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6)
가짜 용사 이야기-16화(16/310)
제16화
“홍련?”
“홍련의 아들?”
우루크 전사들은 망연히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홍련이 대체 누구인가, 그 위명을 알지 못하는 우루크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우루크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요한이었다.
“홍련이라면 단장님……? 단장님의 아들?”
그 순간 반년쯤 전에 카밀라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이 소검, 내가 스승님한테 선물로 드렸던 거야.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게 진짜라고?
카이센이 라미네아 단장님의 아들이었다니…… 문득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헛웃음이 뭉클거리며 솟구쳤다.
“그래, 마지막엔 행복하셨구나.”
병단의 모두가 그분을 존경했고 그분의 행복을 기도했다…… 그 기도의 응답이 눈앞에 있는 카이센이라는 건가.
‘잠깐, 그렇다는 건.’
울프는 흠칫 놀라며, 숨을 힘겹게 쌕쌕거리는 카밀라를 내려다보았다. 카밀라가 카이센에게 유독 까칠하게 군 이유가……?
“홍련의 아들이라…….”
키슌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슬금슬금 카이센을 포위하고 있던 우루크 전사단에게 고함을 터뜨려,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네가 홍련의 아들이란 증거는?”
카이센은 눈짓으로 대답했다.
핏덩이로 널브러진 우루크 전사단의 사체를 쓱 훑는 것으로.
그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가 그러하셨듯이.
“으하하하하! 마음에 들어, 아주 마음에 들어! 그래, 그래야지!”
키슌은 적수 앞에서 흥분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부관이자 친동생인 키쉐가 괴어로 말했다.
“기다려, 키슌. 저런 실력을 가졌다고 해서 홍련의 아들이란 보장이 없잖아.”
“아니, 있어. 저 볼을 잘 보라고.”
“음? 발크루쉬의 문장?”
발크루쉬 클랜.
발카로가 족장이 된 이후 본래 1위였던 키랄 클랜을 제치고 부족 서열 1위로 군림하고 있는 괘씸한 놈들이었다.
“발카로, 그놈이 아버지를 찾아온 적이 있어. 엿듣자니 자신이 홍련을 죽였다던데.”
“무슨……?”
“그런데 그 방법이 석연찮았나, 아들을 살려놨으니 전사가 될 때까지 절대 건드리지 말라지 뭐야. 자신의 사냥감이라면서.”
키쉐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이 칼타케는 받아들일 이유가 넘치고도 남았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일석이조였다.
“홍련의 아들을 죽였다는 명예인가.”
“그리고 발카로의 사냥감을 건드림으로써 발카로 놈이 먼저 우리에게 덤벼들게 하는 효과까지 볼 수 있지.”
키쉐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슌이 지시할 것도 없이 우루크 병사들을 통솔해서 결투할 장소를 확보했다.
“Greeshe(받아들이지).”
키슌이 그렇게 말한 순간.
함성이, 우레와도 같은 함성이 우루크 전사들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WUUUUUAAAAAAAAHHHHHHHHH!”
함성의 기세에 숲이 뒤흔들렸다.
반면 울프는 절박한 심정으로 소리쳤다.
“그만둬, 카이센! 우리는 괜찮으니까 가! 너라도 살아야 해!”
“병단의 제1규칙이 뭐라 했지?”
“뭐……?”
“동료는 절대 버리지 않는 거라며.”
울프는 다시 한번 전율했다.
깨닫고 나니 정말 묘하게 닮았다, 단장님을…….
동료의 생사 앞에서 막무가내가 되는 성격부터 표정까지…….
“카밀라를 지혈하면서 조금만 기다려.”
카이센이 검대에서 칼집을 푼 다음 오른손으로 굳게 붙잡았다. 그리고 칼날과 교차시켜 열십자를 만들었다.
“저 멀대 자식을 금방 죽이고 둘 다 데리고 나갈 테니까.”
키슌이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몸을 풀었다. 빗물이 클로의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며 섬뜩하게 반들거렸다.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아줘라, 홍련의 아들? 카이센이여!”
무엇을 위해 칼을 쥐었나.
카이센은 그때, 어린 날 어머니의 질문을 생각했다.
– 우리 카이는 이 검을 어떻게 쓰고 싶니?
어머니, 칼을 어떻게 쓰고 싶냐고요?
바로 이런 순간.
진실로, 어머니가 떠나던 그날과 똑같은 이런 순간을 위해서 쓰고 싶었습니다.
