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64)
가짜 용사 이야기-164화(164/310)
#60 :
[10. 앤티키아] Vs 엘리트 나이트 (6)“내 나와바리에 온 걸 환영한다, 리샤르.”
리샤르가 거느리고 온 설산의 악마가 요새 앞에서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리샤르가 웃었다.
“로헤이리츠? 하하하하…… 저딴 것과 협력하면 날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나? 겨우 NPC 따위와?”
리샤르가 양팔을 크게 펼치며 하늘을 우러렀다.
“봐라, 내가 받은 권능을! 너에게 감사한다! 네가 안겨준 패배가 오히려 더 큰 축복을 입게 해주었으니!”
로헤이리츠가 천살뇌에 화살을 장전했다.
“저놈은 내가 죽인다. 죽이고 나서 널 죽이겠다.”
“하라고 한 일이나 해.”
로헤이리츠가 총안을 짚고는 성벽 너머로 뛰어내렸다.
“자! 이제 끝낼 시간이다, 엘리트 소서러.”
리샤르가 광기 섞인 목소리를 터뜨린 순간, 지면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이 점점 커져갔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이제는 지진처럼 요란해진 진동, 그러나 당혹해하는 건 내가 아니라 리샤르 쪽이다.
“뭘 놀라고 그래? 공허충들이 지반을 소멸시키고 있을 뿐인데. 너와 내가 서 있는 이곳 바로 아래.”
“멍청한 놈 같으니! 이딴 건 다시 소환하면 그만인 것을!”
“안심했다, 리샤르. 역시 너는 마법사 플레이어라 이데아 퀘스트 공략법은 정도(定道)밖에 모르나 보군. 켈렉─샼은 몇 번 잡아봤지? 다섯 번? 열 번?”
지면에 퍼지는 균열이 점점 커진다. 마력으로 증폭된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정도로.
“나는 백 번이 넘어.”
이윽고 2번 요새 전방의 벌판을 떠받치고 있던 지반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지반 아래 숨겨져 이던 퇴락의 도시가 무저갱의 입을 벌린다.
리샤르와 그 설산의 악몽과 겨울의 궁전이 늪에 빠지듯, 그 지하로 추락한다.
[새로운 지역 : 퇴락의 도시, 케슈렌다크.] [레이드 : 꿈틀거리는 혼돈.]– 꿈틀거리는 혼돈, 벌레들의 왕의 영지로 들어섰습니다. 이 땅에는 절망과 파멸만이 가득합니다. 과연 당신의 영혼이 이곳의 절망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 구더기 인간 사냥 200 / 200.
-> 회랑 파트가 클리어되었습니다.
– 신전 기둥 파괴 3 / 3.
=> 주랑 파트가 클리어되었습니다.
* 레벨업 포인트를 (+600) 얻었습니다.
소름 끼치는 곰팡내와 부패의 액취가 후각 너머 뇌까지 마비시킨다.
도박 성공이다.
지반을 부수는 것으로 레이드의 회랑과 주랑 파트를 스킵하여 켈렉─샼의 영지에 도달한 것이다.
자욱한 흙먼지.
맹독을 머금은 늪의 안개.
케슈렌다크의 늪 위에, 추락의 잔해들이 잠기고 있었다.
“저놈을 찢어 죽여!”
그때 리샤르의 고함과 함께, 겨울의 하수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쉿, 여기서는 조용히 하는 게 좋아. 아, 이미 늦었나.”
내 말이 끝난 순간…… 으으으으으으으으으…… 늪 속에서 꿈틀거리는 악령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이건?”
케슈렌다크에는 이렇다 할 구조물이 없다. 지반을 떠받치고 있는 건 기둥이 아니라 나무다.
거목(巨木).
구더기 종양이 수십 개 달리고, 기형적으로 뒤틀린 다리로 걷는 거목, 통칭 메수디아 또는 엔트.
놈들이 깨어난 것이다.
케슈렌다크의 1층 파트는 거목의 땅이라고도 불린다. 말 그대로 수천의 거목들이 도사리고 있고, 지상의 거목들보다 3배는 강하다.
공략법을 모르면 랭커들로만 공격대를 편성해도 극악의 클리어 확률을 보였다.
