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62)
가짜 용사 이야기-162화(162/310)
#58 :
[10. 앤티키아] 결전, 엘리트 나이트 (4)모든 것을 정리하고 공대와 합류했을 때,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형아, 얜 대체 누구야! 나라는 귀여운 에이스를 두고 이런 녀석을 브레인으로 세울 수 있어!”
“오빠, 딱 말해주세요! 나예요, 얘예요?”
“캡틴,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애를 알고 저한테 소개 한번 안 시켜줄 수 있어요!”
시끄러운 인간 셋이 뭉치니 고막이 터질 것 같다.
그나저나 신태엽…….
40년대 남자 고등학생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키다. 기껏해야 163센티미터? 165센티미터?
“형아, 얘가 뭐라는 줄 알아? 나보고 거짓말하지 말래! 내가 형 2회차 공대 운영할 때 슈퍼 에이스였다고 좀 말해줘! 그냥 혼꾸녕을 내줘!”
노란색으로 염색한 반고수머리를 길게 길러 뒤로 묶은 특유의 말총머리도 여전했다. 언제나 미소가 걸린 귀염상의 얼굴까지도.
“신태엽.”
2회차 클리어 당시 우리 공대의 간판 에이스. 실전 마법의 대가로,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마지노선인 5성(成)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천재.
지금 나처럼 ‘특전 권능’으로 마법을 구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자다.
참고로 5성은 대마법사이며 6성 이상은 칼레이브 같은 영웅 등급 NPC들이 입신하는 현자의 영역이다.
“봐, 들었지? 형아가 내 풀네임 말하는 거 봤잖아!”
“오빠, 아니라고 말해줘요! 난 이런 녀석 모른다고 해줘요!”
“이게 어딜 한국의 김치 맛도 모르는 게 겸상을 하려고.”
브뤼나가 양손을 마주치며 생글생글 웃었다.
“신태엽이라고 하는구나.”
“그렇죠. 그래서 닉네임이 갓(God) + 스프링(Spring)인 거고요.”
하지만 이걸 잊고 있던 것 같다.
2회차의 에이스는 공대장의 속을 존나게 썩인 십새X로 유명했단 걸.
“캬, 후반에나 얻는 어린갑에 샤릴리온까지! 형아, 처음부터 너무 힘 빡 준 거 아냐?”
등 뒤에서 매섭게 맥동하던 샤르홀린의 칼자루를 움켜잡았다.
“혀, 형아? 왜, 왜 그래? 혹시 케이크라도 자르려고? 근데 어떡해, 케이크 같은 거 안 가져왔는데.”
저 녀석이 레이드 때마다 지각하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화병이 날 지경이다.
– 저 학원 가야 하니까 빨리 좀 끝내죠.
– 죄송해요. 야자 째다 걸려가지고 늦었어요.
– 형아, 내 실력 믿지? 나 올 때까지 스케사리 깨러 가면 안 돼! 근데 어차피 나 없으면 깨지도 못하잖슴~.
“야.”
“응?”
“내가 지금 널 죽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열 가지만 대봐. 그러면 죽이지 않을게.”
“하, 하하, 하하하하하…… 형아, 장난이지? 혀, 형아, 무서워. 어? 근데 그거 샤릴리온 맞아? 뭔가 느낌이 좀 다른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순간적으로 내 동작이 정지됐다. 신태엽이 고개를 갸우뚱 저으며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형, 진짜 형아 맞아?”
“뭐?”
“생긴 건 똑같은데 뭔가…… 다른 사람 같아. 분위기가. 샤릴리온도 그렇고.”
다르다고?
내가?
사쿠라이 노야가 외쳤다.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오빠, 엘리트 나이트는요? 멋지게 해치워 버렸죠? 그럴 줄 알았어요!”
“이겼는데 놓쳤어.”
“네? 왜요?”
“기사회생 찬스라던데…… 사흘 안에 다시 맞붙어야 돼.”
그리고 다음 싸움은 분명 수십 배는 어려울 것이다. 셰라슐’토뤼악, 그놈이 결코 날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살면서 내 불안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흐음~ 엘리트 플레이어는 그런 조건도 있구나. 재밌을 만한 조건은 잔뜩 넣어놨네.”
신태엽이 대꾸하던 그때 성묘에서 박현수가 누군가를 양팔로 정중히 안고 나왔다. 야나와 함께였는데, 둘의 표정이 어두웠다.
“에델 씨.”
“현수 씨, 이번에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건?”
“팬도라 데인…… 저흴 지키다가 죽었습니다.”