– 엄마의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
팽팽한 긴박이 숨 막히는 긴장을 부르고, 긴장은 복부가 꽉 조여드는 팽만감으로 이어진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사이에 두고 키슌과 마주 선 카이센의 심장이 고요히 날뛰었다.
서로의 눈동자에서 인광이 사납게 흔들렸다.
“……!”
“……!”
그리고 다음 순간.
쩌엉…… 중간 지점에서 쇠가 서로 부딪치며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년기의 끝,
아리스타포 공방전 (7)
채애애앵!
불꽃과 함께 비바람이 터졌다.
십문자도, 태도를 왼손에 역수로 쥐고 칼집을 오른손에 쥔 카이센이 선공을 퍼부었다.
채앵, 채앵, 텅, 채앵.
칼집으로 클로를 쳐낸 다음 칼날로 몸을 베었고 칼집으로 클로를 막은 다음 그대로 키슌의 몸을 밀쳤다.
“UHAAAAAA!”
“엄청난데!”
우루크 전사들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 충격은 오랫동안 카이센을 지켜봐왔던 울프에게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호각이라고? 차기 족장인 키슌을 상대로?’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십문자도는 검무의 칼이었다.
춤을 추듯이, 여러 초식의 연계를 통해 상대방을 농락하는 검술.
‘또한 압도적으로 힘이 강한 상대의 힘을 역전시켜 그대로 되돌려주는 반격의 칼.’
하지만 그건 상대가 상식이 통하는 존재일 때만 가능할 텐데……?
“HUAAAAAAAAHHHH───!”
키슌이 기합과 함께 양쪽의 클로를 단숨에 휘둘렀다. 팔을 교차시키며 사정권에 있는 카이센을 짓이겨 버렸다.
─ 십문자도, 제1형, 원(圓).
그랬어야 할 일격은 터엉……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허공에서 멎었다. 부딪친 채로 격렬하게 비벼지는 쇳덩이들이 불똥을 흘렸다.
– 잘 들어, 십문자도는 연계의 도법이야.
십문자도 제2형, 충(衝).
수세가 일순 공세로 뒤바뀐다.
태도의 칼끝이 창극처럼 번뜩인 일순간, 키슌이 급히 몸을 뒤로 젖혔으나 이미 칼끝이 눈썹을 스치고 지나간 뒤였다.
‘이럴 수가……?’
‘저 키슌에게 유효타를……?’
‘저런 인간 꼬맹이가……?’
우루크들은 더 이상 환성을 터뜨리지 못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카이센의 현란한 칼 놀림을 지켜볼 뿐.
“훌륭해. 아주 훌륭해.”
키슌이 뒤로 슬쩍 물러서며 비릿한 웃음을 터뜨렸다. 눈썹에서 흘러내린 피의 맛은 달콤했다.
피가, 피가 끓어오른다.
키슌은 삶의 경계에서 죽음을 걸고 싸우는 싸움을 사랑했다. 이럴 때 살아 있다는 걸 절실히 느낄 정도였다.
“이래야지. 싸움이란? 이렇게? 재밌어야 해? 이게 진정한 싸움이지!”
다시, 키슌이 달려들어 카이센에게 왼쪽 클로를 내찔렀다. 동시에 오른쪽 클로를 휘둘러 허리 높이의 공간을 갈랐다.
그 순간.
카이센이 지면을 박차 허공 높이 뛰어올라 그 일격을 피해냈다. 클로가 바로 눈 아래를 스치고 지나가는 광경은 섬뜩했다.
그리고.
몸을 휘돌리는 기세로 칼날을 팽이처럼 회전시켜, 놈의 오른쪽 어깨에 참격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
“KUAAAAAAAHHH!”
키슌이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토하자, 카이센이 먼발치에서 다시 칼과 칼집을 교차시키며 말했다.
“오래 살고 싶었으면 날 죽였어야지. 그때 그렇게 말했잖아?”
카이센의 뜻 모를 도발에 우루크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키슌을 응원하고 나섰다.
“Ro Robishie!”
“Gotake derma!”
소리가, 그 모든 소리가…….
죽어가는 카밀라의 귓가에서는 그저 앵앵거리는 소음일 뿐이었다.
‘지긋지긋해, 이제는…….’
카밀라는 본래 칼의 세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칼의 가문에서 태어난 것조차 그녀에겐 저주였다.
– 카밀라, 오늘 페이쿼리어께서 제자를 찾으러 오실 거다. 넌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라. 알겠느냐?
– 예, 아버지.
–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카밀라는 서녀(庶女)였다. 사랑 속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정욕과 쾌락 속에서 태어나게 된 존재였다.