“첫 번째 레슨. 거목들은 처음에 소리를 낸 사람을 표적으로 정하는 규칙이 있다.”
내 말뜻을 알아챈 리샤르의 인상이 굳은 것과, 무수한 거목들이 겨울의 하수인들을 짓밟으며 리샤르에게 밀려닥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이 자식이 비겁하게!”
비겁하다고? 마음대로 짖으시지.
수백 번에 달하는 레이드 경험. 그 경험이, 이 ‘꿈틀거리는 혼돈’ 레이드에서 나를 엘리트 플레이어 중에서도 엘리트로 격상시킨다.
이 레이드의 모든 패턴이 나의 도구. 네가 VVIP의 힘을 이용한다면 나는 <잊혀진 왕들>의 힘을 이용해 주겠어.
“그래서 처음부터 말했잖아? 내 나와바리에 온 걸 환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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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도시 <앤티키아>의 설계는 벌레 군주 토벌전 직후, 할바론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왕의 육신을 봉인한 ‘카셋두르 성묘’와 감시탑 ‘시렌의 눈동자’를 주축으로, 왕의 지하 궁전 케슈렌다크의 혈(穴)을 억누르는 구조다.
거기에다 홍염의 핵(核)의 열이 도시 전역을 휩싸도록 설계해, 오랜 세월 켈렉─샼의 봉인을 억눌러왔다.
* * *
–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엘리트 소서러가 돌아왔습니다!
사실, 군사 회의 직전에 또 한 번의 정산이 있었다.
일시정지 알림이 들리기 무섭게, 나는 정산의 영좌(靈座)에 앉아 있었다.
샬류안의 들뜬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메아리치는 초월자들의 놀이터로.
– 벌써부터 후원을 하시려는 분들이 계신데 아직 이릅니다! 이거 위험하겠는데요? 엘리트 소서러의 활약까지 보고 나면 신격(神格)조차 내려놓고 날뛰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샬류안이 시청자들과 떠드는 동안, 엘리트들의 영좌를 쓱 훑어보았다.
요토스의 말대로였다.
엘리트 헌터의 영좌는 공석, 즉 크리스 마이어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한 명이 더 없어…….
누구지?
그래, 그 중국인 어쌔신, 탕옌.
시청자들도 나와 같은 궁금증을 느꼈는지 여기저기서 의문이 쇄도했다. 거기에 호응하여 붉은 머리의 관리자가 앞으로 나섰다.
– 이등상 발표는, 저 이등 관리자 쟈렌키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들의 환호 속에서, 쟈렌키가 화면을 띄우면서 미소 지었다.
튜토리얼 정산 때부터 여러분들의 이목을 잡아끌었던 그 여걸! 엘리트 어쌔신, 탕옌은 아쉽게도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있는 엘리트 아처와의 혈투 끝에!
엘리트 아처를 흘끔 쳐다보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또 뭐지, 저건……?
파울 리드의 영좌 위에, 웬 행성(行星)이 떠올라 있던 것이다. 암흑처럼 새까만 색이었다.
정답은 곧 도출되었다.
리샤르 후의 영좌 위에서도,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행성이 자전하고 있었으니까.
……이킬라스가 저거군.
곧바로 깨달음이 왔다. 추측건대, 저건 전속 계약을 맺은 VVIP들의 상징 같았다.
– 엘리트 어쌔신과 아처의 전투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외우주를 등에 업은 두 엘리트의 활약은 기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경악을 불러일으키는 학살극이지.
어쌔신과 아처의 전장은 아크라드 남부에서 벌어졌다.
신성인류제국의 수도가 위치한 곳이자, 황제와 제2황녀 레베카가 관할하는 직할령. 마법대학 델라이텐이 위치한 장소이기도 했다.
– 제국의 수도 <아이덴>입니다. 철옹성으로 명성이 자자하며, 제국의 부가 집중되는 장소였죠!
그 <아이덴>이 어쌔신과 아처의 전투 속에서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갔다.
어쌔신이나 아처와 계약한 VVIP의 권능은, 셰라슐’토뤼악만큼이나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어쌔신이 부리는 그림자는 섭리 자체를 삼켰으며, 아처가 토해내는 흑염은 시공간 자체를 불살라 소멸시켰다.