“팬도라 데인? 신태엽, 네가 데려온 플레이어냐?”
그러자 신태엽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웃음을 남겼다.
“형아, 내가 웃고 있지만 웃고 있는 게 아니야. 동료 플레이어가 10명은 넘게 죽었다고.”
“아니, 그러니까.”
“자꾸 그럴래? 팬도라 데인이잖아! 제레니온 부단장 NPC! 형이 엄청 잘 쓰는 NPC이기도 했고.”
팬도라 데인……?
순간 그 이름이 강렬한 충격으로 뇌리에 균열을 일으켰다.
– 그대에게 빛의 축복이 있기를, 정철.
팬도라가 2회차의 나에게 해주던 축복들이 떠올랐다.
– 저희 제레니온은 500년 동안 청성 미른가디아의 뜻을 받들어 심연을 감시해 왔습니다.
켈렉─샼을 봉인하기 위해 희생하는 팬도라를 보면서 눈물 흘리던 2회차의 내 모습도.
– 이제 제가, 그 의지를 이어받을 때겠지요.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왔고, 호흡이 가팔라왔다.
뭐지……?
왜 잊고 있었지……?
극심한 현기증이 휘몰아쳐서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벌레 같은 것이, 꿈틀거리며, 머릿속의 기억을 갉아 먹고 있는 것만 같…….
– 이 세계를 부탁합니다. 정철.
필요 없는 기억이기에 지워진 거다. 너 스스로 억누른 거다.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려왔다.
……너는…….
……심연의 사도…….
……에델 바이스…….
……이제 정철이 아니다…….
[경고 : 광기 수치 88%]……그러므로…….
……<온 것들>의 심복들은…….
……곧 너의 적…….
……그러니까 팬도라를 기억하고 있었어도…….
……어차피 죽였어야 해…….
……망각이 곧 축복일지니…….
[경고 : 광기 수치 95%]이러한 정체불명의 속삭임이, 귓구멍과 머릿속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머리통이 터질 것만 같던 그때였다.
“……에델 씨, 이제 괜찮습니까?”
박현수였다. 빛 한 점 없는 밤을 비추던 태초의 새벽처럼, 달의 꽃이 머리 위에 피어나 있었다.
이 또한 본 적이 없는 기적.
본 적은 없는데, 광기가 순식간에 10% 아래로 진정되는 것만 봐도 그 효과가 어떤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이상하군요. 당신에게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왜 회선에 문제가 있었는지……. 버그 요소들은 계속 찾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문득, 헤어지기 전에 요토스가 내 상태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한 말이 떠올랐다.
회선에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관리자들도 찾지 못했고, 정산에도 참여하지 못했다고. 설마 그 일의 원인이 박현수인가?
“이 아저씨는 이런 덩치를 갖고 성직자 클래스인 거야? 와, 개 아깝네.”
“우리 정박사 공대의 에이스 바쿠 아저씨야! 함부로 손대지 마!”
“에델 씨, 저는 이 시체를 양지에 묻어주고 오겠습니다.”
“왜 아저씨는 형아를 에델이라고 불러?”
그렇다면 박현수를 곁에 두는 게 맞는가?
피차 위험해지는 게 아닌가?
관리자에게 버그 요소라는 이름으로 적발될 박현수도, 그리고 박현수 때문에 또 정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나도.
“에델 씨?”
이 손에서 놓아줘야 한다면 죽이는 것이……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짓밟았다.
“불태우는 게 좋습니다. 아니, 피터한테 해준 것처럼 불태워야 합니다. 망자로 다시 살아나니까요.”
박현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이 그친 양지쪽으로 나아갔다. 신태엽이 그걸 쳐다보며 뒤통수에 깍지를 꼈다.
“NPC들이 다 이상해졌어. 듣도 보도 못 한 말을 막 해대. 그것 때문에 과몰입 하는 플레이어가 엄청나게 많아졌다니까.”
이 어린갑 때문이야.
거기에 샤르홀린이 공명하며 심연의 정신 침식을 더 강화시키고 있는 건가? 전투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말아야겠어.
“돌아가자. 리샤르 공략전을 위해 할 게 많아.”
어서 어딘가로 가서, 어딘가에 누워서, 이것들을 다 벗어버려야만 해.
두렵다.
저런 난폭한 생각들이 달콤한 유혹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
“근데 형, 진짜 형아 맞아? 내가 아는 철이 형아 맞지?”
비틀거리면서 걸어가다가, 그 질문을 받고 창에 꿰뚫린 짐승처럼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그리고 말했다.
신태엽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다짐하듯.