그래서 세상은 그토록 차가웠던 건가. 춥고 어둡고 잔혹할 수밖에 없던 것인가.
죽을 용기조차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저 빨리 명이 다해 죽기만을 바랐다.
분명 그랬다.
라미네아를 만나기 전까지는.
– 어머, 이 아이는 누구인가요?
– 저건 보실 필요 없습니다. 저것보다는…….
– 이름이 저것인가요? 그건 좀 아버지로서 너무한 것 아닌가요?
당혹스러워하는 당주를 외면하고, 라미네아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던 카밀라에게로 다가와 눈높이를 맞췄다.
– 안녕, 나는 라미네아라고 한단다. 네 이름은 뭐니?
그렇게 말할 때의 미소가.
너무나도 눈부셔서, 따스하고 뭉클해서…….
한 번도 그런 미소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카밀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 카밀라요…….
– 카밀라? 어머나, 이름이 정말 귀엽구나. 얼굴이 더 귀엽지만.
아하핫, 해맑게 웃으면서 라미네아는 카밀라에게 손을 뻗었다.
– 카밀라, 이 언니랑 같이 갈래?
그건 단순한 손이 아니었다.
어둠 속으로 비쳐든 빛줄기였다. 끝없던 밤을 밝히는 여명의 횃불이었다.
– 네……!
칼의 재능을 묻지 않았다. 소질도 특징도 적성도 묻지 않았다.
라미네아는 그저 카밀라 그 자체를 봐주고 제자로 선택했다.
까닭 없는 사랑이 어머니의 특권이라면, 카밀라에게 있어 라미네아는 어머니였다.
– 굳이 내 제자가 되지 않아도 돼, 카미.
– 네?
– 페이쿼리어라는 거, 별로 할 만한 일이 못 되거든. 카미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고 싶지 않아.
카밀라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칼을 휘두르고 보법을 밟았다.
당신의 제자가 되고 싶었다.
제자가 된다면, 당신 곁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게 될 테니까.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테니까. 삶에서 원하는 건 오직 그것뿐이었다.
– 스승님, 이거…… 생신 선물이에요.
– 어머, 이런 예쁜 걸…… 어떡하지? 나 지금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와.
– 조금씩 모아서 샀어요, 스승님한텐 성검이 있어서 마음에 안 드실지도 몰라도…….
– 아니야! 평생 보물로 간직할게. 내 평생…….
스승님은 영웅이셨다. 카밀라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빛이었다.
무수한 인재들이 그 광휘에 전율해 그 아래로 모여들었고, 스승님 아래서 카밀라는 무수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평화가 영원할 거라 믿었다.
전쟁이 끝난 평화 속에서 스승님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본래 이뤄지는 꿈이란 없었다.
– 전사하셨습니다.
– 뭐……?
– 죄송합니다…… 마지막에, 마지막에…… 화신급 데몬을 쓰러뜨리시면서…… 절벽 아래로 함께…… 뇌향 각하께서도 시신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빛이.
이 세상의 빛이 사라졌다.
카밀라는 살아갈 빛을 잃었다. 그런 카밀라에게 스승의 유품이라 할 수 있는 성검 아라다만텔이 계승되었다.
베고 또 베었다.
죽이고 또 죽였다.
스승을 잃은 증오를 칼날에 담아서…….
그렇게 죽이며 살다가 죽을 생각이었다. 죽을 날도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그랬는데.
– 돌려줘……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의 유품이란 말이야…….
그 녀석이 나타났다.
스승의 아들이 나타났다.
눈썹과 시선과 몸짓과 울 때의 표정조차도 스승을 닮아서, 대하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인 녀석이 나타났다.
– 검법을 알려줘…….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대충 겁을 줘서 쫓아내고 칼 따위는 집을 생각도 안 들게 하려고 했더니,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했건만 계속 덤벼드는 게 아닌가?
이러다간 어디 가서 죽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결국 칼을 가르쳐 주었다.
전투 중에 힘을 아끼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최대한 오래 살 수 있도록.
살자.
조금만 더 살자.
스승님한테 배운 칼을, 스승의 아들에게 다 가르쳐줄 때까지만.
하지만 정은 주지 않았다.
아니, 정을 받지 않게 부러 독하게 대했다.
나처럼 고통스러워하지 않도록.
혼자 남겨지는 고통을 누구보다도,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 고통을 두 번이나 겪었다가는 이 녀석, 죽어 버릴지도 몰라.
이것이 스승에 대한 보답이다.
너를 질투했던 건 사실이다. 스승의 사랑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것 때문에 독하게 대했던 게 아니야.
