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73)
가짜 용사 이야기-173화(173/310)
#69 :
[11. 엇갈리는 운명] 빛의 계승자, 어둠의 계승자 (3)“태초에 빛이 있었다.”
발레린이 말했다.
현수는 신태엽과 함께 순백의 공간에 와 있었다. 다른 아무것도 없었다.
마법에 조예가 깊은 신태엽은 감탄했다. 이렇게나 완벽한 환상 세계를 1초 만에 구축할 수 있다니.
“그리고 어둠도 있었지. 빛에 속한 신들은 어둠에 속한 신들이 거느리는 광기를 경계했다. 그래서 하나의 세계를, 외우주의 신들이 결코 손을 댈 수 없는 세계를 창조하고자 했지.”
“세계를 창조……?”
“그래서 그들은 창세신(創世神)이라 불린다. 빛의 어머니 겔드하리아께서 세계를 펼치셨고 빛의 아버지 유르벨께서 경계를 그어 외우주의 광기를 완전 차단했어.”
어둠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세상이, 순백의 공간에 펼쳐져갔다.
빛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노래하고 나무가 속삭이는, 지구의 고향이 떠오르는 그런 세계였다.
“그 세상에는 절망이 없었다. 다툼도 없었고 분노도 증오도 없었지. 오직 사랑과 화평과 웃음만이 가득한 세계였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배웠는데요. 애초에 잔악한 생물이라고요.”
신태엽이 반박했다.
“그렇게 변했지. 창조의 빛이 심연으로 변하고, 외우주의 별빛이 통하게 되면서.”
“방금 완전히 격리됐다면서요?”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창세신들에게도 그 많은 세상을 관리하기 위한 수족이 필요했단 거야. 그리고 겔드하리아께서는 자신이 만든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존재를 빚으시고 요토스라는 이름을 내렸지.”
“요토스?”
“요토스는 겔드하리아 님의 일등 심복이었다. 심연을 거느리는 존재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요토스가 왜 배신했는지는 아무도 정확한 이유를 몰라. 다만 요토스가 겔드하리아 님을 배신하고 신격을 삼켰단 건 확실하다.”
눈부시던 세계가 검푸르게 퇴색되고 퇴락하고 부패하면서 썩은 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악취…….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안다. 바로 심연의 냄새였다.
“겔드하리아께서 수족을 만드셨듯 요토스도 겔드하리아 님의 신격으로부터 수족을 만들어냈다. 그게 바로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샬류안이다.”
“샬류안이라면…….”
“그때 그 관리자? 아저씨, 그때 그 우산 짚고 있던 관리자 말하는 거 아냐?”
“맞다. 샬류안은 겔드하리아 님의 권능이었던 ‘죄와 심판’의 능력을 뒤틀린 방식으로 갖고 있었지. 요토스는 이 힘을 다른 창세 세계를 침략하는 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필요한 건 돈을 지불할 관객.
그리고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줄 존재들.
“요토스는 외우주의 절대자들과 거래를 했다. 자신을 절대자로 인정해주면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유희를 제공하겠다고.”
“설마.”
“그래, 그게 너희가 게임이라고 말하던 모든 시나리오의 실체다.”
신태엽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부정하고 있었으나 목소리에 확신이라고는 없었다.
“너희가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키는 ‘죄’를 지으면 샬류안은 너희를 매개로 그 세계를 ‘심판’할 자격을 얻게 된다. 그 세계로 외우주가 통하는 문을 열 수 있단 거다.”
“……!”
“즉, 이 세상이 끝장나고 나면 너희들의 세계도 멸망 후보군이 된다. 그리고 다른 후보들이 멸망하는 동안 준비를 마치고 파멸이 시작되겠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이게 게임이 아니라 이세계였다는 소리인가?
그리고 이 세계를 파멸시키고 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세계를 파멸시키게 된다는 소리인가?
“관리자들은 거짓말은 하지 않아. 진실을 감춰 기만할 뿐. 소원은 이루어 주겠지만 세계가 멸망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처, 철이 형아가 그런 것도 모르고 계약했단 말이야? 그럴 리가!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당신보다도 몇 배는 똑똑할 텐데!”
“승리한 사도들은 신격을 받고 신으로 승격된다. 인간성을 모조리 잃어버리게 되지. 그럼 세계 따위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발레린이 손가락을 튕기자, 이번에는 우주가 펼쳐졌다.
“요토스에 의해 이미 수많은 세계가 신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했고, 또 전락하게 되겠지.”
