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61)
가짜 용사 이야기-161화(161/310)
#57 :
[10. 앤티키아] 결전, 엘리트 나이트 (3)지금 이 상황에 정산이라?
우연일 리가 없었다. 샬류안 이 개자식이 또다시 장난질을……?
하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기괴했다.
두려웠다.
물결치듯 흔들리다가 뒤바뀐 정경은 정산의 영좌가 아니었다. 그 대신 썩어 문드러지도록 황폐해진 세계에 와 있었다.
삶과 죽음의 개념을 붙잡고 유린하는 악령들, 빛과 어둠을 뜯어 먹는 무형의 괴물들.
피리의 선율이 단조롭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소름 끼치는 통곡 소리가 희미하게 메아리쳤다.
그 불경한 악몽의 한복판에, 나는 서 있었다. 아찔한 공포감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달아나고 싶었다.
시공간의 손길조차 닿지 않는 그 어딘가의 심연 속으로.
「……KiiiiiiiiiiiiiiiiiHiiiiiiiiiiiiiiaaaaaaaaaaAA……!」
내 반응을 본 것일까.
악령과 괴물들이 웃음을 터뜨려댔다.
「정신 차려요. 엘리트 소서러.」
샬류안의 목소리가 지금처럼 반가울 수도 있을까.
의식을 되찾자, 내 맞은편에 서 있는 리샤르가 보였다. 나와 리샤르의 중간에 샬류안이 서 있었다.
“여긴 어딘지……?”
「제 신격(神格)도 오래 버틸 수 없으니, 빠르게 요약하죠. 엘리트 플레이어의 목숨을 협상하는 장소죠.」
“제…… 목숨을 협상한다고요?”
「당신이 아니라 엘리트 나이트요. 엘리트 나이트의 목숨은 이제 리샤르의 것이 아니거든. 당신은 엘리트 나이트를 죽였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죽이기 직전이지만.」
샬류안이 우산으로 자신의 발치를 툭툭 쳤다.
‘신격에 압살당해서 영혼이 소멸되고 싶지 않으면 이리로 와.’
그러한 귓속말이 들려오자마자 나는 곧장 그쪽으로 갔다. 샬류안의 힘 덕분일까.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였다.
「그리고 ‘이 세계의 신’은 그 리샤르와 전속 계약을 한 신이죠. 전속 계약을 한 엘리트는, 딱 한 번의 ‘기사회생 찬스’를 사용할 수 있어요. 물론 후원자가 요청할 때에만 가능하지만.」
기사회생 찬스?
[VVIP, OD*&X가 거래 조건으로 레벨업 포인트 (+500)을 제시합니다.]「때마침 VVIP께서도 가격을 제안하셨군요. 자, 거래 시간입니다. 엘리트 소서러. 엘리트 나이트의 목숨값으로 500포인트를 제시하셨습니다. 응하실 건가요?」
……그래, 그런 거였군.
이 기괴한 장소로 끌려온 이유가.
혼란으로 터질 것만 같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 이 세계는 리샤르와 전속 계약한 VVIP의 세계.
2. 이 거래는, 내가 리샤르를 죽이지 못하게 하는 것. 500 레벨업 포인트는 그 대가다.
계산은 끝났다. +500은 분명 파격적인 포인트다.
하지만 이데아 북부를 피로 물들이던 리샤르 후, 인간을 잡아먹던 악마와 악마 쥐.
시간마저 사라지는 이 악몽의 세계에 군림하는 신(神).
“……거절합니다.”
저것들의 정체가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이 괴물들을 적수로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내 단호한 거절에 ‘무언가’가 손을 들어 올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손짓 하나에 세계가 전율하며 떨었다.
선악에 대한 감각도 감정도 무의미한 반신(半神)들이 그 ‘무언가’의 앞에서 춤을 추며 악마적인 북소리가 둥…… 둥…… 둥…… 울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무언가’를 올려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북소리가 난타로 바뀌었을 때 나는 광인처럼 웃어젖히고 있었다.
그런가.
나는 미쳐가고 있는가.
이 배틀로얄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도대체……? 이것도 게임인가? 이것도 게임 시스템인가?
[VVIP, OD*&X가 거래 조건으로 레벨업 포인트 (+700)을 제시합니다.]몸을 부르르 떨었다.
별안간 너무나도 추워졌다.