– 엄청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계시네?
그 장면에 집중하고 있자니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샬류안이 속삭였다.
– 탕옌의 VVIP에 대해 알려드리죠. 이건 어디까지나 당신이 이전 정산에 참여하지 못했으니 알려드리는 거예요.
그때 영상 속에서 탕옌이 팔을 내뻗었다. 그러자 그 손에서 대궁(大弓)이 연성되었다.
초살궁(初殺弓), 페일누레아.
원래 아처 클래스였던 것일까, 그러나 페일누레아가 쏘아내는 화살 또한 그림자의 천둥이었다.
– 암흑성(暗黑星) 류이니옌의 주인, 롸쟈귤이죠. 저 힘이 마음에 드나요? 안타깝게 됐네요. 당신을 탐내던 VVIP이었는데.
전혀 안타깝지 않았다.
탕옌의 광기는 리샤르와 동급, 아니 그 이상이었다.
계약을 맺는 놈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미쳐간다. 저 길의 끝에 내가 원하는 해피 엔딩은 없다.
– 상성이 너무 안 좋은데요. 근데 VVIP들은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겁니까?
엘리트 아처는 초거대 거신 0식에 탑승해 있었다. 아인 종족으로 쓸 수 있는 무기 중 최강.
본래라면 수십 명의 보조 조종사가 탑승해야 할 저 거신을 혼자서 조종한다.
거신의 포문에서 흑염의 포탄이 무수히 쏟아지며 일대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어쌔신이 그림자 속에 숨어서 요리조리 잘 피하고 있으나 한계는 명확했다.
– 엘리트 아처와 계약한 건 흑염성(黑炎星) 레이블헤인의 주인이죠. 알게 모르게 우승한 권속이 상당히 많답니다.
– 그렇군요.
– 이길 수 있겠어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리샤르가 보여주었던 건 힘의 편린에 지나지 않나…….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아직 집행 관리자의 힘을 사용해 보지는 못했으나, VVIP의 힘과 동일한 힘을 낼 수 없으리란 건 확실하다.
– 자신 없어요? 그러면 방법이 없는 건 아녜요.
– 어떤 VVIP와도 계약하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 그러니까 새끼야! 나랑 계약하면 되잖아. 나랑! 난 VVIP가 아니거든. 근데 나도 세다고. 내 힘 한번 보여줘? 어?
– 물론 샬류안께서 그 자리에 계셨더라면 당연히 먼저 계약을 맺었을 겁니다.
– 정말요?
그걸 믿니?
– 그렇습니다.
그러자 샬류안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미소를 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흠흠, VVIP들이 서두르는 건 이게 이 서버의 마지막 배틀로얄이기 때문이죠.
마지막 배틀로얄?
그걸 물었을 때, 샬류안이 지었던 미소는 너무나도 오싹했다.
– 장르가 바뀐다는 거예요. 맨날 똑같은 장르만 할 수는 없잖아?
* * *
엘리트 아처와 엘리트 어쌔신의 혈투 속에서 대륙은 이미 멸망 루트를 밟았다. 성배 전쟁 퀘스트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 미친 게임에, 더 이상 초반과 후반의 구분 따위는 없다는 거다. 비정상적으로 강력해지는 엘리트 플레이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답은 뭐다?
‘꿈틀거리는 혼돈’ 레이드 퀘스트를 속행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소리.
“바보 같은 놈, 내가 벌레 군주 레이드를 모를 것 같냐?”
지하 도시, 케슈렌다크의 폐허.
겨울의 눈보라 속에서 순백의 악마들이 끝없이 밀려든다. 거목인들과 킨웨들과 뒤엉키며 난전이 형성된다.
“흠, 지금 네 위치가 어디인지는 몰랐나 본데?”
그러자 별안간 지면 곳곳에서 균열이 일기 시작하더니, 뒤틀린 나뭇가지들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리샤르를 덮쳤다.
“……!”
손가락 달린 나뭇가지들은 심연의 종양으로 뒤덮여 있었다.
