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66)
가짜 용사 이야기-166화(166/310)
#62 :
[10. 앤티키아] 결전, 엘리트 나이트 (8)“도, 도망쳐!”
“쏘, 쏟아져 들어온다!”
켈렉─샼이 떠났다고는 하나, NPC들은 여전히 수습 불가능한 혼란에 잠겨 있었다.
아직도, 무너지고 녹은 자리를 통해서 망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한 요정병이 망자에게 달려들어 그 얼굴에 창날을 처박았지만, 망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요정병의 목을 움켜잡고 찢어발겼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다른 병사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이후 망자에게 덤벼드는 병사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저길 막아줘, 태엽아.”
“뭐? 아저씨, 아니, 매형!”
신태엽의 화염이 성문 바로 앞에 작렬했다. 불타는 망자들의 몸뚱어리가 이리저리 흩어지는 동안, 현수는 달렸다.
장벽 위로 오르는 권양기가 위치한 곳으로.
권양기에 타려고 한 순간, 차가운 무언가가 현수의 목덜미를 붙잡더니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아니, 넌.”
빙룡, 스케사리였다.
현수와 시선이 맞닿은 스케사리가 맑게 짖었다.
“저 위에서 내려줘! 위험하니까 넌 내려가고!”
“A-Ruuuu!”
장벽 위는 날벌레로 뒤덮여 있었다.
구더기 인간 킨웨, 비행 변이.
놈들이 일시에 날개를 펼치며 현수와 스케사리에게로 돌진하던 그때.
“어머나, 왜 우리 애 기를 죽이려 하니?”
박제되기라도 하듯, 그 내달리던 형태 그대로 허공에서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용부인, 크세리니아였다.
저 후방에서부터, 얼음으로 하늘다리를 만들고 또 얼음으로 썰매를 만들어서 단숨에 이곳까지 온 것처럼 보였다.
“Ma kiome!”
현수를 장벽 위에 내려다준 스케사리가 어미의 어깨에 내려앉자, 크세리니아가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가세요, 성도의 영웅. 당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하세요.”
현수는 성루 위로 뛰어 올라갔다.
휑한 성벽 위로 오르자 절망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서, 망자의 대군이 성을 향해 진격해온다. 하지만 장벽의 병사들은 이미 체계를 잃고 흩어지고 있었다.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현수는 성루의 지붕 위로 올라서서 청강검을 높이 빼들었다.
“저는 여왕의 칼날, 지금부터 14, 15, 16 감시탑의 상황의 통제권을 행사하겠습니다.”
가이네이브의 빛의 파장에 의해 목소리가 거대하게 증폭된다.
[플레이어, 파워풀엠페러가 스킬, 《사기 진작》을 시전합니다!]그 한 줄기의 빛을 통해, 머릿속을 잠식하던 혼돈의 손아귀에서 병사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왔다.
그러나 제정신을 차리고서도 도망치려는 자들이 많았다.
요정병들은 용맹하게 싸웠으나, 용맹하지 못한 인간 병사들을 경멸하기 시작하며 내전의 분위기도 커져가고 있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정철, 당신은 이런 상황까지 예상했던 겁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 포기하지도 체념하지도 않고 싸워왔던 겁니까?
– 만약 상정 외의 상황이 발생해 장벽이 무너진다면, 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게임일 뿐이라 말하면서.
항상, 게임일 뿐이라고 하면서 왜 늘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지었던 것인지 궁금했는데.
– 저도 성공해본 게 몇 번 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조차도 못 했던 성도 퀘스트를 바꿨던 당신이라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요.
기관차를 타고 북부로 떠나기 전에 정철이 주었던 건 시스템 채팅 메시지였다.
거기에는 목소리가 실려 있었다.
이 상황, 혼돈이 들이닥쳐 모든 게 무너지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호소와 응원의 목소리가.
“여러분, 이곳이 무너지면 장벽 방어선 전체가 무너집니다. 앤티키아가 무너지면 여러분의 가족과 친구들이 살 수 있겠습니까?”
