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71)
가짜 용사 이야기-171화(171/310)
#67 :
[11. 엇갈리는 운명] 빛의 계승자, 어둠의 계승자 (1)장벽 도시 앤티키아는 3시간 만에 몰락했다.
3천 년 같은 3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켈렉─샼의 추격을 받았다. 수많은 영웅들이 주검이 되어 쓰러지고, 벌레가 되어 일어섰다.
“로우, 다시 회랑을 열 수 있겠어?”
“불가능합니다, 아가씨. 아까, 케슈렌다크의 천장을 붕괴시키는 데 힘을 대부분 소모한 바람에…….”
장벽 외곽은 매우 위험한 장소이기에, 설정상 신기대의 정예반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금지된 장소였으나 이번 경우는 달랐다.
신태엽이 확실하게 길을 잡았다.
정철 공격대의 에이스였다는 소년은 이 위험한 곳의 지리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숲의 어둠을 불꽃으로 환히 밝히면서.
그럼에도, 그럼에도…….
벌레 군주의 습격은 잔혹하고도 집요해서 도무지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음, 허, 허……, 두려워 말라……, 혼돈을 받아들여라…….」
위기는 신태엽이 내지(內地)로 통하는 철도 정거장을 찾아냈을 때 발생했다.
철도는 부패해 녹아내려 있었다.
역무원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시체들이 구더기로 뒤덮인 채 일어섰다. 심연의 잠식, 영혼의 퇴락.
“뭐지? 이럴 리가 없는데, 여기에는, 여기에는 노후화된 열차가 한 대 있어서…… 그걸 타고 갈 수 있는데.”
“네놈이 우릴 속였구나.”
팔라딘 타키아르 실베스터가 말했다. 그 유명한 성창 디알레를 현란하게 휘둘러 다가드는 벌레들을 베고 꿰뚫고 있었다.
“리샤르, 그놈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단 듯이 행동했지. 순식간에 군적을 세우고 왕의 신뢰를 받아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왕을 시해했다!”
타키아르가 디알레를 반 바퀴 돌리고는 그 찌르기의 방향을 신태엽 쪽으로 돌렸다. 박현수가 청강검으로 창극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우리가 왜 여러분을 속이겠습니까? 그것도 지금 이런 상황에!”
“그 에델 바이스라는 놈과 너희들은 동류 아니냐? 그놈이 심연과 어떻게 내통하고 있는지를 아까 모두 봤는데 발뺌할 셈인가.”
최강의 요정병, 팔라딘의 창술을 현수가 감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스케사리가 맑고도 우렁차게 울며 타키아르에게로 서리 숨결을 뿜었다.
스케사리는 상당히 장성해서, 어느새 신태엽만 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빙룡은 심연을 삼키며 성장한다고 했다. 왕의 심연에 계속 노출된 탓이다.
타키아르는 다급히 물러섰으나, 다시 공세는 취하지 않고 억울하단 듯이 소리쳤다.
“용이시여, 보시지 않았습니까! 저것들이 어떤 존재와 한 패거리였는지를!”
타키아르가 동의를 구하듯 인간 측 대표자들을 쳐다보았다. 용부인 크세리니아와 로헤이리츠.
“에델 바이스, 그 쓰레기가 자신의 동료를 제물로 바쳐서 심연의 사도가 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러니 그놈은 내가 죽인다.”
로헤이리츠가 천살뇌에 화살을 메기고는 그 총구를…… 타키아르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그 쓰레기가 거기에서 다 죽어야 했던 너희들을 모두 살려준 것 또한 사실 아닌가?”
크세리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스케사리는 심연에 대한 반감이 누구보다 강해. 스케사리는 그 에델 바이스에게도 하악질을 해댔거든.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성도의 영웅일 때부터 말이야. 아무래도 이렇게 될 줄 알고 있기 때문이었나 봐.”
“……!”
“근데 스케사리가 저 둘을 지켰다…… 여기 뭔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숲속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뭔가 긁어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숲이 스산하게 흔들린다.
초조함과 긴장감은 증폭되어 간다. 켈렉─샼의 망자, 킨웨들에게 포위되고 또 시시각각 켈렉─샼 본인이 다가오는 상황이었건만, 내전이 촉발되기 직전이었다.
‘리암과 샤릴리온, 그 영웅들은 대체 이런 인요(人妖)를 어떻게 통합해냈던 거지?’
현수는 알고 싶었다.
도무지 답이 없는 것 같으니까.
이 두 종족 사이에 뿌리 깊게 박힌 원한의 굴레를 대체 어떻게 벗겨낼 수 있는 것인지.
「음……, 허……, 허…….」
혼돈(混沌)은 그 순간에 다시금 찾아왔다.
꾸르르르륵…….