종양들이 수없이 꿈틀거리며 꼭 광인처럼 웃는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 거목의 크기가, 다른 거목인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거대하며 후각이 소실될 정도로 심연의 악취를 풍긴다.
“거기 3초 이상 서 있으면 얘가 나오거든.”
모든 메수디아들을 다스리는 옛 귀족, 지상과 케슈렌다크 1층의 안식을 지키는 왕의 파수꾼.
농혼백(膿混伯) 브류’카륵.
리샤르가 발을 디딘 장소가 바로, 농혼백의 서든데스 패턴이 발생하는 장소. 트리거는 저렇게 많은 소환수를 다루는 것.
“고요의 절대자이시여!”
순간, 리샤르가 자신의 왼손 약지와 소지를 잘랐다.
미친 짓이었다.
결손된 신체를 수복하는 방법이 없는 이 게임에서는…… 그러나 그 판단은 곧 뒤집혔다.
“제물로 바치오니!”
그 손가락들의 절단면은 곧 시공의 균열이 되었다. 그 균열, 설백성(雪白星) 이킬라스로 통하는 균열을 열었다.
우주의 기척, 우주의 떨림.
농혼백 브류’카륵과 맞먹는 기운을 가진, 어떠한, 뭐라 형언키 힘든, 그런 존재가 튀어나와 권속과 뒤엉켜 맞붙기 시작했다.
“……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니, VVIP의 힘이니 당연한가.
이제는 놀라는 것조차 지쳤다.
그래도 리샤르가 울혈을 뱉는 모습을 보면 타격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저런, 벌써부터 방심하면 안 되지. 레이드에서는 한 번의 오판이 게임 오버로 이어지는데.”
나는 마력을 강렬하게 방출했다.
리샤르를 위협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다른 멍청이에게 연락하기 위함이지. 바로.
[NPC, 로헤이리츠가 전용 스킬, 《공허의 시간》을 사용합니다!]다시, 지면이 진동하더니 지반째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로헤이리츠 녀석, 여기에다 힘을 다 쓰게 만들어서 이제는 전면전에 나설 수는 없겠지만…… 녀석의 힘은 이렇게 쓰는 게 베스트다.
슈’율큘라의 해저 궁전 슈율켈리스가 미친 듯이 변화하는 구조 때문에 지옥 같다면, 켈렉─샼의 케슈렌다크 내부는 그냥 지옥이다.
“케슈렌다크 내부에서 출몰하는 킨웨는 카토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체로 아주 미친놈들이거든.”
어떤 악마의 내장 같기도 하고, 벌집 같기도 한 미로 구조의 온갖 방들에서 구더기들이 깨어난다.
깨어나서, 변태하고, 울부짖는다.
사람의 손발이 이리저리 뒤틀려서 구더기처럼 만들어져 있는, 괴물의 무리들.
“그래도 일대다에 능한 소환사 클래스를 데려왔으니 안심이야.”
순식간에 수만 마리의 카토론에게 둘러싸인 리샤르, 그 육신이 갈기갈기 찢기나 싶던 그때였다.
다시, 저 위대한 우주로 이어지는 균열이 열린다.
순백, 순백의 악령이 거대한 손을 내뻗어 카토론들을 모조리 터뜨려 버렸다.
“이 시바 밸런스 좆망겜…….”
너무나도 거대하여 균열 너머로 팔밖에 나오지 못한 악몽이 리샤르를 비호하고 있었다.
카토론들은 무력했다.
그저 무력하게 학살당했다. 얼어붙고, 깨지면서.
“하하하! 네놈이 믿던 게 고작 이거냐?”
나를 노려보며 홍소를 짓는 리샤르의 왼손에는 손가락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제물로 쓴 건가.
그래도 확실하게 녀석의 힘을 깎아 나가고 있다.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뒤, 간단히 답했다.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내가 샤르홀린을 빼들고 어깨에 걸치자, 리샤르가 경계 태세에 들어서며 동작을 멈추었다.
20미터 정도의 거리.
이 간격은 피차간에 필살의 거리. 날카로운 정적이 흐른 다음 순간,
“이제 시작인데.”
나는 찢어진 피막 아래로 뛰어내렸다.