리샤르의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극한의 냉기였다. 나의 거절에, ‘무언가’가 크게 분노한 것 같았다. 샬류안이 즉시 중재에 나섰다.
「700포인트! 응하실 건가요?」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나를 탐하는 VVIP들은 많다.
그들도 이렇게 강력한 존재일 테니까, OD*&X라는 ‘무언가’가 감히 나를 해칠 수는 없을 터.
“거절합니다.”
그것은 만용이었다.
‘너 미쳤어요, 이 새꺄?’
‘무언가’가 옥좌에서 내려섰다.
시간이 악몽으로 뒤틀리고, 공간은 암흑으로 뒤덮여갔고, 내 의식은 미지의 세계로부터 밀려드는 황홀경으로 물들어갔다.
「엘……리트…… 그만하…… 이건…… 규정에…… 어긋…… 엘리트를…… 직……접적…… 건드리……실…… 없……!」
샬류안이 무어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느새 쓰러져 있었다.
흐릿해가는 시야 사이로, 나는 보았다.
시공간의 섭리마저 복종시키는 이킬라스의 절대자 셰라슐’토뤼악이 샬류안을 밀쳐내는 광경을.
리샤르 후가 그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광경을. 아까 리샤르가 소환하던 악마들이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꼬리를 마는 광경을.
들어본 적조차 없는 ‘무언가’의 본명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는 나도 모른다.
「……아무리 당신이라지만 협상을 강제하실 순 없습니다! 그건 룰 위반이라고요!」
샬류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셰라슐’토뤼악이 내 머리를 움켜잡아 들어 올렸다.
둥…… 둥…… 둥…….
그러자마자 피리와 북소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외우주의 신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한기가 내 정신을 무한한 우주의 나락으로 끌고 내려갈 때,
[레벨업 포인트를 (+1,000) 얻었습니다.]협상이 체결됐다는 시스템 알림음이 들렸고, 내 정신은 샬류안의 손에 붙들려 이 세계로부터 필사적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레벨업 포인트 1,000.
그 무지막지한 포인트는 엘리트 나이트의 목숨값이었다.
* * *
네 번째 관리자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나는 게임 세계로 돌아와 있었고, 세계는 여전히 [일시정지] 상태였다.
「아우…… 귀찮아.」
검푸른 양복을 입었음에도, 건조한 인상만을 주는 미소년.
부스스한 금발, 눈 밑이 퀭했으며, 얼굴색은 슬프도록 창백했다.
전체적인 차림새는 샬류안과 같았지만, 우산 대신 피리를 들고 있었다.
눈동자가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사파이어보다도 맑고 아름답게 푸르렀다.
사실, 처음 본 한순간, 만약 이 우주에 미(美)의 기준이 존재한다면, 바로 저렇지 않을까, 그런 원초적인 감상이 일었다.
「엘리트 애송이들, 저는 절대 관리자 요토스라고 합니다. 지금은 집행 관리자로서 게임 내부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담당하고 있죠.」
요토스는 하품을 늘어지게 한 뒤, 피리를 우아하게 쥐었다.
「정지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일부터 끝내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요토스의 피리 연주는 섬뜩하도록 사악했고, 그 선율은 악몽을 불러왔다.
요토스의 악몽은 형체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있었다. 《혈괴참》이 벌레에 파먹히는 것처럼 점점 사라져 갔으니까.
나는 다시 공포로 떨었다.
《혈괴참》이 있던 공간 자체를 파먹는 듯한, 그 초현실적 현상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고 있었다. 《혈괴참》이 소멸되자 요토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집행 관리자 명령 : 게임의 일시정지가 해제됩니다.]세계가 다시 움직이기 무섭게, 차원의 균열이 열렸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셰라슐’토뤼악의 혹한이 또다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놈이 이곳까지 나를 쫓아왔다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겁먹지 마십시오.’
요토스가 그렇게 속삭이며, 나와 균열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저는 샬리와는 다릅니다. 제 앞에서는 ‘이킬라스의 신’조차도 당신을 해칠 수 없어요.’
그렇게 속삭인 요토스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OD*&X. ‘기사회생 찬스’가 제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이제 계약 엘리트를, 엘리트 소서러로부터 최소 400킬로미터 밖으로 이탈시켜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러자 균열에서 악마 두 마리가 기어 나왔다.