압도적인 독기에, 정거장을 휘감고 있던 신태엽의 화염 결계가 소멸하기 시작했다. 신태엽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뜨렸다.
“이제 다 끝났다. 어차피 살길이 없어. 그러니 저것들이라도 여기에서 죽여서, 남아 있는 형제들에게 후환이 되지 않게 해야겠다! 비켜라, 공허의 사도!”
“어림없다. 쓰레기 귀쟁이 놈.”
“지금 싸울 때야? 로우, 너도 그만해! 이러다 다 죽게 생겼는데!”
천지를 녹이며 밀려드는 파괴의 물결에 맞서 결계를 유지하던 신태엽이 온몸으로 피를 뿜었다.
“태엽아, 정신 차려, 신태엽!”
그때, 결계가 사라지고, 정거장이, 세계 전체를 녹여 내리는 혼돈이 밀려닥치던 그때.
크세리니아와 스케사리가 동시에 냉기를 발해서 2차 결계를 펼쳐내던 그때.
타키아르가 지반을 박차려던 그때, 그리고 로헤이리츠가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때.
[새로운 스킬 해금됨 : 신성의 업화(神聖業火)] [태고의 기적, 신성의 업화 : 어둠을 불태우는 빛의 기둥을 만든다.]– 핏빛 태양, 슈리간이 네이갈라스의 심연으로부터 아드리온 대륙을 정화할 때 사용했다는 기적.
– 그 불꽃같은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평온을 가져왔다고 한다.
– 이것은 사랑과 섬김을 설파하던 빛의 군주 슈리간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이다.
빛이.
황혼의 색채로 덧없고, 슬프고, 아련한 빛의 기둥이 솟구쳤다.
빛은 혼돈을 막아서고 심연의 안개를 찢어 하늘에 빛이 드나드는 구멍을 뚫었다.
“아니, 이 기적은……?”
“분명 실전(失傳)되었을…….”
모두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러나 제일 당혹스러웠던 건 박현수 본인이었다.
‘대체 무슨…….’
힘에는 대가가 따랐다. 막대한 신성력이 몸속에서 반강제적으로 반출되어서일까, 현기증이 핑 솟으며 수평선이 멀어져갔다.
「음, 허, 허……, 과인을 놀라게 하는구나……, 퍽 만족스러운 유흥이었느니라…….」
수백 개의 빛기둥을 한 번에 펼치던 슈리간과 달리 현수의 빛기둥은 한 줄기가 전부였고 그 빛 또한 미력했다.
그 빛 또한 혼돈에 잠식되고…….
이제, 정말로 모든 게 끝나기 직전이었던 그때.
“현상 체현, 아수라 실혼경(現象 體現 : 阿修羅-實魂鏡).”
그 모든 혼란을 잠재우고, 또 들이닥치는 혼돈을 막아서는 빛이 있었다.
「으으음……?」
빛은 3개의 머리가 달린 용의 형상이었는데, 세상을 갉아 먹는 혼돈으로부터 이 세상의 섭리를 재생시키고 어둠을 눈부시게 밝히고 있었다.
“그 급한 성질머리는 여전하구나, 타키아르. 세계가 몇 번이고 반복되어도 달라지질 않아.”
그 빛을 부리는 여성은, 눈동자와 길쭉한 귀를 제외한 온몸을 황색 붕대로 감고 있었다. 근데 로헤이리츠와 요정 진영의 반응은 너무나도 달랐다.
“아니, 네놈은……!”
전자는 강력한 적개심을 보이며 천살뇌를 조준하는 반면, 후자는 헛숨을 삼키면서 예를 갖추는 것이다.
“바, 발레린 왕제 전하……?”
왕제(王弟)?
왕의 동생이란 뜻이 맞나?
그러니까 요정왕 발데마르의 동생이란 뜻이다, 뭐 이런 건가?
“총구를 내려라, 공허. 너도 이제 알았을 텐데. 그때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단 걸.”
“……!”
“켈렉─샼을 상대로 너와 입씨름할 여유가 없다. 공간 전이 역장을 열 테니 저 남자를 데리고 여기서 빠져나가라.”
발레린이라는 마법사가 가리킨 건…… 시나리오 최중요 NPC인 크세리니아도 아니었고 타키아르도 아니었다.
“그러나 전하!”
박현수였다.
“외람되오나 저 인간 놈은!”
성도의 영웅이었다가 한순간에 심연의 수괴의 동료로 몰린, 1회차 뉴비 플레이어 박현수.
“내 말대로 해라. 이건 내 뜻이 아니라 <온 것들>의 뜻이다.”
“전하, 그럴 리가…….”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베르켄시아의 마지막 계승자를.”
* * *
성도 캐슬베이아는 태양신 에오스와 달 여신 헬레니아의 강력한 비호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는 나도 7회차가 다 되어서야 알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성도의 왕족은 바로 그 둘 사이에서 나온 핏줄이었다. 즉 <온 것들>의 후손의 후손인 것이다.