카토론들이 치고 나왔던 피막으로, 케슈렌다크의 모든 벽은 살아 있기에 금방 점막에 의해 달라붙는다.
머지않아 나타난 지면에 내려앉았다. 낙법으로 몸을 굴려 충격을 감쇄시켰다.
자, 어디…….
주위를 살펴보니, 앞뒤로 구불거리며 뻗어 나가는 통로가 보였다.
좋아, 왔다.
곧바로 시스템 알림도 들려왔다.
[새로운 지역 : 케슈렌다크 – 궤도(軌道)]– 경고 : 서든데스 패턴이 존재하는 지역입니다.
– 경고 : 클리어 적정 인원은 (25)명입니다.
클리어라, 저 말도 안 되는 조언에 냉소가 지어졌다. 이 지하 터널 같은 곳은 ‘몰살 구간’이다.
클리어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나처럼 레이드 좀 꼼수로 깨보려고 마구잡이로 하강하던 공격대 대부분을 몰살시키는 구간.
리샤르도 이곳을 알까.
검색해보니 대부분 존재는 알아도 위치나 트리거는 잘 모르던데.
알면 안 오고, 모르면 오겠지.
이 또한 도박이다.
하지만 놈을 처치하기 위해선, 이런 몰살 구간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다.
내가 흑혈검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 한순간뿐. 그건 반드시 놈을 끝장낼 수 있을 때 써야 해.
……쿠구구구구구구구.
살 떨리는 진동이 점점 가까워왔다. 열차처럼, 아랫배로 지면을 훑으면서.
‘놈’이 오고 있었다.
그오오오오오오…… 놈의 육중한 포효 소리는 들을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제 시작이라더니, 어딜 내빼시나.”
순백의 악마가 피막을 새하얗게 얼려서 부수고, 그 틈새로 리샤르가 나를 뒤쫓아 내려온다.
그와 동시에 ‘놈’도 터널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리샤르의 뒤쪽이었다.
내가 말했다.
“두 번째 레슨.”
길이만 50미터에 달하는 몸체는 언뜻 보기에는 지네로 다리를 흉측하게 꿈틀거린다.
원숭이를 닮은 얼굴에는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둥근 물체들이 수백 개 박혀 있었다.
이 기괴한 괴물의 이름은 공관작(蚣關爵) 페샤뤼사스, 놈 또한 켈렉─샼이 거느리는 위대한 권속 중 하나. 이 궤도 구간을 순회하며 침입자를 벌하는 놈이다.
“착한 뉴비 여러분들은 고인 물들 또라이 짓을 함부로 따라 하지 마세요.”
리샤르를 비호하던 서리의 존재가 페샤뤼사스의 머리통을 붙잡아 저지한다.
그러나 페샤뤼사스가 급정거하는 충격으로 케슈렌다크가 고통스럽게 꿈틀거리며 사방에서 카토론들이 다시 달려든다.
여기에서 직격타를 먹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리샤르의 상태가 이상했다. 몸을 파르르 떨면서 무어라 중얼거린다.
“노말 플레이어 따위가 기어오르지 마라…….”
노말 플레이어라니, 내가 공대원들을 숨겨둔 걸 아는 건가?
그럴 리가.
그럼 대체 누구한테 노말 플레이어라고 하는 거지? 페샤뤼사스한테? 믿기 힘들지만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리샤르가 허점을 보인 순간, 샤르홀린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엘리트!”
지금? 지금인가?
마지막 수를 두지 않고, 지금 노려도 괜찮은 건가? 성급한 건 아닌가? 기회는 단 한 번뿐인데.
“너 같은 쓰레기들과 달리 외우주의 절대자와 계약할 수 있는 몸이란──!”
샤르홀린을 빼든 일순간.
[???, ????가 전용 스킬, 《심연》을 사용합니다!]그 거뭇한 칼날에서 퍼져 나가는 검푸른 파장, 그 정체 모를 파장에 닿은 모든 것들이 멈추었다.
고함을 내지르던 리샤르도.
그런 리샤르에게 내달려들던 망자들과, 엎치락뒤치락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이킬라스의 악마와 페샤뤼사스도.
마치.
게임이 일시정지(一時停止)될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