향하는 군수 열차는 도합 80대였다.
이들은 선발대였으며,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앤티키아의 전선을 보강하고 요정군들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총병력은 23만 명이었으며, 요르한 4세가 몸소 친정을 천명한 본대까지 도착한다면 43만이 넘는 대군세였다.
이것이 시나리오의 뒤틀림.
이데아 반도에서 인류와 요정이 진즉 합일할 수 있었다면 낼 수 있던 병력.
본래 성도 공방전에서 피와 주검의 산을 이뤘어야 할 병력들이, 철길의 단조로운 리듬을 따라 앤티키아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오빠, 무서워요?”
“아니.”
“챌린저 원딜의 감으로, 엘리트 나이트 따위 오빠한테 한주먹거리도 안 될 테니 걱정 마요!”
휘어지는 철도를 따라 반도를 넘어가는 열차 안에서, 나는 손끝의 흔들림을 느꼈다.
긴장감이 아니야.
이건 고양감이다.
꿈에서만 그리던 광경이, 지금 두 눈동자 앞에서 선명하게 펼쳐지고 있음에 고양된 거야.
[메인 퀘스트 도착 : 벌레들의 향연 (1)]– 켈렉─샼이 벌레 왕좌에 다시 앉는 날, 구더기 떼가 창궐해 이 세계를 빨아 먹으리라. 그 저주는 세계가 말라비틀어지기까지 끝나지 않으리니…….
* 경고 : 심연의 기운이 맹렬하게 느껴집니다!
증기기관차가 일정한 박자에 맞춰 흔들리면서 이데아 반도를 종단했다.
사막의 권역을 벗어나자, 설국(雪國)이었다.
눈 덮이지 않은 땅이 없었으며, 눈에 파묻힌 시체들은 꼭 박제된 것처럼도 보였다.
“원래는 벌레 떼가 창궐해 있어야 하는데…….”
브뤼나가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 숨결이 창문에 허연 입김으로 맺힐 정도로 날씨가 팽팽했다.
“지금 이 상황은 꼭 대륙에서 아쉬론 토벌전 때 같은데요.”
“아쉬론?”
사쿠라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야나가 대답했다.
“이, <잊혀진 왕들> 중 가장 강한 왕…… 왕들의 시, 심연은 특징이 다 다른데 아쉬론은 눈보라야.”
정확히는 심연의 눈보라다. 아쉬론이 일으키는 눈보라는 하얀색이 아니라 검푸른 색이니까.
그러니까 기이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 날리는 눈은 새하얗기 그지없었으니까.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켈렉─샼의 패턴이 뒤바뀐 것이겠구나, 싶겠지만.
“이건 아비가일이 준 사진이야. 순찰자들이 찍어온 거라던데.”
사쿠라이가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한 마을의 공터에서, 사지가 절단된 시체들이 나선형으로 펼쳐진다.
죽자마자 얼어붙었는지, 시체들이 공포에 질린 표정은 사진에 찍히는 순간까지도 생생했다.
박현수가 먼저 한마디 했다.
“미친 짓과는 별개로 검술 솜씨가 상당하군요…… 하반신이 잘려 나간 단면이 무서울 정도로 깔끔합니다.”
“오빠, 그 사이코 컨셉충 놈이 한 짓이죠?”
“아니, 뭔가 달라.”
사진은 그것 말고도 열 장은 더 있었다. 물론 섬뜩할 정도로 비슷한 현장이기에 비교하고 말 것도 없었지만.
알 수 없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시체를 벤 솜씨 때문이 아니다. 시체들이 펼쳐진 모양이 이상했다.
“야나, 너도 알아보겠어?”
“으, 응…….”
“동네 사람들, 이 올비들 좀 보세요! 뉴비 배려 좀 합시다, 네? 뉴비 없으면 게임 망하거든요.”
“누, 누군가가 켈렉─샼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시체들을 X자로 배치해야 정상이야. 그게 켈렉─샼의 문장이니까.”
“그래서요?”
“그, 근데 봐…… 나선형이잖아?”
“언니, 나선형이 잘못된 거예요?”
“나선형을 문장으로 쓰는 <잊혀진 왕들>은 아무도 없어.”
사쿠라이가 용기를 내어 다시 사진을 보려고 했으나, 다시 짧게 신음하며 자기 눈을 가렸다. 박현수가 말했다.
“에델 씨, 짐작 가는 데라도?”
“순찰자들도 단서 하나 찾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단서 하나 없이 짐작해보는 것보단, 찾아서 족쳐보는 편이 정확하겠죠.”
모든 게 이상하다.