그렇기에 게임 시나리오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성도는 심연에 의해 몰락하지 않는다. 성도는 성도 공방전, 즉 인요의 갈등 속에서 몰락하게 될 뿐.
그 전투 끝에서 성벽이 만신창이로 허물어진 뒤로도 심연에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도는 이렇게 불린다.
절대 성역(聖域).
이데아 반도의 마지막 생존자들은 성도로 몰린다. 이 안쪽에서 생존자들은 굶어 죽게 되지, 심연에 멸망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건 3명의 왕에게 동시에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을 때의 이야기지.」
샬류안이 말했다.
이곳은 해저 신전 슈율켈리스. 수런거리는 광기, 슈’율큘라의 옥좌가 있는 곳이다.
어느 순간부터 성가실 정도로 따라붙는 샬류안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후후후, 아주 좋은 전략이에요! 엘리트 소서러! 이번 회차에서는 그 짜증 나는 장소가 박살 나는 걸 볼 수 있겠는데.」
곳곳에서 해저인과 심해목 같은 심연체들이 득시글거렸는데, 놈들은 나를 적대하기는커녕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원작에서도 흑기사가 된 뒤에는 원래 이렇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에 극후반에나, 즉, 보스 캐릭터가 크세리니아와 스케사리만 남았을 때 각성할 수 있게 되건만.
“정산 작업으로 바쁘시다고 들었는데요.”
「뭐예요! 내가 귀찮단 그 한숨은? 너 뒤질래, 이 새끼야?」
“아뇨,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신 것이 황송해서.”
샬류안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제발 좀 꺼져…….
그래도 샬류안 덕분인지 이 슈율켈리스를 주파하는 일은 말도 안 되게 쉬웠다.
궁전 내부를 미궁으로 만들어서 공략을 난잡하게 만들던 《바다 장벽》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장벽이 나타나기는커녕 슈’율큘라의 하수인들이 길을 안내해 주기까지 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걸었다.
아무런 싸움도 없이, 그저.
그렇게 지성소로 이어지는 현수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성소는 본디 슈’율큘라 레이드 장소가 시작되는 곳이다.
“겔, 우두룸, 저희들은…… 루두모리온…… 지성소로 들어갈 수 없사옵니다.”
나를 이곳까지 안내해준 어인 신관이 고대어를 중얼거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현수교 양옆에 도열한 큘륜과 권속들이 보였다.
“저놈들은?”
“왕의 충신들…… 아구데바트…… 또한 하명이 없이는 들어설 수 없사옵니다.”
네임드 보스이거나 서든데스 패턴을 담당하는 놈들이었는데, 내가 다리를 통과하자 차례로 고개를 숙여댈 뿐이었다.
“……심연의 주인이시여…….”
“……부디 우리들의 왕을 해방시켜 주소서…….”
궁전에는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황동제 문이 거대하게 서 있었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암청빛 보석을 꺼내들어 깨부쉈다. <리드워즈의 봉인석>이었다.
리드워즈는 2대 공허의 사도.
계보를 따지면 로헤이리츠의 선배격 되는 인물로, 마지막에 죽음과 맞바꿔 슈’율큘라를 봉인한 것으로 유명한 여걸.
이것은 그 봉인석.
공허의 힘에 묶여 있던 핵(核)이 해방되면서, 영겁의 봉인에서 풀려난 슈’율큘라의 기운이, 연기로 변해 황동제 문 안쪽으로 스며들어 갔다.
쿠구구구구구……!
머지않아 황동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시스템 알림이 정상이었다면, 아마 경적과 함께 [레이드 보스전이 시작됩니다!]라는 알림이 출력되었겠지.
“……레이드라.”
문이 열리는 동안 그 표면에 돋을새김된 부조를 올려다보았다.
어인들이 인신공양으로 바치는 수천 명의 인간을 촉수로 받아먹는 슈’율큘라의 모습이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이게 새겨져 있었다.
한때는 저 모습이 두렵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다른 것이 두려웠다.
혹시…….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는 건 아닌지……?
마침내 문 안쪽에서, 발을 질퍽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독한 악취가 밀려 나왔다.
……으르흐르르르르르르르…….
큘륜과 권속들이 광희의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위대한 왕의 재림에 축배를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끄럽다.”
내 말 한마디에, 르뤼에 신전이 고요히 진동했고 놈들은 곧장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도 내지 않았다.
……진언으로 대상의 격(格)을 압도하는 힘. 이거, <잊혀진 왕들>만이 가진 기술이었는데.
불경한 생물체가 문밖으로 걸어 나와, 나를 내려다본 건 그때쯤이었다.