여러 세계들, 즉 창세의 행성들이 차례로 나열되고 있으며 그 위로 외우주의 별빛과 암흑이 뻗어 나가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장난감이 된 거다. 인간은 이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사육되는 거지. 그리고 다른 세계를 파멸시키는 데 사용되고.”
“외우주의 존재들이 정말 실존한다면, 대체 왜 이딴 짓을 하는 겁니까……?”
“인간이 인간성, 즉 창세신들의 성정을 상실하는 모습은 외우주에게 아주 큰 유희인 모양이야.”
“……!”
“나도 바로 믿지 못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봤다. 세계를 멸망시킨 사도가 인간성을 잃고 신으로 승격되는 모습을.”
“잠깐, 잠깐만요.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철, 아니, 에델 씨는, 에델 씨도 그렇게 된단 말입니까?”
“승리한다면 말이지.”
“아니야! 형아가 그럴 리가!”
“그래? 그놈이 이 세상의 멸망을 막겠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했더냐?”
현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철은, 늘, 고뇌하고 슬퍼했으나 이 세계는 멸망해야 한다고만 말해왔던 것이다.
“진실을 알려주마. 이 게임이란 대체 뭘까? 죄의 굴레다. 소원을 미끼로 죄를 퍼뜨리기 위해 요토스가 만든 파멸의 연쇄. 모든 창세 세계를 타락시키기 위한 거지. 인간을 이걸로 만들면서.”
발레린의 손에 어느새 체스의 장기말과 비슷한 것이 들려 있었다. 신태엽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손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구라야, 구라 치지 마!”
“그러면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말은 어떻게 믿었지?”
“좋아! 당신이, 당신이 이 모든 걸 안다고 쳐! 근데 어떻게 아는 건데? 어떻게 신들의 비밀을 아는 거냐고!”
“이것 덕분이다.”
발레린이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빛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아니,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고하고 드높고 거룩해 보였다.
태초의 빛을 거느린 보석.
그 빛은 어떻게 설명하기 힘겨웠으나 비췻빛에 가까워 보였다. 비췻빛과 황금빛과 붉은빛이 함께 일렁이는…… 태초의 여명.
“이건 베르켄시아의 날밑 장식이다. 나는 이걸 회귀석이라고 부른다.”
“베르켄시아……?”
“<온 것들>의 지도자였던 테르시아께서 쓰시던 무기이자 용사 리암께서 쓰셨던 무기이다. 빛의 칼날이란 뜻으로 겔드하리아께서 그 신격의 편린으로 빚어내신 신검이다.”
“……!”
“나는 이 베르켄시아의 정통 계승자가 아니야. 이 힘을 억지로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
발레린이 신태엽을 무시하고 박현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너는 창세신의 선택을 받았어. 테르시아 님께서 너를 부르시고 계신다.”
박현수라고 신태엽만큼 충격을 받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숨을 쉬는 방법을 잊은 것만 같았다. 숨이란 게 어떻게 쉴 수 있는 거더라?
그러나 어떻게인지 머릿속에 차오른 의문만은, 그 꿈에서 보았던 그 환영만은 너무나도 또렷해서, 이렇게 묻고 있었다.
“만약, 만약에, 정철 씨가 이 세상을 정말 멸망시키는 외우주의 사도가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발레린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박현수에게 주어진 운명을 담담히 설명해 주었다.
“쓰러뜨려야만 되겠지. 베르켄시아의 계승자인 네 손으로.”
* * *
당황스럽군…….
<온 것들>이 신을 사칭하는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그 배후에 창세신이란 세력이 있었다니.
더 이상 묻지 않고 몸을 돌렸다. 절대신들이 세운 방침이라면, 억지를 부려도 들을 수가 없을 터.
“슈’율큘라. 네가 거느리는 심연을 모두 소집해라.”
「그대의 행선지는?」
“라리엔으로 간다.”
……라리엔.
허망한 광기 속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천천히 머리를 쳐든다. 기억은 점차 선명해져 갔다.
그때, 그곳의 사막에서, 모닥불을 피워놓았던…….
– 아저씨랑 같이 우리를 찾으러 와줘요.
영목을 부패시키는 것으로 종말시대를 시작시키겠다.
이제는 이 미친 세계의 결말을 빨리 보고, 떠나고 싶었다.
요토스의 손에 놀아나는 것도 신물이 난다. 리샤르처럼 미치기 전에, 모든 기억을 망각하게 되기 전에 원하는 것을 얻고,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
“배틀로얄 우승 동료들을 권속으로 삼을 수 있는 거지?”
샬류안이 고개를 저었다.
「살아남아 있다면 말이지.」
“소원을 써서 다 살리면 그만 아닙니까?”