저 먼 북쪽에서는, 눈보라와 심연이 어지러이 뒤섞이며 막대한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철은 싸우고 있었다.
정철은 현수를 믿었다. 그러니 현수도 마지막까지 싸워야 한다.
“불가능합니다. 이 천혜의 요새가 무너지고 저 망자들이 여러분의 가족들을 물어뜯는 걸 보고 싶다면, 여러분들의 가족이 망자로 변해 여러분들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달아나십시오. 저는 아무도 말리지 않겠습니다.”
이상했다.
정철이 준 대본을 보지 않았는데도 혀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달아나면 살 수는 있을 겁니다. 아주 당분간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의 아들딸이 망자가 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망자에게 살점을 뜯기는 때가 오고 나서야 후회할 겁니까? 내가 그때, 그 순간에, 싸웠어야만 했다고, 내가 성벽을 지켰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제멋대로 움직인다기보다는, 예전에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던 것처럼, 그 대본을 따라 읊는 것 같은 느낌.
“인요 연합군 여러분! 지금, 바로 지금, 타르혜 론델의 봉화 아래서 우리 힘을 합쳐 싸웁시다! 싸워서 이깁시다. 심연에게 크게 소리쳐 줍시다! 이 장벽에는 우리가 있다고! 우리가 있는 한 너희들은 이 안쪽으로는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할 거라고!”
망자들과 거목인들을 불꽃으로 지지던 신태엽은 망연히, 숨을 헐떡이는 현수를 올려다보다가 어이없이 웃었다.
‘닮은 게, 느낌만 그런 게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똑같네.
발악하는 것조차 똑같아.
배틀로얄 이전의 버전에서는 NPC들의 선택 자유도에 제약이 있었는데도, 2회차의 정철은 이렇게 발악했다. 이렇게 행동해서.
“타르혜 론델!”
한 병사가 절규 섞인 함성을 터뜨리게 만들고.
“타르혜 론델!”
“타르혜 론델! 타르혜 론델!”
“타르혜 론델! 타르혜 론델! 타르혜 론델! 타르혜 론델!”
모든 병사들로 하여금 총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연호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장면과 완전히 똑같이.
그런 기적 속에서 끝마친 켈렉─샼 레이드는, 그 순간을 함께했던 공대원 모두 결코 잊지 못했다.
‘왜 저런 뉴비를 총책임자로 세웠나 했더니, 저 대본을 달달 외우게 만들어놔서 그랬던 건가?’
신태엽은 그렇게 <황녀를 위하여>를 클리어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게임을 접었다.
재미가 없었다.
그 이후로, 정철처럼 기적을 만드는 공대장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었으니까.
* * *
케슈렌다크 최심부.
켈렉─샼의 심연이 숨 막히게 들끓는 가운데, 샤르홀린과 니블랑제가 맞부딪치며 굉음을 터뜨렸다.
“칼이 떨리고 있는데, 괜찮냐?”
“그 입 다물어!”
리샤르를 비호하던 순백의 악마가 팔을 휘둘러 샤르홀린을 쳐내었다. 그러나 내가 곧장 자세를 바로잡자 다시 두 칼날이 맞닿으며 힘겨루기의 대치 상태로 들어갔다.
정확히 이 시간.
정확히 이 스팟에서.
시간을 끌 필요가 있다.
순간 거대한 기척이 꿈틀거렸다. 켈렉─샼의 돌진 공격 패턴, 혼돈의 전조.
3, 2, 1…….
머릿속에서 정확한 초읽기가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 도약한다.
그러기 무섭게, 우주의 빛으로 번뜩이던 수증기의 파도가 리샤르를 덮친다.
켈렉─샼은 자신의 몸을 수천만 포자로 분열시킬 수 있었으며, 저 수증기는 그 포자들이 만들어낸 안개다.
직격인가?
아니, 썩어도 준치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군.
이마의 식은땀을 빠르게 훔쳤다.
리샤르 후 또한 엘리트 플레이어, 한 끗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쳇…….