놈들은 내게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린 다음, 리샤르를 등에 태운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균열까지 닫힌 뒤에야, 나는 비로소 한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요토스가 나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트 나이트는 어떻게 된 거냐는 표정이시군. 귀찮으니 시스템으로 설명해 드리죠.」
기사회생 찬스.
조건 : 전속 계약된 엘리트를 후원자가 살리려 할 때.
– 엘리트 플레이어 간의 전투에서만 발동됩니다.
1. ‘기사회생 찬스’로 살아난 엘리트는 적대 엘리트로부터 최소 400킬로미터 권외로 이탈시켜야 합니다.
2. ‘기사회생 찬스’는 한 게임에서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셰라슐’토뤼악의 권능과 다시 싸워야 한다는 소리 아닌가.
아, 존나 빡치네.
그렇게 욕설을 중얼거릴 때, 요토스가 내게로 손을 내밀었다.
「몸을 이리로 갖고 오시죠.」
일으켜 주려는 건가? 내가 오른팔을 내밀자, 요토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거 말고 작살난 갑옷을 내밀란 겁니다.」
요토스가 이적을 일으켰다.
만신창이로 손상되었던 갑옷이 한순간에 재생…… 아니, ‘뜯겨 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샬리가 부탁해서 해준 겁니다. 전 자선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머리가 띵해왔다.
그 샬류안이?
그러고 보니 샬류안은 어디로 가고, 이 요토스가 온 거지?
「샬리는 정산 준비로 바쁩니다. 이번에는 당신과 ‘엘리트 헌터’ 때문에 더 바쁠 테고요.」
“엘리트 헌터?”
「전달 못 받으셨습니까? 엘리트 헌터가 변절했습니다. 샬리가 당신을 회수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쟈렌키는 헌터를 회수하는 데 실패했다는군요.」
변절이라고? 그렇다면 관리자의 힘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아닌가? 그딴 게 어떻게 가능하지?
묻고 싶었다. 크리스를 캡슐에서 꺼내서 죽이면 끝 아니냐고.
대체 뭘 한 거야, 크리스. 애초에 넌 정체가 뭐야.
요토스가 지면을 발로 걷어차자, 난데없이 의자가 나타났다. 요토스가 거기에 걸터앉아서 내 표정을 살폈다.
「걱정스러운 표정 지을 것 없습니다. 당신은 그저 비계약 엘리트로서 계약 엘리트를 이겨버린 전무후무한 사태를 일으켰기 때문이니까요. 시청자들의 반응이 장난이 아닐 겁니다. 당신이 무조건 일등이겠죠. 그걸 요약 정리하느라 바쁜 겁니다.」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어가는 것과 달리 요토스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하아…… 샬리가 틈날 때마다 당신을 칭찬할 때부터 범상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저지른 짓은 대단하다기보단 아주 멍청했습니다.」
“리샤르와 싸운 게 멍청했단 겁니까?”
「아뇨. 당신이 한낱 플레이어의 몸으로 신에게 흥정을 했다는 게 문젭니다. ‘이킬라스의 신’이 당신에게 억지를 부렸던 장면도 송출되겠지요. 다른 신들이 그를 비웃을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안다. 셰라슐’토뤼악이 나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소리겠지.
「아마도 무리하면서까지 엘리트 나이트를 막강하게 육성시킬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이번엔 전속 계약을 할 필요가 있어요. ‘이킬라스의 신’과 상성이 맞는 VVIP들을 추천해 드리죠.」
하, 친절하게 굴곤 있지만 이 자식도 근본이 관리자란 거지. 나를 전속 계약으로 추천하면 뭔가 팁이라도 나오나 본데, 어림없다.
「‘레이블헤인의 신’인 PS*랼@이 우선적으로 괜찮습니다. 권능이 화염의 성질을 띠죠. 근데 당신이 없는 사이에 이미 엘리트 아처와 계약을 한 관계로…….」
요토스의 말을 흘려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전속 계약을 마친 리샤르의 광기, 놈은 반쯤 미쳐 있었다. NPC도 플레이어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였지.
공격대원이었던 이들까지 악마에게 먹이로 줬다고. 리샤르의 목숨이 이제 리샤르의 것이 아니라던 샬류안의 말도 떠오른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그리고 정말 전속 계약을 해야 한다면 한 가지 대전제가 성립해야만 한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됩니까?”