「오호라…….」
광기(狂氣)가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폭풍우로 몰아치는 듯했다.
자연의 질서를 모순으로 뒤틀어 버리는 섬뜩한 존재감, 시선만으로 대상을 일그러뜨리는 공포의 군주. 태산처럼 거대한 신체는 징그럽고 흉측하다.
얼굴에서는 문어발이 꿈틀거리고. 도합 66개의 팔에서는 갑각류의 집게발이 딱딱거린다.
「그대가 심연의 주인께서 그릇으로 택하신 자인가.」
평범한 NPC나 플레이어들은 놈의 이 형상을 목도한 것만으로도 미치거나 머리가 터져버린다.
「그 강대한 신격, 아직 필멸의 몸에 갇혀 있음에도 실로 대단하도다. 본좌가 진언을 사용했음에도 미동도 없다니.」
놈이 비웃듯이 말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알 수 있었다. 저것이 놈의 진짜 웃음이란 것을.
놈이 촉수 하나로 뒤쪽을 가리켰다. 권속들과 큘륜들이 광기에 취해가고 있었다.
「본좌에게 《예지안(豫智眼)》이 없었더라면, 그분께서 내리신 언약이 없었더라면, 요토스께서 직접 왔다고 하여도 믿었을 터.」
놈 특유의 오만한 말투에 알지 못할 친밀감마저 느끼며 고개를 까닥했다.
“생선 눈깔을 갖고 있어서 시력도 박살 났냐, 슈’율큘라?”
그 이름을 읊은 순간, 경내에서 심연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공기가 차갑게 식어가며 희박해진다.
「므흐흐흐흐하하하하하하!」
슈’율큘라가 재밌다는 듯 껄껄 웃자, 신전이 무너질 듯이 진동한 것이다.
「골계로다, 참으로 골계스럽도다!」
그럴 만도 하다.
내가 지금, 심연의 진명(眞名)을 말했으니까. <잊혀진 왕들> 레이드의 금기 행위가 있다면 그건 놈들의 진명을 말하는 것.
진명을 부르는 것만으로 광기가 폭주해 미쳐 버리니까.
「훌륭하도다. 신이란 본래 필멸체에게 한없이 오만해야 하는 법. 그것이 신의 법도이자 격…… 그렇지 않은가, 샬류안?」
샬류안이 재회의 기쁨을 감추기 위해 쓰고 있던 우산을 뒤로 돌려 얼굴을 보였다.
「잘 지냈어? 큘?」
큘?
이 괴이쩍고 흉측한 괴물한테 저런 애칭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뭐, 켈렉─샼도 켈이라 부르는데.
웃음꽃이 핀 걸로 보아, 이미 둘 사이에서 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성장한 건가?」
슈’율큘라의 문어발 하나가 샬류안의 머리를 더듬었다.
곧 다른 문어발 하나가 날아왔다. 그건 샬류안의 가슴팍 부분에서 멈췄다.
「예전에는 필시 이렇게 작았었던 걸로 기억하건만.」
「야, 이 미친 문어 새키야! 2천 년 동안 봉인당했다가 깨어났다가 봉인당하길 반복하니 돌아버렸냐! 신격을 지닌 존재는 성장 같은 거 안 해!」
「아니, 그대는 분명 이토록 작았다. 성장한 이유가 무엇인가? 외면의 미(美)를 선보일 상대라도 생긴 것인가.」
슈’율큘라는 샬류안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환갑잔치에서 손녀딸에게 덕담을 던지듯이.
“그만.”
내가 말했다.
이 쓸데없는 대화를 더 들을 용의가 없었다.
“이런 하찮은 소꿉놀이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난 네놈과 달리 한가하지가 않거든.”
서둘러야 한다.
서둘러서 이 게임을 마무리 지어야만 해.
「본좌 또한 한가하지 않도다.」
“한가하지 않은데 관리자랑 잡담할 시간이 있다고?”
「이것은 재회의 축배일 뿐이다. 그것이 못마땅하다면…… 네놈의 뜻을 따르지. 그래, 본좌의 잡설이 길었음을 인정하마. 무엇이 궁금한가?」
묻고 싶은 건 이미 산더미처럼 있었다. 그렇기에 사실 이곳에는 혼자 오고 싶었다.
샬류안에게는 묻지 못하는 것.
요토스에게는 아무리 말해도 논리의 허점을 타고 에둘러 달아나기만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묻고 싶었으니까.
“너는 언약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단 소리지.”
침묵이라…….
부정하지 않겠단 소리로군.
샤르홀린을 발검하여 슈’율큘라를 똑바로 겨누었다. 심연이 전율하였고 큘륜들은 거품을 물면서 쓰러졌다.
“이 세계, 그리고 너희들의 정체에 대해 말해라. 그리고 집행 관리자 요토스의 목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