네이갈라스, 켈렉─샼, 슈’율큘라…… 놈들 모두 옛 귀족이라는 이름으로 권속을 부리고 있었다.
나라고 그러지 못할 건 없지.
슈’율큘라가 음산한 미소를 지어보았다.
「현명하군. 그래서 그 오만한 여왕을 꺼내오려는 셈인가?」
“켈렉─샼 같은 광견은 네이갈라스 같은 억제책이 있어야 더 다루기 쉬울 테니까.”
켈렉─샼은 슈’율큘라와 사이가 좋지 않다.
원작의 설정으로 확인했을 때, 슈’율큘라와 친밀한 관계인 건 안리달.
켈렉─샼과 친밀한 건 네이갈라스였다.
「본좌는 내륙 지대에 큰 힘을 미치지 못한다.」
“라리엔은 나 혼자서 가. 그동안 너는 요정과 인간의 항구 도시들을 모조리 점령시켜 두고 있어라. 네이갈라스와 합류하는 즉시 성도를 공략할 거니까.”
「진정 행할 수 있겠나?」
슈’율큘라는 묻고 있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나의 의지를.
「신격을 입었다곤 하나, 아직 그대의 육신에는 미약한 인간성이 남아 있다.」
이번에는 그날, 그 대관식에서 아르츠레히드와 요르한 4세가 짓던 미소가 내게 고갯짓했다.
– 성도의 영웅, 그대들에게 관을 받는 영예를 누리고 싶구나.
순간 샤르홀린이 덧입혀지며 쪼개진 샤릴리온이 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샤릴리온은 이미 요토스에 의해 깨져 버렸으니까. 이건 신격에 억눌린 나의 인간성이 우는 소리인 것인가.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엘리트 소서러. 필멸체란 본래 감정에 얽매인 생명이니까. 그러니 무리할 필요는─」
하지만.
“─관리자님.”
두 개자식의 조언을 묵살했다.
신격에 허덕이는 나의 인간성과 기억 속에서 손짓하는 아르츠레히드와 요르한 4세를 마음의 칼로 베어 죽였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제가 아직 인간으로 보입니까?”
* * *
성도(聖都) 캐슬베이아.
네 번째 태양 에오스와 다섯 번째 달 헬레니아의 희생으로 세워진 이 도시의 북쪽 정거장은 인파로 바글거렸다.
앤티키아의 궤멸 소식은 이미 성도에도 퍼져 있었다. 생존자 중에 가족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저는 <타르키리텐>으로 가겠습니다.”
동쪽 정거장은 한산한 대신 최중요 요인들이 모여 있었다. 박현수 또한 그곳에 있었다.
“박현수, 내 친구여. 그 먼 길을 정말 가려고 하는가? 요정의 땅에는 철도가 없어서 말과 낙타를 타고 가야 하네.”
수상 아르츠레히드가 우려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선왕 전하께서 주신 블러드윈드가 있으니 걱정 없습니다.”
서둘러야만 한다.
정철이 완전히 타락하기 전에 테르시아라는 존재를 만나봐야만 했다.
– 저는 못 합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 그렇게 말하면서 놈의 손에 네 세계가 파멸하는 것도 지켜볼 거냐?
– 뭔가 착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가 그렇게 행동해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에델 바이스 덕택이었습니다! 선택을 받았다면 그 사람이 받아야지, 제가 받았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아르츠레히드 일행과 친해질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은 정철이었다.
성도의 일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요르한 3세와의 접점을 만들어준 것도 정철이고, 그 반란을 제압해준 것도 정철이었다.
그런데, 그랬는데…….
왜 정철이 아니라 나란 말인가?
– 세계에 타락이 번질 때 겔드하리아께 선택을 받은 자, 그게 바로 테르시아 님이시다.
테르시아는 세계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고 한다. 발레린처럼 몇 번이고 세상의 파멸을 반복하는 것으로, 그렇게 바꾸었다고 한다.
– 테르시아께서 최초로 인류를 해방시키고 우주의 진실을 가르쳐 주었지. 요토스가 살아 있는 한 새벽은 밝지 않을 거라고.
– ……!
– 테르시아께서 요토스와의 일전에서 패배한 이후…… 봉화지기라는 이름으로 계승자들은 계속해서 심연과 싸웠으나 모두 요토스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이 세계의 영웅으로 유명한 리암조차도 요토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한다.
– 그러나 희망의 예언이 있었어. 이 땅에 마지막 계승자가 나타나, 요토스를 파멸시켜 이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고 온 세상에 새벽을 밝힐 거란 예언이.