「시간이 얼마 없으니 하나만 받죠.」
어렴풋이 품고 있던 의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줄곧 외면해왔던 의문.
하지만 방금 셰라슐’토뤼악을 만난 다음 그 의문은 폭탄처럼 커져버리고 말았다.
“이 세계는 대체 어떤 세계입니까?”
그 답을 얻어내야 한다.
「알면 뭐가 바뀐답니까?」
그러나 요토스는 사악한 미소를 지은 뒤, 대답을 얼버무려 버렸다.
「그냥 멸망시켜 버리고 소원을 이루세요. 당신이 알아야 할 진실은 그것뿐입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명확한 답을 얻을 때까지 전속 계약은 보류다. 미쳐 있는 건 현실의 정철로 족하니까.
오늘 리샤르에게 밀렸더라면 모르겠지만, 샤릴리온으로도 놈을 능히 격파해냈다. 이 레벨업 포인트 1,000이 있으면 《현자의 기억법》도 금세 완성된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이후에도 계약 엘리트에게 크게 밀릴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요토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검과 어린갑이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의 그 성검만 해도, 방금의 흑혈검법을 사용한 걸 끝으로 망가졌잖습니까?」
“예?”
샤릴리온을 내려다본 그 순간, 쩌저적…… 칼날에 무수한 금이 가기 시작했고 끝내는 무수한 파편으로 깨어져 내렸다.
아니, 이게, 어떻게……?
부서진 성검을 들어보기도 하고, 박살 난 칼날들을 하나씩 집어보기도 했다. 성검이 깨어졌다는 현실은 부정되지 않았다.
뭔가, 뭔가 이상했다.
나는 분명 거쳐가는 템으로 이 샤릴리온을 골랐다고 선택했는데, 뭐지? 마치 지금까지 소중히 쌓아온 신념의 탑이 무너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제가 했다고 착각하는지 살기까지 뿜으시는군요. 그 무례는 이번에만 눈감아 드리죠. 성검 계열은 ‘그 잡것’들이 만든 무기입니다. 저희들과는 상성이 안 맞죠. 게다가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인데 외우주의 힘을 빨아들였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검은 지금 당장 필요한데…….”
「마침 당신의 포인트를 모두 모으면 살 수 있는 장비들이 있습니다. <파멸의 검 : 케렌>, <세계를 삼키는 검 : 호우란>.」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템 판매를 시작하는군. 레벨업 포인트가 참 쓸 곳도 많다.
“그것들 모두 필요 없습니다.”
마검이란, <잊혀진 왕들>의 정수가 깃든 검.
왕들을 사냥하거나 그 종복이 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다. 심연을 다루는 흑혈검법과 아주 잘 맞는다고 보면 된다.
「흐음, 저것들이 당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을 것 같은데. 뭐, 잘 아셨습니다. 당신이 가진 포인트를 다 써도 구매할 수 없는 아이템들이죠.」
있으면 리샤르와의 재전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잊혀진 왕들>의 힘 따위 필요 없다. 난 그것들보다 더 뛰어난 검이 필요하다. 바로.
“당신의 힘이 깃든 마검을 원합니다, 집행 관리자님.”
요토스가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하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평생 이토록 재밌는 말은 처음이라는 표정이었다.
「샬리를 혼내야겠는데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떠본 겁니다만 빙고였군요. 샤릴리온의 외형이 살아 있으면 편하겠습니다. 시청자들이 괜한 의심을 하지 않게.”
「재밌군요. 성검의 형태를 이용하는 마검이라?」
어차피 이제 성검은 못 쓴다.
외우주의 힘을 받아낼 때마다 깨진다면, 샤릴리온은 다른 엘리트들과의 싸움에서도 못 쓴다.
「제 힘이 무형(無形)의 힘인 건 어떻게 아셨을까. 제게 마검을 요구하는 건 당신이 처음입니다. 좋아요, 즐겁습니다. 하지만 제 칼은 상당히 비쌉니다. 그걸 고작 1,000포인트로 결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앞으로 세 번의 정산이 있을 겁니다. 포인트가 쏟아져 나오겠죠. 전 그 누구와도 전속 계약을 맺지 않을 겁니다. VVIP들이 계속 은밀히 후원해 오겠죠. 일등을 할 때마다 받는 포인트들도 갈수록 많아지던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 정산들에서 일등상과 은밀한 후원으로 받는 포인트를 관리자님께 모두 지불하겠습니다.”