아직 ‘벌레들의 향연’ 퀘스트가 1단계도 진행되지 않았단 것도 기괴해.
그리고 왜 정산이 아직도 시작되지 않는 거지? 정산을 보면 다른 엘리트들의 행적을 보고 대충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텐데…….
“저흰 잠시 본대에서 이탈해서 시나리오 핵심 장소로 갈 겁니다. 아비가일의 말에 따르면 모험가들, 즉 플레이어들이 대거 실종되었다고 하니 정신 단단히 차리세요.”
켈렉─샼을 봉인한 두 여걸 중 하나, 홍염의 아키레아는 자신의 편린을 이 땅에 남겼다.
그 이름이 홍염의 핵(核).
모든 <잊혀진 왕들> 중 가장 화염에 약한 켈렉─샼을 공략할 때 필수적인 아이템. 그걸 찾으러 가야 한다. 박현수가 당연한 의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이미 엘리트 나이트가 챙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
“그렇다면?”
“하지만 시나리오 챕터가 아직 1이란 게 마음에 걸려요. 이거면 홍염의 핵 퀘스트가 진행이 안 됐단 의미거든요.”
“!”
“아이템을 확보하기보다는 지금 이 상황의 단서를 찾으러 가보죠. 플레이어들이라도 만나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때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엘리트 나이트와의 두 번째 매치는 그렇게 성사되었다.
놈과 나는 물과 기름.
하나의 세계에 2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는 법. 시나리오가 숙명이란 이름으로 우리 둘의 생사를 묶고 있었으므로, 늦든 빠르든 성사될 수밖에 없는 싸움인 거다.
* * *
기관차는 우리를 앤티키아 외곽, ‘안개산맥’과 ‘깊은 숲’이 교차하는 지점에 내려주었다.
[새로운 지역 : 안개산맥.]희뿌연 안개로 뒤덮인 안개산맥, 저 드높은 산맥의 정상에서 홍염의 핵을 루팅할 수 있다. 정확히는 [카셋두르 성묘]에서.
눈이 내릴 시기도 아니고 장소도 아니건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에 파묻힌 산악은 기동력을 저해시키고 소리를 삼켜 청각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시체…….
그 눈 속에서 시퍼렇게 얼어붙은 채 나선형으로 펼쳐진 시체들의 인종이 참으로 다양했다…….
“플레이어……?”
신원은 파악할 수 없지만 플레이어라는 건 명백했다. 문제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다른 쪽에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브뤼나의 입에서 입김이 허옇게 뿜어져 나왔다. 사쿠라이가 물었다.
“왜요, 언니?”
“켈렉─샼 휘하 망자인 구더기 인간 ‘킨웨’들도 잔뜩 죽어 있잖아. 얼어붙은 채로. 이건 꼭…… 심연이 심연을 서로 공격한 것처럼 보이는데. 캡틴, 이런 일도 있어요?”
“야나, 주변에 생존자 있어? 누구든 좋으니 찾아내 봐.”
“음…… 없어. 아니, 잠깐만. 누군가를 찾았어. 서, 서쪽이야!”
그 플레이어를 찾은 곳은 산중턱의 한 암반 뒤쪽이었다.
그 여자는 미쳐 있었다.
횡설수설하면서 제 목을 마구 할퀴기도 했고, 바닥을 마구 기어 다니다가 돌연 웅크리더니 흐느끼는 식이었다.
“아니, 아니아니아니야…… 나…… 나는…… 우리는 쥐, 쥐……의 먹이가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나, 나나나…… 나는…… 레르르르르르라라랄.”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등골을 섬뜩하게 적셨다. 저 광적인 행동 때문이 아니라 낯익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 리샤르가 안부 전해달래.
이 여자, 결사대 퀘스트 때 말을 끌고 왔었던 그 플레이어다. 리샤르의 동료 플레이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리샤르, 그놈은 어디에 있어?”
“뭐, 뭐뭐뭔 일? 아하하히히히히하하하하하하하!”
“완전히 미쳤는데요? 결혼할 때 이런 여자 조심하세요, 캡틴.”
“뭐든 알아내야 돼.”
“어떻게요?”
“너 성기사잖아. 축복 주문 대충 걸어봐.”
“성기사가 가진 축복은 진짜 완전 초급 기적들뿐이에요! 이렇게 완전 미친 사람은 안 된다고요.”
“제가 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나선 건 박현수였다.
“사냥꾼 클래스는 이런 저주 앞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고개를 저으며 만류하려던 순간, 박현수의 손에서 월광의 꽃이 피어났다.
아니, 이건 기적이잖아……?