그 모두가, 가까운 미래에 나와 헤어져야만 할 운명인 너를 위한 일이었다.
그랬는데…….
분명 그랬는데…….
죽음 앞에서, 카밀라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세상이 투명하게 부서졌다.
너, 왜……?
왜 그런 나를 구하겠다고 온 거냐……?
“라 카밀라 텔 카이센 키데로 벨루(La Kamila Tel Kaisen Kidero Belru).”
그런 기억의 메아리는, 울프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리에 깨어졌다.
“그래, 그런 거였어! 카밀라! 바로 이거였다고!”
“……?”
“라 카밀라 텔 카이센 키데로 벨루. 용족의 격언이야.”
울프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흔들렸고, 그 눈동자는 감격의 물기로 젖어들었다.
“모든 만남은 신들께서 선물로 주신 인연이다, 라는 뜻이고.”
“……!”
“카밀라, 단장님께서는 널 생각하면서 친아들의 이름을 지었던 거야!”
─────카아아아아아앙!
고막이 찢길 듯한 파열음.
카이센은 지면을 박차 뒤로 힘껏 물러서며 숨을 허덕거렸다. 손목이 부서질 듯 쑤셨다.
‘접근전만 반복하다가는 승산이 없어. 다른 비책을 마련해야 해.’
두 번째 연격을 쳐낸 바로 그 순간, 허공을 가르던 칼날로 느닷없이 좌측의 나무줄기를 후려쳤다.
“……!”
크고 작은 나뭇조각이 수많은 파편으로 부서지며 총탄처럼 쏟아졌다.
키슌이 얼굴을 방어하기 위해 양팔을 교차했다는 걸 확인했다.
바로 그 순간, 그 일순간의 허점을 결정타로 노리고 뛰어올랐다. 그것이 패인(敗因)이었다.
‘이 자식이…….’
뛰어오른 그 순간 키슌이 교차한 양팔을 풀고는 등 뒤로 있는 힘껏 끌어당겨 살(殺)을 예비했다.
작은 파편 하나가 턱에 박히고, 기다란 나뭇조각 하나가 왼쪽 눈알 깊숙이 파고들었는데도 놈은 웃고 있었다.
울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카이센!”
급하게 칼과 칼집을 교차, 공세로부터 수세로 둥글게 전환했으나 이미 늦었다.
칼날이 묵직한 쇠에 부딪쳐 끽끽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다가, 채앵, 부러졌다.
칼집도 함께 부서지며 나무와 칼의 파편이 더불어 흩날렸다.
‘어라─────?’
아팠다. 손목이, 팔이 관절에서 빠질 것처럼.
그 격세에 멀리 튕겨 나가지 않았더라면 뼈가 부서지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내장 두세 군데가 찢어지는 아픔이 느껴졌다.
‘일어나. 빨리 일어나.’
여러 차례 구른 카이센은, 핏물을 토하며 호흡을 급하게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눈까지 아프다…….’
파편이 이마에 박혀서, 흘러내린 핏물로 시야가 붉게 좁아졌다. 희미해지는 시야로 키슌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끝이구나, 훌륭했다?”
정말로 끝이었다.
몸을 일으킨다 한들 칼이 없는데 어찌하랴.
“홍련의 아들? 카이센.”
눈동자가 전율했다.
심장이 차갑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 평생 네 이름을? 기억하겠다.”
한 발, 한 발…….
키슌이 가까이 다가오며 클로 낀 손을 높이 쳐들던 그 한순간.
웅…….
그 한순간 울프의 눈이 커졌다.
이게 무슨…….
눈부신 빛의 파장의 진원은, 저 멀리 꽂힌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이었다.
웅, 웅, 웅, 웅, 웅…….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은백색의 도신에서 새빨간 혈광이 현란한 춤을 추었다.
아라다만텔의 고유 광휘였다.
울프는 전율했다.
‘말도 안 돼. 성검이…… 스스로 울고 있다고?’
극위성검은 선택한 주인이 쥐고 있을 때만 그 심박에 공명한다. 하지만 지금 누가 너를 쥐고 있단 말이냐, 아라다만텔?
바로 그 순간.
칼이 스스로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휘리릭…… 비바람 속에 붉은 잔상을 아름답게 흩날리며 날아갔다.
바로 카이센의 손으로.
마치 시간의 한편을 도려내 박제라도 한 것처럼, 카이센은 모든 상황을 정확하고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어……?”
격렬하게 울부짖는 우루크들.
승부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키슌.
그리고 짤랑, 청명한 울음을 흘리며 손으로 날아와 잡힌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의 무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