혀를 차면서 칼끝을 낮추었다.
케슈렌다크의 최심부는 무릎까지 잠기는 심연의 늪이 펼쳐져 있다. 저기에 발을 담근 순간 발이 썩어서 녹아내린다.
“와라.”
그 늪을 이킬라스의 하수인들이 내달려왔다. 리샤르가 손을 내뻗어 권능을 발하자, 그 늪의 호면이 새하얗게 얼어붙은 것이다.
“……라고 할 줄 알았냐?”
그 아래의 지면까지 박살 내버리는 위력. 하지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음, 허, 허…… 두려워 마라……, 두려워 말라…….」
켈렉─샼의 광역 공격 패턴, 혼돈의 메아리가 늪 아래 잠들어 있던 왕의 장난감들을 깨운다.
찢어지는 절규.
구더기 인간들의 등이 찢어진다. 그 틈새로 음침한 형상의 파리 인간들이 날아오른다. 늑골이 등 뒤로 솟구치고, 내장의 피막이 늑골 사이마다 눌어붙어 날개의 점막을 이룬다.
발판.
발판.
발판.
뒤얽혀 싸우는 설백의 악마들과 파리 망자들을 상대로 칼을 거듭 휘두르고 내찌른다.
낙하 위치를 잘 잡는 게 중요하다. 놈들의 시체가 늪 위로 발판을 만들게 해야 하니까.
자세를 수습하다가, 치고 나가고, 비명을 터뜨리는 구더기의 심장에 칼날을 박아 넣고, 악마 쥐들을 짓밟아 터뜨리면서 돌진.
술사의 허점을 노려야 한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반드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허점을.
[플레이어, 리샤르 후가 전용 스킬, 《검신의 극의 : 참마격》을 시전합니다!]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놈 또한 엘리트 플레이어란 사실.
간격을 좁히는 게 쉽지 않다.
시공간을 얼려서 깨트리는 힘이 놈과 나 사이의 발판들을 전부 없애버렸다.
“하하하하! 멍청이가! 소환사는 벌레들의 향연 레이드에서 절대 왕족이라는 것도 잊었냐!”
틀린 말은 아니다.
켈렉─샼 레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발판이니까.
소환사만큼 아군에게 많은 발판을 제공할 수 있는 클래스는 없었다.
“왕으로서 초월을 이루는 것은 나다! 소원을 성취하는 것 또한 나다!”
켈렉─샼이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를 때, 리샤르 후가 그 어깨 위로 올라섰고 나 또한 반대쪽 어깨 위로 올라섰다.
역시 모를 리가 없나…….
이때 늪 위에 남아 있으면 무조건 죽는다. 심연이 폭주하기 시작하면서 그 아래 모든 것을 삼키기 때문이다.
「음, 허, 허, 허…… 혼돈이란 곧 꿈틀거리는 것…… 생명의 순환 또한 이제 혼돈 속에서 꿈틀거리게 되리라…….」
다음 패턴까지 10초.
내가 켈렉─샼의 상반신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자, 리샤르가 이킬라스의 사술을 발동시켰다.
9초.
순백의 빙설(氷雪)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며, 내가 방금 전에 달려온 궤도에 수도 없이 꽂힌다.
8초.
켈렉─샼의 구더기 육신을 이리저리 타넘으며 리샤르가 서 있는 왼쪽 어깨 쪽으로 전력 질주.
“Physhak!”
그 진로를 가로막는 악마들의 목을 일합에 쳐내며, 리샤르가 날려대는 견제 술식들을 피하고 계속 달린다.
7초.
나이트 클래스의 매력은 바로 이 단순함이다.
소서러의 복잡한 마법 사용식도, 헌터의 조악한 스킬 배합도, 아처의 천편일률적인 원거리 기술들도 모두 필요 없다.
나이트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검술의 센스뿐.
6초.
쳐내고, 찌르고, 막고, 휘두른다.
오로지 그것뿐이다. 그 심플함에서 비롯되는 정직한 강함이 나를 7회차 내내 매료시켜 왔다.