사냥꾼 클래스가 기적을 쓴다고? 그것도 무영창으로? 요정 캐릭터만 쓸 수 있는 달의 기적을?
“박현수 씨, 지금 어떻게─”
“─너, 너, 넌, 엘리트 소서러?”
양쪽으로 흩어져 있던 초점이 돌아온 플레이어가 내 말을 끊었다. 박현수가 말했다.
“리샤르의 공격대 맞습니까?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공격대가 다 당했습니까?”
“리, 리샤르, 그, 그…… 미친 사이코…… 너, 너희들이라도 도망쳐…… 리샤르는 이제 정상이 아니야, 미쳤어, 미쳤다고……!”
“미쳤다고? 어떻게?”
“쥐, 쥐가 아니야. 악마, 악마라고……! 작업을 할 때마다 경계 임무를 서던 공대원들이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았어…… 이,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알아! 노, 놈은 공격대원들을 악마들에게 먹, 먹이로 던져준 거야…… 리, 리샤르 그 사이코, 그놈은 성묘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까지 쥐 떼에게 던져줬지…… 레르, 레르레르르르…… 머, 멍청한 놈, 히히히,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엘리트 소서러에게 알려줄 거야…… 네가 항상 열등감을 품던……! 아, 아니…… 나, 나는…… 레르르르르르르라라라랄……!”
그 순간, 미세한 외계의 살기를 감지하면서 즉각 성검을 발검.
“현수 씨, 물러나요.”
비명을 내지르던 여자의 얼굴이, 상체가 절반으로 찢어발겨지더니 몸속에서 악마가 튀어나왔다.
“지금 당장!”
악마가 양쪽으로 갈라진 갈비뼈를 헤치고 박현수에게로 달려들던 순간, 성검이 그 주둥이를 꿰뚫어 암반에 꽂았다.
방금 그 몬스터는 대체 뭐였는지, 플레이어가 말하려던 게 대체 무엇이었는지 아무것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다만 피와 내장이 낭자하고, 그보다도 더 끔찍하게, 현실로부터 전송되는 처형 영상.
탕, 탕, 탕……!
사쿠라이가 비명을 삼키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악몽의 세계, 리샤르가 그 세계 속으로 들어왔다.
“귀빈을 이렇게 대접해서야 쓰나, 최고의 만찬을 대령해야지.”
방금 몸속에서 튀어나온 것보다 2배는 큼지막한 악마 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리샤르……!”
“리샤르? 그럼 저 녀석이 엘리트 나이트라고요?”
“올 줄 알았다. 넌 항상 내 손바닥 위에 있었으니.”
그때였다. 나선형을 이루던 시체들이 꿈틀거리더니 냉기를 거느린 악마 쥐들이 그 몸속에서 솟구쳐 나왔다.
대체 뭐지, 이 소환수는……?
나와 박현수와 브뤼나가 야나와 사쿠라이를 둘러싸는 형태로 방어 자세를 잡았다.
“야나, 엘더 사인을!”
나이트 클래스의 맹점.
후반에 이를 때까지는 광역 스킬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일대다 전투에서 더없이 불리하단 것.
이걸 위해 어린갑을 파밍한 건데, 이렇게 동료들이 많을 때 썼다가는 팀킬까지 해버린다.
“그, 그게 될까?”
“써보면 알겠지!”
달려든 악마들이 성검의 빛과 혜성의 망치와 물의 칼날에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몸에 닿게 해선 안 된다.
시체한테 그렇게 했듯이 안쪽으로 파고들 테니까. 분명 그럴 거란 판단이 섰다.
역시 제일 크게 활약하는 건 스타폴을 사용할 수 있는 브뤼나…… 하지만 결국 장비에 의존하는 한계는 명확하다.
“그, 그치만, 시, 시간이!”
“제가 막아볼게요!”
사쿠라이가 『지혜의 보고』를 펼쳤다. 그 이마에 새겨지는 눈동자 문장.
[플레이어, 사쿠라이 노야가 고유 스킬, 《세계의 기억》을 시전합니다!] [고유 스킬, 《세계의 기억》이 고유 스킬, 《원시의 부름》을 시전합니다!]아니, 원시의 부름이라고……?
골공왕 하이르칸이 사용하는 강령술로 강령술사 각성을 한 이후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걸 쓸 수 있게 됐다고?
Ryuu…….
Syuuuaa…….
Karis…….
음험한 영기가 흘러나왔다. 영기가 눈밭에 널브러진 시체들에게 날아가 그 몸을 휘감기까지는 2초도 걸리지 않았다.