– 온 세상의 새벽……?
– 그 존재는 실전된 모든 기적의 힘을 쓸 수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평생에 걸쳐 그 존재를 찾아다녔어. 에오스 님이나 헬레니아 님처럼 <온 것들>이 이 땅에 남긴 유산인 줄 알았는데, 다른 세계에서 온 너였다니…….
그때, 발레린의 그 차갑고 무표정하기만 했던 목소리와 눈동자에 스미던 눈물 어린 희망의 빛에 현수는 숨을 삼켜야만 했다.
–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 테르시아 님께서 세상의 운명을 바꾸실 수 있었다고 한다면, 계승자인 저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겁니까?
– 아마도.
– 그러면 에델 바이스의 운명도 바꿀 수 있는 겁니까?
– 그 대답은, 내가 아니라 베르켄시아가 해줄 거다. 그러니 너는 서둘러 <타르키리텐>으로 가야 한다. 테르시아 님께서 널 기다리고 계신 그곳으로.
블러드윈드의 말고삐를 쥔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정철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현수를 몇 번이고 살려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대가로 인간성을 잃고 외우주의 인질이 되었다.
외우주의 농간 속에서 사쿠라이를 제물로 바쳐야만 한 뒤, 정철은 어떤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떻게든 보답해야만 한다.
만약 발레린과 로헤이리츠가 한 말이 모두 진짜라면, 그 손아귀에서 해방시켜 주어야만 한다.
그러니, 가야만 한다.
<타르키리텐>으로.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르츠레히드. 내가 같이 가니까. 인류 사절단을 대표하는 데 있어 격이 모자라진 않을 것이다.”
“샬롯 전하.”
“그리고 발레린 왕제도 함께이니 요정 폭도들이 해코지할 일은 없을 거다. 뭐가 그리 걱정이더냐?”
요르한 4세가 씁쓸한 표정으로 박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행단이 필요할 것 같구나.”
앤티키아 사태에서 사망한 제롤드를 대신해 영목 기사단 단장이 된 엑토르가 제안했다.
“노련한 영목 기사 5명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기사 다섯.
수행하는 종자들까지 합하면 스무 명은 족히 되는 기병대이다.
하지만 현수에게는 기사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켈렉─샼의 진군으로 이제 성도 밖의 모든 세계가 위험하다. 부디 나의 말을 들어다오.”
“숫자는 적은 것이 좋습니다.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할 셈이니까요. 그리고…… 저를 수행해줄 미더운 동료들은 따로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탁월한 실력자들이 현수를 지켜주기로 했으니까.
“반드시 해답을 찾아서 돌아오겠습니다. 반드시요. 약속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두 분 다 부디 무사하십시오.”
발레린.
용부인 크세리니아 일행.
그리고…….
“아저씨, 아니, 매형! 이제 회의 끝났어? 노인네들 말이 뭐 그리 많데. 시간도 없는데.”
……옛 정철 공대의 에이스까지.
* * *
수십 대의 비행선들이 이데아 반도 서쪽 해안에 착륙하고 있었다.
증기기관이 만들어내는 기체의 부력으로 공중 비행이 가능한 비행선은 증기 문명의 결정체다.
비행선에서 내리는 이들은 그 출신 성분이 다양해 보였는데, 인간과 아인(兒人; Dwarf)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멸망한 대륙의 생존자들이었다.
엘리트 아처와 엘리트 어쌔신의 혈투 속에서 대륙은 이미 쑥대밭이 되었으며 성배는 힘을 잃고 몰락했다.
“엘디아께서 안리달을 봉인하신 덕택에 비행에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슈’율큘라도 갑자기 군세를 다른 곳으로 모아서 바다도 잠잠했고요.”
“다 엘디아 님의 은덕입니다.”
엘디아는 신들의 언어로 장작이란 뜻이었다.
또한 저 먼 기원의 시대, <온 것들>을 도와 <잊혀진 왕들>을 토벌했다는 용사들을 뜻했다.
엘디아 용사들은 모두 잿빛 머리를 갖고, 진성검이라는 병기를 사용하여 악(惡)을 토벌했다고 전해진다.
그 여자는 엘디아가 아니었다.
잿빛 머리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어떤 인도하심에 따라 진성검 아이자이야를 다루게 되었을 뿐.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용사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듯.
엘디아라고 불리기 전에, 그러니까 그녀가 아직 한 명의 플레이어가 되기도 전에, 다른 세계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좋아요, 그러면 바로 성도로 향하죠.”
크리스 마이어스, 라고…….