5초.
악마 다섯을 일시에 베어 넘기며, 얼굴에 들러붙는 시퍼런 핏물을 닦을 틈도 없이 계속 달린다.
4초.
설백의 악마가 양손을 맞부딪치는 것으로 내 몸을 으스러뜨리려 할 때, 내 무릎을 꺾는다.
3초.
관성이 내 몸을 앞으로 미끄러뜨릴 때, 머리 바로 위에서 양손이 충돌하며 눈보라가 폭발.
2초.
샤르홀린의 칼날이 리샤르의 목을 베어 넘기려던 바로 그 순간, 무언가가 온몸을 잡아당겼다.
뭐지?
아니, 잡아당겨진 게 아니야. 다리가 움직이질 않는다. 리샤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멍청이가! 네가 여기까지 올 실력이란 건 알고 있었어!”
내 무릎이 닿았던 위치가 얼어붙어 있었다. 무릎 아래의 하반신이 함께 얼어붙어서 움직일 수가 없던 것이다.
1초.
리샤르는 이미 저 아래로 뛰어내리고 없었다. 놈도 아는 것이다. 다음 패턴이 켈렉─샼의 전멸 패턴으로 유명한 ‘꿈틀거리는 혼돈’이라는 걸.
“네 꾀에 네가 빠져 죽게 되겠군. 잘 가라, 정철!”
0초. 켈렉─샼의 육신이 우주의 광기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입에서 경악이 새어 나왔다.
죽는다. 저 빛에 2초 이상 노출되면 순식간에 광기 수치가 1000%를 넘어가면서 즉사다.
다리를 잘라야 해.
혼돈(混沌), 죽는다.
자르면 승산이 있나?
돈혼(沌混), 죽는다.
아니, 애초에 자를 수 있는 시간이 있나? 1초가 흘렀다.
혼?돈?(混?沌?), 죽는다.
광기 수치의 폭증.
혼?돈?혼?沌?혼?混?돈? 죽는다.
다리를 자르고 저 아래로 떨어지면 리샤르가 가만히 있나?
혼?돈?혼?沌?혼?混?돈?혼?돈?혼?沌?혼?混?돈?혼?돈?혼?沌?혼?混?돈?혼?돈?혼?沌?혼?混?돈?혼?돈?혼?沌?혼?混?돈?
너는 죽을 것이다.
광기 수치가 임계점을 넘으려던 바로 그 순간, 손아귀에서 샤르홀린이 크게 한 번 맥동했다.
절대 심연의 파장.
그 파문이 세계라는 공간에 마땅히 흘러야 할 시간을 멈춘다.
시간은 멈추었으나 시간이 촉박하다는 기괴한 상황에 놓였다.
서둘러.
아까 멈추었던 시간은 기껏해야 3초. 그 3초 안에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3초.
샤르홀린의 칼날로 살가죽을 베었다. 턱밑까지 고통스럽게 치받치는 비명을 억누른다.
2초.
무릎에서부터 발목에 이르기까지의 살가죽을 단숨에 도려낸다. 살가죽이 사라져 근육이 노출된 다리가 핏물을 시뻘겋게 떨군다.
1초.
아픔을 추스를 틈도 없이 즉시 켈렉─샼의 어깨 위에서 뛰어내린다.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리를 자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아니, 느낌부터가 다른 고통과 함께.
무언가가…… 뜯겨 나간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품어야 할 감정이라든가, 기억이라든가, 그런, 무언가가 영혼에서부터 강제로 뜯겨 나갈 때의 고통…….
“리샤르─────!”
이 빚은 크다. 지금, 확실하게 갚아주겠어.
그리고 나도 이 순간을 노렸다.
널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니까.
“───아니, 어떻게?”
먼저 늪에 착지한 리샤르가 나를 올려다볼 때, 손에 장착한 월장석이 눈부신 빛을 발한다.