“나는 나야. 어떤 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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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역*@사 :
영웅시대, 모든 영웅이 대심연 전장에 투입되던 시기에 내정을 어지럽혔다던 666인의 낙인자가 있었다.
그 666인 중 5인의 사도(使徒)가 있으니, 외우주의 힘을 등에 업고 동족상잔의 환란을 주도했다.
외우주의 축복에 그 힘과 지혜가 순식간에 극점까지 다다라 그 누구도, 그 사도들에게는 대적할 수 없었다 한다.
그 사도들이 단칼에 베였다.
대영웅, 샤릴리온의 검에.
샤릴리온이 대심연 전장에서 돌아오고 반년, 내전은 반년 만에 종식되었고 인류는 순식간에 통합되었다.
* * *
“에델 씨에게 홍염의 핵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요?”
삽질을 멈추고 묻자, 야나가 겁에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마, 말하지 말란 게 아니고, 먼저 묻기 전엔 하지 말라고…….”
“야나, 어째서 그런 판단을?”
“모, 모르겠어. 지금 모든 게 내 뇌의 용량을 초월하고 있어. 근데 모든 게 너무 이상해. 이, 이 게임은, 현실적이긴 해도 결국엔 게임이라 NPC들이 다 정해진 텍스트에 따라 움직였단 말이야. 근데 지금은 어때, 그런 제약이 없어.”
“그건…….”
“라, 라리엔에서 만난 사이코 플레이어도 이상했어. 피터한테 빙의했을 때, 그 말하는 게 완전 이상했어.”
“사쿠라이는 그 플레이어를 컨셉충이라고 부르던데요.”
“나, 나도 그렇게 믿었어! 근데 말이야, 패, 팬도라도 똑같은 말을 하잖아! 외우주의 사도라고.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야나는 정철이 함구령을 내렸다는 <테르시아의 눈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NPC? 그러면 NPC라고? NPC가 그렇게 행동할 수가 있나?’
동시에, 성도를 떠나기 전날 정철이 슬픈 눈으로 의미심장하게 건넸던 질문이 떠올랐다.
– 만약에 이 게임이 아니라 어딘가에 존재하는 현실 세계라면, 당신은 저를 따라 엔딩을 보러 오실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뭐지……?
대체 지금 이 게임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런 거라면 오히려 더 에델 씨와 상담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엘리트인데.”
“나, 나 말이야. 어릴 적에, 아직 엄마가 살아 계실 때 말이야. 엄마가 어느 날에는 엄청 착한데 어느 날에는 엄청 화를 내고 나, 난폭해지곤 했어. 그래서 어린 마음에 생각했지. 착한 엄마가 퇴근하고 나쁜 엄마가 출근한 거라고. 엄마가 2명 있다고.”
“야나.”
“지, 지금 정철이 그런 느낌이야. 뭔가, 똑같이 생겼는데, 느낌이 달라. 나도 원래 정철한테 상담할 생각이었어. 그, 근데 아까, 네가 돌아설 때 정철이 널 쳐다보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
자신의 몸을 양팔로 감싸 안은 야나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건…… 누군가를 죽일 때 짓는 눈빛이었단 말이야.”
* * *
정산의 영좌로 돌아온 요토스 욜레 요티아토스는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온 것들>의 수작으로 절대 신격을 박탈당한 이후 늘 신경질적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놀랄 만한 변화였다.
외우주의 신들이 회합할 수 있도록 준비하던 이등 관리자 쟈렌키가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 모두 주인님의 계획대로 된 모양인가 보군요.」
엘리트 소서러는 분명 관리자를 자신의 뜻대로 부려 먹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 모든 생각과 판단과 행동이 요토스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이 세상에 들어오기까지의 모든 배경까지도.
그게 창세의 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유일신, 요토스가 두려운 이유였다.
「다만 이번 유희의 목적이 다른 유희들과 달리 주인님의 왕정복고(王政復古)이다 보니,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다른 절대신들의 반발이 극심하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 무엇도 염려하지 말고 네 일에 전념해라, 쟈렌키. 절대신들은 내가 해결할 테니.」
그놈들은 어차피 짐승…… 요토스는 생각했다.
창세의 섭리 밖, 외우주라는 황무지에 있던 짐승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마저도 모두 굴복시키고 나 혼자만이 진정한 절대 왕좌에 오를 것이다.
그날이 머지않았다.
오랜 시간 공석이었던 ‘집행 관리자’가 각성하게 되는 날을 기점으로, 우주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리니…… 요토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일을 해줘야 할 당신에게는 벌써부터 아주 기대가 큽니다, 엘리트 소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