한 악마가 박현수의 면전으로 닥쳐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악마를 허공에서 붙잡아 비틀었다.
시체의 손이었다.
시체가 우리를 지키고 악마를 공격한 것이다.
……끼기기긱기기기기기기긱!
원시인의 형태로 기괴하게 변이되어 가는 사체들이 악마들을 갈기갈기 찢는다. 원시인들이 사쿠라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대 사령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죽음의 안식조차 얻지 못하고 땅에 묻힌 껍데기들이여. 이제 일어나, 나 하이르칸의 명령에 복종하라!”
사쿠라이의 명령을 원시인들이 턱뼈를 딱딱거리며 전파했다.
Ryuuu…… Shyuaa…… Karis…….
사방에서 더 많은 사체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쥐 떼들과 어지러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사쿠라이, 잘했어!”
악몽과 절규의 수라장. 야나도 다급히 『클라에논 단장』의 주문을 마친다. 영묘한 힘이 느껴지는 구절이었다.
엘더 사인.
고대신의 힘이 깃든 문장.
“Juas! Kirras! MuShiars!”
물방울이 수면을 때리는 소리가 나는 듯했던 한순간, 허공에 고대의 마방진이 나타났다. 모호하게 보이지만, 그 절대적인 힘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힘은 과연 절대적이었다.
날카로운 소음이 숲을 가득 메우는가 싶더니, 그 소리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악마들의 몸을 찢어발기고 분쇄시켜 내는 것이다.
“엘더 사인이라, 귀찮게 하는군.”
리샤르 후가 칼을 뽑았다.
[플레이어, 리샤르 후가 전용 스킬, 《검신의 극의 : 참마격》을 시전합니다!]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새하얀 검기가 하늘을 날았다.
색도 색인데, 뭔가…… 이상했다.
베는 힘이 아니었다. 숲의 어둠과 신록마저 동결시키는 죽음의 힘이었고, 세계의 균형조차 얼리는 불가해한 힘이었다.
“그렇담 이건 어떨까!”
지금 이 상황에, 공대원들이 저걸 회피하는 건 불가능. 몸이 움직인다. 성검이 울부짖는다.
“삼켜라, 샤릴리온!”
샤릴리온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 샤릴리온의 칼끝에서 《형질흡력》의 기운이 춤추듯 일어섰고, 다음 순간에는 맹렬히 쇄도해온《참마격》과 격돌했다.
“에델 씨!”
비현실적인 악몽의 위력. 그 위력에 점차 밀리면서, 내가 딛고 있던 지면은 움푹 파여 갔고, 온몸의 뼈들은 부서질 듯이 욱신거려 왔다.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흡수되고 있을 뿐.
전율했다. 칼날이 깨어질 듯이 떨리고는 있지만, 삼켜내고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힘을, 빨아들여낸 것이다.
“현수 씨,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성묘로 향하세요!”
“예?”
“거기에는 결계가 있습니다! 그 안쪽에서 항전하세요.”
“에델 씨는요!”
“지금 옆에 있어봤자 방해밖에 안 됩니다! 어서!”
《참마격》을 완전히 빨아들인 성검이, 새하얀 악몽의 형상으로 꿈틀거리며 고통스럽게 울었다. 리샤르가 피식 웃었다.
“그게 그렇게 쉬울까?”
샤릴리온이 악몽의 힘을 7배 증강시켜 발출, 성묘로 향하는 길이 순백의 폭풍에 꿰뚫린다.
공간 자체가 얼어붙는다, 그 공간 위에서 무수히 쏟아지던 악마들과 함께.
그러더니 공간이 산산이 깨어진다. 같이 얼어붙었던 존재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가세요!”
그렇게 외칠 때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뭐야, 이건.
이런 스킬은 없었는데?
빙결계 스킬 중에 이딴 게 있었나? 리샤르가 내 옷매무새를 위아래로 훑더니 냉소를 지었다.
“정산에도 참여하지 않고 뭔 개짓거리를 벌이고 있나 했더니만, 별거 없었군그래? 멍청이들만 쓴다는 성검에 어린갑 하나. 아, 『클라에논 단장』도 있군.”
무슨 소리야.
정산이 이미 열렸었다고?
나만 거기에 참석하지 못하고, 다른 엘리트들은 다 참석했다고?
“네가 불참한 정산에서 나는 막대한 힘을 얻었지. 흐흐흐하하하하하하! <잊혀진 왕들>조차 한순간에 초월하는, 진정한 절대자의 힘을! 잘 봐라, 엘리트 소서러! 보고 절망해라! 이게 바로 VVIP와의 전속 계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