[성물, 테르시아의 눈물이 《달의 눈물》을 시전합니다!] [지력 수치 : 94. 《현자의 기억법》 제2단계 개방.] [사용할 전투 기억 선택.]1. 흑혈검 4식
2. 흑혈검 13식
3. 흑혈검 절식, 환영난무.
등 뒤에서 켈렉─샼의 혼돈 패턴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리샤르는 나를 똑바로 볼 수 없다.
“절식을 선택하겠다!”
리샤르의 양손에서 설광(雪光)의 구체가 떠오른다. 초월의 힘이 그 위로 집약되며 우주의 방벽을 만들어낸다.
[???, ????가 ???, 《심연의 주인》을 시전합니다!] [전용 스킬, 《흑혈검 절식 : 환영난무》의 위력이 4000% 증강됩니다!]환영난무는 본래 거대한 검강을 두르는 스킬이 아니건만, 지금 이 순간의 환영난무는 혈괴참보다도 몇 배는 더 컸다.
웬 심연의 주인?
위력 4000% 증강?
어떻게 된 거지?
생각할 시간도 없어. 첫 번째의 참격, 검푸르게 흐드러지며 흩날리는 타락의 꽃잎이 새하얀 우주를 녹여버리고.
“로헤이리츠, 지금이다!”
두 번째의 참격. 회오리치는 타락의 힘이, 눈이 사라진 우주에 시퍼런 빙벽 지반을 붕괴시키고 그 너머 술사를 오롯이 드러낸다.
“내가 환영난무의 공략법도 모를 것 같──!”
설백의 악마가 두 손을 내뻗어, 세 번째 참격 자세로 들어선 내 몸을 짓이기려던 그 순간.
공허(空虛)의 차원이 열린다.
전부 세 방향이었다. 리샤르 후의 왼쪽, 오른쪽, 그리고 위쪽. 저것은 공허의 사도가 관장하는 아공간의 통로, 공허의 회랑.
“──냐?!”
왼쪽 회랑에는 사쿠라이가 『지혜의 보고』를 펼친 채 서 있었고 오른쪽 회랑에는 야나가 『클라에논 단장』과 함께였다.
리샤르가 위치한 공간이 뒤엉키면서 압축되고, 그 공간 위로 엘더 사인이 새겨진다.
“오빠, 끝내버려요!”
설백의 악마가 술자를 보호하기 위해 차원을 압축시키는 힘을 깨부수고 엘더 사인을 흩어버렸다.
“으쌰아!”
그때 위쪽 회랑에서 뛰어내린 브뤼나가 온몸의 힘과 중력의 힘을 스타폴에 모두 담아 내리찍는다.
그 위로 내리꽂히는 혜성.
악마의 보호를 받지 못한 리샤르가 그 혜성의 궤도로부터 몸을 틀었다. 한쪽 팔이 혜성에 삼켜지지만 목숨은 부지했다.
그러나 그렇게 자세가 무너졌다.
새로운 마력을 운용할 여유도 없고, 악마의 보호도 받지 못하며, 자세를 추스를 찰나도 없다.
너는, 피할 수 없다.
환영난무의 세 번째 참격을.
앞선 두 번의 참격은 사실 극후반에 얻는 스킬의 절식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스킬들보다 위력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
예비 동작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참격의 위력을 비상식적으로 증폭시키기 위한 예비 동작.
“저, 정처어어어얼─────!”
리샤르, 네가 그렇게 절규하며 패배하게 된 이유는 공대원들을 모두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끝나는 거다.
너에게 1명이라도 유용한 공대원이 있었더라면 이런 기회를 잡지도 못했어.
“───────참(斬)!”
강대한 심연이 놈과 놈의 악마와 놈의 하수인들을 모조리 타락의 물결로 집어삼키려던 그 순간에.
빛이.
설백(雪白)의 빛이.
우주의 다섯 절대자 중 하나, 셰라슐’토뤼악이 거느리는 ‘혼돈 속 고요’라는 절대적 힘이 폭발하면서 모든 것을 얼려버렸다.
세상의 섭리라는 것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