도박을 해야만 한다.
리샤르와의 재대결을 위해서는 마검도, 1,000포인트도 모두 필요한 상황.
「지금 마검을 먼저 달라는 말씀 같은데, 장난하십니까? 그것도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지. 무슨 자신감으로 계약도 안 하고, 다른 엘리트들을 상대로 수상까지 하겠다는 겁니까?」
“그 자신감이 키포인트입니다. 전 이어질 3회의 정산 동안 누구와도 계약하지 않겠다고 말했잖습니까.”
「계속해 보시죠.」
“VVIP의 후원을 받는 엘리트를 사냥하는, VVIP의 후원을 거부한 엘리트 플레이어. 시청자들이 얼마나 열광하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포인트가 후원되겠습니까? 판단은 관리자님의 몫입니다.”
거의 다 왔다.
마침내, 요토스가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깍지를 꼈다.
「흥미롭군요. 좋아요, 당신은 제 흥미를 끌었습니다.」
요토스가 왼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성검의 파편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조각조각 맞춰졌다. 이어서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순간, 이단적인 마력을 병적으로 내뿜는 무형검이 허공에 나타났다. 볼 수 없고, 광적인 상상력으로만 그려볼 수 있는 불가해한 대검.
「타락의 별, 샤르홀린. 제 분신과도 같은 존재죠. 어디서 이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성검과 마검의 결합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요토스가 양손을 합장하자, 성검 샤릴리온의 형태에 샤르홀린이 덧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성검이 마지막 단말마로 울부짖자 왜인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나는 왜 저 검에 미련을 아직도 갖고 있는 거지.
사실 나는 내심…… 영웅시대의 샤릴리온처럼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검푸른 안개가 소용돌이치는 외우주의 혼돈 속에서, 샤르홀린이 시공간을 초월하며 이 세계에 본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샤릴리온의 비명도 절정에 달했다. 다음 순간에는 잘게 부수어지며 은빛의 가루로 변해버렸다.
“관리자님!”
「제가 알아서 합니다.」
요토스가 사악하게 웃자, 샤릴리온의 껍데기가 마검에 입혀지기 시작했다.
「자,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엘리트 소서러.」
검푸른 안개가 샤르홀린을 한 차례 휘감자 소리 없는 폭발이 맹렬하게 일었다. 그 흙먼지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는, 마검이 내게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 영묘한 자태…….
타락의 아름다움…….
칼자루와 날밑은 투박하나 실용적으로 견고했다. 거무스름한 칼날은 물결무늬로 요동쳤는데, 샤릴리온의 형태가 신기루처럼 일렁였다.
샤르홀린이 내뿜는 힘에는 일정한 형체가 없었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힘은 미지의 칼바람뿐.
하지만 그 힘이야말로 질서를 깨부수는 혼돈이자, 이 세계를 타락시키는 외우주의 권위였다.
「당신이 자주 썼던 그 기술은 이제 못 쓸 겁니다.」
나는 샤르홀린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영혼조차 절규하는 우주의 힘이 손아귀를 타고 느껴졌다.
[아이템 장착 : ????????]– 사념(邪念) 충전치 : 100%
– 고유 스킬 활성화 : 《심연》.
고유 스킬이 뭔가 이상했다.
심연? 단 두 글자, 심연? 이게 대체 무슨 힘인데?
「그래도 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스킬보다 훨씬 강력하고 실전적인 힘을 약속하죠. 만족했습니까? 이제 당신이 시청자한테 들키지 않게 연기를 아주 잘하는 일과,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일만 남았군요. 흑기사 스킬을 각성했으니 대부분 속을 겁니다.」
내가 대꾸하지 않자, 요토스가 강렬한 살기를 내뿜으며 경고했다.
「만약 내게 약속한 계약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다거나, 그냥 속절없이 죽어 버린다면…… 기대해도 좋습니다. 당신에겐 죽음의 안식조차 없는 절망의 나락만이 준비되어 있을 테니까.」
마검을 등에 매달면서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죽을 생각 없으니까.
이 게임을 클리어할 때까지.
이 세계를, 멸망시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